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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칫솔을 잡는 순간 망설이지 않고 치약을 짜서 양치질을 시작한다. 초등학교 등교 이후 반복한 일이다. 이후 머리를 감고 욕실을 나와 물을 마시고 거의 매일 동일한 시간이 소요된다. 동선을 그려보면 보폭이나 움직임의 경로도 일정할 것이다. 별 생각없이 하는 일이지만 생각하고 하는 일보다 월등히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정확한 결말에 이르는 유일한 행동이다. 따라서 내 일상은 거기까지만 안전하고 완벽하다. 그렇기에 내 기억 중 나도 믿고 남도 믿고 심지어 하느님도 믿는다고 인정해 줄 대목은 '아침의 양치질과 머리 감기 그리고 물 마시기'까지가 전부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어떤, 밀도가 높은 것처럼 보이는 기억은 '아침의 양치질과 머리 감기 그리고 물 마시기'를 의심하지 않듯이 의심없이 믿고 때때로 반복 재생한다. 공백이 많지 않아서, 노화의 심각한 과정을 밟고 있지 않다는 것만으로 나는 자주 격하게 그것들을 신뢰하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참 편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이것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꾸며내는 것.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런 문장을 만나는 일은 유쾌하지 않다. 이유는 하나. 뭔가 들킨 것 같고 들킨 건 늘 창피할 일 밖에 없을 것 같고 더 나아가 그런다고 내가 앞으로 변할 가능성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무능과 뻔뻔함에 스스로 놀라 아주 잠시 참회의 순간을 만들기도 하지만 대체로 이 무능과 뻔뻔함은 관성의 법칙을 유지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 쭉 지나온 내 인생을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칠 것이다. 심지어 나와 관계한 타인의 과거까지 손을 볼 것이다. 뻔하다. 특별한 인생이 아니었기에, 크게 다칠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견고한 믿음이 있기에, 나는 살기 위해서라도 이 짓을 계속 할 것이다. 소용돌이 치는 무엇을 본다 하더라도, 혹여 내게 있어 베로니카를 만난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뻔뻔한 다짐을 함에도, 알락 릭맨이 주연했던 <시와 점심(The Song of Lunch)>이 떠오르는 이유는 뭔지. 어딘지 찌질한 수다스러움 뒤에 묘하게 버티고 있는 진실. 우디 알렌의 농담이 종종 쓸쓸했던 이유.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농담도 참. 다들 너무들 하시는구려. 그나저나 이제 어쩌나. 농담도 한 번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