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산이 꾸는 꿈속에서, 매미들은 소리 죽여 노래했다. 그때 우리는 그걸 원했어. 그때 우리는 그게 필요했어. 그때 우리는 그걸 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때 우리는 그걸 했어. 그때 우린 그걸 한번 더 했어. 그때 우린 그걸 계속했어. 그리고 우리는 그게 몹시, '좋았어.' " (352쪽) 글을 읽다 김애란작가의 사진을 여러 번 보았다. 눈썹을 가린 앞머리와 흰 얼굴. 당찬 여름같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작가의 글은 작가의 얼굴을 많이 닮아있었다.
이야기는 긴장할 수 있을 정도의 정적과 집중할 수 있을 정도의 두근거림이 적절히 잘 섞여 있었다. 격식은 갖추되 계산된 빈틈을 염두한 작가의 글은 '한아름'과 '한대수'라는 아들과 아버지를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잘 안착시켰다. 그 간극에서 자신의 호흡과 독자의 호흡을 동시에 고려한 배려와 명민함이 돋보였다. 나 역시 어느 대목에서는 소금물에 넣은 조개가 해감을 하듯 그렇게 마음 한 자락이 슬며시 풀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고 난 지금 묘한 기우가 생겼다. "나는 예전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쓰면 멍청해지는 기분이었어. 그런데 요즘에는 그것도 용기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나는 그걸 가지려고 해."(227쪽)라고 써 버린 작가가 쓸 수 있는 다음 작품은 어떤 것일까 하는. 이렇게 능력있는 작가가 덜컥 대책없이 늙고 죽어가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 다음에는 어떤 주인공을 선택할 수 있을까 하는. 더 나아가 아직은 당찬 여름을 닮은 작가가 이렇게 장애물 없는 단거리를 가볍게 뛰어버리면 다음에는 어떤 코스를 선택할 수 있을까 하는.
"누군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알아보는 기준이 있어요." 어머니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 그건 그 사람이 도망치려 한다는 거예요." (143쪽) 나도 어느 작가에게 마음을 줄 때 그 작가를 사랑하는 기준이 있다. 그건 그 작가가 미련하게 현실을 버티려 한다는 것을 발견할 때다. 무너질 것을 알지만 버티는 것, 실패할 것을 알지만 버티는 것, 통곡하게 될 것을 알지만 버티는 것. 그때 나는 안다. 그것이야말로 작가가 내게 건내는 '희망'의 몸짓이라는 것을. 나는 김애란작가가 더 버틸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가 있음에도 타협을 한 것 같아 서운하다. 그렇지만 그저 내가 감지한 이 기운이 터무니없기를 바란다. 그렇게 어느 순간 공중부양하는 작가들을 너무 많이 본 탓에 지레 놀란 것이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