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인어 사냥 - 차인표 장편소설
차인표 지음 / 해결책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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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듯 하게 읽힌다. 

그런데, 나는 불사의 욕망에 이입을 못 하는 사람이라서 가장 큰 틀에서 걸리는 게 있다. 

예전에 신과함께,를 읽을 때 강림이 처사가 되는 이야기였던가. 사람이 70세가 되면 일괄로 죽어나가는 세상이 정말 좋아?라면서 웃는 장면이 있는데 나도 좀 그런 게 있다. 언제 죽을까,라는 공포 없이 모두가 70이 되면 죽는 세상이 나는 재미가 없을 거 같다.  

그런 데다가, 내가 지금 살아온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스무살이 되고 싶냐?고 물어도 싫고, 먹으면 안 죽을 수 있는 게 있다면 먹겠냐?고 물어도 싫어서 이야기의 욕망에 구경꾼 모드가 된다. 

동해안을 따라 유람했다던 그 화랑들이 과연 유람이었을까? 라던가, 진시황이 보낸 사람들이 찾던 불로불사의 영약은 무엇이었을까?라던 의문이 인어,라는 존재로 모여서 인어를 사냥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신라시대의 화랑이 유람을 빙자하여 찾아다니던 것도, 진시황의 사자들이 찾았던 것도 인어의 기름이라는 상상 가운데, 어떤 감각의 균형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생명을 해치고 싶지 않아,라는 소박한 바람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저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해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도 있으니까 말이다. 

나무들도 더 많은 양분과 햇볕을 위해 가지를 넓게 펼치고, 남들보다 빨리 자라는 걸 선택하기도 하고, 다른 나무의 가지를 타고 오르기도 하니까 말이다. 내가 모른다고 해서, 나무가 아무도 해치지 않는 순정한 삶이라는 것도 진실은 아닐 수 있다. 

그래서, 가끔 환경론자의 어떤 말은 과격한 인간혐오처럼 들리기도 하는 거고 말이지. 

물고기는 잡아 먹을 수 있지만, 인어의 기름을 짜는 건 너무 어렵다,라는 그 혐오의 감각을 나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 그 경계란 참으로 어렵구나, 싶다.

나는 불로불사의 욕망이 없어서 인어를 잡아서 기름을 짤 생각을 안 할 텐데, 누군가 인어를 잡아서 기름을 짜려고 하면 무슨 이유로 말릴까 생각을 하는 거다. 나는 못 말리겠네. 나는, 자리를 벗어나겠네, 라고 생각하는 거다. 

나는 입이 무거워야지, 말하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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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9-01 1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인표님이 이제 배우보다는 작가에 더 치중하는 것같네요.좋은 작품을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전자책] 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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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을 읽었다.

잃어버린 도시라니,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인가, 라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인간의 잔인함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인간도 잔인하고, 시간은 더 잔인하다. 

중국 소설 특유의 짧게 퉁 치는 태도는 이야기를 우화처럼 보이게도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싶은 설정 가운데 살아남고 죽는 사람들 가운데, 인간의 잔인함을 본다. 

공산당 이전의 중국, 청나라는 망했고, 아직 새로운 질서는 잡히지 않았다. 

사람을 납치해서 몸값을 요구하는 토비가 있고, 토비에게 총을 파는 기강이 안 선 군인들이 있고, 그 사이 농부는 인질도 토비도 된다. 나는 그 지옥도가 너무 무서워서 물러선다. 

무서운 이야기라, 읽으면서 저항하지 않는 중국인이 떠올랐다. 억울한 개인에게 이입하기 보다 공안의 처사에 그럴 수도 있다,고 인터뷰하던 중국인에게는 아예 공공의 안전을 개개인이 책임지게 되는 시대가 있었구나, 싶었다. 그럴 수도 있는 역사, 가 있는 것이지,라는 생각이 든다. 

얼기설기 엮인 바닥이라, 억울한 사람이 생길지언정 그 바닥마저 없다면 펼쳐지는 지옥도는 나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거 같다. 인간은 잔인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라도 그 잔인함은 드러난다.

시장바닥에서 관상가 노릇을 하던 남자라도 바닥이 무너져서 통제받지 않는다면, 도끼를 손에 들고 길을 나서서 저항하지 않는 사람들을 납치하고 약탈하고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려 들 수도 있다. 

삶이란 언제나 쉽지 않으니, 노력하고 노력하는 가운데, 놓쳐버리는 순간, 인간이 아니게 될 수도 있는 거다. 스스로에 대한 관대함으로 인간이나 인간 아닌 것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만 둘 수도 있고, 그저 '왜 안 되?'라고 질문하면서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의 수고를 때려치울 수도 있다. 

결국 시간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서,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고, 복수도 있고, 결국 만나지 못하는 인연도 있는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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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8-30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국의 경우 한국과 달리 한 왕조의 역사가 짧게는 수십녀 길게는 2~3백년에 불과해 일반 백성들은 늘상 전란의 시대를 살았다고 합니다.그러다보니 중국인들은 지배층을 믿는 것이 아니라 돈과 금만 믿었으며 살아남기 위해서 누굴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고 하네요.그래서 중국인들은 왕조교체인 전란의 시기 전쟁을 피해서 해외로 피난을 갔는데 이것이 객가라고 불리우며 현대 화교의 시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목구멍이 포도청, 이야기를 하고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김칫국부터 마신다'가 뭔 말인지 알아?"

"알지, 설레발 친다는 소리잖아. 그러니까 앞서 나가고, 그런 거"

"그럼 '김칫국부터 마신다'앞에 뭐가 있는지도 알아?"

"뭐가 있어?"

"모르네, 그 앞에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가 있어.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떡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는 거지. 그 떡을 보고 '와 맛있겠다, 그런데, 저 떡을 먹으면 목이 막히겠지, 그러니까 김칫국을 마셔야겠다' 그러고 마시는 거지. 웃기지?"

"그러네."

와, 재밌네. 


다른 날 아이가 해 준 이야기는 이런 거

"엄마,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라는 말 있잖아? 거기서 밥을 먹는 게 누구인가,에 대한 얘기가 있대. 엄마는 뭐라고 생각해?"

"어? 어. 여태 밥은 개가 먹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밥은 내가 먹고, 건드리는 게 개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국립국어원에서는 개가 먹는 거라고 했다더라고."

"오~ 신기하네."


티비에서 본 건 이런 거.(핸섬가이즈,에서 나온 거였지)

'까라면 까라'는 앞에 뭐가 생략되어 있다는 거다. 

에? 나는 까라면 까라,를 아는데, 나도 딱 아이들이 김칫국부터 마신다,를 모르는 거처럼 그 앞에 뭐가 있었는지 모르네. 

티비에서 알려준 내용은 '엉덩이로 밤(송이)을 까라고 해도'였다. 

야, 그 정도는 못 까는 거 아닌가, 싶은데 말이지. 


오래 전부터 말해지는 오래된 짧은 이야기들 가운데, 남고 사라지는 많은 것들이 말들에 있다. 

다음 세대에는 무엇이 얼마나 남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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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8-07 0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로 김칫국을 마신다의 앞에 떡줄 사람을 생각도 않는데라는 것이 빠져있었네요.저도 별족님이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까막게 잃어먹고 있어군요.정말로 이런 속담들은 시간이 흐르면 그 원뜻을 기억하는 이들이 없어지면서 하나 둘씩 우리 주변에서 사라질것 같습니다.

잉크냄새 2025-08-07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라면 까라 가 절대로 쉬운 말이 아니었군요.
 
하늘길 한빛문고 12
이문열 지음, 김동성 그림 / 다림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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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이대로 읽었던 걸까, 이전에 읽은 민담 가운데 아는 걸까, 모르겠다. 

너무 너무 박복해서 고아가 된 가난한 소년이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에게 닥친 이 모든 복없음에 대하여 옥황상제에게 말해보려고 길을 떠난다. 길을 떠난 소년은 청년이 되고, 처녀 혼자 지키는 외딴 집에서 괴물을 물리치고, 끝없는 벌을 가로지르고, 높이를 알 수 없는 산을 오르고, 이무기의 등에 타서는 결국 옥황상제를 만난다. 벌 끝에 선비는 세상 모든 책 속에서 하늘 가는 길을 찾는 중이고, 높이를 알 수 없는 산의 노래하고 춤추고 시를 읊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늘에 닿느니보다, 자신의 춤과 노래와 시로 하늘의 한 자락을 땅에 불러오려고 하고, 높은 산 높은 곳의 도 닦는 사람은 자신의 정신만이라도 하늘로 보내보려고 하고, 이무기는 날아서 하늘에 가려고 한다. 그 모든 사람이 결국 닿지 못한 그 하늘을 청년은 이무기의 등에 올라 내던져져서 결국 닿는다. 옥황상제에게 탄원해서 비어있는 자신의 복단지를 채우고 다른 사람들의 의문에 답을 듣는다. 돌아오는 길에 왜 이무기가 하늘에 오르지 못하는지, 왜 도인이 하늘에 오르지 못하는지, 그 사람들이 하늘을 조금이나마 당겼는지, 왜 선비는 하늘에 닿지 못했는지, 왜 처녀의 집에 머리 둘 달린 괴물이 나왔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들처럼, 그 처녀와 결혼해서 살다가 다시 길을 나서는 것으로 마친다. 

전설의 고향,이나 전래동화집,에서 봤을 법한 이야기였는데, 다시 쓴 사람이 이문열, 이라서 읽어볼 마음을 먹고 읽었다. 내가 이미 알고 있어서 재미가 없나, 싶어서 아이에게 읽어보라고 했는데, 아이는 처녀 집에 괴물을 처리하기도 전에 못 읽겠다고 했다. 그렇게 재미없지는 않은데, 싶었다. 

어른인 내가 아이가 읽었으면 싶은 어떤 주제들이 있는 이야기다. 그래서 읽기 싫은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인지도 궁금했는데 알 수 없게 되었다. 엄마의 궁금증을 고려해서 힘들어도 끝까지 읽고 얘기해 줬으면 좋으련만, 그러질 않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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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8-07 0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문열 작가가 이런 아동 동화책도 썼는지 몰랐네요.
 
채석장의 소년 한빛문고 19
염상섭 지음, 유기훈 그림 / 다림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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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하늘길,을 사면서 염상섭의 채석장의 소년,도 같이 넣었다. 

이문열,의 하늘길,은 이미 내가 읽었었나, 싶은 이야기였고, 채석장의 소년,은 애니 개봉 후 구해 본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이 났다. 계급이 다른 소년들이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다.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과거란 잊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기부 전단지에 보이던 어린 나이에 엄마와 아니면 엄마도 없이 채석장에서 돌을 깨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봤는데, 처음 그런 장면이 나온다. 열 두세 살쯤 먹은 소년이 더운 날 땡볕아래서 엄마와 돌을 깨고, 그 옆에는 아이들이 공을 차고 논다. 작업장과 놀이터가 분리될 수 없는, 해방 이후 복작대는 도시의 풍경이다. 전재민,이라고 불리는 여기서 전쟁은 일본이 패망한 전쟁이고, 전쟁의 재앙을 겪은 이라면 만주나 다른 나라로 이주했다가 돌아와 몸 누일 방 한 칸 없이 돌아온 사람들이다. 돌을 깨는 소년은 그런 전재민이라, 언덕배기 방공호에 살고, 공을 차고 노는 소년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중이다. 

옛날을 좀 더 그럴 듯하게 상상하는 가운데, 나는 모두가 가난해서 그래도 덜 박탈감을 느끼는 시대라고, 혹은 그래도 좀 더 인간적이고 믿을 만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야기는 그렇지만은 않다. 

모두가 가난하지는 않지만, 아예 생존이 위협받는 중이라, 다른 쪽에 눈 돌릴 틈이 없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거 같은 묘사다. 학교에는 자기 책상은 들여놓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난한 학생이 그 돈을 벌려고 돌을 깨고 있고, 가난한 엄마가 친정에 가 있는 사이에 배를 쫄쫄 곯다가 쓰러지는 학생이 있는 교실에서 2층 양옥에 맞춤 운동화를 신고, 간식거리를 사 먹을 수 있는 소년도 있는 거다.

예나 지금이나 삶은 고되고, 그 와중에도 우정이 있어 살 만해지는 어떤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재미나게 읽었는데, 아이들은 읽지 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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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7-23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염상섭하면 고작 표본실의 청개구리만 생각나는데 이런 청소년 책들도 저술하셨나 보네요.어느 시대건 빈부의 격차는 생기나 본데 비록 전란이후 시대라고 하지만 채석장에서 일하는 어린이가 한국에서도 있었던 시절이 있다고 하니 마음이 참 아파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