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 토했으니 거의 이틀을 토한 것 같다. 생각이 생각을 넘고 마음이 마음을 떠나려는 날에는 그렇게 몸이 곡(哭)을 한다. 뭐 하나 남기지 않겠노라고. 말간 몸과 마음으로 태어나겠노라고 간신히 넘긴 물 한 모금도 다 쏟아내버린다. 병원에 갈 이유가 없다. 몸이 운다고 말하면 어떤 의사가 온전히 바라보겠는가. 그저 이 모든 과정이 언제쯤 끝날 것인지 경험으로 알기에 화장실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그저 누워있는다. 눈을 감고. 제발, 잠을 청하며.

 

그리고 지금 택배가 왔다. 초인종이 울리는데 일어날 수가 없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내 이름을 부른다. 정녕 그 이름이 듣기 싫어 벌떡 일어난다. 현관문을 연다. 책이다. 상자를 열고 박주택의 시집만을 꺼낸다. 그리고 시인의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라는 시를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찾아 꾹꾹 눌러가며 읽는다. 그렇게라도 허기를 달래자. 시가 통째로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간다. 달다.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

 

박주택

 

그 무렵 잠에서 나 배웠네

기적이 일어나기에는 너무 게을렀고 복록을 찾기엔

너무 함부로 살았다는 것을, 잠의 해안에 배 한 척

슬그머니 풀려나 때때로 부두를 드나들 때에

쓸쓸한 노래들이 한적하게 귀를 적시기도 했었지만

내게 病은 높은 것 때문이 아니라 언제나 낮은 것 때문이

었다네

유리창에 나무 그림자가 물들고 노을이 쓰르라미 소리로

삶을 열고자 할 때 물이 붙잡혀 있는 것을 보네

새들이 지저귀어 나무 전체가 소리를 내고

덮거나 씻어내려 하는 것들이 못 본 척 지나갈 때

어느 한 고개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하네

나 다시 잠에 드네, 잠의 벌판에는 말이 있고

나는 말의 등에 올라타 쏜살같이 초원을 달리네

전율을 가르며 갈기털이 다 빠져나가도록

폐와 팔다리가 모두 떨어져나가

마침내 말도 없고 나도 없어져 정적만 남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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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2-03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 낮잠을 2시간, 저녁잠을 2시간 잤어요. 생각이 생각을 넘지 못하고 마음이 마음을 동여매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굿바이님의 글을 보니 어느 정도 제 상태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태그에 깊이 공감해요, 가오는 다아 뻥!

ps. 내일 도서관에서 굿바이님의 서재에 출연한 책들을 섭외해올 생각이랍니다 :)

굿바이 2012-02-03 21:28   좋아요 0 | URL
그렇죠 가오는 다 뻥입니다!!!^^

음...저와 반대의 상황이지만 어떤 상황인지 짐작은 합니다.
뭐든 빠르게 빠르게 지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래요.

그나저나 어떤 책을 업어 오실지 궁금해요. 재미있어야 할텐데 말이죠^^

흰그늘 2012-02-03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해내도, 토해내어져도 자취를 감출 뿐 남는것들은 남아 불현듯 영혼에 불면의 몸살을 안겨다 주기도 하던데, 저는..

그럴때면 시편 4편 8절의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말씀을 허기를 달래듯 잠잠히 읊조리며 잠을 청하고 했던 날들이 그냥 굿바이님의 글을 읽고 나니 떠오르네요..^^

잘지내시죠?
매번..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글'들 많이 읽게해주셔서 고마워하고 있어요 (지금은 아주 엷게 웃고 있지요..)

굿바이 2012-02-08 16:48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죠?
날이 차서 안부를 묻는 일도 조심스럽습니다.

매번 좋은 말씀 남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해요.
전생에 제가 뭘 잘했을까요?^^

꽃도둑 2012-02-06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구 많이 아프셨구나...
근데,,,죄송하게도 글 읽다가 웃었어요...
아파도 할 건 하는구나...이러면서,,ㅋㅋ
저는 아프면 만사 귀찮아서 암것도 안하는 편이거든요.
굿바이님, 이제 아프지마요~~^^

굿바이 2012-02-08 16:4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역시나!!!!!

이제 괜찮습니다. 꽃도둑님도 잘 지내시죠?

2012-02-07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02-07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바이님은 아프다는데 웃어서 미안합니다. 위의 꽃도둑님의 글이 하도 웃겨서... 그만...빵 터졌어요.

"근데,,,죄송하게도 글 읽다가 웃었어요...아파도 할 건 하는구나...이러면서,,ㅋㅋ" - 이 글이 저를 웃겼어요. 굿바이님이 웃긴 것이기도 하고요. 우린 원리 아파도 살 책은 사고, 읽을 책은 읽죠. 그런데 그걸 글로 보면 웃음을 참지 못하네요.

굿바이님, 다 나으신거죠? 그렇죠? 다 나았다고 새 글 올려 주셔야지요. ㅋ 기다릴게요. 또 방문할 겁니다. ㅋ

굿바이 2012-02-08 16:51   좋아요 0 | URL
저도 빵!!! 터졌어요.
생각하니 저도 참....아마 덜 아팠던 모양입니다^^

봄이 올 모양입니다. 겨울이 난동을 부리는 것으로 보아선 말이죠.
잘 지내시죠? 무조건 버텨서 모두 신나는 봄을 맞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