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학하는 날 받은 메일 한 통. 방학 동안 아이와 지내는 것이 힘들었다는 말씀과 공부하는 자세를 가르치려는 게 쉽지 않다는 말씀, 지능지수를 알고 싶다고 하셨다. 그 메일에 대한 답장.

 

   방학 동안 건강하셨는지요?

   아마 훌쩍 커 버린 아이와 한 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면, 이제는 '엄마 말만 잘 듣는' 아이가 아니거든요. 제 욕구가 있고, 제 의지가 있는 '어른'인 셈이지요. 그래도 자연스러운 과정에 있는 것이니 그리 염려할 단계는 아니라고 봅니다.

   부모님께서 아이들 공부에 관여하기란 점점 더 어렵겠지요. 말씀처럼 교사와 부모로서의 역할은 물이 있는 곳까지 안내해 줄 수만 있는 거지, 직접 물을 떠먹일 수는 없는 거지요. 편하게 생각하겠다고 마음 먹어도 순간순간 마음이 달라지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래도 좋게 생각하시려고 하신다니 담임으로서는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어머님께서 무슨 뜻으로 지능지수를 물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중학교 1-2학년 때 아마 검사를 하는가 본데, 고등학교에 통보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지능지수는 그리 신뢰할만한 척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제가 보기엔 OO이가 자기 생각의 범위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상대나 사물을 바라보는 능력이 약간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어머님께서 염려하시는 부분도 그런 듯 싶습니다.

   이는 사건이나 사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는 연습을 통해서 고칠 수 있을 거라고 보는데, 이를테면,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다루는 사건의 의견을 물어보고, 자기 생각과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음을 꾸준히 지적해 주는 것입니다.

   지금의 생각이 단기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꽤 오랜 연습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꾸준한 연습과 인내력은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먼 걸음 가야한다고 생각하시고, 지치지 않게 천천히 아들과 함께 걸을 수 있도록 마음 써 주십시오.

   어줍잖게 말씀이 길었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늘 건강하게 지내시고,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빌겠습니다. 언제든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이렇게 연락주십시오. 제가 성의껏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느티나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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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09-02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지능지수만이 필요한 시대는 아님을 아직 모르는군요. 다차원 지능이 필요한 살기 힘든 시대임을... 아직도 산업화 시대의 그늘에서 살던대로 지적인 측면만 강조되는 학교는 힘들 따름입니다. 지능지수 측정은 영재를 가려내거나 지력의 지체 정도를 알고 싶을 때 판별하는 도구일 뿐인걸요...

BRINY 2005-09-02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들이 가끔 하시는 말씀 "저희 아이가 머리는 좋은데...유치원 때는 똑똑하고 예쁘다고 주위의 부러움 많이 받았던 아이인데..." 아.

느티나무 2005-09-04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맞습니다. 지능의 개념이 바뀐 것이겠지요. 하지만 우리반 학부모님께서 걱정하시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 학교에 보시면, 판타지를 아주 열심히 읽고, 자기가 꾀가 많은 줄 아는데, 그 방법이 조금 유치한... 애들한테 가끔 놀림도 당하는 그런 녀석의 부모님이시거든요. 그러니, 좀 답답하셨던 게지요.

느티나무 2005-09-04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ㅋ 촌철살인의 한 말씀이시군요. ^^ 그럴 땐, 그냥 "아~!"하고 넘기면 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