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못 만나서 그런지 아이들을 보니 반가웠다.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출석을 불렀다. 그러면서 눈빛 교환 2초만 하자고 했더니, 영 반응이 썰렁! "느끼해요" "민망해요" "그런 거 왜 해요?" ㅎㅎ 그렇지만 나는 그런 거에 별로 개의치 않고 아이들과 은밀한 눈맞춤을 하며 이름을 불렀다.

   오늘 수업은 한 번도 쉬는 시간 없이 무려 5시간이었다. 그래도 교실마다 옮겨다니며(주로 3층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데, 비는 시간이 없으면 1층 교무실로 내려가지 않고 바로 다음 교실로 옮긴다. 그래서 아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샘 왜 이렇게 빨리 와요?"이다.) 평소 같으면 다섯 시간 연속 수업은 일 년에 한 두 번 정도지만 그래도 며칠 동안 쉬어서 그런지 오늘은 별로 힘든 줄 몰랐다.

   수업을 끝내고 내려와 도서실에 앉았다. 아무래도 학기 중보다 여유가 있어 그런지 도서실에 아이들이 많이 들른다. 책 좀 골라달라는 아이들에게 책도 추천해 주고, 대출 반납 업무도 하면서 점심시간을 보냈다. 3학년 남학생들에게 사주기로 했던 아이스크림도 한 개씩 물려주었고, 나도 하나 먹었다.(매점 사장님께서 아이들이 나를 '졸라서' 아이스크림 먹는 줄 알고, "선생님 그만 좀 괴롭혀라"하는 말씀도 하셨다.)

   아이들이 돌아간 도서실. 잠시 앉아서 도우미 어머님과 사는 이야기를 했다.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 갑자기 오늘 날씨가 무척 덥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잠을 설친 탓에 피곤이 몰려오며 몸이 나른했다. 이번 방학은 무엇이라도 배우고 싶은 방학이어서 근처를 살펴보며 걸었다.

   그러나 날은 너무 무덥고 더 걷고 싶은 생각이 싹 가셨다. 집에 와서 창문을 열고 책을 펼쳤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누워서 책을 읽으니 행복했다. 얼마 지나니 졸음이 살살 왔다. 얼마나 잤는지 자고 일어났더니 기분이 한결 좋았다.

   책을 더 읽고 싶었으나, 밀린 리뷰를 쓰기로 마음 먹었는데 아무래도 리뷰가 써지지 않았다. 컴퓨터는 컴퓨터대로 책은 책대로 펼쳐져 있고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리뷰 쓰는 것이 책 읽는 것을 도리어 방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리뷰를 안 썼으면 책을 열심히 읽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면? - 자신할 수 없다.

   내일을 위해서 자야겠다. 내일 만날 애들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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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0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영엄마 2004-07-20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안 써진다는 말은 못 믿을 것 같아요... 리뷰 당선되신 거 축하드립니다~~ 아, 이제서야 즐겨찾기했어요! 선생님이신가 봐요...잘 부탁드립니다..^^*

느티나무 2004-07-20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아영엄마님의 코멘트가 달린 서재는 여러 번 봤습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모처럼 즐겨찾는 분이 한 분 더 늘었네요. 그것도 감사!!

nrim 2004-07-21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려요~~ 지금에서야 알게되었네요. ^^
좋은 책 많이 읽고 많이 소개해주세요.~~

느티나무 2004-07-21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rim님-->부끄럽습니다. 좋은 책이야 너무 많은데, 온전히 읽고 이해하는 것이 힘들지요.
 

시작되는 보충수업, 마음이 무겁다.

고등학교 3학년들은 다음달 17일까지 130시간의 보충수업을 한다.

그 이후에 방학이 시작된다. 고 3학생들 말고, 내 방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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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07-19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방학이 언제까지인가요??
8월 2,3,4일 달랑 휴가 3일인 저를 봐서... 즐거운 방학 보내세요...
설마.. 방학이 일주일도 안되시는 건 아니죠??

느티나무 2004-07-19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일주일입니다. (직장인들에 비하면야 길지만...) 그렇지만, 개학 준비도 한 이틀은 해야하니까 한 닷세쯤 쉬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지난 3년처럼 도보여행을 못 떠나는 게 너무 아쉽습니다. 그래야 애들한테 해 줄 이야기도 많을텐데...

ceylontea 2004-07-19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짤까요??
선생님들은 방학이 제일 부러운데.. 겨우 일주일이라고요?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방학에는 보충수업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선생님도 학생들도 너무 불쌍해요...
 

   한 3시간 전에 학교 출퇴근용으로 들고 다니는 가방으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그 가방 안에는 당연히 가방의 정체성을 고려해서 책 두 권과 디지털카메라, 그리고 필통이 들어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평소에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는 점이다. (아무 것도 챙기지 않아서 무지 불편했지만,-이제 나는 내가 20대가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다- 아직은 그 불편을 감수하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나이라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까?(20대는 그 불편함을 모르거나 즐기지!)

   어제 14시에 출발해서 24시간 동안 유쾌하게 놀다왔다. 오자마자 쓰러져 잤더니 이제야 경우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지금 또 밖으로 나간다. 보충이 시작되는 월요일까지는 여행 못 가는 대신에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봐야겠다.

   그래서 지금 영화보러 갈 생각이다. 갔다 와서 서재에 여행 사진 몇 장 올리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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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이 방학식하는 날이다. 내일부터는 방학이다. 그러나 방학이 방학 같지 않음은 방학 생활이 평소 일과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걸 뜻한다. 아이들도 방학식은 왜 하냐고 투덜대던데, 아마도 방학식만 덜렁 해 놓고 월요일부터 다시 죽어라고 학교에 나와야 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일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목요일에 방학을 해서 금-일요일까지는 잠시 쉬게 되니 다행이다. 전에는 토요일에 방학식하고, 월요일부터 보충수업을 한 적도 있었으니까. 아이들이 그런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방학이 방학 같지 않음은 물론이다. 나에게는 살인적인 보충수업 기간이 기다리고 있다. 집에서 쉴 엄두는 커녕, 다만 그 기간동안 내가 쓰러지지 않기를 빌어야 할 정도다. 믈론 그 기간 동안에 돈도 받지만, 기분도 찜찜하고 속된 말로 정말 '관값-죽을 때 들어가는 관'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처럼 금,토,일요일이 아주 소중하다. 무엇을 할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많이 해 보았지만, 어디 멀리 떠나고 싶다는 것 생각만 들 뿐. 하기야 어디든 마음만 내키면 훌쩍 떠나기도 했으니 예전과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내가 갈피를 못 잡고 어물쩡거리는 그 사이에 아주 중요한 약속도 하나 생겼고, 오늘 오후에는 마음은 무겁지만 그래도 마음이 맞다고 믿고 있는 선생님들과 표충사에 가기로 했다. 여러번 고민했지만, 그래도 내가 '가야할 것' 같아서 가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무겁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할 것 사이에서 고민!

   이크! 이제 마쳤는가 보다. 방학식 하는데 안 가고 도서실에 앉아 있었더니. ㅋㅋ 오늘 도서부 아이들이랑 일단 영화를 보기로 했다. 가까운 극장에서 보기로 했는데, 시간표를 확인해 보니 '슈렉2(자막)' 과 '달마야 서울가자' 정도만 남았다. 어떤 걸 볼까? 애들은 어떤 걸 보자고 할까?  

   방학에는 좀 더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시대는 언제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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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07-15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과 영화 관람... 즐겁게 보세요...
그리고... 방학이라.. 좋으시겠어요..

비발~* 2004-07-15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벌써 방학이에요? 보충수업, 여전하군요. 그래서 방학 기억은 국민학교 때것 밖에 남아 있지 않은데, 예나지금이나 마찬가지군요. 아이들은 무슨 영화를 택했는지 올려주세요~

느티나무 2004-07-16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달마야 서울가자! 봤구요. 유쾌하다는 반응과 썰렁하다는 반응이 교차했지요. 우리 도서부 친구들 1학기 동안 수고했다고 제가 점심 사줬어요 ^^
 

   지난 토요일부터 계속 김광석의 '너 하나뿐임을'을 듣고 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노래! 김광석의 노래는 들어도 들어도 물리지 않는다.(그래서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 거겠지.)

   지금,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는 점점 더 커져서 잠이 안 온다. 윗동네는 오늘 비가 많이 온댔는데, 여기는 아직 비가 곱게 내린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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