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밤차로 나에게 달려오고 있는 책들이다. 며칠 전에 생각해 보니 책을 산 지가 좀 지난 것 같아서 습관성으로 주문해 버렸다. 알라딘을 돌아다니다가 서평이 좋거나, 신문에 소개된 책이거나, 예전부터 읽고 싶었으나, 인연이 닿지 않았던 책-장미의 이름-을 드디어 사게 되었다.

린 마을 이야기  황수민 지음, 양영균 옮김 / 이산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  홍대용 지음, 김태준.박성순 옮김 / 돌베개

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나탈리 앤지어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해나무

석굴암, 그 이념과 미학  성낙주 글, 박정훈 사진 / 개마고원

우리 옛건축에 담긴 표정들 류경수 지음 / 대원사

장미의 이름 - /하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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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9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11-19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연우주 2004-11-19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래저래 상황이 그러네요. 제가 요즘. 암튼 얼른 평상심으로 돌아가야겠지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갈대 2004-11-19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린 마을 이야기 한겨레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 보려고 콕 찍어둔 책이죠. 장미의 이름도 구입하셨군요.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어렵더라도 끝까지 읽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해가 안 되서 처음부터 다시, 다시, 하다가 6개월만에 완독했거든요..-_-;;

느티나무 2004-11-19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 말씀 들으니 슬슬 걱정이 되네요. 저 어려운 책 잘 못 읽어내는데... 린 마을 이야기는 한겨레신문의 아깝다, 이 책! 코너에 실렸었지요. 얼마 전에 상상의 초가교실이란 책도 거기난 거 보고 읽었는데 괜찮았습니다.
 

310030

 

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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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4-11-19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10031

^^


진/우맘 2004-11-19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610043

축하드려요!


그루 2004-11-19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모래언덕 2004-11-19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610063

저두요...


아영엄마 2004-11-19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만명을 넘기셨군요! 축하해요~ -아영엄마-

조선인 2004-11-19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유자차 이야기를 하며 캡처를 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왠지 님은 애들 장난으로 여길까봐) 이제 보니 후회스럽네요.

늦었지만 1만 초과 축하해요.

느티나무 2004-11-19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한 번, 이 공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전출처 : 해콩 > 백혈병.. 그리고 '미숙이 이야기'

   미숙이.. 처음 발령받았을 때 녀석은 1학년 2반이었다.  그 해 나는 2학년 담임에 2학년 수업 네시간, 나머지는 1학년 열 두반, 전반 수업이었다. 녀석은 예뻤다. 교사를 너무나 지치게 하는 아이들 속에서 녀석은 보석같은 눈을 가진 소녀였다. 2학년 때 기억은 남아있질 않다. 내가 수업을 안 들어가서 그런지, 예쁘고 성실하게 생활하는 아이들이 간혹 받는 역차별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범생이인 미숙이는 3학년이 되어서도 담임선생님과 교과선생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학교 생활을 했고 '수시'로 대학도 합격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 해 10월 말쯤 담임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그 아이가 백혈병이라 했다. 백혈병... 추석을 앞두고 갑자기 팔 다리가 아프다고 해서 검사를 해봤더니 그렇게 엄청난 결과가 나왔다 했다. 미숙이는 아버지 없이 엄마, 언니와 살고 있는,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티없이 해맑고 성실한 그런 아이였다. 언니와 엄마에게 미숙이는 자신들의 신체와 같은 존재였다. 우리는 모금을 했고 미숙이를 돕기 위해 노력했다.

   부산 백병원 등 백혈병 전문 병원을 전전하다가 결국 미숙이는 서울로 옮겨가게 되었다. 여의도에 있는 성심병원.. 백혈병 전문이라고, 말끔히 고친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해.. 마침 교사대회를 여의도공원에서 했다. 토요일 올라가 밤을 세워 축제를 치르고 다음 날 내려오는 그런 일정이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나랑 황샘, 박샘이 참가했는데 우리는 또 다른 목적도 한가지 가지고 있었다. 미숙이를 보는 것. 

   차가워진 공기가 볼을 스쳤던 그 아침, 우리는 자는 둥 마는 둥 일어나 별로 멀지 않은 여의도 성심병원으로 갔다. 화장실에서 대충 눈꼽만 떼고 이만 닦고 응급실-무균병동으로 갔다. 모자를 푹 눌러 쓴 그 아이는 엄마와 함께 우리를 맞았다. 머리를 깎았다며 부끄러워할 뿐 녀석은 울지 않았다. 연신 웃으면서 '빨리 나아서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해주며 아이와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돌아보니 다른 두 선생님은 울고 계셨다. 중년의 성인 남자.. 그 선생님들이 돌아서서 울고 있었다. 나는 끝까지 울지 않았다. 발그래한 눈시울로 고맙다는 말만 되뇌시는 어머니의 손을 놓으며 우리는 발걸음을 떼었고 일요일 대낮부터 술집을 찾아 들어갔다.

   부산으로 돌아와 모금 활동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란 아주 냉정한 것이어서 바쁜 일상 속에 미숙이에 대한 걱정은 점점 자리를 잃어되어 우리의 마음은 무뎌져갔다. 그렇게 차갑게 흐르던 시간을 극복한 건 오히려 미숙이였다. 친구들이 수능을 치르기 몇일 전, 녀석은 서울, 그 고통스런 병실에서 친구들을 위해 사탕을 준비하고 선생님들의 위해 편지를 써서 부산으로 보내왔다. 미숙이는 그런 아이였다. 담임선생님은 3학년 전체 아이들에게 그 사탕을 골고루 나눠주고 선생님들께 그 편지를 읽어주셨다.

   그 와중에 한 선생님의 도움으로 국제신문에 미숙이의 기사가 나갔고 부산 MBC에서도 미숙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녹화를 하던 그날은 (2001년 12월 3일이었다.) 겨울비가 내렸다. 미숙이와 그 언니가 학교로 오기로 했고 그 시간에 맞춰 전교생이 수업을 중단하고 이벤트를 열어주기로 했다. 그 장면을 찍어 방영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미숙이의 쾌유를 비는 플랭카드를 함께 만들고,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학교 옥상에 또 교실 베란다에 숨어서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추워진 날씨에 비까지 내렸지만 아이들은 참을성있게 잘 기다려주었고 그런 아이들 속에서 나도 행복했다. 그렇게 미숙이의 건강을 비는 수백개의 종이비행기가 날았고 플랭카드가 드리워졌고 미숙이는 웃었다. 그리고 울었다. 십여분짜리 그 프로그램이 방송되던 날.. 웃는 미숙이의 초췌한 얼굴은 자꾸만 우리를 울렸다.

   그 해, 학교교지를 담당했던 나는 미숙이가 우리에게 주었던 따뜻한 편지, 그에 대한 샘들의 진심어린 답장, 홈페이지에 올렸던 미숙이 언니의 고맙다는 글들을 추려서 한 꼭지를 마련했다.

   '백혈병', '무균병동'이라는 단어는 내게 낯설지 않다. 지금도 그 단어들은 미숙이의 예쁜 웃음과 함께 떠오른다. 알싸해지는 코끝.. 붉어지는 눈시울도 함께..

   그 다음해 3월 14일... 그 날도 비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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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비발~* > [퍼온글] 여러분의 도움을 청합니다

알라디너 중 soul kitchen이라는, 주로 쏠키로 불리는 분이 계십니다. 깊은 내공으로 인해 매니아 층을 확보하고 계신 분이지요(주소는.... http://my.aladin.co.kr/strangedays) 


그런데, 쏠키님의 큰언니가 지금 병원에 계십니다. 백혈병이래요. 아무리 의학이 발달했다 해도 암은 여전히 우리에게 공포스러운 질병이고, 암과 싸우는 것은 당사자는 물론이고 지인들의 고통과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그 싸움에 여러분들이 힘을 모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병이 병이니만큼 수혈을 여러번 받아야 하는데, 헌혈증이 있으면 도움이 되나 봅니다. 그래서... 비발샘님께서 헌혈증 모으기 운동을 벌이고 있거든요. 혹시 가지고 계신 헌혈증이 있으시면 비발쌤님 댁으로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게도 몇장 있을텐데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이번 기회에 헌혈 한번 더 하구요.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편번호 120 - 847,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 3동 277-43 풍림 아트빌 501호 최아람

참고로 최아람은 비발쌤님의 아드님이시랍니다.


혈액증서를 최다로 모은 분에게는 비발쌤께서 풀빛 그림동화책 [핀두스 시리즈]를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복돌이님께서 브라질의 라틴 재즈 그룹 '템포 레이'의 [Instinto Tropical]앨범 두 장을 드린답니다. 저도 뭐 내놓을 게 없나 싶어서 보니까 적립금과 마일리지를 합쳐서 2만6천원 정도가 있네요. 이 금액만큼 책 보내드리겠습니다. 1등이 이 모든 걸 다 가지면 좀 그러니, 1등부터 원하는 걸 하나만 선택하시는 게 좋겠지요? 이런 게 없더라도 여러 분들이 잘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만, 그래도 감사의 뜻으로 드리는 거니 받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쏠키님에게 큰언니가 어떤 존재였는지, 쏠키님 서재에서 퍼온 글을 소개합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쓰신 건데, 읽다가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많이많이 도와 줍시다. 알라딘은 유난히 정과 사랑이 넘치는 공간이잖아요?


[제목: 큰언니 기다리기

작성자: 쏠키님


큰언니가 고1이었을 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나는 큰언니가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올 시간이 되면 항상 아빠의 자전거를 몰고 나가 큰언니의 무거운 책가방을 받아 싣고 오곤 했다. 큰언니가 고3이었을 때,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그때도 나는,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11시에 학교에서 나오는 언니가 기다리지 않게 항상 먼저 가 교문 앞에 서 있다가 가방을 자전거에 싣고 같이 왔었다. 큰언니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도 어쩌다 밤늦게 도착하는 날이면 꼭 내가 역까지 마중을 나갔었다. 친구들과 노느라 기차를 놓쳤다고 하면 또 올 때까지, 또 다음 기차를 놓치면 또 올 때까지 그렇게 미련하게 새벽 서너 시가 될 때까지 언니를 기다렸다.


내가 고3때, 언니는 모스크바에 있었다. 내가 시험을 치르는 날짜에 맞춰 오지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직감으로 알았다. 아씨발, 나는 대학시험을 망치겠구나. 그리고 떨어졌다. 성적도 한참 남은 학교와 과였음에도 불구하고. 후기대를 칠 때는 마침 언니가 와 있었고, 붙었다. 등록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언니가 등록하랬다. 그래도 다녀 보라고.


아, 길게 쓸 기력이 없다. 나는 언제나 언니를 따라 다녔고, 언니의 세계를 동경했고, 언니를 좋아했고, 언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고, 언니와 함께 하고 싶었다. 우석이와 수희도, 그 자체로도 예쁘지만 큰언니의 아이들이기에 아마도 더 좋아하고 이뻐하는지도 모르겠다. 큰언니는 내게 엄마 같고, 선생 같고, 친구 같고, 연인 같고, 언니이면서 또 어느 땐 어린 동생인 것만 같고..그래, 그렇고....그렇고..


그런 큰언니가 지금, 종합병원 무균병동에, 보호자도 없이 혼자 누워 있다. 간밤에, 생일이라고 친구들과 술 한잔 하고 있던 나는, 집에서 급히 부르는 전화를 받고, 그 길로 바로 형부, 언니와 함께 콜택시를 불러 타고 경북대병원 응급실로 왔고, 밤을 새웠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우석이 운동회에서 저렇게 환하게 웃던 언니는 핏기 하나 없는 노랗게 뜬 얼굴로 응급실에서 수혈을 받다가, 우리가 병원에 도착한 지 12시간이 지난 오후 1시에 무균병동으로 옮겨 갔다. 교대로 대기실 의자에서 행려처럼 새우잠을 자던 형부와 나는, 언니가 벗어놓은 옷가지들을 챙겨들고, 두 개의 문이 가로막은 무균병동 너머로 언니의 얼굴을 보고 다시 5만 원을 부르는 콜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수희가 총총 뛰어나와 엄마는? 하고 물었다. 미역국을 먹고 세 시간 잠을 자고 일어나 앉아 울었다. 형부가 아직 확실한 거 아니니까, 골수검사를 끝낸 후 결과가 나올 때까진 아무 말도 마라고 해서 혼자 숨죽여 울었다.


"너랑 나랑은 전생에 부부였었나 보다. 전생에 내가 너한테 정말정말 잘 해서, 네가 그 은혜를 갚을려고 내 동생으로 태어난 거 아니겠나." 얼마 전부터 시난고난 앓던 언니를, 나 자신 환자이긴 하지만 뭐 좀 나일롱이고 어차피 백수도 된 터라 곁에서 좀 살펴줬더니 새삼스럽게 언니가 한 말이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마이페이퍼 링크 주소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548453]

 

덧붙임: 엇, 복돌님이 제안하신 건데... 다만 집에 주로 있는 사람이라 제 주소로 한 거구요. 약소하지만 비룡소 프란츠 시리즈(12권)도 추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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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11-15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군요.

해콩 2004-11-15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그 아이가 생각나네요. 지난 학교 있을 때.. 그런 아이가 있었거든요. 잊고 있었는데.. 무균병동.. 저도 도움을 청해봐야겠어요. 주변에..

느티나무 2004-11-19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했던 헌혈증이 어디로 갔는지 없네요. ^^;;
 

O 토요일 오후 3시

- 나는 남포동에 있었다. 공부방 교사 모꼬지가 있는 날이었다. 3시 정각! 다들 어디에 있다 나오는 것인지 모두 제 시간에 모였다.(한 분은 늦게 오신다고 해서 세 대의 차 중에서 한 대만 남고 출발했다.)

O 토요일 오후 4시 30분

- 우리의 목적지인 콜핑하우스에 도착했다. 가는데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통도사 출구를 놓쳐서 언양까지 돌아갔다가 왔다. 통도사 맞은 편에 있는 콜핑하우스로 가는 길은 절경에다 늦가을의 정취가 가득했다. 콜핑하우스도 생각보다 깔끔하고 주변 경관도 아주 좋았다.

O 토요일 저녁 7시

- 저녁을 먹었다. 공부방 수녀님들이 준비해 오신 무농약 상추, 시금치, 배추를 비롯해서 각종 야채와 구이용 삼겹살, 대하, 해물까지 곁들여서 잊을 수 없는 맛난 저녁이었다. 군고구마도 만들고 포도주도 곁들였다. 밖은 조금 쌀쌀하기는 했지만, 무수한 밤하늘의 별과 졸졸 흐르는 계곡 물소리로 행복했다.

O 토요일 저녁 9시

- 수녀님들은 돌아가시고 선생님들만 남았다. 적당히 배도 부르고, 가벼운 술잔을 곁들여서 각자 살아온 이야기를 풀었다.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도 이야기를 했다. 부자 열풍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고, 영화 이야기, 사업 이야기... 많은 이야기로 밤은 아주 깊어 갔다.

O 토요일 저녁 12시

- 밖에서의 자리를 정리하고 방안에 들어와서 앉았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었다. 게임은 사람을 금방 친하게 하고,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게임을 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 3시가 되어도 피곤한 줄 몰랐다.

O 일요일 새벽 3시

- 자리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방안은 너무 더워서 혼자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O 일요일 아침 8시

- 눈을 떴으나 며칠간의 피로가 쌓인 탓인지 정신이 맑아지지 않았다. 남들은 식사준비로 바쁜데 방안에 들어가서 눈을 좀 더 붙였다. 나중에 운전해야 하기 때문에 잠이 부족한 건 곤란한 일이다.

O 일요일 아침 10시

- 비몽사몽의 두 시간이 지나고 잠을 깨어 다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여전히 푸짐한 식탁. 다른 선생님들 덕분에 맛난 아침을 먹었다. 식사 준비를 못한 탓에 열심히 설거지와 청소를 했다.

O 일요일 오전 11시

- 콜핑하우스를 나와 통도사로 갔다. 통도사는 갈 때마다 가고 싶지 않은 절이다.(그렇지만 너무도 자주 가게 된다.) 통도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 정말 거기에 스님들만 살지 않는다면 '시장'일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인다. 통도사 앞의 그 많은 모텔들은 또 어쩌자는 것인지...

O 일요일 오후 14시

- 집에 도착했다. 고속도로를 타니 금방 부산에 왔지만 동아대학교에 잠시 들러와야 했기 때문에 정작 집에는 조금 늦게 왔다. 서둘러 좀 씻고, 옷을 챙겨 입었다. 3시, 박OO 선생님의 결혼식이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또 차를 몰고 나왔다.

O 일요일 오후 3시 30분

- 예상대로 결혼식에 늦었다. 근처에는 일찍 도착했으나 지독하게 일이 꼬이는 바람에 주차할 곳을 찾지 못했다. 주차하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거의 최악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신부와 눈인사를 나누고 학급운영모임의 선생님들과도 만났다.

O 일요일 오후 5시

- 송정에 도착했다. 바닷가에 왔으나 별다른 감흥이 없다. 오늘은 감흥을 느끼기엔 너무 피곤했나 보다. 근처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면 끝인 줄 알았는데 영화를 본다고 했다.

O 일요일 오후 7시

- 해운대 스펀지에서 주홍글씨를 보았다. 영화는 내용을 두고 글을 써 보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많이 피곤했으나 졸지 않고 다 보았다. 그 만큼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몸은 아주 힘들었다.

O 일요일 저녁 10시

- 다시 다른 선생님들을 모시고 예식장 근처로 왔다. 각자의 차가 근처의 할인점에 주차되어 있기 때문이다. 짧았지만 긴 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모두 헤어졌다.

O 일요일 저녁 12시

- 피곤으로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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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0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