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 인문학자 8인의 절망을 이기는 인문학 명강의
강신주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이 여잔 침묵으로 내 모가질 비틀어 꺾어 버리고 말아. 내가 컴컴한 채로 몇 시간이고 의자에 앉아 있어도, 이 여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면서도 홱 돌아누워 잠들어 버려. 둘 중에 하나는 돌았어. 그게 대체 누구야? 나야? 응? 나란 말이야? 그럼 저 여자야? 대체 어느 쪽이야? 언젠가 다시 돌아오고 싶을 때가 있을지도 몰라. 난 그날을 기다리고 있겠어. 당신 눈물로 이뤄진 연못 한가운데 서서 그 물을 찰싹찰싹 치면서 노래 부르고 싶어. 당신이 무릎 꿇고 용서를 비는 꼴을 보고 싶어. 진흙탕이 된 당신 얼굴을 보고 싶어. 내 소원은 그뿐이야. 그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     존 오스본(John James Osborne)의 희곡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Look Book in Anger>> 중 지미의 대사
    존 오스본이 써낸 희곡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Look Back in Anger, (1958년)>>는 50년대 영국의 암울한 시대상을 신랄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장에서 캔디를 파는 주인공 지미 포터는 기성세대의 위선과 사회 부조리에 분노를 품은 인물이다. 그는 상습적으로 아내를 학대하면서 마음속 분노를 표출한다. 오스본은 이 작품에서 주인공 지미와 주변인물들의 갈등을 통해 정당한 방식으로 분노를 해소할 길이 막힌 시대의 절망을 잘 그려냈다. 주인공 지미는 이차대전 이후 박탈감을 느끼던 '성난 젊은이(angry young man)' 세대의 표상이 된다. 50년대 영국은 절망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청년 실업률이 치솟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경제는 침체기에 빠져들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기 시작했다. 존 오스본을 위시한 젊은 작가들은 시대상을 날카롭게 꼬집는 작품들을 써 내면서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했다. 그러고 보면 완전한 절망의 시대는 아니었던 것도 같다. 시대적 위기와 사회 불의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성난 젊은이들'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인간이 서로 투명인간으로 만든다면 아무리 많은 수가 모여 있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서는 책임감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책임은 서로에 대한 응답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인간의 윤리이기 때문입니다. (308쪽, 그래도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노명우)
    마음은 새빨간 불길에 휩싸인지 오래이다. 불길은 잦아들 줄 모른다. 점점 거세지는 불길 속에 한 사람이 있다. 사람이라는 것도 잊을 만큼 거센 불길 속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불길을 어디 토해내야 하나. 사방이 벽이다. 모든 희망이 끊긴 상태. 화마에 집어삼켜진 사람들의 세상. 방향성을 잃은 분노의 불길은 애먼 희생자를 낳는다. 모두가 희생자인 세상. 너도 나도 억울한 세상. 제 울음에 눈 멀고 귀 먼 사람들이 깽판이나 치는 세상이다. 나도 이젠 달라질 거예요. 모두 내 잘못이에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힘도 없는 생명이 죽었다고요. 나도 죽고 싶어요. 존 오스본의 희곡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에서 아이를 사산한 앨리슨이 울부짖는 대목이다.​ 죄 없는 생명이 희생되고 나서야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단 걸 깨닫는다. 마음을 새까맣게 태우는 분노를 안고 펄쩍펄쩍 뛰는 지미와, 아이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앨리슨의 죄의식과 절망. 이들 부부의 절망과 분노는 반세기의 공백을 무색케 할 만큼 우리 얼굴과 닮아 있다.
   ​어떤 사람을 알 때, 여러분 자신을 알 때는 절망의 상태와 위기의 상태에 있을 때죠. 그래서 우리가 절망의 상황을 피하는지도 몰라요. 나를 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이 들면 왜 산에 안 가는지 아세요? 헐떡거리니까. 나이 들면 왜 종합검진을 피하는지 아세요? 나쁜 일을 알게 될까봐. (33쪽, 시대의 이름, 절망, 강신주 )
   여덟 명의 인문학자들이 뭉쳤다. 존 오스번의 희곡 제목에서 이름을 따 온 이 책에서 이들은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지혜를 이야기한다. 당장 사는 일이 캄캄한 이때에 문학이 뭐고 철학이 다 뭐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절망이다. 강신주는 '파르헤지아parrhesia'를 통해 인문학의 가치와 의미를 설명한다. '파르헤지아'는 '진실을 말하기'라는 뜻인데, 인문학이야말로 "진실을 직면하는 파르헤지아"라는 것이다. 말문이 막힌 위험한 사회에서 모든 인문학, 예술, 철학은 '아는 것'과 '믿는 것'을 '말하면서' 진실을 지향한다.
   천국에는 철학자가 없고 신은 철학자가 아니다. 철학은 지옥에서 도망치지 않고 또 거기서 낙담하지 않고, 지옥을 생존 조건으로 삼아 거기서도 좋은 삶을 꾸리려는 자의 것이다.1 (201쪽, 끝없는 불안과 싸우는 당신을 위한 노래, 정여울)
   지옥의 불길 속에서 신음하는 우리에게 정여울이 보내는 노래를 들어보자. "철학은 지옥에서라도 삶을 가꾸려는 자의 것"이라는 정여울은 시대의 악惡에 직면했을 때 달아날 것이 아니라 악의 뿌리를 탐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악의 뿌리라고 하니까 외부로 눈을 돌리는가. 사악한 세계를 구성하는 우리는 저마다 악의 실뿌리들이다. "바꾸기 어려운 외부의 상황에만 비난의 화살을 돌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나 자신의 실천을 모색하는 것, 이렇듯 나로부터 시작되는 자발적 윤리가 구원의 희망(정여울, 끝없는 불안과 싸우는 당신을 위한 노래)"이 될 것이다. ​  
  
​    근대 이전에는 동양 의학이든 히포크라테스 의학이든 지혜가 곧 몸의 기질을 바꾸고 몸의 질병을 치유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지혜의 결핍, 진리에 대한 무관심이야말로 병의 원인이었죠. 지혜가 부족하면 몸의 균형이 깨지고 기질과 충동이 제멋대로 날뛴다고 본 거죠. 충동의 기본 속성은 폭력과 이기심입니다. 그러면 인간관계가 나빠지죠. 그 나빠진 관계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러면 감정의 회로가 더더욱 어긋나게 되고 당연히 병이 생기죠. (107쪽, 욕망의 지도, 운명, 고미숙)
 ​   인기 드라마 <<시크릿 가든>>과 <<서유기>>, 사주명리학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곁들인 고미숙의 욕망 계보학도 인상적이다. 고미숙은 몸의 생리와 동떨어진 욕망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대를 우려한다. 자기 욕망에 대한 무지가 자기 소외를 낳는다는 것이다. 신체와 존재의 간극을 좁히는 해소책으로 고미숙이 제시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자연'이다. 고미숙의 해법은 문태준이 말하는 '생태적 사고'와도 맞닿아 있다. '내 안에 있는 자연'이란 무엇인가. 부처가 말하는 "모든 존재가 파괴되고 소멸하는 것임을 현재의 삶 속에서 폭넓게 꿰뚫어 아는 자"이다. 시인은 안에 있는 자연'을 언어로 풀어내는 자이다. 문태준은 직접 선별한 몇 편의 시를 통해 물질적 욕망을 이기는 생태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2
         이 시에서는 모든 존재를 고유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황새, 말, 거북이, 달팽이, 굼벵이는 이동하는 공간도 다르고 보폭도, 속도도 다 다르겠지요. 그런데 이 존재들은 존엄에 있어서 높고 낮음이 없고, 낫고 모자람이 없이 동일 선상에 있다는 것입니다. 고르고 가지런하단느 것입니다. 심지어 늘 묵중한 바위도 이들과 어깨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상력은 분별하지 않는 상상력, 차별하지 않는 상상력입니다. (222~223쪽, 물질적 욕망을 무화시키는 시적 상상력, 문태준)
   고유한 개체와 개체는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 이질적인 대상을 유사성으로 엮어주는 시적 상상력이 문태준이 얘기하는 생태적 상상력의 핵심 내용이다.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당신과 나는 불안으로 연결되어 있다. 노명우는 이 책에서 시대정서sentiment의 불안, 즉 당대를 살고 있는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불안의 정서를 다룬다. 그는 공동체에 대한 불신과 그에 따른 사회문제의 개인화, 냉소주의를 꼬집는 한편 불안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강력한 무기는 '확실하고 분명한 지식'이라고 강조한다. 지식이야말로 "비非인간이 되는 가능성을 끊임없이 차단해내는" 길이라는 것이다.

   희망을 끊는다는 것은 동물이 되어가는 거예요. 인간다운 감정을 느낄 수 없을 때 절망에 빠집니다. 반대로 말해볼까요? 우리는 언제 안 죽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 죽어요.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안 죽어요. (...) 희망은 사랑과 같습니다. (...) 우리는 든든하게 지탱하는 삶의 힘, 자살하지 않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랑이에요. (...) 절망은 사랑이 없는 상태입니다. (25~26쪽, 시대의 이름, 절망, 강신주)
   캄캄한 세월이다. 그래도 우리 아직 살아 있다. 살아 있는 한 희망을 끊을 수 없다. 그게 사람의 길이다. '사람'이 뭉쳐 '삶'이 되고 '사람'이 둥글어져 '사랑'이 된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지만, 이 책에서 여덟 명의 '성난' 지식인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사람이 되자.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둥글게 뭉쳐야 산다.

 

 

 


 


  1. <<철학자와 하녀>>, 고병권 지음, 메디치미디어, 2014

  2. * 반칠환의 시 <새해의 첫 기적>
    <<웃음의 힘>>, 반칠환 지음, 지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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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미스터 찹
전아리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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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상실은 새로운 육체를 낳는다. 해체된 플라나리아의 몸통처럼 증식하는 슬픔은 '또 다른 나'를 조우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당신'을 보내고 '나'와 맞닥뜨리는 순간. '당신'이 닫고 나간 문을 힘겹게 밀고 나오는 과정을 우리는 애도라고 부르는 건지도 모른다. <<헬로, 미스터 찹>>은 그런 순간에 벌어지는 웃픈 해프닝을 그린다.  
 
   어머니는 정말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일까. 어머니가 어느 낯선 섬 해변의 오두막집에서 고기잡이 남자와 함께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27쪽)
 
 
    스무살 정우는 사고로 어머니를 잃었다. 텅 빈 집에 홀로 남은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어머니의 화장대에 앉아 귀고리를 꺼내보고 "잠들기 전에 어머니가 쓰던 로션 냄새를 맡"으면서 어머니를 보내지 못한다. 한마디로 멘붕 상태에 빠져 있는 정우 앞에 난쟁이 요정이 나타난다. 자신을 '찹'이라고 소개한 난쟁이는 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정우네 집에 눌러앉는다. 찹'은 아무렇지 않게 정우 어머니의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닌다. 찹이 사용하는 숟가락과 젓가락도 정우 어머니의 것이다. 정우가 "영원히 비우고 싶지 않"던 김치통을 털어 묵은지 감자탕을 끓여내기도 한다. 어머니가 만든 마지막 김치였다. 찹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어머니의 퀼트 인형을 다른 아이에게 줘버리는가 하면, 어머니가 사준 정우의 흰색 셔츠를 얼룩덜룩하게 만들어 놓는다. 어머니의 로션 병을 깨뜨리고, 청소를 한답시고 바닥을 락스로 빡빡 닦아놓아서 어머니 냄새를 완전히 없애버린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기이하게 생긴 난쟁이가 발치에 앉아 있었다. 난쟁이는 체크 무늬 남방에 가죽조끼를 입고 초록색 돌이 달린 장화를 신고 있었는데, 한쪽 신발의 돌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30센티쯤으로 추정되는 그는 내가 어제 먹다 남긴 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나는 찹이라고 해." 난쟁이가 말했다. (10~11쪽)
 
   난쟁이 요정 찹은 어머니 방에 갇혀 있던 정우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 주는 역할을 한다. 힘겹게 문을 열고 나온 정우는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면서 어머니의 부재라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소설에는 다양한 관계가 등장한다. 목사를 흠모하는 '강씨 아줌마', 사십대 유부녀를 사랑하는 스무살 윤식, 게이 삼촌과 그의 애인 달배씨. 정우는 이들을 통해 세상 모든 관계가 "그래프 그리듯 분명하게 점 찍어 그을 수는 없"다는 중요한 진실을 깨닫는다.​ 지예와 노출광 유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정우의 연애사도 리얼하게 그려진다. 딱 그 나이대의 연애감정과 고민이 충실히 담겼다.
 
   결혼이나 연애를 하는 것은 녹은 캐러멜을 입에 물고 있는 것과 같다. 뱉거나 삼켜버리기에는 아깝지만 그렇다고 입에 계속 물고 있자니 지나치게 달아서 쉽게 질리고 만다. 게다가 가게에는 수많은 종류의 캐러멜이 있는데 그중 하나의 캐러멜만을 고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8쪽)
 
    소설에서 난쟁이 요정 찹의 정체는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그가 어디서 왜 왔는지 또 어디로 갔는지 설명이 없다. 이 베일에 싸인 인물은 환상이 아니다. 정우 눈에만 보이는 헛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정우보다 더 적극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어울린다. 이십 년 만에 난생 처음 만난 아버지와의 관계를 이어준 것도 찹의 공이 크다. 정우가 차마 하지 못하는 일들을 찹은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다. 어머니의 흔적을 없애거나 낯선 아버지와 스스럼 없이 어울리고, 정우가 마음에 둔 말들을 대신 해버리기도 한다. 난쟁이 요정 찹은 정우의 숙제를 도와주는 쌍둥이 형제 같다.

   나는 찹에게서 풍기는, 오래된 오두막 같은 냄새가 좋았다. 찹이 수염이 날아가버릴 정도로 거세게 불어오는 바닷바람 속에서 나를 향해 눈을 찡긋해 보였다. 나는 찹이 장난스럽게 웃는 모습만 보면, 그 어떤 일이 닥쳐도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214쪽)
 
    "친구는 또 하나의 나이다." 소설 말미에 인용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경구이다. 난쟁이 요정, 미스터 찹의 정체를 푸는 열쇳말이기도 하다. 뻔뻔한 불청객의 만행에 질린 정우가 찹에게 나가라고 하자 찹이 응수한다. 우린 친구잖아.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장에서 주어와 술어의 자리를 바꿔 보자. '또 하나의 나'는 친구이다. 나는 미스터 찹이 외계에서 나타난 요정 같은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 찹은 항상 거기, 그 집에 거주하던 정우의 '또 다른 자아'라고 해석해도 무리 없을 것 같다. 어떤 슬픔은 우리를 갈갈이 찢어놓지 않던가. 갈라져 나온 또 다른 자아는 때로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부모도 친구도 연인도 떠난 자리, 그 깊은 공동에 빠진 정우 앞에 나타난 미스터 찹은 그들을 대신해 위로와 조언과 사랑을 준다.
​   나는 의미 있게 산다는 것에 대해 잠깐 생각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68쪽)
 ​  이별은 언제나 아프다. 이별 앞에서 누구도 쿨하기 힘들다. 가슴 뜨거운 사람의 일이라 그렇다. 이별 없는 삶 또한 불가능하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또 만나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헬로, 미스터 찹>>은 경쾌한 어조로 우리에게 충고한다.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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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리어스 - 인간의 네 번째 본능, 호기심의 모든 것
이언 레슬리 지음, 김승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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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여섯 살쯤이었나. 똥을 먹어본 적 있다. 이웃집 아기의 똥이었다. 기저귀에 막 싸질러 놓은 똥은 잘 익은 호박색이었다. 무슨 맛이 날까. 단순한 호기심으로 기저귀에 손을 뻗은 것이었다. 혀끝에 살짝 대 본 그것은, 그냥 똥 맛이었다. (궁금하면 직접 맛보시라,요. 헤헤) 물뱀 새끼를 구경하다 얕은 도랑에 빠진 적도 있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떨어진다는 사촌오빠의 말을 듣고 목이 빠져라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기도 했다. 아빠한테서 들은 말인데, 사탕나무를 키운다고 땅에 사탕을 심은 적도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나는 좀 돌아이였던 거다. ​돌아이의 호기심은 끝이 없었다. 밤하늘을 쳐다보던 아이는 학교 도서관에서 우주의 신비, 같은 제목이 붙은 과학도서들을 빌려 읽었다. 광활한 세계가 거기 있었다. 하나의 세계는 또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이 되어주었다. 똥 맛을 보던 아이는 이제 책 맛을 알게 된 것이다. 세계는 거대한 책이었다.
​   당신이 지루한 곳에 산다고 해도(우리 '모두' 지루한 곳에 살고 있다), 그 장소를 보는 방식을 선택할 수는 있다. 날마다 똑같은 것들을 계속해서 보면서 그것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왜 그렇게 존재하는지, 어떻게 더 나아질지 등에 대해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무언가를 배울 수도 있다. (본문 중에서)
    내 어린 시절은 구멍난 신발 밑창 같았다. 뾰족한 자갈이 들어간 신발을 신고 걷는 심정이었달까. 신을 벗고 털어내면 어디서 또 다른 자갈이 굴러들어와 발바닥을 찔러대는 식이었다. 결핍이 결핍을 낳고 슬픔이 슬픔을 낳았던 거다. 저 누추한 구멍 바깥으로 줄줄 새나가버리고 싶던 때가 많았다. 나를 구원한 것은 호기심이었다. 천성적으로 이상한 궁금증이 많았던 나는 내 슬픔마저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의연함이 생겼다. 밤하늘 같은 캄캄한 세계에서 별을 따듯이 내 슬픔을 캐고 또 캤다. 덕분에 나는 뱀과 밤과 별, 똥 모두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우주는 날로  광활해져갔다.
    ​원숭이와 인간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인간의 DNA와 원숭이의 DNA는 거의 비슷하다. 몇몇 원숭이들은 인간처럼 도구도 사용하고 자신들만의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하지만 두 종의 결정적인 차이는 인간과 달리 원숭이들은 '왜'라고 질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본문 중에서)
    호기심의 모든 것을 파헤치는 이 책에서는 성욕, 식욕, 주거욕 다음으로 호기심을 인간의 네 번째 본능으로 꼽는다. 인간과 다른 동물의 결정적인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이 네 번째 본능, 호기심이라고 주장한다. 현재의 문명 사회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이 호기심이라는 것이다. 한데, 호기심이라고 다 같은 호기심은 아니다. 책에 의하면 호기심에도 급이 있다.
     내가 열여섯 살이 되면 지금의 어른들은 다 죽고 없나요? 내 눈이 파리로 변하면 어떻게 돼요? 시간이 뭐예요? 아빠는 전에 원숭이였어요? 왜 나는 내 그림자에서 도망갈 수 없어요? 내가 엄마 조금하고 아빠 조금으로 만들어졌다면, 나의 나머지 조금은 어디에서 온 거예요? 나도 예수님처럼 십자가에서 죽게 되나요? ​(본문 중에서)
    어린 아이들은 하찮은 것에도 감탄하고 질문을 던진다. 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이라면 무엇이든 흥미를 보이는 성질을 책에서는 '다양성 호기심'이라고 부른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는 다양성 호기심을 설명해주는 좋은 예가 된다.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뉴스를 접하면서 다양성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다양성 호기심은 들판에 풀어놓은 염소떼와 같다. 염소들은 제멋대로 돌아다니면서 이 풀 저 풀을 뜯어먹는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풀을 발견한다. 혀에 감기는 맛이 그만이다. 염소는 멈춰 서서 그 풀을 오래오래 씹어 맛본다. 염소는 자연스럽게 그 풀에 대해 알게 된다. 이파리 모양과 색, 맛과 감촉, 풀냄새까지 점점 좋아진다. 염소는 이제 목표를 갖고 주의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마음에 드는 풀이 주로 어디에 서식하는지, 다른 염소들은 어떤 풀을 좋아하는지, 이런 풀과 비슷한 풀은 없는지 궁금해진다. 이 풀 저 풀 맛보고 돌아다니던 염소는 이제 들판에 관심을 갖게 된다. 들판에 대한 염소의 관심을 책에서는 '지적 호기심'이라고 칭한다. 다양성 호기심에 일정한 방향성이 생길 때 지적 호기심이 싹튼다는 것이다.
 
   ​ 어떤 주제에 대해 무언가를 알게 되면 그 주제에 대해 내가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간극을 좁히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다. 지적 호기심은 지식의 빈틈, 지식의 간극에서 나온다. (본문 중에서)
 
​   염소가 마음에 드는 풀을 발견했을 때, 지적 호기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러나 염소가 그 풀을 오래오래 씹고 뜯고 맛보지 않았다면, 지적 호기심이 발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염소는 풀을 씹으면서 풀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풀에 대한 정보가 쌓이자 염소는 이제 들판을 탐색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 책에서 염소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재미 있는 예를 들어본 것뿐이다. 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지적 호기심을 싹틔우는 것은 무지에 대한 자각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책에 의하면, 배경지식은 지적 호기심을 이끌어주는 중요한 양분이 된다. 호기심이 지식을 이끄는 것만큼이나 지식도 호기심을 이끌어준다는 것이다. 풀에 대한 정보가 염소의 들판 탐색을 한결 수월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   지식을 많이 쌓지 못한 아이는 재료가 없는 조각가나 마찬가지다. 그 아이에게 창의성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 이론상으로만 그럴 뿐이고 그 창의성을 실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창의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초 지식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주장을 바탕으로 진보주의적 교육관과 주입식 교육관의 실재적 문제들을 깊이 있게 파고든다. ​다양한 이론과 주장이 등장하지만 핵심은 변함이 없다. 그림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빛과 어둠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림자가 궁금한 아이는 인터넷 검색창에 <그림자가 무엇인가요>라고 칠 것이다. 길게 쓸 것도 없다. <그림자>만 쳐도 삽시에 엄청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보의 간극이 손쉽게 메워지는 것이다. 책에서는 인터넷 사용의 해악을 우려한다. 물론 잘만 이용하면 인터넷은 풍부한 지식의 바다가 된다. 그런데 바다에 발만 담궈 보고 마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그저 하나의 답을 얻는 것으로 만족해 버리는 것이다. 세계는 수수께끼보다는 미스터리에 가깝다. 미스터리는 단조로운 삶에 긴장과 활력을 부여한다. ​좋은 호기심은 미스터리에 뿌리를 내린다. 삶이 심심하다는 당신에게 책에서 내놓는 답은 간단하다. 미스터리를 발견하라. 지금보다 삶이 풍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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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8-12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재미있는 리뷰군요.

kmrmrmr 2015-05-11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잘 보고갑니다 !
 
이방인을 보았다 바다로 간 달팽이 11
구경미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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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시작은 물이 새는 하수구에서부터였다. 완공된 지 채 일 년도 안 된 신축 빌라​의 벽과 천장에서 줄줄 물이 새는 것이었다. 부동산도 시공업체도 책임을 회피한다. 문제가 있으면 분양업자를 찾아가라는 식이다. 그들이 지목한 분양업자 '장 노인'은 "괴도, 유령, 마귀, 괴물 등으로 불리는, 참으로 별명도 다양한, 그러나 그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입주민들은 두려움과 호기심을 안고 노인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여러 번 눌러도 답이 없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답이 없다.

    "초인종 누르기 전에 심호흡을 세 번이나 했다." 나중에 인호 아버지는 그렇게 술회했다. 새들의 지저귐이 허공을 갈랐다. 인호 아버지는 얼른 초인종에서 손을 뗐다. 지저귐이 멎었다. 기다렸다. (...) 일요일 오전답지 않게 골목에는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었다. 텔레비전 소리도, 피아노 치는 소리도, 아이를 혼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삶의 소리가 거세된 공간에 새의 울부짖음만이 가득했다. (본문 중에서)  

    기다리고 기다려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때까지 한 편이었던 입주민들은 쉽게 체념하고 돌아선다. 한순간 낯빛을 싹 바꾸고 하수구가 막힌 인호네 집에 책임을 떠넘긴다.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도 없게 돼버린 인호네는 불편한 일상을 이어간다. 인호의 딱한 사정을 전해 들은 친구들은 인호를 돕자는 데 의기투합한다. 인호와 만하, 한음, 달이는 인적이 뜸한 밤에 장 노인의 집에 무단 침입한다. 합법적인 방식이 불가하다면 불법적으로라도 손해 배상금을 받아내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이 귀한 음반을 한 짐씩 짊어지고 돌아간 바로 그 밤, 장 노인의 죽음이 보도된다.

   경찰은 도대체 뭐하니, 이런 거 조사 안 하고. 경찰이 할 일 우리가 다 하고 있네. 이렇게 무능해서야 어디 선량한 시민이 발 뻗고 자겠나. (본문 중에서)

 

​    한음과 세 친구들이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을 따라가는 이 작품은 추리소설의 옷을 입은 성장소설이라고 보면 되겠다. 본격 추리소설의 정교한 추리 과정은 부족하지만, 이야기 전체를 놓고 봤을 때 크게 문제 삼을 만한 부분은 아니다. 부실 공사, 책임 회피, 어른의 부재, 무능, 인간의 탐욕, 전쟁 중 살인, 죄책감, 단절... 묵직한 사회 문제들을 깔고 있으면서도 이 소설은 씩씩하고 발랄하다.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이 되는 '나(한음)'의 성장담 덕분이다.

   방과후 수업도, 학원도 다니지 않는 내가 밤 열 시가 되도록 귀가하지 않았는데 걱정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엄마는 오늘도 야근이겠지. 아빠는 오늘도 외박이겠지. 집구석 참 잘 돌아간다. (...) 현관으로 들어서는데 카톡이 날아왔다. 밤이가 아닐까? 설마 하면서도 꼭 밤이일 것만 같았다. (본문 중에서)

    한음의 "집구석"은 정서적 유대가 단절된 오늘날의 가족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가족 뿐이겠는가. 외로운 소년 한음이 짝사랑하는 대상은 또 하필 말수가 없다. 산 너머 산, 아니, 닫힌 문 뒤에 또 다른 닫힌 문들이 소년을 기다리고 있다. 소년은 그러나 좌절하지 않는다. 체념하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소년의 '만능열쇠'이다. 소년은 만능열쇠를 쥐고 닫힌 문들을 하나씩 열어보기 시작한다. 어른의 이기심과 무능이 지은 허술한 세계의 문을 박차고 나가 문 뒤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탐사한다.

​   그런데 왜 문들이 꼭꼭 닫혀 있는 것일까. 닫힌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정말 아무도 없는 게 맞는 걸까. (...) 닫힌 문들을 향해 한 발을 내디뎠다. 또 한 발, 그리고 또 한 발. (본문 중에서)

    억울한 일이 차고 넘친다. 세계의 뚜껑을 쾅 닫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비겁하게 입을 꾹 닫고 있는 때도 많다. 괜히 건드려서 다치기 싫은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한다. 어쩔 수 없는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가 보다. 하나의 닫힌 문 또는 단단한 벽이 되어가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닫힌 문들이고 동시에 닫힌 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바깥에서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들이 있다. 문을 향해 발을 내디디자. 한 발, 또 한 발. 마침내 문이 열리면 아이들은 즐거운 숙제를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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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피플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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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 소설은 묘한 기시감을 선사한다. 한참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가 스윽 지나간다. 어딘가 낯이 익는 모습이다. 어디서 봤더라? 곰곰 생각해 보면 하루키의 다른 소설에도 등장한 인물이다. 그들은 꼭 닮았으면서 어딘가 전혀 다른 존재 같이 보이기도 한다. 각각의 세계에서 조금씩 다른 삶을 살아가는 쌍둥이들처럼 말이다. 하루키는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세계의 외피를 ​섬세하게 걷어낸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든, 그런 일 따위 별 상관이 없"(TV 피플)게 되어버린다. 뒤집어진 세계에도 우리와 꼭 닮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것이 'TV 피플'. "그들은 원근법의 모델처럼 보인다고도 할 수 있다. 바로 코앞에 있는데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마치 속임수 그림처럼 평면이 뒤틀리고 파도친다. 닿아야 마땅한 장소에 손이 닿지 않는다. 닿지 않아야 할 물건에 손이 닿는다. 그것이 TV 피플"(TV피플) 하루키는 두려움 없이 계속 나아간다.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잊어버릴 때까지. 하루키식 판타지가 발생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밑도 끝도 없다. 껍질을 계속 벗겨내도 알맹이는 없는 이상한 세계. 껍질이 곧 알맹이이기도 한 세계가 하루키의 세계이다. 이 세계에 닿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각성상태"(잠)에 빠져들어야 한다. ​"잠자고 싶어하는 육체"(잠)를 벗고 "각성하려 하는 의식"(잠)을 입어야 한다. 당신의 몸은 "다른 세계의 끝으로 휘날려 갈 것"(잠)이다. "세계의 끝에 있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땅으로."(잠) 당신이 세계의 끝으로 걸어갈 때, 반대편에서 "세계의 끝자락을 쥐고, 그것을 조금씩 풀고 있는"(비행기) 또 다른 당신이 있다. "세계가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TV피플)하고, "들고나는 바닷물처럼 예감이 기억을 잡아당기고, 기억이 예감을 잡아당긴다. 하늘에는 날카롭게 날이 선 면도칼 같은 달이 떠 있고, 의문의 뿌리가 어두운 땅속을 긴다."(TV피플) 저편에 있는 사람들은 당신이 들으란 듯이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복도를 걷는다. "카 ㅡ르스파무쿠  다부  카ㅡ르스파무쿠  다부쿠  카ㅡ르스파무쿠  쿠부"(TV 피플).

​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허물어진 지점에서 하나의 세계가 깨어난다. 현실이라고도 비현실이라고도 할 수 없다. 목이 잘린 유령과 좀비, 리틀 피플들이 걸어다니는 세계는 그러나 "아주 리얼한 감촉"을 전해준다. "마치 인생 그 자체인 것처럼, 딱딱하고 매끈하고, 그리고 멀리에"(비행기)서. 구름처럼 흘러와서 그들은 우리 "머리 위를 뒤덮었다가는"(잠) 이내 사라져버린다. 그러면 또 저쪽에서 누가 "세계의 끝자락을 쥐고, 그것을 조금씩 풀"기 시작한다. "사무적으로, 그리고 아주 무감각하게."(비행기)

   ​ 끈덕지게 따라붙는 검은 악몽처럼 무의식이 의식을 입는다. "아무리 그런 일을 피하려 해도 소용이 없다."(가노 크레타) "껍질을 벗은 살덩어리"(좀비)가 우리를 쫓아온다. 목을 자르고 피를 다 빼고 "뒤뜰에 묻어버"(가노 크레타)려도 그것들은 계속 살아난다. "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경보장치를 부착하고, 각 방에는 전자 열쇠를 달고, 고릴라 같은 게이 보디가드를 고용"(가노 크레타)해도 그들은 간단히 방문을 부수고 쳐들어온다. 우리 "옷을 북북 찢"고 "있는 힘을 다해" 우리를 "범하고" 우리"목을 나이프로 잘"(가노 크레타)라 버린다. 목이 잘린 우리는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살아 있고, 깨어 있을 때보다 더 깨어서 우리 안에 갇혀 있던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게 된다. "래롯프  래롯프  리롯프"(가노 크레타)

    하루키식 판타지에 교훈이랄 만한 것은 없다. "그러나 이 이야기 그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며, 우리들 모두에게 일어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 이야기를 다 듣고도 폭소를 터뜨릴 수는 없었고, 지금 또한 그렇다."(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한바탕 리얼한 꿈을 꾼 것도 같다. 귓가에서 어떤 속삭임처럼, TV 피플이 복도를 걸어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당신은 자고 있다. "마치 의식을 잃은 사람처럼, 잠꼬대 한 번 하지 않고."(잠) 당신은 모를 것이다. 이런 꿈에서 깨고 나면, "잠보다 깨어 있는 편이 덜 리얼한 느낌이 든다"(TV 피플)는 것을. 크고 무거운 시간이 온 방을 울리면서 지나고 있다. "타르푸  쿠  샤우스  타르푸  쿠  샤우스"(TV 피플). 당신은 계속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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