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프라이의 그리스 신화 스티븐 프라이의 그리스 신화 1
스티븐 프라이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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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들어본 이야기들이다. 책을 쓰라면 못 쓰고, 말을 하려면 버벅거리겠지만,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들이다. 읽는 데 오래 걸렸다. 

책은, 이런 경로로 선택되었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라는 책을 읽고(https://blog.aladin.co.kr/hahayo/12850004) 그 중에 스티븐 프라이,라는 사람의 말이 어쩌면 나의 태도 같아서 그 사람의 책을 읽어보자 싶었다. 

이야기는 하나인데,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의 정치적 태도가 드러난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하여, 토론하던 책에서 스티븐 프라이는 언어가 지금에 이르게 한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 자유주의 아나키스트, 같은 느낌이었다. 언어를 존중하기 때문에, 언어를 교정하려는 PC주의에 반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스신화,를 다시 쓴 이 책의 초반은 그래서일까 거부감이 들었다. 권위적인 것은 문제지만, 권위는 필요하고, 국가나 조직은 개인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권위를 무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그리스신화에서 신들을 묘사하는 것이 권위에 대한 반항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독하게 이기적이고 한심한 신들의 이야기이니, 그 자체가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결점많은 신들이 강력한 힘으로 인간을 벌한다.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렇지만 꾸역꾸역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 이야기가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신화는 어차피 전부 허구라고 답하겠다.-p495'라는 후기를 읽었다. 후기의 말들,을 읽으니 좋았다. 테오이 닷컴(theoi.com)은 기억하기 위해 적어 두겠다. 

포스트잇을 잔뜩 붙였는데, 어떤 마음으로 붙였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형벌,에 잔뜩 붙어있는 것이 시험하는 신에 대한 어떤 태도가 동양의 태도와 달라서였던가 싶다. 아이를 살해하는 이야기들을 역시 그리스신화에서 만난다. 그런 이야기가 동양에도 있는지 생각했다. 

삶은, 인간은 복잡하고, 어떤 언어나 이야기도 인간이나 삶을 담지 못한다. 언어나 이야기가 담은 작은 조각들, 다시 이야기는 언어가 되어 남는다. 그리스신화는 서양인에게 자신의 언어의 유래, 소리로밖에 묘사하지 못하는 표음문자의 세계에서 언어가 가지는 의미를 담는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안 돼. 항아리를 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고 나자 판도라는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항아리의 마력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 의무라고 믿었으나 지금은 항아리가 그녀에게 치명적인 유혹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렇게 사람을 홀리는 물건을 침실에 놔두고 밤낮 할 것 없이 조롱당하고 유혹당하다 보니 부아가 치밀었다.-p178


하지만 닉티모스가 아버지를 이어 인류를 통치할 시간은 거의 없었다. 마흔아홉 명의 형제들이 난폭하게 땅을 약탈하면서 추태를 보이자 제우스는 인간 실험을 완전히 종결할 때가 왔다는 결정을 내렸다. 제우스는 구름을 몰아 거센 폭풍우를 일으켰고, 이윽고 땅이 물에 잠겨 그리스와 지중해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p183


그렇다면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따라 달라졌던 것 같다. 처음에는 하데스가 직접 심판자 역할까지 했지만 나중에는 제우스와 에우로페의 두 아들, 미노스와 라다만티스에게 위대한 심판을 맡겼다. 두 형제는 죽은 후 이복형제인 아이아코스와 함께 지하세계의 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들은 망자가 영웅이었는지, 평범한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벌을 받을 만큼 악한 인생을 살았는지 판결했다.-p188


인류의 최고 창조자이자 옹호자, 친구인 프로메테우스는 우리를 가르쳤고, 우리를 위해 도둑질을 했으며,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우리 모두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일부분 갖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를 진정한 인간으로 만들어준다. 그를 동정하고 칭찬해야 맞겠지만, 질투심 많고 이기적인 신들과 달리 그는 숭배와 찬양, 흠모 같은 건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p193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그렇듯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실제로 발견하는 건 그리스 신화의 밑바탕에 깔려 있으면서 좀처럼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폭력성과 애욕, 시정과 상징성이라는 기만적이고 알쏭달쏭하고 아찔한 수수께끼다. 너무 불안정해서 제대로 계산할 수 없는 대수학, 그것은 인간과 신의 모습을 하고서 단순하고 정확한 답을 내주지 않는다. 서사의 변화와 상징들을 해석하려는 시도는 재미있지만, 대입은 잘 먹히지 않고 나온 답들은 애매하게 얼버무리는 신탁만큼이나 모호하다. -p288


그래도 혹여나, 정말 혹여나 언니들과 그 마녀 같은 노파가 한 말에 일리가 있다면? 따뜻한 살과 단단한 근육이 멋지긴 하지만 신이라면 그 이상의 뭔가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세멜레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뭐, 이틀 밤만 더 지나면 초승달이 뜨니까, 그 때 그 오지랖 넓은 고약한 할멈이 틀렸다는 걸 증명할 수 있겠지."-p298


익시온은 아름다운 디아와 결혼해놓고도 그녀의 아버지인 포키스의 왕 데이오네우스에게 약속한 지참금을 주지 않았다. 이런 모욕을 당하고 울분이 터진 데이오네우스는 앙갚음으로 기습 부대를 보내 익시온의 명마들을 훔쳤다. 익시온은 환한 미소 아래 짜증을 감춘 채 데이오네우스를 라리사 궁의 만찬에 초대했다. 그가 도착하자 익시온은 그를 불구덩이로 밀어버렸다. 접대의 율법을 명백히 어긴 것도 모자라 친족 살인이라는 훨씬 더 역겨운 죄까지 저지른 것이다. 그 당시 가족을 살해하는 짓은 가장 악랄한 금기로 여겨졌다. 익시온은 최초의 친족 살해를 저질렀고, 이 죄를 씻지 않는다면 실성할 때까지 에리니에스에게 쫓길 운명이었다.-p324


티로는 시시포스의 매력에 완전히 빠졌지만 아버지 살모네우스에 대한 사랑과 충성심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아들들이 자라서 자기 할아버지를 죽이게 놔두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녀는 신탁의 예언을 거역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리 와, 얘야." 그녀는 큰아들을 불렀다. "강물을 보렴. 작은 물고기들이 보이니?"

소년은 강변에 무릎을 꿇고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티로는 아들의 목을 잡고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몸부림이 멈추자 막내아들에게도 똑같이 했다.-p335


자기애는 다른 사람들이라는 거울에 자신이 사랑스럽거나 감탄할 만한 모습으로 비치는 것만 보고 싶은 욕구로 가장 잘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상대의 눈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그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를 본다. 이 정의에 따른다면, 자기애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p427


노부부가 힘들게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갔을 땐 거센 물살이 옆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마을을 등지고 빗속에 서 있을 순 없어." 바우키스가 말했다. 

"당신이 뒤돌아보면 나도 그렇게 할게."

"사랑해, 나의 남편 필레몬."

"사랑해, 나의 아내 바우키스."

그들은 몸을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큰 홍수가 에우메네이아를 집어삼키는 모습을 보는 순간, 필레몬은 참나무가 되고 바우키스는 보리수가 되었다. 

두 그루의 나무는 영원한 사랑과 겸허한 친절의 상징으로 수백년 동안 나란히 서 있었다. 한데 뒤얽힌 가지에는 그들을 기리는 순례자들이 남기고 간 선물이 걸려 있었다. -p469


고대 그리스인들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을지 몰라도 인생과 세상, 그들 자신을 대부분의 문명들보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솔직하고 밝고 관대한 시각으로 보는 기술을 개발했던 것 같다.-p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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