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으로 이번 주는 휴가다. 연구계획서 발표는 내용과 상관없이 마무리되었고, 참여하던 일거리도 모두 종료되었다. 전화가 오는지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늦잠을 자도 되고, 약속을 잡아도 된다. 신난다. 물론 이래저래 버티느라 너덜너덜해진 몸이 온갖 방법으로 태클을 걸지만 그것도 약이면 약으로 잠이면 잠으로 다스리면 된다. 이또한 신난다.
시간이 허락하면 하려고 했던 일들은 많지만 지금은 그저 뒹굴거린다. 아침은 아침으로 저녁은 저녁으로. 그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뒹굴거리다 집안에 온기가 필요하다 싶으면 장을 보고 음식을 한다.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과 맛있게 먹는 내가 있어 이또한 신난다.
지난 월요일쯤 함께 공부하는 사람이 드라마를 보라고 그러면 뒹굴거리는 일이 훨씬 재미있을 거라며 드라마 한 편을 추천했다. 이미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라서 흐름을 따라가려고 다운을 받아서 보기 시작했다. 소녀의 웃는 모습이 예뻐서 아무 생각없이 보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웃는 모습에 집착하는 사람이구나 싶다. 내가 좋아했던 모든 소녀와 소년은 웃는 모습이 예뻤다. 그들은 내게 맑은 미간과 작아진 눈매 그리고 주름진 콧등과 하얀 치아로 삶의 에너지를 단 몇 초만에 전달했다. 어떤 풍광보다 어떤 분위기보다 나는 그들의 웃는 얼굴이 좋았다. 지금도 무언가 기억하고 싶을 때는 그들의 웃는 얼굴을 기억해낸다. 그것만으로도 신나고 가끔은 격하게 살고 싶어진다. 그게 얼마나 예쁜지.
여튼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웃는 모습이 예쁘다. 처음에는 그러면 된거지 싶었다. 그런데 드라마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뭘까 궁금해졌다. 혹은 드라마 곳곳에 흩어져있는 작가의 기억이라면 기억이고, 욕망이라면 욕망이고, 의지라면 의지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인지? 저 쨍한 미소를 지닌 소녀를 데리고 와서. 하늘 아래 새 것이 뭐 있겠나 싶으니 설정을 가지고 뭐라 할 생각은 없으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좀 신선해도 되는 것 아니겠는지요.
작가님, 상상하는 것만으로 따지만 제 유치함을 당신은 이길 수 없습니다. 단언컨데 제가 이깁니다. 뭐 개인적으로 만난 적 없고 비교한 적 없으니 이것도 제 유치한 승부욕이라 하면 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여튼 그렇지만 그 유치함을 혼자 고이고이 모셔두는 것과 세상에 풀어놓는 것은 다릅니다. 이 유치한 상상도 생물이라서 의도와 다르게 자라고 번성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좀 수위를 조절하실 생각은 없으신지.
아니면 정녕 중력보다 더 큰 힘으로 끌어당기는 사랑에 목숨마저 기꺼이 내놓을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혹은 실로 그런 사랑이 있다고 믿거나 그런 사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염원한다면, PPL이라도 조금 줄여주실 수는 없으신지. 뭐 저의 재미를 위해 작가님에게 너무 많은 걸 주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요리사에게 레시피를 바꾸라는 건 어딘지 건방진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입맛에 안맞으면 안먹으면 그만인 것을. 무례를 용서하시길. 드라마 이야기는 여기까지.
여튼 다시 돌아와
웃는 모습이 예쁜 내 소녀와 소년들은 제법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내게 눈부시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어제도 살았고 오늘도 산다. 그러니 작가의 말을 빌려오면 그들 모두가 내게 신(神)인지도. 그러니 덕분에 나는 신들의 세상에 살고 있고. 그것도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