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1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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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간... 천사... 드디어 신 !!! 

[타나토노트]에서 인간으로서 죽음 이후의 세계를 탐구하던 그들,
[천사들의 제국]에서 천사의 모습으로 그 뒤의 모습을 탐구하던 그들,
이제 드디어 '신들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다.
비록 아직 신의 모습이 아니고 '신 후보생'의 모습이지만.
[개미]에서 시작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영혼의 성장이 완결되는 소설 [신].
이 소설을 읽기 위해 나는 [타나토노트]와 [천사들의 제국]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베르베르가 그린 우주관과 세계관이 너무 매력적이었기에
이 소설에 대한 기대 또한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베르베르가 재 구성한 신들의 세계... 그리고 인간의 역사. 

베르베르는 신들의 세계의 무대를 그리스 신화의 올림푸스산으로 정했다.
왜 그리스 신화이어야 했는지는 작가만이 알 것이고
아직 완결이 되지 않았기에 짐작할 수 없는 일이다.
그의 가정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영혼의 진화단게를 거쳐 최후의 단계인 신이 되기 위한 후보생이 된 미카엘과 친구들.
그리스 신화의 여러 신들로 부터 신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면서도
그 세계 너머의 무엇을 탐구하고자 하는 그들의 호기심을 여전히 왕성하고
교육이 진행되면서 탈락하는 후보생들이 속출하고 '살신사건'도 발생한다.
신들의 세게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전개되는 흥미진진한 대결과 미스테리.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떼기 힘들게 만드는 긴장감이 유지된다. 

신 후보생들이 벌이는 일명 'Y게임'을 통해 베르베르는 인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절묘한 조합.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는 신들의 역할 등을 적절히 배치하여
인간의 사회와 문화와 정치와 군대가 발전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한편의 대하 역사 드라마를 보는 듯하면서
한편으로는 인류사에 대한 훌륭한 텍스트를 보는 듯 하기도 하다.
 

신화와 전설, 과학과 종교에 대한 방대한 지식의 용광로. 

신들의 세계를 구상하면서 작가는 방대한 지식을 풀어놓는다.
과연 그의 독서량이 얼마나 많으며 얼마나 넓은지 상상조차 힘들 정도이다.
책 속의 책 형태인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통해서도
수많은 과학지식과 신화, 종교에 대한 그의 지식세계를 엿볼 수 있다.
그와 비교되게 그가 전하는 지식을 전혀 알지도 못했던
나 자신의 편협하고 초라한 독서량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반성을 하게 된다.
그러한 시직들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용광로에 넣고 녹여서
새로운 세계관과 우주관과 종교관을 생성해 낸 그의 능력은 역시나 매력적이다.
그러나 조금은 현학적이 되어가는 모습이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에 대한 애정... 그 특별함. 

이미 [천사들의 제국]에서 한국 대사의 딸을 통해 한국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던 작가는
이 작품에서는 '은비'라는 아이를 통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일본군 위안부의 손녀로 '조센징'이라는 차별과 모욕속에 살아가는 '은비'를 통해
전 세계의 대부분이 잘 모르고 있는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고 있다.
또한 한국에 대한 묘사를 통해 그가 느끼는 한국에 대한 애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혹자는 그의 책이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기 때문에 상업적인 의도가 있다고 하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런 홍보를 해준다면 설령 그런 의도가 있다해도
그의 대한 고마움을 줄어들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도 싸움판을 벌이고 나라망신이나 시키는 그들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씨. 당신의 애정에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편은 언제쯤.... 

이 책에서 느끼는 단 하나의 문제는 완결이 아니라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신'이 3부까지 완간이 되었으나 이번에 나온 것은 그 중에 1부이다.
그렇다보니 아무런 결론도 없이 이야기의 전개과정에서 갑자기 책이 끝나 버렸다.
각각이 독립적인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과정에 있다보니
한참 궁금해지는 찰나에 끝나 버렸다. 꼭 주말드라마처럼 말이다.
궁금해서 미치겠다. 빨리 다음편이 나와야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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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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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의 사람들이 섬에 고립되고
'10명의 인디언 소년'이라는 동요의 내용에 맞춰 한명씩 죽어 나간다.
모두가 살해되고 남은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얼마전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마산장 살인사건'을 읽었다.
그 책은 영국동요집 머더구스에 맞춰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이야기 이고
이 책은 동요의 내용에 따라 사건이 하나씩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분명 두 작품이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고 이야기의 전개도 다른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머리속에 연관되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추리소설의 명작인 이 작품에 대해 오마주를 한 것이 아닐까? 

애거사 크리스티 여사는 너무도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이고
추리소설의 황금기를 영위한 최고의 작가중 하나이다.
그녀의 작품 중에서도 이 작품은 긴장감과 스릴감이 최고이기 때문에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명작이다.
기대를 한 만큼 뛰어난 사건의 재구성과 군데군데 숨어있는 힌트들,
사건의 전개에 따라 변해가는 인간의 심리에 대한 뛰어난 묘사까지.
역시 걸작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대가 너무 오래 되었다.
이미 그녀의 뒤를 이은 수많은 추리작가들이 그녀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어
너무도 많은 명작들을 발표하였고 나도 그런 작품들을 많이 접해봤기에
이 책에 나오는 추리소설의 기법들이 전혀 새롭지 않고
마치 추리소설의 교과서를 읽는듯한 따분함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최악의 번역은 나를 좌절하게 만든다.
'Dr. Amstrong'이 '암스트롱 의사'라고 번역되는 이런 작품이 어떻게 출판될 수 있었는지...
번역이란 단순한 언어의 변환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의 과정임을 모르는 건지....
도대체 이 사람은 우리말을 제대로 할 수나 있는 건지... 한국어를 아는 건지...
중간중간 끊기는 문맥과 수시로 바뀌는 등장인물의 이름. 기가 막힌다.
'안소니'는 수시로 '토니'로 바뀐다. 도대체 이 인물의 이름은 '토니'인가 '안소니'인가?
최소한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이런 책을 출판한 출판사나
이런 번역을 하고도 이름을 올린 번역가의 강심장에 박수를 보낸다. 

정말 번역이 망쳐놓은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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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non 2009-02-06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니 (Tony)는 안소니 (Anthony)의 애칭(?), 혹은 줄인 이름이지요. 로버트 (Robert)를 밥 (Bob)으로, 에드워드 (Edward)를 테디 (Teddy)로 부르듯이. 아마도 원작에서 안소니와 토니가 혼용된 모양이군요. 이는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이 사람을 얘기할 때는 안소니라고 칭해야 하고 가까운 사람은 이 사람을 토니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러울 테니까요. 혹은 그로써 그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가를 나타낼 수도 있고요. 다만 그런 문화에 익숙지 않은 우리에게 이런 부분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겠습니다. 저는 해문판을 읽은게 아니라서 이 번역이 어떤지는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다만 말씀하신 부분 중 한가지는 오역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것이기에 토를 달아보았습니다.

곰탱이 2009-02-06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지적하신 부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읽을 책인데
그런 문화를 따라간다는 것 자체가 번역가의 자질이 없는 것이라고 하겠지요.
혹은 그렇게 하겠다고 하더라도 주선으로 설명 정도는 해주는게 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적하는 부분은 그런 것이지요.
최소한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게 번역을 해 주어야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면 번역의 의미가 없겠지요.
원서를 읽는 것이 시간을 더 걸리더라도 더 편할 거라고 생각이 되네요.
 
렘브란트 반 라인
사라 에밀리 미아노 지음, 권경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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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가 넘쳐 흐르고 모든 것이 풍부했던 17세기 유럽. 황금의 시기에 최고의 화가였던 렘브란트.
최고의 화가에서 개인 파산에 이르기까지 굴곡많던 그의 삶과 예술이 한 출판업자의 손에 쥐어진 그의 일기로 되살아난다. 자신의 마지막 열정까지 완전히 연소하기를 바랬고 결국 그렇게 되어갔던 한 천재의 삶. 미술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나에게 새롭게 다가서는 화가의 일상. 낯설고 눈에 익지 않은 이름만큼이나 나에게 어색하게만 비춰지던 17세기 유럽의 모습과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 

 소설은 크게 2가지 이야기로 나뉜다. 렘브란트의 일기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한 렘브란트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와 이 이야기의 주된 화자(話者)인 출판업자가 그의 일기를 얻기까지 겪는 이야기(그가 만난 렘브란트와 그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렘브란트의 일기에서는 천재화가의 일상부터 그가 추구한 예술의 의미와 그의 열정이 그대로 묻어나고 출판업자의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못해 방황하다 한 여인의 사랑과 영혼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으로 자신의 삶의 지표를 찾아가는 젊은이의 성장통이 그려진다. 

 천재적 재능과 사물의 영혼을 꿰뚫어보는 눈을 가진 렘브란트. 아버지의 뜻을 따라 라틴어 대학까지 입학했으나 화가의 꿈에 자퇴하고 가족을 떠나 암스테르담에서 당대 최고의 화가로 성공하고 유명한 가문의 부인까지 얻어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한 그. 그러나 예술가의 고집이었는지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심성 때문이었는지 자신만의 예술을 위해 사치하고 넘치는 자신감에 미래에 대한 대비없이 낭비한 결과 개인파산까지 이르게 되는 비극적 말년을 겪게되는 천재. 그리고 아무도 신경도 쓰지 않는 죽음. 천재 화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추구한 빛의 예술, 그가 추구한 그림자와 어둠의 미학이 어떤것인지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그의 삶이 일면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예술을 핑계삼아 가족과 세상과 담을 쌓는 그의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작가의 능력은 17세기 유럽을 내 눈 앞에 데리고 온다. 마치 내가 17세기 암스테르담을 뱀처럼 휘감아 흐르는 운하옆을 지나는 듯, 더러운 시궁창의 냄새를 직접 맡는 듯, 복잡하고 풍요로운 시장의 한복판을 지나가는 듯, 달뜬 축제의 한구석에서 비참한 심정으로 장례식장을 향하는 일행에 속한듯, 생생하고 실감나는 묘사는 책을 통한 시간과 공간의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미술을 전혀 모르는 내가 마치 천재화가의 손발이 되어 그림을 하나하나 완성해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화가의 일상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자그마한 물감재료의 준비부터 화가의 세심한 붓질로 완성되는 그림의 모든 제작과정이 너무도 생생해서 그의 그림이 마치 내가 완성한 걸작으로 느껴질 정도다. 작가의 방대한 자료수집과 살아있는 묘사가 하나의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로인해 미술의 문외한인 나 조차 책을 읽는 동안 화가로의 삶을 경험할 수 있었다. 새롭고 놀라운 경험. 

 그러나 작가의 언어들은 너무도 어렵다. 솔직히 말해서 책의 3분의 1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생소한 미술용어와 그 시대 용어들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한단어 한단어 끊어서 읽으면 알 수 있으나 그것이 엮어서 문장이 되었을 때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문장들. 어지럽고 관념적인 말들의 나열이 책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고 내용에 대한 이해를 불가하게 만든다. 어렵다. 정말 어렵다. 만약 이 책이 서평이벤트로 받은 책이 아니라면 과연 내가 끝까지 읽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직도 3분의 1은 이해를 못하고 있다. 

 번역의 아쉬움도 남는다. 번역한 사람이 영어에 대해서는 지식이 많을 지 모르겠지만 국어에 대한 이해는 좀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작가의 말 자체가 어렵고 힘들다 하여도 번역가의 능력이 좋으면 독자가 조금이나마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재구성 할 수도 있는데 작가의 글을 그대로 번역한 듯한 느낌이다. 가끔씩 이 부분은 이렇게 해 주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느낌이 많이 들 정도로 번역이 아쉽다. 마치 대학교 때 원서를 번역본으로 보았을 때 느꼈던 아쉬움이라고 할까? 한 문장을 읽고나서 그 뜻을 음미한 후 다시보면 문장의 아쉬움이 남는 느낌. 뭔가 많이 부족해 보이는 번역. 아쉬움이 남는다.
 
 출판사의 경우는 아쉬움이 더욱 크다. 내가 북카페에도 몇개 지적했는데 오자와 탈자의 빈도가 너무 심하다. 한참 몰입을 하다가도 한번씩 만나는 오자와 탈자는 맥을 끊어 버린다. 안그래도 어려운 말이 많아서 쉽지 않은데 한번 맥이 끊기면 다시 몰입하기는 더욱 쉽지 않다. 이런 수준의 책을 독자에게 보인다는 건 출판사의 명예와 관련된 것이라 생각한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끊어쓰는 편집의 아쉬움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한번에 끊어 있는 음절의 수가 있기 때문에 하나의 단어나 음절이 두개의 줄로 나뉘면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출판사에서는 그런 부분에도 신경을 써서 하나의 음절이나 단어가 두줄로 나뉘는 부분을 최소화 시키는데 이 책은 그런 부분마저 아쉽다. 좀 더 쉽게 좀 더 눈에 들어오게 해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번역과 출판사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작가의 언어들도 너무 어려운 감이 있다. 그러나 17세기 유럽에 대한 방대한 조사와 탁월한 묘사, 자신의 모든것을 불태운 천재화가의 예술혼은 진한 감동이 있다. 그리고 내가 이해하지 못한 3분의 1일 아마도 다시 읽어보면 조금씩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힘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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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꿍 2012-07-15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내용도 확 와닿았고, 번역도 아주 좋다고 생각하며 읽었어요.
이런 좋은 책을 이제야 알게 된 걸 안타까워하면서 지인들에게 선물하려고 알라딘 들렀다가
다른 사람들은 어떤 감동을 느꼈을까 궁금해 후기를 열어봤는데,
어안이 벙벙하네요. 55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을 번역한 이에게 괜히 제가 무안하고 죄송해서
저같은 독자도 있음을 알리고 싶어 댓글 답니다.

 
다시 쓰는 간신열전
최용범.함규진 지음 / 페이퍼로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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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적어도 책을 쓸려면 양심에 가책이 없을 정도의 지식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 책을 읽으며 너무도 짜증이 났다.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단 몇 페이지에 마무리해 버리는
이런 무식한 용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지금 자신들이 책을 쓰고 있는지 잡지에 기고를 하고 있는지도 분간을 못한다.
사서에 대한 인용을 찾아볼려고 애를 써도 찾기 힘들다.
(간혹... 아~~~~~주 간혹 있다)
인물에 대한 시선도 맘에 들지 않는다.
주관적인 것일지라도 뭔가 판단 근거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자신들의 하는 주장에 대한 근거가 너무나 빈약해서
읽으면서 내가 다 민망스러운데.... 

중간에 던져버리고 싶은 것을 꾸역꾸역 참으며
마침내 다 읽은 나의 인내력에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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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1 - 하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밀레니엄 (아르테)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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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에서 이벤트로 받은 책 중에 '밀레니엄2'가 있었다.
딱히 '밀레니엄1'과는 연결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밀레니엄1'을 주문하고 2009년 독서의 시작으로 읽었다.
서점에서 몇번을 들었다가 놓았던 책인데 아마 표지의 무서운 그림 때문이리라. 

처음 접한 스웨덴 추리 소설. 처음 접하는 작가 스티크라르손.
책을 놓은 순간에 드는 생각은 더 이상 이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다.
신은 그래서 공평한 것일까? 이렇게 훌륭한 재능을 주고 이렇게 빨리 데러가다니...
책을 드는 순간부터 책을 덮는 순간까지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소설.
분명히 추리소설이지만 절대로 추리소설 같지 않은 소설.
인간의 겉모습 뒤에 숨어있는 부끄러운 잔인함에 대한 통렬한 고발.
혜성같이 나타나 불꽃처럼 사라지 작가에 대한 아쉬움은 그래서 더욱 크다. 

주인공은 미카엘과 리스베트이다.
오래전에 인기를 끌었던 '레밍턴스틸'이라는 미국 드라마에 나왔던
피어스 브로스넌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남자 주인공 미카엘 브롬크비스트.
작가가 존경했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소설 '말괄량이 삐삐'를 닮은
비 사회적이고 반항적인 천재 해커 리스베트 살란데르.
불같은 성격의 미카엘과 얼음같은 성격의 리스베트가 기묘한 연합을 맺어
가장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연쇄살인의 비밀을 밝혀 나간다.
기자 출신 작가답게 빈틈없는 논리로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
아주 작은 단서로 사건의 윤곽을 잡아가는 과정이 치밀하기 때문에
그 과정을 쫓아가는 과정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강한 흡입력이 생긴다. 

소설에 3가지 사건이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미카엘을 궁지로 몰아넣은 비리 기업가 '베네르스트룀'의 비리를 밝히는 이야기.
하리에트 반예르의 실종을 조사하면서 드러나게 되는 잔혹한 연쇄살인 사건.
하리에트 반예르 실종사건 자체까지 3가지 이야기가 서로 맞물리며 돌아간다.
각각의 사건이 독립적으로 돌아가면서도 서로 묘하게 연결된다.
작가의 치밀한 장치가 서로 독립적으로 보이는 사건들을 연결시키며
전체적으로 커다란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작가의 능력에 감탄이 나온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작가의 사회적 성향이 너무 강하게 나타난 것이다.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독립잡지사의 기자라는 출신성분에 맞게
베테르스퇴름 사건을 통해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통렬한 비판 속에
사회주의적 성향이 너무 강하게 드러난 것이 아쉬운 점이다.
물론 그 사건을 통해서 반예르가와 미카엘이 연결되는 시점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소설 전체로 본다면 이 사건은 빠져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권선징악'을 통한 해피엔딩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니라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치를 떨게 만드는 악랄한 악인을 소설을 통해서라도 통쾌하게 응징한다.
악인들에 의해 위기에 몰렸다가 통쾌하게 복수하는 과정에서 카타르시르를 느낄 수 있다.
답답한 세상에 지친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통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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