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은 친구 생일날이었다. 며칠 전에 사고를 당해 이런 저런 일들 수습하느라 그 날은 생일 축하 메시지만 보내고 토요일 저녁에 만나 밥을 먹었다. 그리고 외국 갔다 올 때 사왔던 립스틱 케이스를 포장해서 생일축하 편지와 함께 건네 주었다. 늘 하던대로 의례적인 축하였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돌아와 잠자리 누워 읽은 짧은 글 한 편이 ‘선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신세대 철학교수로 불리는 이주향씨가 쓴 글이었다. 두고두고 읽어도 좋을 만한 글이어서 전문을 그대로 싣는다


  선물은 관계의 척도이면서 선물하는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꽃을 주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소고기를 선물하느 남자도 있고, 선물이 거추장스럽다고 아무 것도 선물하지 않지만 관계 자체가 선물이 되는 아름다운 인연도 있다. 재 자체가 선물일수록 굳이 선물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선물로서 그 사람의 향기가 퍼질 때 ‘이게 사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동생과 결혼한 지 8년된 올케를 볼 때면 그런 생각이 더 자주 든다.

  “옛날에는 선물을 줄 때 뭔가 남길 수 있는 것, 받는 사람이 오래 간직할 수 있는 걸 찾았어요. 이제는 한 끼의 식사, 따뜻한 눈길이 있는 차 한잔의 정담처럼, 그렇게 흘러가는 게 좋아요.”

  올케는 토요일 저녁 국수나 삶아 먹자며 식구들을 초대했다. 메뉴는 잔치 국수였다. 멸치. 다시마와 간장으로 시원하고 구수하게 우려낸 국물 위에 송송 썬 묵은 김치와 김가루를 얹은 잔치국수는 따뜻하고도 소중했다. 모처럼 모인 가족들은 넉넉한 잔치국수만큼이나 기분 좋은 인심에 기분 좋게 풀어져 달큰하면서도 흐뭇한 시간을 보냈다.

  어린 조카들은 어린 조카들대로 놀고,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면서 훈훈했다. 식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들에게 올케는 하나씩 가져가라며 뭔가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오늘 먹은 국수였다.

  “이 소면이 너무 맛있어서 많이 샀어요. 가끔씩 끓여 드세요.”

  초대를 받을 때만 해도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 잔치국수는 올케의 생일 국수였다.

  “생일날 많은 사람과 국수를 나누어 먹으면 장수한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맛있게 드셔 주면 돼요.”

  이렇게 되면 우리는 또 얼마나 미안한가. 그렇지만 우리를 미안하게 한 올케가 얄밉다든가 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올케는 편안해보였다. 믿음직스럽기까지 했다. 존재 자체가 선물인데 뭐!


  존재 자체가 선물인 인연, 이 얼마나 멋진 관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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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지난 주 토요일 삼천포 사는 형부 병문안을 가는 길에 광양과 하동을 들렀다. 그런데 광양 매화 마을을 둘러보고 하동 최참판댁을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

 

  하동읍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길을 놓쳐 하동에서 삼천포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타고 오다가 급커브길에서 사고를 당한 것이다. 급커브를 돌때 차가 맞은편으로 날았다. 재빨리 핸들을 꺾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차가 나는 찰라 같이 짧은 순간 ‘아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차는 단단한 방호벽을 들이박고 그 자리에 멈췄다. 옆에 앉은 어머니를 보니....

 

  일요일 사고 현장과 부서진 차를 본 형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만하기 다행이라고. 누군가가 도운 것 같다고. 나도 정신이 들었을 때 사고 현장에서 우리 모녀를 도와주신 고마운 분들과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생을 선택하게 해 주신 누군가에게 한없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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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 :  클린트 이스트우드(프랭키 던), 힐러리 스웽크(매기 피츠제랄드)

        모간 프리먼(에디 스크랩-아이언 듀프리스)  


뜻하지 않게 얻은 보석 같은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보고


  풀 한포기 자랄 것 같지 않는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서 한없이 평온한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고 의아스러웠던 적이 있다. 그런데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는 영화를 보니 알겠다. 막다른 골목의 토양과 바람은 뜻밖에 희망이 자라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허름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보물을 얻는다’는 뜻이라던가. 프랭키, 매기, 스크랩 같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을 만난 것 만으로도 내게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뜻하지 않게 얻은 보석 같은 영화다.


  대중 문학론을 강의하시는 교수님께서 이 영화가 대중적인 인기를 끈 까닭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는데 스토리는 대중적인 인기를 끌만한 것은 아니었다. 프랭키가 복서가 되고 싶다고 찾아온 매기를 나이 많다고 거절했다가 그녀의 피나는 노력을 가상히 여겨 트레이너가 되기로 한 것, 프랭키의 도움으로 복서로서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며 승승장구 하던 매기가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게 되는 것은 뻔한 이야기다. 매기 같이 지지리 복도 없어 보이던 인물이 피나는 노력 끝에 승승장구 하는 이야기는 일상성에의 동조라는 대중 문화의 속성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이 영화가 대중들의 인기를 끈 것은 클린트 이스트 우드 ,모건 프리먼 같은 명배우들의 기막힌 연기와 영화 속에 프랭키, 스크랩, 매기 같은 인간적인 사람들이 등장함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에 따뜻한 불씨는 지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인간적인’ 것도 대중문학의 속성이었지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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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 날씨가 이상하다

아이들 표현을 빌자면 헷갈린다

어느 날은 바람이 살랑거리다가

어느 날은 바람이 귓볼을 후려치듯 불다가

어느 날은 눈이 우왕좌왕 내리다가.


그런데 올 봄 날씨와 딱 어울리는 시 한편을 발견했다

이 이상한 날씨를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었는데


  봄이 오락가락 하는 계절

                              -조병화


   우수절을 넘은 계절은

  공연히 봄을 미리 당겨놓고

  다시 오므렸다가, 다시 확 풀다가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한다


  생각해보면 긴 겨울이 아니었던가

  어떻게 이 무섭던 겨울 참아냈던가

  참으로 이 몸으로 끔찍한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오는 봄이

  그리 쉽사리 기운을 차리겠는가, 하는

  혼자 생각에 멀리 창을 내다보는 곳에

  버드나무 가지가지가 흔들려 있고

  흔들리는 가지가지에

  푸스레한 생기가 어리고 있다


  아, 봄은 어김없이 머지 않아 쉬 오겠지만

  이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지나가며, 다시 겨울이 오면

  나는 이 몸으로 어찌 견디리


  창 밖에선 맥이 없어진 눈이 좌왕우왕하며

  내렸다간 금세 자취를 감추고

  멀리 봄냄새 나는 바람이 불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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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일. 아침부터 워드 칠 것을 잔뜩 쌓아놓고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 데 어머니께서 마트에 물건 사러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까운 황령산에 올랐다가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기로 했다.

  가는 길에 부산 시장 관사에 들러 둘러보고 황령산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에 보니 차를 입구에 세워놓고 등산복 차림  걸어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다.  가족들과 몇 번 와 본 적은 있지만 주로 중간 쯤 올라와 야경을 구경하며 차를 마시다 내려가는 정도여서 황령산을 낮에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서 속으로 '이 산이  등산복까지지 입고 오를 만큼 높은 산인가' 이러면서 길을 따라 올라갔다. 그런데 황령산 봉수대 밑까지 가는데도 한참을 올라갔다.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길이 계속 닦여져 있었다.

  봉수대 밑에 차를 세워두고 방송국 송전탑 뒤를 지나 봉수대를 올랐다.

    "와!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었네'

    봉수대에 올라보니 광안리 바다가 한 눈에 보인다. 사방을 빙 둘러 보니 영도도 보이고 ,초읍 어린이 대공원도 보이고  저멀리 회동 수원지까지 보인다.부산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앙코르 유적지 프토바켕의 야트마한 야산이 생각이 난다. 헐떡거리며 올라간 언덕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끝없이 이어지던 밀림 사이로 저 멀리 복산이 보이던. 캄보디아에서 처음 산을 보고 얼마나 신기해 했던지. 그런데 부산은 산과 산 사이 사이에 집들이, 건물들이 또아리를 틀고 앉았다. 그래서 툭 튄 동쪽 빼고는 온통 산이다.  참 다른 풍경이다.프놈바켕은 프놈바켕대로 황령산은 황령산 대로 매력적이다. 

  황령산 봉수대는 고려시대부터 사용했던 통신시설로 갑오경장 이후 봉수대가 기능을 상실하기 전까지 부산포를 지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한 번, 적이 나타나면 2번, 근접하면 3번, 범경하면 4번, 접전하면 5번의 봉화를 순차적으로 올렸단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은 놀이터로 등산 오신 분들은 다리 걸치고 다리 운동하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공휴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황령산으로 등산을 왔다. 사방을 둘러보니 길이 여러 갈래겠다. 진구에서 오르는 길, 남구에서 오르는 길, 수영구에서 오르는 길. 황령산은 거친고개라는 뜻이라는 데 온 김에 이 거친 고개 너머 동네로 나들이를 가려다가 봄에 한 번 더 오기로 하고 내려 왔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산을 올라오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남구 지역 사람들의 가벼운 등산지로 이 만한 산은 없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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