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해콩 > 백혈병.. 그리고 '미숙이 이야기'

   미숙이.. 처음 발령받았을 때 녀석은 1학년 2반이었다.  그 해 나는 2학년 담임에 2학년 수업 네시간, 나머지는 1학년 열 두반, 전반 수업이었다. 녀석은 예뻤다. 교사를 너무나 지치게 하는 아이들 속에서 녀석은 보석같은 눈을 가진 소녀였다. 2학년 때 기억은 남아있질 않다. 내가 수업을 안 들어가서 그런지, 예쁘고 성실하게 생활하는 아이들이 간혹 받는 역차별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범생이인 미숙이는 3학년이 되어서도 담임선생님과 교과선생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학교 생활을 했고 '수시'로 대학도 합격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 해 10월 말쯤 담임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그 아이가 백혈병이라 했다. 백혈병... 추석을 앞두고 갑자기 팔 다리가 아프다고 해서 검사를 해봤더니 그렇게 엄청난 결과가 나왔다 했다. 미숙이는 아버지 없이 엄마, 언니와 살고 있는,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티없이 해맑고 성실한 그런 아이였다. 언니와 엄마에게 미숙이는 자신들의 신체와 같은 존재였다. 우리는 모금을 했고 미숙이를 돕기 위해 노력했다.

   부산 백병원 등 백혈병 전문 병원을 전전하다가 결국 미숙이는 서울로 옮겨가게 되었다. 여의도에 있는 성심병원.. 백혈병 전문이라고, 말끔히 고친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해.. 마침 교사대회를 여의도공원에서 했다. 토요일 올라가 밤을 세워 축제를 치르고 다음 날 내려오는 그런 일정이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나랑 황샘, 박샘이 참가했는데 우리는 또 다른 목적도 한가지 가지고 있었다. 미숙이를 보는 것. 

   차가워진 공기가 볼을 스쳤던 그 아침, 우리는 자는 둥 마는 둥 일어나 별로 멀지 않은 여의도 성심병원으로 갔다. 화장실에서 대충 눈꼽만 떼고 이만 닦고 응급실-무균병동으로 갔다. 모자를 푹 눌러 쓴 그 아이는 엄마와 함께 우리를 맞았다. 머리를 깎았다며 부끄러워할 뿐 녀석은 울지 않았다. 연신 웃으면서 '빨리 나아서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해주며 아이와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돌아보니 다른 두 선생님은 울고 계셨다. 중년의 성인 남자.. 그 선생님들이 돌아서서 울고 있었다. 나는 끝까지 울지 않았다. 발그래한 눈시울로 고맙다는 말만 되뇌시는 어머니의 손을 놓으며 우리는 발걸음을 떼었고 일요일 대낮부터 술집을 찾아 들어갔다.

   부산으로 돌아와 모금 활동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란 아주 냉정한 것이어서 바쁜 일상 속에 미숙이에 대한 걱정은 점점 자리를 잃어되어 우리의 마음은 무뎌져갔다. 그렇게 차갑게 흐르던 시간을 극복한 건 오히려 미숙이였다. 친구들이 수능을 치르기 몇일 전, 녀석은 서울, 그 고통스런 병실에서 친구들을 위해 사탕을 준비하고 선생님들의 위해 편지를 써서 부산으로 보내왔다. 미숙이는 그런 아이였다. 담임선생님은 3학년 전체 아이들에게 그 사탕을 골고루 나눠주고 선생님들께 그 편지를 읽어주셨다.

   그 와중에 한 선생님의 도움으로 국제신문에 미숙이의 기사가 나갔고 부산 MBC에서도 미숙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녹화를 하던 그날은 (2001년 12월 3일이었다.) 겨울비가 내렸다. 미숙이와 그 언니가 학교로 오기로 했고 그 시간에 맞춰 전교생이 수업을 중단하고 이벤트를 열어주기로 했다. 그 장면을 찍어 방영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미숙이의 쾌유를 비는 플랭카드를 함께 만들고,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학교 옥상에 또 교실 베란다에 숨어서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추워진 날씨에 비까지 내렸지만 아이들은 참을성있게 잘 기다려주었고 그런 아이들 속에서 나도 행복했다. 그렇게 미숙이의 건강을 비는 수백개의 종이비행기가 날았고 플랭카드가 드리워졌고 미숙이는 웃었다. 그리고 울었다. 십여분짜리 그 프로그램이 방송되던 날.. 웃는 미숙이의 초췌한 얼굴은 자꾸만 우리를 울렸다.

   그 해, 학교교지를 담당했던 나는 미숙이가 우리에게 주었던 따뜻한 편지, 그에 대한 샘들의 진심어린 답장, 홈페이지에 올렸던 미숙이 언니의 고맙다는 글들을 추려서 한 꼭지를 마련했다.

   '백혈병', '무균병동'이라는 단어는 내게 낯설지 않다. 지금도 그 단어들은 미숙이의 예쁜 웃음과 함께 떠오른다. 알싸해지는 코끝.. 붉어지는 눈시울도 함께..

   그 다음해 3월 14일... 그 날도 비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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