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조용히 해요,노동자들끼리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거예요_알라딘예술역사청소년MD 

황군이 미안한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여름휴가를 가을에 가도 괜찮니? 이번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출근해야 하는데 미안해서 어쩌니? 

나는 무슨 말을 할까 망설였다. 당신 회사만 일해? 전시야? 일하면 추가근무 수당은 줘? 도대체 결혼이라는 건 왜 했어? 이건 하숙생이야?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해도 그 일은 끝나지가 않아? 사랑이 뭐 이래? 업무환경 개선을 생각해봐야 하는 건 아니야? 당신 회사 CEO는 밥만 축내?....... 수많은 독설이 순간 목구멍에 걸려 숨이 막혔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황군의 눈빛을, 지치고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그의 눈빛을, 그의 가는 손가락을 나는 모른 척 할 수 없다. 그래서, 

쉿,조용히 해요,노동자들끼리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거예요, 라고 말했다. 

누구의 말이었을까? 순간 나도 모르게 뱉은 이 말의 출처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알라딘예술역사MD의 서재에 쓰여 있던 글이다. 

황군의 눈에 조그만 울음이 맺힌다. 나도 잠시 주춤거렸다. 싸구려 화이트 와인에 얼음을 담아 황군과 홀짝였다. 조금이나마 밝아진 황군이 내게 말한다. 

아파트 입구에서 탈피를 하다 떨어진 매미를 다시 나무에 올려줬어. 오늘 밤, 탈피가 무사히 끝나서 그녀석 실컷 울면 좋겠어. 

그녀석일까? 나는 알 수 없지만, 어느 매미와 또 어느 매미가 죽을힘을 다해 운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말들이, 태어났기에 죽어가는 모든 것들의 울음이 여름을 달린다. 

우리끼리는 고맙다는 말을 하는거예요, 고마워요 당신들, 이라고 나는 오늘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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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6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7 0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10-08-06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군, 좋겠다. :)

굿바이 2010-08-07 00:20   좋아요 0 | URL
ㅋㅋㅋ, 노동자들의 연대도 가끔은 깨져요 :D

외국소설/예술MD 2010-08-06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음... 네. 고맙습니다. 꾸벅.

굿바이 2010-08-07 00:2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훔쳐왔는데 나무라지 않으셔서요. 꾸벅꾸벅.

멜라니아 2010-08-06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을에 오신다고 알고 있었어요
가을에 오세요. 제주에.
여름은 너무 더워 손님과 놀지도 못해요
다행이에요 휴가가늦춰져서.

굿바이 2010-08-07 00:22   좋아요 0 | URL
제주의 가을은...상상만으로도 기분좋아요.
멜라니아님이 계시니 제주도 곱겠죠? ^^

2010-08-06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7 0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Tomek 2010-08-07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거에요.
아, 이건 너무 유명한 에릭 시걸의 경구. :)

굿바이 2010-08-07 12:31   좋아요 0 | URL
그 말이 물건너 와서 참 많이 고생하는 것 같아요. 헤헤^^

동우 2010-08-09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쉿,조용히 해요,노동자들끼리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거예요."

주말에 함께 하지 못하여 미안해하는 남편에게서 지치고 안절부절하는 눈빛을 읽을줄 아는 아내짜리는 아름답고, 저와 같은 대사를 읊는 아내짜리는 진짜 아름답습니다.

하하, 나는 굿바이님.
저 멋진 세리프에서 노동자로서의 연대감을 느끼기보다, 밥벌이에 목매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실루엣을 깊은 이해의 눈길로 바라보는 어떤 젊은 아내의 비애같은걸 느끼게 됩니다그려.

굿바이 2010-08-09 12:50   좋아요 0 | URL
속상해요, 동우님.
무기력한 저는 할 수 있는 것도, 해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어요.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위로받기보다 위로하면서 살 수 있으면 싶어요. 그런데 그것도 너무 힘들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