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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 이론의 쓸모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택광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이론은 근육이다,라는 저자의 정의는 명쾌하다. 알기 쉽고 주저없이 동의할 수 있다. 안팎에서 대량생산하는 [판타지]를 자유롭게 [사유]하고, 특정한 [입장]을 선택하기 위해 이론은 필수조건이다. 그렇다고 자유로운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모든 이론에 [절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절대적인 이론이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듯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모든 이론이 인간에게 자유로운 사유를 가능하게 한 것도 아니었다. 질 나쁜 이론도 도처에 널려있다. 그렇기에, 개인이 납득하고 수용한 이론을 바탕으로 어떤 [선택]을 하고, 특정한 [행동]을 취하는 동안 발생하는 [흠결] 역시 필연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 흠결마저도 사유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이론이다. 따라서, 이론의 쓸모는 인간의 신체에 있어 근육의 쓸모 만큼이나 절대적이고 실용적인 것이다. 아! 현정권에 기생하는 어느 경제연구가의 실용도 실용이겠지만, 그런 의미는 아니다.  

여하간, 내 자신 이론의 쓸모까지 운위할 깜냥은 아니지만, 그래도 책의 제목처럼 이론 가이드라도 어떻게 한 번 읽어보면 이 암울한 시절을 살아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속내였다. 그러니 반가울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물론, 나는 저자가 책의 제목으로 사용한 [인문좌파]라는 정의가 어느 구석 어색했지만, 인문좌파가 누구인지를 설명한 그의 진정에는 동의할 수 있었다. 정치적 우파와 좌파의 이념 모두를 회의하는 독특한 사유의 주체! 듣기만 해도 솔깃해지는 정의가 아닌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찾아보기 힘들다고 없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아니, 앞으로 키워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저자가 책을 통해 소개한 이론가들은, 춘삼월 꽃노래처럼 나를 설레게 하지만, 어설프게 끝나버린 첫사랑 만큼, 아쉽게 내 손을 떠난 이들이었다. 첫 번째 이유는 나의 무지와 게으름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을 소개한 이론서들이 한국의 현실을 잘 버무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낯 두껍지만 이론서들의 겉도는 느낌이 내 무지의 결과만은 아니었다고, 나는 항변하고 싶다. 좀 더 알기 쉬었으면, 좀 더 현실정치와 가까웠으면 이렇게 데면데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학문하는 사람들 안에 갇혀 있는 이론들은 뭐랄까, 답답했고 오기스러워 보였다. 이 또한 나의 무지이지만 말이다. 늦었지만 그래도 올 봄에 만난 이 책은 다행이랄까, 그래 다행이었다. 매번 도망다녔던 [벤야민]과 [데리다]를 다시 찾게 했고, 대학시절 덮어버렸던 [루카치]에게서 내가 놓친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 책에서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그람시]를 다시 찾아야 할 이유들을 발견했다. 내게는 너무 명민해 보여 얄미웠던 [지젝]이나 뜬구름이었던 [라캉]도 어디쯤에서 다시 만나야 하는 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실로 내게는 다행이고, 저자에게는 고마운 마음을 표할 일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얻은 답이 있어,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이 다 좋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제목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 이 책은 가이드 북이다. 나머지는 저자가 안내한 곳에서 궁금증을 느낀, 혹은 괘씸함을 느낀, 혹은 심한 현기증을 느낀 독자의 몫이다. 여행지에서 아무리 살뜰하고 총명한 가이드를 만났다고, 현지의 아름다움을 짧은 순간에 모두 체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간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고, 인내가 필요한 법이다. 사족이지만, 그런 가이드를 만나는 일 역시 현실세계에서는 사실 드물다.

현실로 돌아와, 시절이 하 수상하다. 결여로서 존재한다,는 라캉의 생각에 비명에 가까운 공감을 한다. 없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니라 '없다'라는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결여로서 존재하는 그 무엇이, 데리다가 언급한 유령,이 어떻게 현실에서 작동하는지, 나는 소름끼치게 그 장면들을 보고 있다. 지젝이 언급한 실제적 실재, 상징적 실재, 상상적 실재까지도 목도하고 있다. 이 무시무시한 코미디 앞에서 누군가를 향해 욕을 퍼붓기 이전에 내 머리를 바람벽에 찧고 싶은 심정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정치적일 수 밖에 없는데,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최소한의 상식이라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이라는 사실 앞에서 모르쇠로 일관하고, 그저 혼자만 깨끗한 척 하느라, 정치는, 권력은, 속물적인 것이라고, 눈 감고 귀 막아버린 덜떨어진 청춘을 어찌하면 좋을 지 모르겠다. 내가 힘없게 부르짖었던 [정의]도 힘을 가져야만 지켜낼 수 있는 것임을 이 험난한 시절에서야 알았으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이 미안함과 이 참담함을 조금이라도 씻기 위해, 나는 6월 2일 조용히 힘을 행사할 예정이다. 너무 작아 힘이라고 말하기도 무색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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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0-05-27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여로서 존재한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말이기도 합니다. 없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마저 주장할 수 없는 상태로 내몰려지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는 결여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더 서글픈지도 모르겠습니다.

굿바이 2010-05-2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int236님의 말씀처럼 부재하지만 존재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것이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무덤에서 불러내서라도 뭘 어떻게 해야 하는 마음들이 참 안타깝습니다. 여하튼 지금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똑바로 바라보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멜라니아 2010-05-28 0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풀지 못하는 3차 방정식 같았던 이름들, 그의 이론들
멀찌감치 두고 언제 내 머리가 깨지면 다시 들여다 보리라던 그 이름들
그들의 저서들을 구분없이 쌓아두었으나, 아직도 제 머리는 안 꺠지고
더 굳어 버리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 이 즈음,
굿바이님의 독후감은 살짝 책읽기와 삶읽기에 대하여 긴장을 만들고 있어요.

정치와 정의는 전혀 다른 정씨일가, 라고 제주도 도지사 선거판은
완전 개판도 이런개판이... 절망하면서, 어떤 사람을 당선시켜선 안 되니까
머리를 짜본다는 게 찍어줄 사람이 엉뚱한 사람이 되고 있는 이 상황을
저는 뭐라고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으니
이론이 부족한 소치인가. 그런 생각도 짐짓 듭니다
세상을 바로보는 토대가 없는듯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깜깜한 머리를 탓하다가.

굿바이 2010-05-28 16:29   좋아요 0 | URL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제도화된 권력이 필요하고, 그것이 실은 정치인데, 현실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일이 더 많죠. 갑갑한 일이죠.
서울은 서울시장 선거도 그렇지만, 교육감 선거도 답답합니다. 물론, [절대악]도 [절대선]도 존재하지 않지만, 제발 낙선되었으면 하는 후보들이 쉽게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을 보면, 하루종일 뒷목이 뻐근합니다.

멜라니아님이 세상을 바로보는 토대가 없다니요? 그건 말 안돼요. 참담한 마음에 하시는 말씀이라 생각하겠습니다. 결과야 모르지만, 최소한의 선을 위한 한 표 행사하시리라 믿습니다.

멜라 2010-05-28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고, 독후감 마감 임박 ㅋㅋㅋ

굿바이 2010-05-28 16:40   좋아요 0 | URL
넵^^

Seong 2010-06-20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고에 숨죽이고 있던 책을 다시 집어 들게 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읽기에는 녹록치 않았지만요. 하루에 한 챕터 이상 복용하면 부작용이 발생하는 책이랄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굿바이 2010-06-21 23:35   좋아요 0 | URL
어떤 부작용이셨어요? 저는 멀미...ㅋㅋㅋ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