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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통신 1931-1935 - 젊은 지성을 깨우는 짧은 지혜의 편지들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11년 4월
평점 :
"우리의 사고와 감정 속에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개성은 그 핵심이 너무 희미하고 눈에 보이지 않기에 완벽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 대부분은 외부 세계에서 자기 내면 존재의 반영물을 보고 싶어 한다.......하지만 그들보다 수줍고 소심한 자아를 가진 이들-현대 세계에는 이런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도 있다. 그들의 가장 큰 염원은 남들이 자신을 이웃들과 정확히 똑같게 봐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가구에서도 자기만의 취향을 표현하기보다는 정확성을 추구한다."「우리가 가구를 사면서 생각하는 것들Funiture and the Ego」
둘러보니 내 주위에도 외부 세계에서 자기 내면 존재의 반영물을 보고 싶어하거나 정확성을 추구하시는 분들이 넘친다. 일찍 이 문구를 만났더라면 여러 번 유용하게 사용했을 것인데 안타깝고 즐거운 발견이다. <런던통신 1931-1935>는 요즘들어 집어 든 책 중에 그나마 가장 유쾌한 책이었다. 주제도 다양하고, 부러 현학적이지도 않고, 삐딱함을 세련됨이라 착각하지도 않고.
책은 135개의(정확한지 갑자기 의심스럽지만) 칼럼으로 묶여 있다. 칼럼의 내용들은 한 개인의 삶에 개입할 수 있고 판단해야 하는 자질구레한 일들로부터 중요한 문제까지를 가리지 않고 소재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 소재들은 역사적인 사건이나 러셀 개인의 경험, 논리적 분석을 통해 독자들의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낸다. 특히, 칼럼이 쓰여진 시기를 통해 얼핏 짐작할 수 있겠지만 <런던통신 1931-1935>에는 현실정치와 경제 그리고 교육에 관한 칼럼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시대와 공간은 다르지만 지금 집필된 책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글들이다. 예를 들면
한편으로, 민주주의에서 우리의 정치가를 비판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비판하는 것과 같다는 점을 기억하자. 우리의 수준이 곧 정치가의 수준이다. 「우리가 투표를 하는 진짜 이유On Politician」
민주주의의 즐거움은 한마디로 자기보다 높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데 있는 것이지 자기보다 낮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양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민주주의의 위험성The Prospects of Democracy」
오늘날 당신이 어떤 사람과 협력하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사람을 사랑하거나, 두려워하거나, 당신도 약탈품을 나눠 갖고 싶기 때문이다.「비겁해서 좋은 점The Advantage of Cowardice」
러셀이 워낙 출중한 것인지, 인간이란 존재가 영 글러먹은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대한민국 부산 영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쓴 글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시대를 관통하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잠언들이 요즘 참 불편하다. 좋은 말로 시대를 관통한다고 말하지 꼴좋다,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여튼 <런던통신 1931-1935>는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서양철학사>등에 비해 읽기도 쉽고 편파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도 별로 보이지 않아서 러셀의 책을 처음 읽는 분들이라면 무난한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반면 이런 종류의 에세이라면 나는 조지 오웰이 좋아요,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의 내용이 혹은 표현이 조금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가볍다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느낌이다. 80년 전에 쓰여진 글이 지금도 유효한 울림을 주고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이 책의 존재감은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몇 가지 불편한 뉴스를 본 것 때문인지 책을 덮고도 한 대목의 글이 계속 눈에 밟혔다. 그래서 사족처럼 여기 적어둔다.
사실 단지 자신의 의견을 취한다고 해서 지식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식인이란 이러저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한 타당한 논거를 갖고 있더라도 그것을 교조적으로 믿지는 않는 사람이다. 「정통이라는 것은On Orthodox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