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안의 신 - 진화론 시대의 종교에 대하여
존 호트 지음, 김윤성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5년 11월
절판


과학은 우주가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끝없는 과정이며, 따라서 새로움에 대해 열려 있으면서 동시에 일관성을 지니기에 충분할 만큼 법칙적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과학의 추상을 넘어서 좀 더 근본의 차원에서 읽을 때에만, 우주가 그 궁극의 깊이에서 종교적 희망에 넓은 길을 열어 주는 광대한 약속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더욱이 이는 신을 저 멀리 떨어진 제1 원인이라고 보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제시하는 것보다도 더 긴밀하게 신이 우주적 진화에 관여한다고 이해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147~8쪽

가장 진정한 신앙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복받은 이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바로 신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성서의 다양한 역사적·종교적 층위를 꾸준히 가로지르는 것은 바로 가장 중요하고 실제적인 것은 저 앞에,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미래에 놓여 있다는 끊임없는 주제다. 과거와 현재는 미래의 약속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의미를 지닌다. 심지어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는 현재의 상황들도 놀라운 구원의 결과를 담고 있을 수 있다.-149~150쪽

진화론은 과학의 세계에서 탄생했으며, 과학의 세계에서 모든 우연적인 놀라움은 결국 이미 알려져 있는 물리 법칙들로 예측할 있는 뻔한 결과로 '환원'된다. 반대로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새로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의식에서 솟아난다. 성서가 말하는 신은 미래의 영역으로부터 세계 속으로 들어오는 신, 언제나 우리의 시시한 예측 능력을 초월하는 약속을 하고 이를 이행하는 신이다.....

-151~152쪽

따라서 인간은 동물이나 식물과 달리 종종 자신이 세계에 딱 들어맞지 않은 어긋난 존재 같다는 통렬한 느낌을 갖게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단지 실제적인 것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더 많은 가능성에, 약속을 적응해 가도록 되어 있는 이유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미래를 향해 영원히 열려 있는 세계에 유전적으로 맞닿아 있다.-302쪽

예수가 자신이 신의 선택을 받았음을 알았을 때에도 '종'의 신분으로 낮아지기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십자가의 처형으로 이루어질 가장 비천한 죽음을 평생 기꺼이 감내했다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필립비 2:5~11). 이와 똑같은 정신에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는 것은 (적어도 성 바오로의 가르침을 따르자면) 소외되고 낯선 존재들을 향해, 그 무엇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들을 향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열어 두는 아픔을 감내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외계 존재와의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그 후로 '그리스도에게 속한다.'는 것은 전보다 더 철저한 포괄성 속에서 다양한 지적 세계들에 우리 자신을 열고,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369쪽

한스 요나스(Hans Jonas)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대사 활동을 하는 생명체조차 다소 기초적인 방식으로나마 자신을 무생물적인 환경 속으로 사라져 버리게 하는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한다고 지적한다.-373쪽

종교는 생명, 특히 분투하고 탐험하는 지적 생명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내가 제시할 수 있는 한에서 말하자면, 종교는 지적 생명체가 벌이는 가장 강인한 분투다. 지구상의 모든 종교적 분투는 일종의 '길 찾기', 즉 우리를 가장 감내하기 버거운 생명의 한계를 너머로 데려다 줄 그런 통로를 찾는 모색이라 할 수 있다.-3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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