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는 뒤쪽을 바라보는 것이 도움이 되네"
멕시코 동남부 치아파스에서 전설처럼 존재했던 안토니오 할아버지의 말이 꼭 무슨 영매의 목소리처럼 들려 허겁지겁 책을 읽어 나간다. 저 지구 반대편에서 스키마스크를 한 혁명군 마르코스의 절박함에 비하면 어디 들러붙은 껌도 안되는 마음이지만 여튼 "거기에 길이 있습니까?"라는 물음이 터져 나오는 속도는 마르코스도 나도 비슷할 듯 싶었다. 절박함에 크고 작음이 있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길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네. 전에 자기가 어디에 있었는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기 위해서라네." 또다시 안토니오 할아버지의 말은 내게 질문을 갖게한다. 마르코스가 물어보았던 것과 똑같은 질문. "어떻게요?"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면서 자네는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지. 그렇게 자네는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네. 길을 잘못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네. 뒤를 돌아보면서 자네는 또한 '아, 내가 원하는 것은 돌아가는 것이군'하고 깨닫게 된다네. 문제는 자네가 있지도 않은 길을 찾기 시작한 것이네. 그것은 만들었어야 했네."
길을 잘못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 것, 그리고 다시는 자주 뒤를 돌아보지 않을 길을 만드는 것, 지구 반대편에서 시작될 혁명의 시작은 이것이다. 늘 그렇지만 창피한 것도 잠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