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가 불편하다는 핑계로, 예전에 쓰던 향수를 사러갔더니만 그새 단종되었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단종이라기 보다 더는 수입을 안한다고 한다. 연유를 물었더니 찾는 사람이 없단다. 장사하는 사람의 셈속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한 명이라도 찾는 손님이 있으면 좀 더 팔지 싶다. 여하튼 나는 그 향수와 비슷한 무엇이라도 찾으려 했으나 헛수고였다. 어째서 대한민국 여인들은 똑같은 향수에만 열광하는지, 그래서 다양한 선택을 스스로 물리는지 알 수가 없다. 하기야 그것이 향수에만 국한된 현실이겠는가.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여인들의 볼터치는 모두 물빠진 진달래색이고, 입술은 같은 불량식품을 사먹은 사람들처럼 분홍빛으로 빛나고, 신고 있는 구두도, 한결같은 반바지도, 심지어 머리 모양도 거기서 거기다. 아니 눈도 코도 같은 병원 출신들이 수두룩하다. 이쯤이면 뿌리는 향수쯤이야 뭔 대수겠는가.
나는 결코 튀는 사람이 아니지만, 점원이 인기상품이라고 말하거나, 없어서 못판다거나, 어떤 연애인이 둘렀다거나 하는 제품은 구매하지 않는다. 당연히 몇 초에 하나씩 팔린다거나, 어느 영부인 이름을 따거나 연애인 이름을 붙인 가방이라던가, 너도 나도 열광하는 **폰 등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물론 누가 거저 준다고 하면이야, 아이고 이 은혜 백골난망입니다,하겠지만 여하간 나는 관심이 없다. 실은 그럴 돈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뭐랄까 획일화되는 것이 나는 무섭고, 이렇게 미친듯 소비하는 동시에 발생하는 폐기물이 무섭다. 멸종되는 동식물, 퇴장당하는 문명, 잊혀지는 언어들이 얼마인지를 얼추 셈하다 보면 소름이 돋는다. 또한 과잉 생산이 쓰레기로 그것이 제 3세계로 흘러들어가는 과정 역시 공포다. 그렇게 그렇게 몽땅 하나로 하나로 옮아가다보면 무엇이 남을까 싶다. 그렇게 그렇게 사고 버리다 보면 도대체 어느 땅에 서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양함이 사라지는 사회에 대해 내가 느끼는 두려움이, 남과 다르면 안된다고 느끼는 이들의 두려움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소비능력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해야 하는 사회에서 소비할 수 없는 사람들의 고통은, 쓰레기를 바라보는 내 절망을 앞지를 것이다. 그러니 그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 나도 이탈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고, 소비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끼리끼리 혹은 상위집단의 습속을 무작정 따라하려는 경향이 점점 심해진다는 것을 체감할 때, 나는 우리 사회가 지독한 [왕따]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남과 다른 것이 표적이 되는 사회는, 그래서 차이가 불이익을 주는 사회, 특히 경제력의 차이가 존엄의 차이로까지 확장되는 사회는 공포 사회다. 공포는 몇 몇 기득권자를 제외하고 누구에게도 득될 것이 못된다. 내가 따라하는 무엇이 무엇인지, 왜 빚을 지면서까지 소비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아야 하는 이유가 거기있다.
여름이 한창이니 가을은 곧 올 것이고,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 보이는 케이블 방송과 잡지들은 벌써 올 가을 머스트 해브 아이템을 슬슬 흘린다. 경제적 소비라는 탈을 쓴 SPA브랜드도 곳곳에 상륙해 이 가을을 노리고 있다.
자, 이제 누가, 왜, 그것을 반드시 갖어야 한다고 말하는지, 그것을 반드시 획득했을 때 따라오는 이득은 무엇인지 따져보자. 그리고, 엄청난 양의 물건들이 다시 폐기물로 둔갑하는 과정을 조금만 고민해 보자. 고만고만, 고분고분, 보이지 않는 음흉한 무엇에 휘둘리는 일은 이제 그만~ 다양한 주체들의 들쭉날쭉한 연대, 필요한 것들만을 소비하고 다음 세대에게도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우리들을 올 여름, 나는 꿈꾼다.
실은 볼 것이 많아야 재미있다는 소리를 하려고, 폐기물을 줄여서 쓰레기봉투 값이라도 아끼겠다는 의지를 보이려고, 내가 쓰던 향수를 팔지 않는 수입업자에 대한 항의를 하려고 쉰소리했다. 나도 왕따가 무섭다. 왕따 안당하려고 노력도 한다. 단지 살살(?)한다. 그러니 비겁하고 덜떨어졌다.
[읽어보면 도움이 될 만한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