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보고 싶었는데, 혼자 들어가는 건 너무 오덕같아서 못 봤대서 가족이 다 같이 봤다. 

딸이 더빙판은 안 보겠대서, 일본어판을 기다려서 봤다. 

벌써 한 달도 전에 봤는데, 지금에서야 쓰는 것은 음. 정리해야 해서 그렇다. 

둥글둥글하고, 말도 안 하는 작고 귀여운 치이카와 세계관을 미리 나무위키에서 찾아 읽고 봤다. 

작고 귀여운 것에 시큰둥한, 아기를 셋 키워놓은 엄마인 나는, 음. 

영화가 그렇게 무섭지도, 그렇게 재밌지도, 그렇게 열광하게 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영화에 대해 말하는 유튜브를 또 한동안 집에서 찾아 봤다. 

잔인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엄마인 나는( https://blog.aladin.co.kr/hahayo/13451256 ), 영화가 그렇게까지 ( https://www.youtube.com/watch?v=3KbwHRcVGIE ) 무섭지 않았다. 


나는 먹는다. 내가 먹는 고기가 돼지였고, 소였고, 닭이었다는 걸 안다. 

나는 먹는 내 자신을 인정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생명이라는 걸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에 거리가 생기고, 누구에게도 이입하지 못한 상태로 무섭지도 열광하지도 않는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6864631 )


살아간다는 건, 생명이라는 건, '무해'할 수가 없다. 

그걸 인정하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삶이 괴로운 거라고도 생각한다. 

삶이란 괴롭고, 죽음이 있어야 존재한다. 


젊은 날 가능하리라 여긴 명쾌한 해결은 어디에도 없고, 삶은 이렇게 엉망진창 뒤죽박죽인 상태로 끝날 것이다.

나는 젊은 날, 내가 어른이 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찬 소년물을 봤는데, 지금 젊은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보는구나. 더 어른의 마음이지만, 더 슬플 거 같다. 결벽적인 젊은 마음이 이런 회색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니 세상을 나서기 더 무섭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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