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image.aladin.co.kr/product/61/55/coversum/8959190519_1.jpg)
![](http://image.aladin.co.kr/product/62/86/coversum/8959190543_1.jpg)
![](http://image.aladin.co.kr/product/64/98/coversum/8959190551_1.jpg)
[하나오]의 3권 말미가 보여주는 급작스러운 전개는 독자에게 동의의 문제를 불러온다. 갑작스러운 입단, 맘대로 입은 하나오의 복장. 그리고 연출과 이야기마저 폭주한다. 하나오와 아들은 경기장이 제집 구석인 것처럼 격렬한 대화를 나누고 컷들은 신경질적으로 분할되며 그 모든 결과들은 해피엔딩으로 미친듯이 달려간다. 마치 폭탄을 터뜨린 다음 그 자리를 애써 수습하려는 것처럼.
낯설다. 사람에 따라서 이런 급작스러운 전개는 분명 거부감마저 일으킬 것이다. 분명 나마저도 그 거부감에서 자유롭진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이어질 글은 [하나오]의 불균형한 구조에 대한 일종의 변명이다.
영웅의 등장과 문제의 극적인 해결이라는 구조, 삶의 한자락을 보낸 이들의 달관한 표정과 선문답적인 대사와 같은 요소들은 우리들로선 후속작인 [핑퐁]에서 미리 확인할 수 있었던 것들이며 사실 [핑퐁]에서 더 고도화되어 완성된 모습으로 드러나있었다. 그에 비하면 [하나오]는 일종의 프로토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
슬랩스틱의 유예된 순간에 대한 포착과 징후에 대한 효과적인 연출을 빈번하게 활용하며 야구동화 [하나오]를 만들어낸 마츠모토 타이요는 현실과 꿈에 대한 두 명징한 상징의 대비를 통해 극적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당연히 비현실적이고 망상에 가까운 꿈, 민폐와도 맞먹는 낭만을 상징하는 하나오는 현실에 느슨하게 제 몸을 걸친 존재다. 그래서 이 존재의 영향력이 현실을 틈입해 들어왔을 때 현실은 난리가 난다.
2권 102페이지. 주니치에서 물러나게 된 이성적인 투수친구는 하나오 앞에서 완전히 무장해제된다. 그에 이어지는 20화는 하나오의 영향력이 현실에 미치게 됐을 때 한바탕 요동치는 현실을 에피소드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보여준다. 하나오가 친 공은 마을의 온갖 소란을 일으키고는 결국 아들내미에게까지 그 피해가 가게 만든다.
그러니까 마지막화에서 하나오가 세상에 몸을 드러내는 것은 말그대로 핵폭탄이 현실로 직격하게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공 한 번 친 게 마을 하나를 들었다놨다 했을 정돈데 그런 인간의 데뷔식은 어느 정도 스케일이어야 하겠는가. 이것이 클라이맥스의 내러티브적 다급함에 대한 완전한 변명이 되리라 생각치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가 [하나오]에서 즐거움을 느껴던 부분들을 재확인해 볼 순간이 될 수 있다. 그래피티 스타일로 꽉 짜여진 [하나오]의 지금까지 도정에서 당신이 미소 짓고 웃었던 부분들이 과연 어떤 부분들이었는지. 그 공상의 힘과 동화적 상상력이 구현된 씬들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인지. [하나오]는 [터치]가 아니며 마츠모토 타이요는 아다치 미츠루가 아니다. 마츠모토 타이요는 말은 줄이되 스타일로 밀어부치는 터프한 인간이다(여자라곤 히로인이 될 수 없는 아줌마 한 명, 그리고 문방구 할망구 한 명 해서 둘밖에 안 나온다).
준비된 해피엔딩을 통해 어두운 기운은 상쇄되고 영웅은 그 모습을 드러내며 세상은 유쾌해진다. 이미 로드무비님의 리뷰에서도 확인되는 바이지만 낭만의 승리를 예찬하는 [하나오]의 독법은 그림동화의 그것에 위치하고 있다.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어깨에 힘을 풀고 소박하게 꿈에 대해 얘기하는 마츠모토 타이요의 길 한가운데는 따스한 것들로 가득하다. 이 울퉁불퉁하고 거친 그림들이 그토록 정감이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