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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인권 OTL - 대한민국의 인권을 보는 여섯 개의 시선
한겨레21 편집부 엮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12월
평점 :
인간은 누구나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 땅의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인권을 말한다. 하지만 모순된 현상과 인권 유린의 현장은 곳곳에 팽배하다. 인권. 사전적 의미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기본적으로 가지는 권리(네이버 국어사전)'란다. 그런데 '인간으로서', '당연히', '기본적으로 가지는', '권리'는 때로는 너무나 쉽게 무시되고 있다. 당신은 인권 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나는 '사형제 존폐' 문제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주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인권에 대한 주제들은 거기서 거기 같다. 다시 말해, 우리는 너무나 표면적인 인권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물 위로 떠 올라 눈에 보이는 인권에 대해서만 왈가불가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물 아래 가라앉아 있는(인권문제에 큰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이미 공중에 떠올라 있을 그런 문제들이기도 하지만) 인권에 대해 들여다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인권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이 책은 세계인권선언을 들어 그에 위배되는 우리나라 인권유린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 2조(이주 아동들의 뒷모습), 제 19조(청소년에게 인권을, 십대의 성), 제 23조(노동자도 사람이다, 안마에 대한 엇갈린 시선, 외국인도 사람이다, 담 밖의 삶이 두려운 사람들), 제 25조(살 만한 곳에 살게 하라, 장애인의 '살' 권리), 제 18조(국가의 폭력은 왜 이렇게 자유로운가, 양심의 자유를 허하라), 제 3조(짓밟힌 길 위의 인권, 존엄한 죽음을 위하여, 치료를 받고 싶다) 이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먼저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자행되는 인권유린의 수준을 확인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이 다룬 많은 주제들 가운데 인상적이었던(나로하여금 할 말이 생기게 만든) 몇 가지만 살펴보자. 이주 아동들이 이렇게 차별을 받으며 편견 속에서 이 땅에서 살아가기조차 힘들며 살아갈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 놀랐다. 불법체류자의 자녀는 배울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물론 불법체류자는 말 그대로 불법으로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국적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합법적으로 체류하게 하려면 여러 가지 제약이 분명하게 존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불법 체류로 인해 그 자녀가 배움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모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가 보다. 그러면 자식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주지 못하는 이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제약과 제한을 두되 이들에게도 최소한의 살 권리는 보장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교육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이에 대한 대책과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청소년 인권 문제에서는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두발자유화의 타당성'을 말하고 있었다. 현 경기도 교육감인 김상곤 씨가 교육감 출마때 내세운 공약이기도 하다. 청소년들의 개성 존중을 가장 큰 이유로 삼고 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기도 하다. 두발 뿐 아니라 외모, 차림새는 그 사람을 단시간에 누군가에게 말해주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학생은 어디까지나 학생다워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혹자는 귀밑 3cm를 누가 학생 머리로 규정했는지를 따져 묻고 싶을 것이다. 물론이다. 그것을 정한 것은 어른들이고 교사들이었다. 그러나 '두발자유화'를 단순히 청소년의 개성이라는 부분에서만 보아서는 안된다. 두발자유화가 시행된다면 머리를 염색하는 학생, 파마하는 학생 그야말로 모든 헤어스타일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두발다양화가 아니라 두발자유화가 확실하다면) 실지 요즘 청소년들을 생각해보자. 남학생만 보더라도 고등학생만 봐도 이게 교복의 넥타이가 양복의 넥타이 같다. 성숙한 아이들은 이미 중학생도 어른 같아 보인다. 다시 말해, 어른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두발자유화를 허락하게 될때 생기는 다른 문제들도 따져봐야 한다. 학교를 벗어나 사복차림으로 머리 모양까지 자유롭다면 청소년 출입 제한 구역을 지금보다 더 쉽게 드나들 수 있을 것이고 담배를 구입하기도 쉬워질 것이다. (제발 "안 그래도 할 애들은 다한다 뭐" 이런 말은 하지 말자.) 이때마다 민증확인으로 걸러낼 것인가? 또한, 일제시대때 단발령을 내려 우리나라 민족의식을 말살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사람의 외형이 정서와 정신적인 면에 깊이 관계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두발의 자유를 허락하면 좀 더 무분별한 행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노파심일까? 학교는 단체생활이다. 그렇다면 학교의 교칙에 맞게 제한을 두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두발의 자유화를 주장한다면 복장의 자유화도 따라야 할 것이며 온갖 자유화에 대한 문제를 고심하게 될 것이다. 평생도 아니고 학창시절, 중고등학교 6년의 시간을 두발을 제한한다고 해서 이것이 이리도 우리 청소년들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처사로 치부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이 책의 주장에 대한 나의 반론이다. 보수적이다 말할는지 모르겠다. 하나 인권이 보수적이냐, 진보적이냐를 놓고 판가름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십대의 성, 레즈비언 문제도 다루고 있었다. 서울에 레즈공원이 있다길래(책에서는 일부러 밝히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부분은 아래에서 짚어 보겠다.) 알아보니 신촌공원을 말하는 것인 듯 했다. 그곳에 가면 일일찻집 등이 열리고 그 공간에서 레즈비언, 이반 친구들이 만남을 갖게 된단다. 동성애 문제는 인권문제의 오랜 화두다. 외국에는 동성애, 동성결혼, 성전환을 합법화하고 있는 나라들이 많다. 성전환 문제를 보자면 머지않아 이성(외모로 판단할때)간의 만남에 있어 선천적인 여자인지 혹은 선천적인 남자를 확인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요컨대 '동성애를 나무라지 말라'는 것이다. 동성애 부분에 있어서는 찬성이니 반대니 하는 말은 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때로는 이것이 옳다 싶기도 하고 때로는 저것이 옳다 싶다. 한마디로 아직 판단이 안선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동성애를 용인하자'는 입장인데 왜 레즈공원은 독자들에게 비밀로 부쳤는지 모르겠다. 용인하고 허용하고 허락하고 승인한다는 말은 공증한다는 것과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공원을 구태여 숨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세상의 밝은 곳으로 끌어내어 문제를 해결하고 이것이 그르지 않다는 것을 주장함에서 왜 그들의 문화가 산재하는 그곳은 비밀에 부친 것인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어쩌면 그들은 동성애 허용을 주장하지만 그것에 대해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몰라, 나는 그들('한겨레 21 편집부'와 뜻을 같이 하는 인권운동가들)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한 듯 여겨졌다. 등 뒤에 무언가를 감춘 채로 무엇을 허락하고 인정해 달라는 것인지. 그 공원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쓰고 보니 내가 너무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구나. 쩝.)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는 에이즈 환자를 약을 사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소개했다. 비슷한 예로 CRPS 환자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먼저 CRPS는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이라고 주로 사지에 발생하는데 그 고통이 출산의 고통에 버금간단다. (너무 끔찍하게도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나머지 통증을 유발하는 부위를 절단하는 환자들도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그 통증은 사라지지 않는단다. 많은 환자들이 자살을 생각할 정도의 고통이라고 한다.)무슨 프로그램이었던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이 환자들은 이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덜기 위한 수술이 보험도 되지 않으며 사비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국가에서 수술을 용인하는 경우는 제시해 놓은 몇 가지 기준에서 몇 개 이상 해당이 되어야 하는데 그 기준에 합하려면 거의 장애인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수술을 받아야 하는 단계를 이미 훨씬 지나야 겨우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끔찍하던지, 국민을 안녕을 위해 존재하는 의료행위를 국가가 모른 체하는 것은 물론 개인의 사비로도 해소할 수 없도록 정해놓은 제한기준은 도대체 뭔지. 그냥 죽으라는 건지. 이런 엉터리 제도야말로 인권을 뭐 보듯 하는 대표적인 예가 아닌가 싶었다. 아니 인권이 인간적으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인 권리라면서 안아프게 고통없이 살고자 하는 것이 인권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처럼 우리가 몰라서 짓밟히는 인권은 없는지, 이것이 인권을 존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들여봐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인권에 대한 문제들을 내어 놓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김두식 교수가 <불편해도 괜찮아(창비, 2010)> 에서 '인권감성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어떤 문제를 놓고 볼 때 이것이 인권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기민하게 알아챌 수 있도록 눈을 떠야 하겠다. 이 책은 이런 숨은 인권 문제들을 보여줌으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없는지 생각나게 했다.
우리 나라 인권의 현주소를 보는듯해 마음이 편칠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도 외면당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존재하는 것인지. 왜 이것들에 대한 어떤 방안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 답답했다. 그러나 국민이 살고 있는 이 땅의 인권은 국가 위정자들의 손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게다. 누구를 탓할 것 없다. 우리 스스로 지키지 못했고, 만들지 못했고, 세우지 못했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벙어리 흉내를 내왔던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