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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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계 경찰인 오빠에게 하나뿐인 여동생이 전화를 걸어온다. 세상을 사는 것이 힘들다고.... 세상에서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그리고 며칠 후 그녀는 오빠에 의해 시체로 발견된다. 정황상 자살이 분명한 상황. 그러나 오빠는 결코 자살일 수 없는 몇가지 단서들을 발견하고 형사들의 수사가 아닌 개인적인 복수를 원하게 된다. 형사들을 자살로 믿게 만들고 자신만의 수사를 진행해 간다. '가가' 형사 또한 형사에서 의문점을 발견하고 수사에 나선다. 범인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서도 안되고 형사들을 따돌리려는 오빠의 방해까지 피해가면서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가가의 활약이 펼쳐지게 된다.

사건의 진상을 의외로 단순하다. 김건모의 메가 히트곡 '잘못된 만남'의 뻔한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그녀를 죽인 범인은 그녀의 옛애인이 아니면 그녀의 동창생 중 하나이다. 제목 그대로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독자들은 이야기의 초반에 이미 용의자를 알고 있다. 그러나 오빠의 추리과정에서 드러나는 단서들을 조립하면서 자신만의 추리를 만들어 나간다. 예리한 관찰력과 냉철한 통찰력을 지닌 '가가' 형사 또한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오빠의 추리를 뒤쫓아가는 형태를 지닌다. 전면에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가는 주인공은 오빠이고 독자들은 그의 추리를 따라가게 된다. 그렇게 추리가 완성되어 가지만 마지막 하나의 퍼즐을 맞추지 못한 상황에서 오빠는 용의자 두명을 모두 잡아놓고 자신만의 복수를 진행하려 한다. 지금까지 뒤에서 쳐져있던 '가가' 형사는 오빠의 사적인 복수를 막기위해 전면에 나서서 특유의 날카로운 추리와 치밀한 논리로 오빠의 복수를 막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오빠의 추리가 옳다고 생각하며 따라가던 독자들은 '가가'형사의 새로운 논리에 허를 찔리고 당황하는 사이 도대체 누가 그녀를 죽였는지, 혹은 그녀가 진짜로 자살한 것인지 헷갈리게 된다. 과연 누가 그녀를 죽였는가?

대부분의 추리소설은 이 상황에서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밝혀서 독자들이 시원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게이고는 정말 황당하게 그 상태로 끝내버린다. 나머지 추리는 독자들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모든 단서는 이미 소설속에 드러나 있다. 가장 결정적인 단서마저 책속에 있다. 그러니 범인은 당신들이 알아서 추리하라. 참... 기가막히고 황당한 상황이다. 심지어 작가의 불친절함에 화가 나기까지 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제까지 작가가 풀어주는 추리에 만족하는 수동적인 독자가 아니라 스스로 추리를 해 나가는 능동적인 독자를 만들고 싶은 작가의 욕심일 것이다. 그리고 독자의 호기심을 너무나 자극해 놓았기 때문에 다시 책을 뒤적이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그래도 결국 나 자신은 부록으로 밀봉되어 있는 힌트를 보고서야 겨우 범인을 짐작할 수 있었으니 역시 난 추리엔 소질이 없는 것 같기도 한다. 왠지 씁쓸~~하구만...

'추리에 자신이 있다는 독자들은 도전하라!!!  내가 만든 추리의 터널을 통과할 수 있겠는가 !!!'
히가시노 게이고가 독자에게 배틀을 걸어오고 있다. 자신있으면 도전하라. 그가 던진 추리의 유희에.
겨우 두명의 용의자 중에서 한명만 집어내면 된다. 간단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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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구
김이환 지음 / 예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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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도대체 이 느낌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처음 카페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서 주제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가 떠올랐고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예상하며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 하루만에 다 읽어버리고 난 지금의 느낌은 <눈먼자들의 도시>를 읽고나서의 충격과는 격이 다른 또다른 의미에서의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런 작가를, 이런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것인가 하는 기쁨도 있다. <멀티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만으로는 도저히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올해 들어 읽었던 수많은 소설들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손꼽을 수 있는 대단한 작품이다.

소설은 '...을 조심하게, 젊은이'라는 노인의 말 한마디로 시작된다. 무엇을 조심하라고 했는지 고민하는 남자앞에 갑자기 나타난 검은색 구(球). 살아있는 사람은 무조건 집어삼키는 구를 피해서 그는 무작정 달아나기 시작한다. 세상은 금세 혼돈에 휩싸이고 사람들은 패닉상태에 빠져 허둥대기 시작한다. 검은 구가 주는 공포를 피해 스스로 죽는 사람도 생기고 동시에 도망치는 사람들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폭력과 무질서가 생겨난다. 극도의 혼란에 빠진 세상에서 남자는 부모님을 찾는 여정을 떠나고 검은 구의 추적을 피하며 끝나지 않을 공포를 경험하게 되는데... 결국 '...을 조심하게, 젊은이'라는 말로 끝나는 긴 이야기의 결론은 결코 희망적이지도 않고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래서 답답하고 갑갑한 결말이지만 읽은 후의 느낌은 뭔가 내 속의 답답한 무언가가 사라져 버렸다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사람들이 '절망의 구'라 이름지은 구의 정체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그것이 왜 나타났는지, 왜 사람들을 모두 삼켰는지, 왜 남자는 삼키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그 어느것 하나 설명하지 않은 채 소설은 끝나버린다. 명확히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독자 스스로 설명해 나가길 원하는 결말이다. 그래서 나 역시 하나씩 생각해 보았으나 명확히 설명이 되지는 않았다. 단 하나 '절망의 구'의 정체는 아마도 사람들이 하나씩 가지고 있는, 무언지 모르고 쫓기고 있는 초조함과 불안과 공포 등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구의 크기가 거대하지 않는 직경 2미터 정도로 설정된 것은 우리 모두가 짊어지고 가는 불안과 공포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그리 크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구의 속도가 사람의 걷는 속도와 비슷하게 설정된 것도 우리가 쫓기고 있는 그 무언가가 우리가 평소의 걸음걸이 대로 걸어가면, 우리가 평소처럼 살아간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단 팔십이일 동안 벌어진 세상의 종말에서 보여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너무도 실망스러운 모습이지만 세상의 모든 사회의 모습이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차라리 <눈먼자들의 도시>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배경이 우리나라이기 때문이다. 주제사라마구가 갑작스런 재앙에 대해 인간이 보이는 도덕성의 파괴와 인간의 본성의 모습을 그려냈다면 이 소설은 도덕성을 파괴해 나갈 인간마저 사라지는 재앙속에서 인간의 공포와 절망, 그 끔찍한 심리적 공황속에서 보이는 인간들의 다양한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본성에 숨겨져 있는 근원적 공포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공포는 혼란은 낳고, 공포는 믿음을 낳고, 공포는 이기심을 낳고, 공포는 폭력을 낳고, 결국 공포는 지독한 고독을 남긴다. 공포가 사람들을 잠식해 나가는 모습들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절대 영웅적이지도 않고 이기적이고 나약한 주인공이 그 종말을 지켜보게 함으로써 말 그대로 철저한 절망을 보여준다. 그리고 나서 그 모든 구들을 사라지게 하고 삼켰던 사람들을 뱉어내게 하면서도 그들의 추후의 모습 또한 철저히 절망적이다. 그러나 절망에 굴하지 않고 또 다시 달아나는 남자의 모습을 통해 또 다시 찾아올 희망을 이야기한다. 결국 노인이 말한 '...을 조심하게, 젊은이'라는 말은 '절망'을 조심하라는 경고일 것이다. 가장 절망적 상황을 이야기 하면서 결국 희망을 이야기 하는 소설이다.

소설 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등 원소스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를 위한 컨텐츠를 구하기 위한 문학상에 걸맞게 정말로 제대로 된 소설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이 순식간에 읽힐 정도의 몰입감은 어떤 영화보다 강했고 어떤 드라마 보다 인상적이다. 영화가 되었든 드라마가 되었든 성공은 장담할 수 있는 소설이다. 정말 제대로 뽑은 소설이다. 아... 이 느낌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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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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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고의 작품들은 만나는 것은 언제나 행복하다. 상상이 초월하는 다작을 하는 작가인 그이지만 내놓는 작품마다 뛰어난 퀄리티를 보여주는 것을 보면 하늘이 그에게 준 재능이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용의자 X의 헌신>으로 국내에서 유명세를 타면서 그의 수많은 작품들이 번역이 되어 출간되고 있지만 출간순서는 뒤죽박죽이 되어버려서 아쉬움이 크다. 그래서 이번에 '가가형사 시리즈'로 묶어서 발간된 그의 작품들은 시간의 흐름의 따라 작가의 서술방식이나 사고방식의 흐름이 어떻게 변해 갔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며칠전에 읽은 <졸업>이 그 시작이었고 <잠자는 숲>은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이 된다.

<졸업>에서 아직 학생이던 '가가'가 살인사건에 휘말리며 자신의 추리적 재능을 발견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교사와 형사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교사가 되었지만 시리즈의 다음 편인 <악의>에서 밝힌 이유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악의>를 읽었기 때문에 이유를 알고 있다- 형사의 길로 접어들게 되고 이 작품에서 그는 30세의 젊고 유능한 형사로 등장한다. <졸업>에서 그가 프로포즈했던 사토코는 이제 '일년에 몇번 소식을 전하는 옛날 애인'으로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갔고 그는 독신의 형사가 되어있다. 도쿄의 유명한 발레단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는 발레리나에 대한 수사를 맡게 된 '가가' 일행.정황은 분명히 정당방위이지만 죽은 남자는 발레단에 침입할 이유가 없었다. 정당방위를 증명하기 위해 수사를 벌이던 중 또 다른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사건은 더욱 더 꼬이게 되는데....

<졸업>에서는 '가가'와 '사토코'의 사랑이야기 보다는 '가가'의 형사적 재능과 명석한 판단력, 예리한 관찰력 등을 중심으로 사건의 해결에 촛점을 두었다. 그래서 '사토코'와의 헤어짐은 그다지 '가가'에세 상처가 되지 않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가가'는 드디어 자신의 이상형이라 할 수 있는 '미오'를 만나게 된다. 발레단의 발레리나와 사건을 맡은 형사의 관계가 조금은 거슬리게 되지만 결국 서로에게 향하는 마음까지는 막을 수 없다. 냉철한 판단력과 명석한 두뇌의 차가운 이미지를 가진 '가가'가 '미오'를 향해 조금씩 서툴게 다가서는 모습이 미소를 짓게 만든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감정과는 별개로 냉정하게 사건을 해결해 가면서 '미오'에 대한 마음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당당히 맞서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기가 막힌 트릭이 있고 생각하지 못한 반전을 숨기고 있는 추리소설이지만 낭만적인 분위기의 로맨스소설같은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기에 대단히 감성적인 소설이다. 사건의 전개와 추리를 위한 요소만을 간결하게 서술하는 게이고의 문체가 이렇게 감성적인 내용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런 능력이 있었기에 <용의자 X의 헌신>의 그 눈물겨운 사랑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 '가가'와 '미오'의 사랑이 추후 '이시가미'의 헌신적 사랑을 낳은 모티브가 되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발레단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밀실은 아니지만 밀실살인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정된 용의자, 한정된 공간. 그 속에 범인의 기발한 트릭이 있고 그 트릭을 파헤치는 '가가'의 활약이 돋보인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전혀 알 수 없는 발레리나들의 고통과 꿈을 이루기 위한 그들의 땀과 눈물이 그려진다. 꿈을 위해 사랑을 버려야 했던 한 여인과 그 여인을 절대로 미워할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사랑. 남자들의 멋진 우정과 다른 여자들의 깊은 우정. 그리고 '가가'의 애틋한 사랑까지...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은 독자들에게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든다. 그래서 소설은 추리소설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추리소설에 감성을 더하는 재주가 뛰어난 게이고의 능력이 서서히 보여지기 시작하는 소설이다. 그와 함께 때로는 냉철하고 때로는 감성적인 '가가'의 매력적인 캐릭터도 서서히 완성이 되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시리즈의 다음편인 <악의>는 이미 읽었으니 이제는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로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가가'와 '미오'는 어떻게 되었더라? <악의>에서 분명 그 내용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난다... <악의>를 다시 뒤져봐야 하나? 아... 이제는 서서히 기억력이 떨어져 가는 내 머리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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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샬롯 2009-08-24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히가시노 게이고 좋아요.^^ <환야>도 재밌는데..ㅋ<옛날에 내가 죽은 집>과 <예지몽> 보고 싶어요. 훗..^^ 번역되어 출판된 책들이 많아서 흐뭇하고 기쁘답니다. 작품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내용도 충실하고요. 나를 흔드는 자랍니다. 설레게 하는 자..^^* 좋은 글 잘 읽었어요.
 
졸업 - 설월화雪月花 살인 게임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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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학교 때 친구들이 가장 좋다고 한다. 사회에 나와 이런 저런 관계속에서 만들어진 우정이란 그것을 만들어 낸 관계속에 얽혀있는 수많은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고 그만큼 불안정한 상태로 이어지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 때 생성된 우정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순수한 시절의 관계이기 때문에 힘들고 지친 삶에서 언제나 기댈 수 있는 마음속의 안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란 나이가 어렸을 때 생성된 것일수록 단단한 경우가 많다. 대학교 때 친구과 고등학생 때 친구보다 못하고 고등학교 친구는 중학교 친구보다 못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니다. 나이가 들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어쩌면 우리는 우정을 평가하고 이용하는 방법들을 배워나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 7명의 친구들이 있다. 가가와 사토코를 비롯하여 도도와 사코, 와코와 하나에, 그리고 나미카 까지. 이들은 고등학교 때 부터 대학교 졸업반이 된 지금까지 절친한 친구로 지내온 관계이다. 졸업을 앞둔 친구들 앞에 사코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처음엔 자살로 흐르던 사건은 몇가지 증거들이 발견되면서 타살의 의혹이 생기기 시작하고 사토코와 나미카가 사토의 죽음을 파헤쳐 나가는 상황에서 또다른 죽음이 발생하고 그들의 우정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과연 우리는 친한 친구하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인지...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견고한 인간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지... 일련의 살인사건과 그 해결과정에서 보여지는 믿음과 우정과 사랑에 대한 냉소적 시각이 가슴아픈 결론을 이끌어내게 된다.

대학교 졸업반이란 학생이라는 알을 깨고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중요한 시기이다. 또한 아무런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우정을 길러나갈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기도 하다. 그 시긴에 자신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굳건한 우정에 대한 거대한 시험에 직면하게 된 7명의 청춘들. 가가의 독백처럼 허물어 버릴 수 밖에 없는 관계를 허물어 버리는 졸업의식을 치르게 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순수한 우정이 서로의 이해관계에 의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과 그 조금의 변화가 가져오는 비극적인 결과들을 보여 준다. 이제부터는 모든 인간관계가 이해관계와 함께 얽히고 설키게 된다는 현실에 대한 가장 가혹한 교훈을 가르쳐 주는 이야기 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들은 졸업의식을 통해 인간에 대한 믿음 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가져온 비극적 결말을 통해 자신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뼈에 사무치는 교훈을 얻게 된다. 적어도 이 7명의 청춘 - 3명이 죽었으니 4명의 청춘이 되나?-은 그 교훈을 죽을 때 까지 간직하게 될 것이다.

졸업이란 작품의 의미는 '가가 교이치로'의 등장에 있다. '밀실살인'과 '공개살인'이라는 전혀 상반되는 두개의 사건을 정확히 추리해 내는 그의 능력이 발휘되는 첫번째 이야기이다. 자신의 친구들은 물론 자신의 애인마저도 용의자로 가정하는 냉철함을 지녔고 아주 작은 단서에서 사건의 전말을 유추해 내는 명석한 분석력과 치밀한 관찰력을 지닌 이 매력적인 주인공은 이 작품 이후 히가시노 게이고의 일종의 페르소나가 되어 총 7편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 중 내가 읽은 이야기는 '악의'와 '붉은 손가락'이 전부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가 나오는 소위 '가가형사 시리즈'를 모두 읽어보고자 하는 욕심을 내 본다. 냉철하기도 하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면을 지닌 이 형사는 게이고가 창조한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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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 - 개정판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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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을 통해서 가장 많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대가 조선시대이다. 사극의 소재로 활용할 수 있는 역사기록이 가장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으나 어쩌면 우리가 사는 지금의 모습과 가장 많이 닮았다는 것이 이유가 될 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유교적 윤리가 많은 부분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극의 바람이 불면서 이리저리 휘저어 놓은 우리의 역사를 통해서 조선이라는 사회는 그리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은 아니다. 가혹하리만치 철저한 신분제도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남성우월적인 사상으로 인해 수많은 인내를 요구받았던 그 시대 여인네들, 그리고 답답하리만치 서책에만 파묻혀 세상과는 담을 쌓은 채 자신들만의 이념체계속에서 허우적대는 소위 양반이라 일컬어지던 지배층들의 모습. 웃음마저도 절제가 요구되던 시대에 가장 근엄해야 할 '성균관'에서 벌어지는 연애담을 담은 이 소설은 그래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뻔뻔스럽게 늘여놓는 기가막힌 소설이다.

노론의 세상에서 남인으로 살다 간 아비. 아무것도 해놓은 것 없이 세상을 떠나버린 아비의 뒤에 남겨진 어머니와 이름모를 병에 걸려 골골대는 남동생을 위해 남장을 하며 필사를 해야만 했던 '윤희'. 좀 더 나은 보수를 위해 생각지도 않은 과거에 응시하게 되고 과장에서 운명의 남자 '선준'을 만난다. 기대하지도 않은 과거에서 떡하니 붙어버린 그녀. 그걸로 끝이라 믿고 보다 나은 보수의 일거리를 바라는 그녀에게 '정조'임금은 청천벽력같은 지시를 내리니 '성균관의 상유로 공부에 전념하라'는 어명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남자들만 득실대는 성균관에서 남장을 한 채로 부대끼며 살아야 된다는 이야기였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녀는 이상형인 '선준'과 같은 방을 쓰게 되거 거기에 문제아 중의 문제아 '재신'이 끼어들어 더욱 더 곤란하게 된다. 게다가 그녀의 정체를 한 눈에 의심하게 되는 용하까지.... 과연 그녀는 들키지 않고 무사히 성균관의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 런지....

김태희를 최고의 자리로 올려 놓았던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를 기억한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드라마. 최고 명문이라는 하버드의 천재들의 연애담을 담았던 드라마와 조선 최고의 인재들이 모였다는 성균관에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다룬 이 소설은 닮은 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소설에 더 점수를 준다. 조선이라는 철저한 유교사회에서 다른 곳도 아닌 '성균관'에 여자유생을 보내놓고 거기에다 연애담까지 펼쳐놓은 작가의 대담성과 그 대담한 설정이 가져오는 수많은 사건들과 그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개구장이같은 '잘금 4인방'의 모습은 조선시대가 아닌 지금의 이야기를 하듯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양반의 체면같은 것은 이미 저 멀리 던져버리고 객기어린 젊은 청춘으로 돌아간 우리 선조들의 모습은 신선하고 그들의 벌이는 좌충우돌은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정은궐'이라는 작가의 모든 소설이 이제는 나의 구매목록 상단을 차제하게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다.

흔히들 놀고 먹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양반들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성균관'의 유생들은 그리 무시할 수는 없는 듯 하다. 우리의 대학시절에도 사회의 모든 것을 비판하고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하고 다른 이들과 의견을 공유하고 논쟁하던 시절이 있었듯이 그 시절 최고의 인재들 또한 조선의 개혁을 위해 나름의 대책을 세우고 서로의 대책들을 논의하고 고민하는 젊은 청춘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대의 개혁을 자신의 사명으로 껴안았던 개혁군주 '정조'가 성균관과 규장각을 그리도 아끼었던 것이리라. 우리가 가지고 있던 양반에 대한 편견을 이 책은 조금은 덜어주었다. 드라마나 역사 책에서는 좀처럼 다루기 힘든 그 시대의 풍습을 알 수 있는 것도 좋았던 점이다. 특히 성균관을 중심으로 그 시대 양반들이 즐기던 여러 의식들과 단순히 '장원급제'라는 말로 대변되는 수많은 과거의 모든 절차들이 상셍하게 그려지고 있어 그 시대의 풍속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보너스 이다.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안타까워해야 하는 '대물' 윤희의 안타까운 사랑과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여인임을 모르고 다가가지 못하는 '가랑' 선준의 애절한 사랑과 선준보다 먼저 그녀의 정체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사람을 감추고 드러내지 못하는 '걸오' 재신의 사랑과 처음부터 그녀의 정체를 짐작하고도 끝까지 그녀를 감싸고 보호해 준 '여림' 용하의 우정이 어우러져 '잘금 4인방'의 완벽한 팀웍이 만들어내는 조선판 캠퍼스 러브스토리.

'성균과 유생들의 나날'이라는 제목으로 역사책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던 내가 이 책을 접할 수 있었음은 나에겐 행운이다. 도대체 작가는 왜 제목을 이리 붙였을까? 접근하기 힘든 제목이지만 일어보지 않는다는 두고두고 후회할 만한 소설이다. 누구에게나 주저하지 않고 강추!!! 할 수 있는 대박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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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2-16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과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을 출간한 파란미디어가 자신있게 선보이는 새로운 소설 브랜드 새파란상상. 그 첫 번째 이야기 <말이 되냐>
대한민국 모든 유쾌발랄찌질궁상 청춘들에게 바칩니다. 이 꽃 같은 세상이 말이 되냐! 파란미디어가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YES24, 인터파크, 인터넷교보, 알라딘에서 출간기념 이벤트중입니다. 지금 바로 참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