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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평전 -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
김삼웅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리영희 평전>을 가장 달가워하지 않을 사람을 꼽으라면 박씨 일가도 아닐 것이며, 요란한 기소장을 썼던 D검사도 아닐 것이다. 아마 리영희선생 자신일 것이다. 물론 선생은 이 책을 무척 기다리셨다고 했으나, 이 책이 그저 시대가치를 등에 업고 여전히 그것들을 자양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들먹이는 무슨 호적부쯤이 된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는 이 책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내 억측일 수도 있으나 나는 그리 믿는다.  

그가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토로하며 한 시대의 전면에서 물러섰을 때,

"내가 할 일은 다 했고, 남은 역할은 내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어 주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라고 그의 책 <대화>에서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 하나로도 가슴 벅찼지만, 저항하고 고발하는 지식인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두렵고 서운하였다. 욕심이었고 파렴치한 생각이었지만 이 시절에도 계속 스승은 살아서 작동해주길 바랬다. 강준만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기집권'을 원했다. 그러나, 2010년 겨울 시끄러운 세상속에는 선생의 부음 소식도 끼어 있었다. 마음이 헝크러지는 날들이었다.    

리영희선생에게 있어 '생각한다'라는 말과 대비되는 말은 '우상'이었다. 선생이 평생을 혼자 치열하게 싸워온 것도 그것이었다. 리영희선생이 '우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종교의식에서 쓰이는 숭배되는 어떤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숭배하는 그 무엇에 대해 생각할 수 없음, 말 할 수 없음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이런 것들은 그것이 전통의 이름을 달고 있건, 종교의 이름을 붙이고 있건, 정치적으로 처벌되는 무엇이건, 사회안에서 암묵적으로 동의한 관행이건, 나름의 체제를 만들고 폭력적인 방법(여기서 폭력이란 타인에게 자신의 혹은 사회적 취향을 강요하거나 굴종할 수 밖에 없는 처지를 깨닫게하는 과정까지 포함한다)을 동원해 사유를 금기시한다. 그리 생각하면 우리는 여전히 '우상'과 '헛것'이 판치는 아수라판을 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고병권씨는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전제나 토대에 입각해서 추론하는 일이 아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우상을 파괴한다는 것은 사유의 전제까지 사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라고 정의했다. 나는 여기서 리영희선생의 스승됨을 본다. 그로부터 의식을 각성당한 한 지식인은 스승의 역사적 기억을 자양분으로 이렇게 반듯하게 세상을 향해 그리고 그의 학생들에게 말할 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리영희선생의 힘이라고 믿는다. 단순히 빛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과할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 용기가 되어주는 선생, 세상에 그런 선생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책과 그의 말과 그의 행동을 보며 부르르 떨고, 울고, 악을 쓸 수 있었던 그들이 나는 내심 부럽다. 물론, 그 시절을 내게 살아내라고 했으면 나는 어떠했을지 말하지 않아도 내가 더 잘 안다. 나는 무뇌충으로 살았거나, 술주정뱅이가 되었을 것이다.  

여튼 내가 대학에 다니던 무렵, 우리는 무작정 출처도 정확하지 않은 쎈 것들을 읽었고, 쎈 것들을 말하는 것이 뭔가 더 알고 더 나아간다고 생각했었다. 심지어 왼쪽에 모여있는 사람들끼리 '입으로만 싸우는'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는 했다. 얼굴을 들기 민망한 시절을 산 셈이다. 그리고 그 결과 밑둥없이 부유하는 그래서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는 어른이 되어, 그저 산 목숨 하나를 지키기 위해 생계라는 슬로건 아래에서 눈을 감기 바빴고, 우상에 절하고 침바르는 일을 알아서 하느라 바빴다. 그러면서 입은 여전히 살아 있어 늘 봄이 오지 않음을 투덜거렸다. 어쩌면 아예 봄이 올 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고. 

"다소는 외람되고 조금은 자화자찬격인 평가지만 1980년대에는 나의 글과 책이 거의 무용지물이 되었다. 60~70년대에 나의 글들이 지녔던 일정한 의미와 역할은 거의 지양되고 초극되었다. 얼마나 반가운 발전인가! 이를테면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의 역할을 했다는 셈일까? 그렇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냐!"

리영희선생이 <30년 집필의 회상>에 남긴 글 일부다. 물론 이 글은 6월 항쟁의 과정에서 각성된 민중,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모든 영광을 그들에게 돌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청년들은 그 바탕에 선생의 글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2011년의 우리는 반가운 발전이라는 말을 과연 들을 수 있는 처지에 놓인 것일까. 

최장집교수가 그의 책<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서 밝혔듯이, 한국사회는 질적으로 민주화 이후 더 퇴보한 것 같다. 질적으로 물러섰다라는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지 그것을 통계적으로 들이밀 수는 없지만, 민주화 이전의 사회적 패권이 민주화 이후 또 다른 소수에게 옮겨 갔음을 짐작할 수 있는 예들은 차고 넘친다. 게다가 그들은 훨씬 명민해졌다. 이런 시절 선생의 퇴장은 일견 더 한 꼴을 보지 않으셔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제는 어찌해야 합니까,라는 혼자말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는 양심도 없이 등대가 서있던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면서 또 양심도 없이 모든 유적지가 그러하듯이 나는 그 자리가 그저 관광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다. 역사적 기억으로서, 교훈의 자리로서, 각성의 불빛으로서, 전략을 끌어낼 수 있는 성지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너무 견고하고 높기만 했던 선생, 어디선가 멀고 먼 나라에서 온 것만 같던 선생님, 편히 쉬십시오.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 선생마저도 의심해보자고 달려들 수 있도록 깨어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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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1-03-02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바이 님은 매일 이렇게 각성하고 반성하고 깨어 있고자 애쓰는데, 휴 얼굴이 갑자기 화닥화닥. 저도 어서 정신 차려야겠어요.

굿바이 2011-03-02 15:42   좋아요 0 | URL
어어어엉엉 ㅜㅜ
얼마나 사람이 모질라면 이러겠어요, 맨날 반성문 쓰는 사람 중에 뭘 잘하는 사람이 있을라구요. 그래도 다른 건 몰라도, 몰려다니면서 남들 괴롭히고 조롱하는 사람으로는 안살거예요. :)

잘잘라 2011-03-02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영희 선생님을 생각하는 님의 그 각별한 마음에 끼어들 이유도, 여지도 없지만, 이 말은 꼭 하고 가야겠어요. 참 멋진 리뷰예요!

굿바이 2011-03-04 10:42   좋아요 0 | URL
참 멋진 날이죠! 날은 여전히 찬데, 하늘을 참 맑네요.
부스러기같은 글인데 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흰그늘 2011-03-02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서적이나, 사회과학서적이나, 철학서등을 잘알지도 못하고, 읽어보지고 않은 저로서는
뭐라.. 할말이없이 그저.. 부끄럽고.. 송구스럽습니다.

저는 그냥, 단지.. 노래들이 좋았었어요.. 김지하씨의 '시'를 노래한 '새'가 좋았고,
'타는목마름으로'가 좋았고, '그날이오면'과 '함께가자 우리이길을' 등과 같은 민중가요들을 들으며.. 그시절들을 어렴풋 생각했었어요.. 풋풋했던 90년대에는 조국과 청춘의 '나의소망' 을 듣는데.. 정말. 아프더라구요..

하여..
늘.. 너무 감정적이고, 감상적이지는 않았나 싶어요 어두운 극장에서만 아파하고 울고, 웃고
그랬던것은 아니었나 싶어서요.. 이제라도.. 정신의 빛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음을 알며 보지못했던 많은 부분들을 잘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굿바이 2011-03-04 10:48   좋아요 0 | URL
어쩌면 그냥, 단지 좋아할 수 있는 것들, 애정의 경지라는 것이 있다면 그런 마음이 최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민중가요라는 것을 들으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그 세상속에서 아파하기도 하고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때는 뭘 몰라도 너무 몰랐는데 말이죠.

오늘 유난히 하늘이 좋네요. 흰그늘길님도 맑은 하늘아래서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동우 2011-03-05 0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굿바이님.
내가 그나마 쎈것들을 접한건 겨우 마흔쯤이었습니다.
마흔도 멀었을 굿바이님은 이미 쎈 생각들 그 너머 것들 쎄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시는데..

굿바이 2011-03-07 11:24   좋아요 0 | URL
동우님! 부산의 봄은 어떤까요?
태어난 곳이 그곳이라 그런지, 마음이 허하면 그렇게 부산이 아른거립니다.
고향을 마음에 두는 사람은 좀 모자란 사람이라고 유명하신 분들이 말씀하던데, 모자란 사람이라 그런지 저는 유년기의 기억이 묻혀있는 곳들을 쉽게 떨칠 수가 없네요.

동우님에게 쎈(?)것들은 무엇이었을까요? 감히 가늠도 안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