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도 않았으면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스트를 나쁘다, 아니다 평가하지 마라. 나도 그 심정 안다. 알지만, 위험하다. 

내용보다는 제목이 슬로건이 더 많은 걸 말해주는 때가 있다. 

내게 페미니즘은 물리학에서 불확정성이론으로 넘어가는 단계나, 문화에 대한 상대주의 같은 것이었다. 절대적인 옳음은 없어,라는 태도. 권위에 저항하는 태도, 어쩌면 지금도 다르지는 않은 것도 같다. 나의 답을 내가 찾겠어. 너무 내게 강요하지 마. 

그런데, 지금의 나는 공동체를 위한 좋은 것과 나쁜 것,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페미니스트의 어떤 태도가 지향이 없어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원해서? 라는 질문이 생긴다. 

유명한 페미니즘 슬로건 중에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가 있다. 나도 좋아했던 거 같은데, 한겨레21에서 웬디 덩,에 대한 기사(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4874.html)를 읽었다. "깨지 못할 가정은 없다, 단지 노력하지 않는 '샤오싼'만 있을 뿐이다"라는 유머로 맺는 그 기사를 읽고는, 아, 저 슬로건의 현현인가 싶었다. 슬로건의 현현을 눈 앞에서 보고, 슬로건 자체를 회의한다. 법이 정의하지 않는 도덕심, 법으로는 심판할 수 없어도 사람들이 하는 심판,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혼이라는 제도나 일부일처제, 가족의 허상에 대해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래도 되는가,에 대해 회의하는 거다. 저런 삶을 누구에게 권할 수 있지. 나조차도 싫고, 내가 아는 누구라도 싫었다. 아무런 불법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웬디 덩은 누구보다 나쁘고,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고, 페미니스트인 나를 나쁘네, 나쁘지 않네 평가하지 말라,고 한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타인을 평가하는 건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무언가 타인에게 권하고자 하는 주의나 주장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주의나 주장에 대한 평가를 수용해야 하지 않나. 나를 평가하는 건 안 되지만, 나는 너를 평가하겠다,고 하면 비난받는 건 당연하다. 너의 이 말은 너의 이 행동과 일치하지 않아,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저 '여자'이기만 하면 변호하겠다는 태도가 '페미니즘'인가. 그저 '페미니즘'이라고만 하면 평판에는 신경쓰지 않겠다는 게 좋은 태도인가. '나쁘다'는 말이 가지는 추상성 때문에, 오히려, 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게 되어 버리고, 그러지 말라는 말은 모두 배척당한다. 결국 나는 '페미니즘'을 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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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1-01-30 0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근데 생각보다 이 책 저는 괜찮었어요. 꽤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 책 괜찮다라는 기억이 남아 있는 책입니다. 한번 읽어 보심이...

별족 2021-01-30 09:34   좋아요 2 | URL
^^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겠습니다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슬로건‘에 대한 거였어서. 그래도 역시 이 책을 넣을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