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이태원 지구촌 축제였는데, 가보니 케밥 파는데만 잔뜩 있었음. 터키 케밥, 아랍식 케밥, 파키스탄 케밥, 모로코 케밥, 인도 케밥.... 인종과 성별을 초월하여 모두가 사이좋게 손에 하나씩 케밥을 들고 비좁은 길을 지나다니는 모습. 하나된 지구촌은 케밥으로 뭉쳐지는구나. 확실히 열라 잘 팔리긴 잘 팔렸음. 정통 터키 케밥 가판대 앞에 늘어선 줄. 마지막 고깃점을 긁어내는 샤워르마 가판대.

 

이태원은 갈 때마다 좋아하는 공간. 앵글로 색슨, 라틴, 아프로 아메리칸, 태국인들, 인도인들, 무슬림들, 필리핀인들, 중국인들 등등 이 거리에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언어는 당연히 한국어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어만도 아니다. 그리고 그런 코스모폴리탄적 광경이 변치않는 쌍팔년도 대한민국 스타일의 거리에서 펼쳐진다. 이 거리에서 가장 발전한 사업은 핫도그 가게들. 난 스스로 열외자가 됐음을 느낀다.

 

날이 어둑해지면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에 따라 이태원 뒷골목, 청소년 출입 제한구역에 있는 술집들의 빨간불빛들이 하나둘씩 켜지고 있었다. 당당히 간판에 트랜스젠더바라고 붙여놓은 가게도 있었다. 그러고보니 오는 길에 타이음식점에서 누군가랑 얘기하고 있는 홍석천도 봤음. 나는 한동안 헤매다 케밥을 국가별로 몇 개 주워먹고 치즈볼과 하노버 와플 웨하스, 오트밀 쿠키를 샀다.

 

내가 좋아하는 거리, 그러나 자주 오진 못했던 거리. 오래 전에 이곳에서 괜찮은 퍼브를 발견해보려 발품을 팔았던 일이 생각났다. 결국 실패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혼혈아이들은 무척이나 예뻤다.

 

 

1971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태어난, 인종간 혈통이 몇대쯤 복잡하게 섞인 것이 다시 섞여서 만들어진 듯한 강력 꽃미남 모드 발렌시아는 1993년에 발표한 첫번째 앨범 'Valensia'로 자국 내에서 대박을 친 다음 일본에서 더 대박을 치게 된다. 딱 들어봐도 퀸의 자장권 안에 들어가 있는 그의 노래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1집에 실린 저 지구사랑 'Gaia'. 우리나라에선 꽤 시간이 흐른 다음 시완레코드에서 정식으로 발매했다.

요놈인데 지금은 은근히 구하기 힘든 모양인 듯. 시완레코드의 초이스가 선호하는 까다로운 맛을 싫어하는 이라 하더라도 거부하기 힘든 찰싹찰싹 감기는 달콤함을 자랑. 얼마 전에 매물이 올라와서 구하려다가 막 그 즈음에 듣게 된 뉴트롤즈의 요번 신보가 너무 강력해서 어떤 걸 선택할지 고뇌하다 결국 놓쳐버린 경험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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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 2007-10-09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도 케밥.-_ㅠ

hallonin 2007-10-09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잡아서 케밥 순례모험 가보자구ㅎ
 

 

몸은 '비교적' 정직하다. 달리면, 꾸준히 오래 달리면 허파와 폐가 강해진다. 그 발전상이 즐겁다.

 

올림픽공원은 조깅하기에 좋다. 그곳엔 많은 웰빙족과 한강변보단 적은 수의 양아치 미소녀들과 푹신한 조깅전용코스와 많은 나무들이 있다. 밤이 되면 시원한 공기가 몸전체를 물들여준다.

 

오늘은 GMF의 첫날이었다. 내가 달려서 울림의 주변부에 도착했을 때, 멀찍이 보호선 너머 공연장에선 델리스파이스가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차우차우"였다.

 

기이한 드라마. 의미의 우연이 만들어낸 현장. 일렉기타의 소리가 울려퍼지는 동안, 난 핸드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핸드폰 안에선 제한시간 1분 5초가 끝날 때까지 신호음만 갈 뿐이었다.

이윽고 환청에 대한 강박적인 매혹을 감상적으로 표현한 델리스파이스의 저 유명한 곡이 끝나고,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쏟아지고 있었다. 앵콜은 이미 치러진 것이었던가? 조명이 거둬지는 무대 위의 나른함, 몰려서 움직이는 군중의 여운. 공연의 끝.

 

나는 다시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현실은 좀체로 드라마처럼 굴러가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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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 2007-10-07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노래를 들었으면 날 떠올렸어야 하는거 아닌가..라지만 수신인 필경 나와 성별이 다른 인류였겠지? 델리 공연 안하나.. 피앙세랑 보러 가야 되는데;;

hallonin 2007-10-07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허 이젠 결혼을 코앞에 두고 아주 배가 부른 놈이.... GMF 오늘도 하니까 거기나 놀러가지 그래. 라인업 괜찮다.
 

그곳은 우연히 찾아냈다.

언제나처럼.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곳은 또한 우리 동네의 어느 부분이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집에서 걸어서 고작 20분 거리인, 내가 몰랐던 장소.

 

중국음식을 파는 가겔 들어가면 묘한 냄새가 난다. 향신료와 차잎내음, 밀가루냄새가 섞여서 만들어진 것 같은, 중국음식을 파는 가게 특유의 무엇.

좋아 보자. 좁디좁다. 땅콩과 고춧가루와 뭔가 알아볼 수 없는 것을 마구 섞어놓은 비닐 포장 안주(추정), 냉동 만두, 차잎, 향신료 더미, 월병, 냉동 양고기, 알 수 없는 밀가루 음식들, 중국맥주. 고량주, 맥주, 맥주. 오 좋아. 가게 안의 물건들은 대개 건류 아니면 냉장류였다. 예상했던 것처럼.

 

내가 도착하기 전 와 있던 요란스러운, 어눌한 한국어로 증명되는 조선족인 듯한 이들의 소란스러움이 들려온다. 그들은 그들이 구입한 물품을 끊임없는 수다 속에서 놓았다 뺐다 더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주인 아줌마는 약간의 피로를 동반한, 상황에 아주 익숙한 얼굴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구입한 물건은 두둑했거든. 술 몇 병과 월병, 그리고 선물용 종이봉투를 잔뜩 채운 것들.

 

어렸을 적 어머니의 손을 따라 명동을 다닐 때, 어머니는 나를 곧잘 중국 과자와 음식을 파는 가게로 데려가곤 했다. 월병들, 튀김과자들, 그리고 냄새. 그 냄새만큼은, 어딜 가서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수 년 전에 갔던 인천 차이나타운의 가게에서도 맡았던 그 냄새.

 

맥주. 칭따오 맥주는 캔이 1500원 610밀리리터 병이 2000원. 비싼 가격이 아녔다. 이마트에서의 가격과 비교하면 양적으로 볼 때 싼 편이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하얼빈 맥주. 그리고 3000원 짜리 월병.

월병은 튀김밀가루 안에 땅콩과 잣과 해바라기씨, 건포도, 젤리와 그외에 달콤한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하얼빈 맥주는 그지같은 칭따오 맥주보다 훨씬 좋았다. 더없이 깔끔하고, 뒤에 부담없이 살짝 남는 맥아의 텁텁함.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 글은 그 맥주를 마시며 적고 있는 중이다.

 

위안을 구하라. 뇌 속에 담겨있는 신에게. 복부에 차오른 포만감과 머릿 속을 아리는 기이한 행복. 찌릿지릿하게 뒤통수가 울려온다. 붉게 달아오른 배때지와 늘어진 성기와 쳐진 눈, 기억과 있을지 없을지 모를 염병할 미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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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조차도 어느 것 하나 내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가장 강렬했던 순간은 끝까지 닿지 않은 두 입술이었다. 가장 어리둥절했던 순간은 초대받지 않은 이가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광경이었다. 벌판에서, 거대한 전파기계 사이에서, 지워진 누군가에게 내 의지와 갈망을 보내지만 나에게 도착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지쳐가는 일의 전문가였다. 그렇게 위로한다.

바람이 불고 갈대숲이 움직인다. 마치 전기신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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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9-27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도 심오하다고 말씀드리면 실례가 될까요?

hallonin 2007-09-29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꿈은 뭔가 심오한 척을 잘 하죠.
 

1. 군복만 입으면 배가 고프고 졸리워진다.

 

2. 현역 시절 영점 맞추느라 난리쳤던 케이원보다 받아서 그 자리에서 쏜 칼빈이 명중률이 더 높았다.

 

3. 일급이 올랐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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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9-12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의 소시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예비군을 월반해버렸기 때문에..^^

마늘빵 2007-09-12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심으로 소시지가 나왔다는 말이 아닐런지...

hallonin 2007-09-12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별 건 아니고, PX에서 파는 미니 동그랑땡 소시지가 반가워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