* 지난 여름 우리 반 학부모님께서 국어 공부를 잘 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며 아이 편으로 메일 주소를 보내주셨다. 국어 선생에게 가장 쉬운 질문인 것 같지만, 이 질문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국어선생님들은 모두 잘 아실 것이다. 그 땐 여행가느라 시간이 없어서 대충 써서 보내드리고 언젠가 다시 고쳐서 한 번 써 봐야지 했는데 다시 고치려니 귀찮다. 그냥 내버려둬야겠다.

 

 

   어머님, 안녕하십니까? 날씨도 더운데 평안히 잘 계십니까? 어제 OO이로부터 어머님의 메일 주소를 받았습니다. 국어 성적을 올리는 방법을 물으셨지요? 사실은 저도 정작 국어 공부를 잘 하는 남다른 방법은 없는 듯하지만, 그래도 부탁하신대로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공부에 대해서

   저는 아이들에게 공부는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기도 하면서, 어려운 일이라고 일러줍니다. 여기서 쉽다는 말은 공부 말고, 돈 버는 다른 일을 해 본 사람은 모두가 두 번 말하지 않아도 공감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 버는 일보다 훨씬 쉽다는 공부도 사실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건 노력한 결과가 금방 나타나지,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비유하자면, 우리가 우물 속에 돌을 던져 넣어 그 돌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하도록 한다고 생각하면 좀 비슷할까요? 하루 이틀 공부하는 게 우물에 돌 하나 던져 넣는 것인데, 그게 금방 표가 안 나는 겁니다. 그러나 돌은 바닥에 점차 쌓일 것이고, 바닥이 탄탄히 다져지면 그 어느 날 내가 던진 돌 때문에 드디어 지금까지 던져 넣은 돌들이 물 위에 솟아오를 것입니다.(한 개의 돌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것은 그 밑에 깔린 모든 돌을 볼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청소년기의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기다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우직한 기다림이 없으면 공부를 잘 하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새로 공부를 시작하려는 학생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내가 던지는 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오늘, 하루 돌을 던지는 행위가 나날이 이어져야 합니다.

 

국어공부 방법에 대해서

  '무엇이 진짜 국어 공부인가'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있겠지만, 어머님께서는 OO이의 국어 성적이 올랐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셨기에 저도 그런 방향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국어 공부도 여느 과목의 공부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학교나 전국 단위의 시험이나 학교에서의 정기적인 시험 문제들은 단순히 국어와 관련된 지식을 묻는데 한정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과목은 그대로 두고 국어 성적만 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국어 시험 문제들은 사회, 역사, 과학, 수학, 논리, 예술 등 다른 과목의 개괄적인 지식과 일정 정도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단순히 외워서 기억하고 있는 국어 관련 지식만으로는 문제를 쉽게 풀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국어만 잘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봐야겠지요? 국어 과목의 성취수준도 다른 과목의 그것과 비슷하게 형성됩니다.

 

   그래서 국어 공부에 책 읽기가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국어 공부의 가장 핵심은, 국어과에서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교육 내용(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읽기-쓰기, 말하기-듣기, 문학, 국어 지식(문법)입니다.)이지만, 국어과 교육 목표에 담긴 국어 내용을 파악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능력은 이해력(독해력)이고, 이해력은 기존의 배경 지식이 활성화되어 형성되는 것이니까요. 조금 더 풀어서 설명드리면, 낯선 글을 읽더라도 그 글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내가 다른 책에서 읽어본 분야라면 훨씬 이해하기가 쉽겠지요? 따라서 고등학교 수준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입문서를 읽는 것이 제대로 공부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판타지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모두들 말하지만 저 역시도, 국어공부를 위해서는 책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환타지나 무협 소설은 국어 공부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책을 좋아하는 학생들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담긴 의도를 자기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바꾸어 이해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납니다. 상대방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자기는 그렇게 이해했다고 말합니다.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 빠져있거나 글의 의도를 자의적으로 왜곡하는 경우도 자주 일어납니다. 그래서 문제가 무엇을 묻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문제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니 제대로 된 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가벼운 설명문이나 논리적인 글을 읽히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학생이 조금이라도 흥미있는 부분의 책을 고를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요.) 그리고 가능하면 ‘어떻게’ 읽었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왜냐면 또 그 의도를 잘못 파악해 놓고 자기는 다 이해했다고 여길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와 이야기를 통해서 대화에 집중하는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집중해서 듣고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연습이 충분히 된다면, 국어 문제가 의도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험에 나오는(?) 문학 작품들을 미리 읽어두는 것도 필요합니다. 혼자서 책을 읽을 땐 문제는 염두에 두지 말고, 내용에 집중하는 일이 무엇보다고 중요합니다. 현대 소설들은 별로 부담이 없고, 한 번 읽은 글은 아무래도 자신감을 가지고 읽을 수 있습니다. 글을 읽을 때 배경지식이 있으니까 좀 더 편안하게 시험의 지문을 읽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배경지식을 넓혀가는 책읽기

   아울러 다양한 방면의 교양이나 상식을 꾸준히 익히는 데 도움이 되는 책도 OO이의 수준을 맞추어서 권해 주면 좋겠습니다. 또 그런 책을 읽을 때는 모르는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새로 익힌 단어는 조금 더 어려운 글을 이해하는데 밑받침이 됩니다. 국어에서도 새로운 낱말은 영어 시험에서 영어지문을 읽을 때 영어단어를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공자님 같은 말씀이지만 모르는 낱말이 나오면 사전을 뒤적여보아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면 좋겠지만, 그러면 너무 읽는데 집중할 수 없으니까 문맥 속에서의 의미를 파악해 두어야 다음에 같은 단어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정답입니다.

   그 외에는 문제집을 꾸준히 푸는 것도 필요합니다. 제가 가끔 국어를 잘 하는 학생에게 이 문제는 왜 이게 답이냐고 물어보면, 그 학생은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하는데 답은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말하는 ‘감’이라는 것인데요, 문제를 꾸준히 풀다보면 뭐라고 꼭 찍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감이 생겨서 답이 보인다고 할까요? 아무튼 그런 게 있습니다. 그렇다고 문제집 한 권을 하루 온종일 풀었다고 해서 감이 금방 생기는 것이 아니구요, 꾸준히 하는 성실함이 필요합니다. 한꺼번에 여러 개의 문제집을 푼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한 학기에 하나라도 끝까지 해 보는 게 중요하지요.

 

   그래도 제일 중요한 것은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교사들은 수업시간에 무엇을 가르쳤느냐를 기준으로 시험문제를 내거든요. 그리고 그 무엇이라는 것은 국가가 교과서를 발행하면서 미리 정해둔 기준이 있으니까 모의고사나 수능시험도 결국은 그 범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론적으로는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들었으면 시험을 치르는데 문제가 없는 것이죠. 뭐 꼭 이론적으로 다 되는 것 아니겠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게 수업시간입니다. 수업 시간에 집중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결국 성적도 좋습니다. 이런 학생을 두고 기본기가 탄탄하다고 하는 것이지요.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하니까 급한 마음에 학원이다, 과외다 해서 모두들 다른, 뾰족한 방법을 찾는 거 아니겠습니까? 경우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기초 없는 누각을 허물어지기 십상입니다.

 

   모쪼록 좋은 해법을 찾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아마 어머님께서 이렇게 정성을 쏟고 계시니 금방 방법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더운 여름 건강하게 나시고, 늘 행복하시기를 빌겠습니다. 관심가지고 지켜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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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9-15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어선생님이시군요~ 역사선생님인 줄 알았어요...왤까요??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아... 퍼갑니다..

해콩 2005-09-15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교지에 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래도 될까요? (여기서 그래도 될까요란 교지를 담당하고 있는 선생님께 살짝 정보를 제공해도 될까? 하는 의문이지요. 근데 이런거 말 안하고 제공해줘야할 것 같은데.. 그쵸?)

느티나무 2005-09-15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워낙 소심하고..그래서요. 그리고 국어샘들이 아닌 분들이 보면 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끼리는 다 알지요. 저 글이 얼마나 별 내용이 없는 글인지..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