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낙서와 형광펜 자국이 수두룩하다. 도서관에 가서 대출이력을 요청했다.  대출자를 확인하고 하나하나 연락을 해서, 이런 빌어먹을 짓을 저지른 사람을 찾아야 이 모든 분노가 가라앉을 것 같았다. 만나서 도서관에 비치된 책이 공공재와 같은 성격임을 모르고 했다면 일단 알려주고 망신을 줄 생각이었고, 알고도 그랬다면 한 대 후려칠 생각이었다. 이건 요즘 시절과도 맞물린 분풀이인지도 모르겠다.

 

도서관 담당자는 이력을 알려줄 수 없다며 난감해했다. 난감할 이유가 없다. 원칙이 그렇다면 내가 포기하면 그만. 도서를 반납하기 전 연필로된 낙서와 지저분한 선을 지웠다. 그래도 그 망할놈의 인간이 책장에 쏟아부은 힘의 흔적과 역한 형광펜 흔적은 그대로 남았다. 도통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말은 떠올리기도 싫었다.

 

공공의 것과 사적인 것의 차이를 인식하는게 그리 어려운가. 아니면 알고 또 알고 너무 잘 알지만 알기만 하는가. 아니면  알지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내 것만 내 것이면 그만인 것을 싶은가.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마음껏 욕심껏 흠집을 내고 납기일에 맞춰 반납한 사람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찾지 못했다. 그러니 그 또는 그녀를 한 대 갈기지도 못했고, 힘껏 망신을 주지도 못했고,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쨍한 트라우마를 남겨주지도 못했다.

 

그러나 정신이 지금처럼 혼미하고 매일매일 가슴이 벌렁이는 상태에서 그 또는 그녀를 찾을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이 없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필시 나는 내가 사용한 폭력 때문에 아주 오래 스스로의 심신을 괴롭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나에게 허락한 수치의 범위가 문제가 아니라, 그럴싸한 명분을 두르고 개인적인 응징의 형태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굳이 누군가에게 묻지 않아도 옳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 시험공부하다가 문자를 보낸다며 내 사랑하는 조카가 물었다. 이모, 상식이 뭘까요. 질문의 의도를 모르지 않았지만 모른 척 했다.

 

늦은 저녁 알라딘에서 도착한 택배 상자에는 반가운 시집이 있었다. 허수경 시인의 신간이다. 휘리릭 책장을 넘기다 멈춘 어느 지면의 시를 먼저 읽는다. 내 조카가 조금 더 세월의 내공이 붙었다면 어쩌면 문자의 답으로 이 시의 한 구절을 보냈을 지도 모르겠다. 아쉽지만 여기 대신 짧게 옳긴다.  그리고 오늘 이른 아침 학교 도서관 앞을 지나며 잠시 휘파람을 불었다. 은행나무 잎이 거짓말처럼 떨어졌다. 그리고 오늘 저녁 광장에서도 어쩌면 나는 휘파람을 불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거짓말처럼 은행잎이 떨어질 지도 모른다.

 

휘파람, 이 명랑한 악기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우리에게 날아온 철새들이 발명했다 이 발명품에는 그닥 복잡한 사용법이 없다 다만 꼭 다문 입술로 꽃을 피우는 무화과나 당신 생의 어떤 시간 앞에서 울던 누군가를 생각하면 된다

 

(허수경, 이국의 호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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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0 09: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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