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탄생 - 대한민국에서 엄마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0
안미선.김보성.김향수 지음 / 오월의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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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이리 고민없이 쉽게 사보기는 흔치 않은 일인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단시간에 읽기는 최근들어 또 처음인 것 같다. 또 울면서 산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이건 또 뭔소리? 

이 책은 육아스트레스로 뚜껑이 이미 열렸고 스팀이 막 뿜어나오던 어느날 읽었다. 그러다 애들을 재우고 혼자 울면서 육아스트레스에 관련되는 몇 개의 키워드를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입력했고 그러다 이 책에 관한 홍보글을 접하게 됐다. (근데 나는 무슨 일로 그토록 격앙되었던지 도무지 기억이 안난다. 지나고보면 중요치 않을 그런 사건이었는 듯. 에고. 참을성이 없는지고) 그리고 온라인 서점을 열고 이 책을 바로 샀다.

그런데 단연 올해들어 읽은 책 중 최고다! 아니 내 평생을 통틀어서도 아주 인상적인 책이다. 아까워하며 읽었다. 이 책의 통찰력에, 문제제기에 책 장이 넘어가는 것을 아까워하면서. 마리오네뜨같이 줄에 몸을 맡긴채 육아중인 의식 잃은 엄마들의 모습에 나를 돌아보았다. 꽤 소신있게 육아한다고 믿는 나 역시 현시대의 모성 이데올로기에 젖어있었다. 

이 책의 통찰력 뿐 아니라 그 진솔함은 단연 으뜸이다. 어쩜 이리 가식을 벗었어. 어쩜 이리 발가벗고 앉았는지. 이 책 자체가 한 편의 논문이다. 방법으로 보자면 질적연구고 어떤 집단을 장악하고 있는 신념이나 인식 따위를 발견하기 위해 인터뷰라는 형식을 채용한 하나의 연구로 보아도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그 내용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사족을 단. (내 석사학위 논문과 같은 형식이라서 좀 안다요~ 히힛) 참여자들의 육아를 그대로 엿볼 수 있는 면담자료들은 진짜였다. 소위 '전투육아' 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그 처절함과 피냄새가 너무나도 익숙했다. 큰 위로가 되었다. 나만 이렇지 않다는 것, 그 평범함의 대열 속에 내가 있다는 안도감은 정말이지 한 바가지의 눈물만한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모성없음을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다. '난 어린애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얘들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진 것 같아요', '육아가 지긋지긋해요' 하는 식의 고백은 절대 금기다. 그는 고로 '나는 모성 없는 에미랍니다' 하는 고백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결국은 본인을 다 털어놓고 내보일 빈틈을 육아에서는 주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야 내가 남들에게 좋은 엄마로 보여질테니까. 그라나 애들을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내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 인간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았을 거고 자신의 육아 무능력과 조용히 독대하며 '참 육아 이거 내 체질에 안맞네' 해 본 일이 있을게다. 난 있다!

이렇게 모성을 강조하는 사회, 좋은 엄마를 기대하는 패러다임은 엄마들에게 죄책감 한 보따리 싸매놓은 짐이 되고있다. 모유를 못먹여서 죄인이 되고, 이유식을 사먹였으니 게을러 빠졌고, 직장을 다니는 엄마라 '무한미안' 이고, 전업주부 집꼬라지가 이 지경이니 무능력자고, 집에 있으면서 어린이집 보냈으니 이기적인 인간이고, 세 살까지 못키웠으니 결핍이 있지 싶어 불안하고. 이 밖에도 육아는, 엄마는 늘 최고, 최상, 완전, 온전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아군인 엄마들의 입으로부터.

이 책은 이런 육아의 노동과 모성 이데올로기 또 좋은 엄마 컴플렉스를 벗어던질 그 어떤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단지, 그 누구도 말하지 않는 현실을 내보임으로 위로와 공감을 안겨준다. (아고~ 포근하여라.) 또 나를 마리오네뜨처럼 움직이게 하는 줄을 발견하게 한다. 이 줄을 자를 것이냐의 선택은 개개인 독자의 몫이겠지.니 애, 내 애 애들이 다 다르고 각자 상황이 각기 다르니.

진짜 할 말이 무지하게 많다. 이렇게 훌륭한 책이 그저 잠잠히 숨어있음이 안타깝다. 이 책의 독자는 대부분 엄마와 소수의 가정학자, 사회학자, 여성학자정도일 것이다. 일단 엄마노릇에 대한 사회적 패러다임은 간절히 알고싶은 주제가 아니다. 또 예상되는 독자집단이 제한적이고 비전문가를 확률이 높다. 그렇다보니 사회적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는 역부족이다. 경제학 서적이라면 경제학 교수라던가 이 분야의 전문지식층이 읽을 것이고 학생들에게 권하거나 세미나 등 공식석상에서 언급할 기회들이 있겠지. 그러나 엄마에 관한 이 책은 읽고 입소문 낼 엄마도 드물 것이고, 그중에서 나처럼 서평을 쓸 독자는 더 드물 것이고, 게다가 육아 실전에 도움이 되는 '육아법' 이 아닌지라 똘똘한 엄마들에게도 외면당하기 쉬운 위치에 있어 파급력이 낮으리라 본다. 그리고 표제가 너무 재미없다. 심심해. 아쉬운 일이다.

나에게는 그 어떤 육아서들보다 앞으로의 육아의 강을 건너는데 더 큰 부력이 되어줄 것 같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나의 못남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이 사회가 짐지워둔 잘못된 현상으로인해서이기도 하다고 생각하니 조금이나마 가벼웠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회가 강요하는 어머니상과 좋은 엄마상은 우리에게 걸맞지 않거나 무리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그에 도달하기 위한 번뇌는 전과 같이 맹렬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엄마를 늘 죄인되게 하는 모성 이데올로기와 모성신화, 좋은 엄마 컴플렉스 현상들에 힘겨운 싸움을 하고 기어코 승리도 이끌지 않아도 되겠다는 해방감을 느꼈다.

정말이지 수준있고 독창성이고 유니크한 시각으로 접근한 책이었다. 세 저자의 논리과 저술의 유창함 또한 즐거웠다. 우연히 검색해서 급하게 선택하고 읽게 된 책에게서 받은 것치고는 아주 강한 인상을 받았다. 재미있는 책이었다. 어떤 책을 읽고 '강추' 를 붙이는 서평은 매력없지만, 이 책은 강추다. 적어도 나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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