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여성학을 만났고, 한참동안 나는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다. 처음 접한 것은 여성에게 유리천장이 있어 차별받고 있으며, 가정주부의 삶은 어느 순간 허무와 공허가 닥친다고 주장하는 1세계 여성들의 페미니즘이었고,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며 성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성적 해방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의문이 생기는 순간들, 나의 대답이 달라지는 많은 순간들 가운데 점점 멀어졌다.
성적 해방에 대해 말하자면, 처음 그런 모순의 순간은 애나벨 청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씨네21에서 만난 기사는(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ealing42&logNo=120105148623) 성해방에 현혹되었다고 하더라도 도대체왜????라는 의문부호가 생기는 일이었다. 남성그룹 안에서 대단하다는 그 기준이 여성 안에서도 동일한가? 바람둥이 남자가 가지는 어떤 자부심,이 바람둥이 여자가 가지는 어떤 자부심과 같은가? 남자가 여러 여자와 성교했음을 자랑하는 것과 여자가 여러 남자가 성교했음을 자랑하는 것이 같은가? 나의 대답은 다르다,였고, 나는 여성에게만 심하다는 문화적 성적 억압에 저항하겠다고 마구 성교하는 모험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성적 해방이라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게 아닌가, 싶은 거지.
녹색의자(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9269)같은 영화 소개에 완전히 같지 않은 내 태도에도 의심을 품게 되는 거다. 이건 사랑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도대체 뭐지 싶었던 거다. 어린 여성과 나이든 남성의 관계에 단호하게 내리던 나의 예단이 성별이 바뀌었을 뿐인데 달라지는 것이, 심지어 그 영화자체도 그러하지 않다고 하는 것에 의문이 생기는 거다.
여성의 성취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여초업종에 두드러진 남성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철 헤어커커같은 체인이 막 생길 때였어서, 나는 여자들 일이라고 부단한 반대를 무릅쓰고 직업을 이어나간 남자들이 바로 그 여자들 일에서 직업적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성취로 사람들 사이에 오르내리는 게 신기했던 거다. 이유가 뭘까. 그러면서, 내 주변에 내가 만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는 거다.
카트(https://ko.wikipedia.org/wiki/%EC%B9%B4%ED%8A%B8_(%EC%98%81%ED%99%94)에서 절대 다수 비정규직 아주머니들은 자신들의 대표로 어린 남자를 세운다. 이건 어떤 것일까, 나는 생각하는 거다. 여성들의 성취가 부족하다고 사회적 지지가 부족하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그것이 '사회'적 지지인가 질문하는 순간들이 많다.
나는 어쩌면 이건 문화적 압력이고 그 문화적 압력은 여성문화와 남성문화의 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성별 구분 없이 우정과 일을 함께 한다고 하지만, 그게 가능한가 의심하는 지경이라서, 결국 여성은 여성의 말들에 좀 더 영향을 받고, 남성은 남성의 말들에 좀 더 영향을 받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연령으로 보면 또래집단, 성별로 보면 같은 성별이 나에게 좀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여성들은 위계적 관계를 선호하지 않고 수평적 관계를 선호하기 때문에(https://blog.aladin.co.kr/hahayo/9078175) 돌출하는 특출난 존재를 끌어내린다. 동양의 문화가 서양의 문화와 달리 히어로를 추종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한다. 결국 상대적일 수 밖에 없는 태도의 문제에서 동양의 문화가 서양의 문화에 비해 여성적이고, 다시 동양 안에서도 여성의 문화가 남성의 문화에 비해 여성적이다. 여성은 영웅을 원하지 않는다.
성취나 성공이 과연 무엇인가 의심하는 지금의 나는 많은 페미니즘의 언설이 서양의, 남성의 기준을 수용하고 출발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서양 백인 남성이 만들어놓은 그 많은 위계를 우선 수용하고, 그 제일 높은 곳에 내가 서지 못하는 이유를 찾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한다. 에코 페미니즘,과 같은 제 3세계 페미니즘은 위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거부하는 이야기라서 나는 많은 의문에도 불구하고 꽤 오랫동안 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정의했다. 그렇지만, 지금 여기, 페미니즘에 대한 말들 가운데 그런 페미니즘은 힘이 없고, 나의 말들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공격당한다. 동양의 태도가 다르지 않고, 내가 동양문명 안에서 존재하는데, 굳이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임을 주장할 필요가 있어?라는 게 지금 나의 입장이고, 그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페미니스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