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안녕 절망선생] 6권이 작은 화제가 됐었습니다. 그 안에서 나왔던 대사중 한토막, "피해자인 척 하는 나라..."에 대한 논란이었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게 은근히 우리나라를 비꼬았다고 하는 것으로 다수 네티즌들은 받아들이고 분개했었던 건데. 뭐 일단 중국도 들어가겠죠 범주를 따지면.
그런데 워낙 쿠메타 코지라는 작가가 니챤네루 루저적인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대로 다 까버리는 것에 자기 정체성을 걸고 있고 그에 충실하게 일본 내의 사건 사고 인간들을 닥치는대로 깠다는 걸 기억하자면 저런 발언이 안 나온 게 되려 이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게 근거가 되서 "아, 뭐 그 인간은 원래 그런 인간이야" 라는 의견이 제시되서 그럭저럭 정리는 됐습니다.
그런데 일본 애니나 만화, 혹은 오타쿠 계층이 보여주는 우익적인 면모들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뭐 [감벽의 함대] 같은 얼굴에 철판 깐 애니도 있었고, 모토미야 히로시 같은 작가나 에가와 타츠야의 [러일전쟁 이야기] 같은 만화들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꽤 정열적인 편이죠. 실제로 우익정계와 연이 있는 케이스도 있고. 그런데 이 양반들은 쿠메타 코지의 포지션과는 좀 다른 영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좀 더 돌아가서 [우주전함 야마토]붐과 거기서 파생된 오타쿠들에 대한 정치적 비판들을 생각해봅니다. 이 비판을 요약하자면 오타쿠들은 단순히 그들의 미적인 심취 때문에 정치적으로 우익인 것들을 신나라고 내세울 수 있다.... 라는 것이 주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 현상적으로만 보자면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현실정치에서의 우익적 노선과 이어지느냐의 문제는 별개의 것이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그런 정치적인 컬러들은 철저하게 오타쿠적인 유희의 연장에서 다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과 관련해서는 일전에 아즈마 히로키가 말했던 오타쿠 계층의 모에습관, 즉, 정치적 발언이나 의지 같은 것들마저도 소위 모에화로서, 유희로 인식되고 활용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건덕지가 발견되지 않아서 전반적인 무기력감에 절어있다고 얘기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물론 정치적 의지가 어떤 식으로 발현되느냐의 문제는 꽤 미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 따라서 지지를 하느냐 부정을 하느냐는 개인적인 차원의 선택이죠.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적 의지가 결여된 환경에서 꼴통우익이나 꼴통좌익과 같은 뭉치기 좋아하는 극단론자들이 권력을 잡았다는 걸 기억해보자면, 일본 오타쿠 계층의 유희적 태도나 정치성의 결여가 그리 반가워보이지 않는 게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킬 정도의 노골적인 우익스러움이 이제는 개그의 대상이 된 시대라는 걸 생각해보자면, 그 다음으로는 적어도 일본이라는 땅에서의 전쟁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그들의 현실인식의 정도를 가늠해봐야 할 문제겠지요. 언제나 2D 매니악이나 고어영화들에 대한 매니아들의 선호를 볼 때 궁금해지는 건 그들이 거기서 느껴지는 모든 감각을, 특히 후각까지 자극하게 된다면 어떤 태도를 보이게 될까 라는 것이었는데, 딱 그정도 수준에서 그런 일련의 파생물들이 가상적인 욕망만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그게 막 나가버리면 미야자키 츠토무 같은 인간이 튀어나오게 되는 거지만.
뭐 그리고 이건 고전적인 진리인데 노골적으로 노는 걸 보면서는 웃어줄 수 있지만, 그에 비하면 제국주의에 환장한 역사에세이를 역사서로 착각하게 만들어주는 교묘한 작업 같은 것들이야말로 진짜 위험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