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자본과 영혼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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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으로 받아서 점심의 산책길에, 퇴근 길에 걸으면서 읽었다. 

우리나라 철학자의 진지한 글을 읽고 싶어서 고른 책이다. 한 사람의 철학자가 쓴 진지한 제목의 책이다. 전체가 하나로 연결될 수도 있겠지만, 읽고 있는 내가 미흡해서 그저 쪽글들로 읽힌다. 그런데도 좋았다. 한글인데도 모르겠는 말들이 나와서 부끄럽기는 하지만, 서양 철학자의 책들을 읽을 때 느껴지는 유일성이나 독자성에 대한 자기 확신, 읽고 있는 나를 내려보는 듯한 태도,가 없어서 좋았다. 

글들이 말하는 사건이나 사람을 나도 알고 있는 것들이라,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우리들의 민주주의거든'을 읽을 때 가졌던 '모르는 일들에 대해 말하는 것에 대한 생경함'( https://blog.aladin.co.kr/hahayo/8968440 )이 없어서 좋았다. 우리나라 이야기라서 이미 나에게도 어느 정도 의견이 있어서. 살짝 의아한 글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 겪어 살고 있는 지금 세상의 일들에 철학자가 보탠 말들은 좋았다.

그리고, 지금의 내 마음에 드는 좋은 글을 찾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옮겨놓고 싶을 만큼 좋다. 

결국 거의 다 옮겨놓은 셈이다. 

‘근본주의‘는 대개 병적 확신의 형태를 취한다. 그래서 인생에 관한 표지판들은 과신할 게 아니며, 우리는 그 속에서 그저 흔들리며 걸아가는 수밖에 없다. 무엇에 대해서든 확신은 이미 병적이므로, 확신을 선용하는 데에는 차라리 연극적인 거리감을 도입하는 게 현명하다. - P318

연극(적인 것)의 아름다움은 외려 제행무상(!)의 깨침 속에 있다. 그 의미에 강한 뜻이 없고, 그 성취는 봄꽃과 같이 아롱아롱할 뿐이다. 쉼 없이 지나가는 삶의 가치는 고집하거나 애착할 것이 아니요. 그 지나가는 사실에 대한 적확한 인정 속에서 지며리 생성시켜야 마땅하다. 바로 이 사실을 실천적 지혜 속에서 수용하는 것이 ‘연극적 수행으로서의 삶‘이라고 할 만 하다. 이 전망은 ‘바로 지금이 그때요 다른 때가 없는‘ 새로운 의욕의 사회학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애초 세상이 태초의 허공 속에서 생겼듯이 인간의 의욕 역시 무상과 겸허의 거리감 속에서 더불어 발화하는 것이다. - P320

인류 문명사에 등장한 이 놀라운 연극적 실천의 성취들을 너무 ‘진한‘ 현실로 착각하는 순간 예술은 병이 되고, 사랑은 나르시시즘이 되며, 종교는 폭력이 되고 만다 - P321

연극은 마치 아이들의 놀이처럼 제 깜냥으로 신실하고 진지하지만 무슨 확신의 토대를 갖는 일은 아니다. 이는 이 광대무변한 우주가 뜻이 없으면서도 화엄하고, 인생이 한 마당의 춘몽에 불과하면서도 가치 있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이라는 현상은 뜻과 의미 없이는 존립할 수 없지만, 바로 이 뜻과 의미를 생성시키는 방식에 의해 그 존립의 가치는 결정된다. 사람들의 행위와 어울림을 생략한 채 ‘객관적‘으로 확보하려는 뜻은 이윽고 폭력의 진원지가 되는 법이며, 삶의 길과 틀, 전통과 전망을 도외시한 채 ‘주관적‘으로 확신하려는 뜻은 망상에 이른다. 그러므로 확신의 부재가 곧 무의미나 무가치로 낙착하는 것은 아니다. -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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