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미스터 찹
전아리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상실은 새로운 육체를 낳는다. 해체된 플라나리아의 몸통처럼 증식하는 슬픔은 '또 다른 나'를 조우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당신'을 보내고 '나'와 맞닥뜨리는 순간. '당신'이 닫고 나간 문을 힘겹게 밀고 나오는 과정을 우리는 애도라고 부르는 건지도 모른다. <<헬로, 미스터 찹>>은 그런 순간에 벌어지는 웃픈 해프닝을 그린다.  
 
   어머니는 정말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일까. 어머니가 어느 낯선 섬 해변의 오두막집에서 고기잡이 남자와 함께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27쪽)
 
 
    스무살 정우는 사고로 어머니를 잃었다. 텅 빈 집에 홀로 남은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어머니의 화장대에 앉아 귀고리를 꺼내보고 "잠들기 전에 어머니가 쓰던 로션 냄새를 맡"으면서 어머니를 보내지 못한다. 한마디로 멘붕 상태에 빠져 있는 정우 앞에 난쟁이 요정이 나타난다. 자신을 '찹'이라고 소개한 난쟁이는 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정우네 집에 눌러앉는다. 찹'은 아무렇지 않게 정우 어머니의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닌다. 찹이 사용하는 숟가락과 젓가락도 정우 어머니의 것이다. 정우가 "영원히 비우고 싶지 않"던 김치통을 털어 묵은지 감자탕을 끓여내기도 한다. 어머니가 만든 마지막 김치였다. 찹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어머니의 퀼트 인형을 다른 아이에게 줘버리는가 하면, 어머니가 사준 정우의 흰색 셔츠를 얼룩덜룩하게 만들어 놓는다. 어머니의 로션 병을 깨뜨리고, 청소를 한답시고 바닥을 락스로 빡빡 닦아놓아서 어머니 냄새를 완전히 없애버린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기이하게 생긴 난쟁이가 발치에 앉아 있었다. 난쟁이는 체크 무늬 남방에 가죽조끼를 입고 초록색 돌이 달린 장화를 신고 있었는데, 한쪽 신발의 돌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30센티쯤으로 추정되는 그는 내가 어제 먹다 남긴 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나는 찹이라고 해." 난쟁이가 말했다. (10~11쪽)
 
   난쟁이 요정 찹은 어머니 방에 갇혀 있던 정우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 주는 역할을 한다. 힘겹게 문을 열고 나온 정우는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면서 어머니의 부재라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소설에는 다양한 관계가 등장한다. 목사를 흠모하는 '강씨 아줌마', 사십대 유부녀를 사랑하는 스무살 윤식, 게이 삼촌과 그의 애인 달배씨. 정우는 이들을 통해 세상 모든 관계가 "그래프 그리듯 분명하게 점 찍어 그을 수는 없"다는 중요한 진실을 깨닫는다.​ 지예와 노출광 유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정우의 연애사도 리얼하게 그려진다. 딱 그 나이대의 연애감정과 고민이 충실히 담겼다.
 
   결혼이나 연애를 하는 것은 녹은 캐러멜을 입에 물고 있는 것과 같다. 뱉거나 삼켜버리기에는 아깝지만 그렇다고 입에 계속 물고 있자니 지나치게 달아서 쉽게 질리고 만다. 게다가 가게에는 수많은 종류의 캐러멜이 있는데 그중 하나의 캐러멜만을 고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8쪽)
 
    소설에서 난쟁이 요정 찹의 정체는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그가 어디서 왜 왔는지 또 어디로 갔는지 설명이 없다. 이 베일에 싸인 인물은 환상이 아니다. 정우 눈에만 보이는 헛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정우보다 더 적극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어울린다. 이십 년 만에 난생 처음 만난 아버지와의 관계를 이어준 것도 찹의 공이 크다. 정우가 차마 하지 못하는 일들을 찹은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다. 어머니의 흔적을 없애거나 낯선 아버지와 스스럼 없이 어울리고, 정우가 마음에 둔 말들을 대신 해버리기도 한다. 난쟁이 요정 찹은 정우의 숙제를 도와주는 쌍둥이 형제 같다.

   나는 찹에게서 풍기는, 오래된 오두막 같은 냄새가 좋았다. 찹이 수염이 날아가버릴 정도로 거세게 불어오는 바닷바람 속에서 나를 향해 눈을 찡긋해 보였다. 나는 찹이 장난스럽게 웃는 모습만 보면, 그 어떤 일이 닥쳐도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214쪽)
 
    "친구는 또 하나의 나이다." 소설 말미에 인용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경구이다. 난쟁이 요정, 미스터 찹의 정체를 푸는 열쇳말이기도 하다. 뻔뻔한 불청객의 만행에 질린 정우가 찹에게 나가라고 하자 찹이 응수한다. 우린 친구잖아.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장에서 주어와 술어의 자리를 바꿔 보자. '또 하나의 나'는 친구이다. 나는 미스터 찹이 외계에서 나타난 요정 같은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 찹은 항상 거기, 그 집에 거주하던 정우의 '또 다른 자아'라고 해석해도 무리 없을 것 같다. 어떤 슬픔은 우리를 갈갈이 찢어놓지 않던가. 갈라져 나온 또 다른 자아는 때로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부모도 친구도 연인도 떠난 자리, 그 깊은 공동에 빠진 정우 앞에 나타난 미스터 찹은 그들을 대신해 위로와 조언과 사랑을 준다.
​   나는 의미 있게 산다는 것에 대해 잠깐 생각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68쪽)
 ​  이별은 언제나 아프다. 이별 앞에서 누구도 쿨하기 힘들다. 가슴 뜨거운 사람의 일이라 그렇다. 이별 없는 삶 또한 불가능하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또 만나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헬로, 미스터 찹>>은 경쾌한 어조로 우리에게 충고한다.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