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시동 1~4 - 전4권 (완결)
조금산 글.그림 / 더오리진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편이 정말 재밌게 본 웹툰이 영화화된다고 보고 싶다고 해서, 아이들은 두고 둘이 보러 갔다. 나는 실망스러웠고, 남편도 실망스러웠던지 원작만화를 사야겠어, 라면서 샀더라. 남편이 커버를 벗겨 보고 내려놓으면 읽었다. 어, 영화가 딱히 못 만들었다고 보기 어려운데, 가 나의 인상. 한 번 더 영화를 본 남편은 기대가 줄어서 두 번째는 괜찮았다고도 했지. 그저 세상을 바라보는 남편과 나의 눈은 이렇게 다르구나, 생각했다. 

예전에 '그대 아직도 부자를 꿈꾸는가'를 읽고 쓴 서평(https://blog.aladin.co.kr/hahayo/5509650)에 달렸던 '가령 사회에서 경쟁에 더 많이 노출되는 남자들은 상대적으로 편리하게-안이하게-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좀 미워하는 게 아닐까 싶더군요' 라는 댓글 생각이 났다. 그 때, 그런가, 싶었던 그 기억이 다시 난 거지. 세상이 나에게는 그렇게까지 불친절하지 않은데, 남편에게는 그렇게까지 불친절했던 걸까. 

무인도,라는 노래를 부르는 아이 반의 학예발표회를 보면서도, 엄마랑 둘이서 무인도에 가고 싶다는 택일이 생각이 나는 것은 십대 남자애들이 세상에 느끼는 관계에 느끼는 어려움에 대한 것일까,라고도 생각한다. 

시동을 웹툰으로 보면서 정말 좋아서 영화를 기대한 남편과 영화에도 만화에도 역시 시큰둥한 나 사이에 간극은 그것인가,라고도 생각한다. 

세상은 무섭지만,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피와 살이 튀지만 사정이 있겠지, 라는 나의 태도는 물러서서 등 떠미는 사람인 건가. 함께 살지만, 얼마나 알 수 없는지, 얼마나 다른 존재인지 새삼 놀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노혜숙.유영일 옮김 / 양문 / 2014년 5월
평점 :
판매중지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라는 말처럼 오해하기 쉬운 말이 있을까.

욜로, 가운데, 저 말은 '인생, 뭐 있어, 지금 놀자'처럼도 들리고, 꾸준하고 한결같고 심심해 보이는 사람을 한심해하는 태도처럼도 보인다. 

어제의 내가 그랬는지, 미래의 내가 그럴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나는 자아,라는 말, 신,이라는 말도 그런 오해들 가운데 있다는 생각을 한다. 

WWW 검색어를 입력하세요,에서 권력에 결탁하여, 여론을 좌지우지하려는 예수정(극 중 전혜진의 시어머니였다)이 그래도 자신의 회사에서 무언가를 지키고 싶어 항의하는 전혜진에게 묘한 톤으로 '너는 아직 자아가 있니?'라고 묻는 장면이 남아 있다. 그 때의 내가 자아는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서, 그 말을 계속 생각했다. 자아는 없어야 하는데, 저기 왜 자아가 있냐,고 조롱당하는 사람의 편에 나는 왜 심정적으로 서게 되는 될까. 내 안의 신성, 보편적인 도덕심은, 때로는 '자아'라고도 표현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자아는 아니지만, 자아로 표현할 수 밖에 없고, 신은 아니지만 신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고, 살아갈 수 있는 게 순간 뿐이라서 영성을 깨우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책은 초보적이라고 하고, 가끔은 성공을 위한 자기계발서처럼 포장도 했지만, 오해 가운데 그런 말은 아니다. 

깨달음으로 건너가는 말의 배가 오해를 가득 싣고 떠다닌다. 그 가운데 반짝이는 무언가를 오해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조금이나마, 삶이 살만해지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뭔가 새해인사스럽지는 않습니다만, 올 한 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있는 그대로'가 도라는 것은 이런 태도에 충실할 때 얻어지는 어떤 안목, 관점에 인식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동양에서 진리란 고정된 데이터 값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언제나 새롭게 보는 태도에서 일어나는 세계와의 동기감응의 체험입니다.-p104,하늘에서 온글,한글, 박규현 외 지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 용감하게 성교육, 완벽하지 않아도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심에스더.최은경 지음 / 오마이북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가 인유두종바이러스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했다. 올해 1차를 접종해야 내년에 2차를 맞을 수 있는데, 결국 맞히지 못할 거 같다. 우편으로 접종안내가 왔을 때는 남편이 아이를 다그쳤다. 아이는 주사맞은 친구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면서 맞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 남편은 나라에서 어련히 알아서 필수접종해주겠냐며 아프다고 안 맞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다그쳤다. 평소에 예방접종을 군소리없이 맞는 딸이었어서, 나는 그럼 나중에 네 돈 내고 맞아라,라고 하고 말았다. 아빠에게 울면서 안 맞겠다는 딸에게 나는 설득할 말을 못 찾은 것도 물론 있다. 이걸 계기로 섹스에 대해 말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딸은 이게 여자들만 맞아서 될 일이 아니라고도 말했으니, 나는 딸도 여기저기 주워들은 말들이 나만큼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살펴보면 이성애혐오도 있는 것 같은 십대 딸에게-십대의 나는 엄마를 뒤에서 안은 아빠를 보고 더럽다고 생각했었다!!!!-, 네가 섹스를 했을 때 옮으면 죽을 수도 있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이 주사를 맞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게 어려운 거다. 얘가 아마도 '안 할 건데!'라고 말하면 거기에 대해 무슨 말을 하겠는가 말이다. 살아봐, 말 같이 되나, 그러니까 맞아야 돼,라고 말하는 게 가능합니까? 나는 아이가 안 할 건데,로 백번 쯤 항의하고, 그 말에 아이가 갇히는 걸 원하지 않았다. 십대의 나를 돌이켜 생각했을 때, 나는 내가 말한 대로 딱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고, 말한 것을 지키려고 일없이 애썼고, 내가 한 말들에 갇혀서 쩔쩔 맸고, 내가 이렇게 빨리 나이먹을 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설득할 말을 못 찾고, 맘대로 하라고, 이제 네 인생,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고 말았다. 남편도 결국은 내버려둔다. 돈 내고 맞으려면 아까울 텐데. 


아이들은 정말 모를까, 성행위를 직접적으로 노골적으로 가르쳐야 할까, 나는 못 하겠다. -그런 그림책 캡쳐만 보고도 혐오스러워서 스크롤을 마구 내렸다- 똥을 누고, 오줌을 누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걸 모르지 않는 것처럼, 직관적인 형태로부터-여자에게는 구멍이 있고, 남자에게는 막대기가 있으니- 이미 알고 있는 게 아닐까,라고도 생각한다. 물론 여자들은 좀 더 오래 아닌 채로 남기도 하지만,-대학생 때 친구가 같이 자면 아이가 생기는 줄 알고 지하철에서도 못 잤다고 했던가- 사실, 나는 초등학교 때였던가 엉덩이를 딱 붙이고 쩔쩔 매던 개 두 마리를 여러 아이들과 함께 목격한 적이 있다. 상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소풍이라도 가는 길이었나, 거의 한 반이 같이 걷고 있었는데, 그걸 본 나는 못 본 척 했고, 짖궂은 남자애들은 아는 체를 하려고 했던가. 그래도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정확히 알았다고는 할 수 없는 게, '흥분하면 남성의 성기가 딱딱하게 곧추 선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실 놀라기는 했다. 남자에 관심이 없었나? 섹스에 관심이 없었나? 이전의 나의 상태는 저런 물렁물렁하고 축 쳐진 게 어떻게?-남동생이 있다-였었다. 내가 남동생한테 섹스북,이라는 책을 사줬으니, 나도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인 것은 틀림없는데, 왜 부모가 되어서는 이렇게 된 걸까. 성에 대해 말하는 게 부끄러운 건, 너무 본능적인 일이라서 '말'이라는 문명의 도구에 담기 어려워서라고 생각한다. 다들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건, 그저 존중이라는 생각도 든다. 부끄러워 한다는 게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고지식한 건가. 그 부끄러운 마음이 정말 없는가? 성을 몰라서 강간이나 폭행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게 아닌가? 성교육을 통해 성행위를 통해 쾌락을 얻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건가? 쾌락을? 가르쳐? 쾌락을 얻을 때 필요한 예절을 가르쳐???? 그저 나에게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고 밖에는 더 가르칠 말도 없는 내가, 성은 더 특별?해서 가르쳐야 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미 부모는 아이를 낳았고, 아이들은 부모에게 성에 대해서 필요한 것은 이미 배운 게 아닐까? 책 속에 가득 찬 교정하려 드는 어떤 태도에 대한 반발인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촌스럽다,가 오지랖,이 욕인 세상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게 욕일 수 있는 세상,을 의심한다. 

은희경의 소설을 읽으면서였나, 이제 시골에서 나고 자란 정서는 소수자가 되겠구나, 라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인구의 거의 대부분이 도시에 살고 있다. 촌에 사는 사람을 무능으로 낙인찍기도 하고, 그 자체로 혐오하는 정서도 가끔 느껴진다. 그렇지만, 나는 촌스러운 게 나쁜 말인지 의심하고, 그걸 나쁜 말로 쓰는 사람들의 우월감을 동정한다. 촌스러운 것, 촌스러운 채 살아남는 것은 삶을 구성하는 단순한 것들을-먹고, 자고, 싸고, 사랑하고- 인식하고, 그게 얼마나 중한지 아는 거고, 부풀려진 말들에 휩쓸리지 않고 부풀린 허상 뒤에 똑같은 존재를 알아차리는 거다. 


드라마를 보면서, 무너진 공동체를 그리워하는, 도시에서의 외로움 가운데 이상향을 그리는 마음같다고 생각했다. 가깝게 지내지는 못해도, 오랜 세월이 쌓여서 마음으로 의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나는 강함에 대한 이야기이고, 세상이 훨씬 더 살 만 하다는 이야기이다. 


강함은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난다. 그 강함은 그 자체로 약한 사람을 건드린다. 

시샘을 받기도 하고, 쑥덕거리기도 하고, 상처를 주려는 시도들을 하게 만든다. 

나보다 처지가 나빠서, 적어도 나는 저 사람보다 행복해도 된다고 공연히 우쭐했던 약한 마음이 그 사람이 웃으면 김이 빠진다. 내 마음 속에 행복과 불행을 타인의 것들과 비교하는 가운데, 마음은 더 약해지고, 행복은 멀어진다. 

행복은 비교하는 가운데 있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