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에 있는 문화재를 보러 갔다. 범어사역에서 일행들을 만나 경동아파트 옆길로 난 등산로를 따라 금정산 속살을 밟으며 올라가니 계명암에 닿았다. 계명암에서 바라본 금정산은 드문드문 소나무만 보일뿐 낙엽송들은 본질만 남았다. 참 좋다.. 가식적이지 않아서 .



                 (계명암에서 바라본 범어사 모습)

 청룡암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양산 가산리 마애여래입상을 보러 땀을 뻘뻘 흘리며 금정산을 올라갔다. 오랜만에 등산을 하려니 힘들다. 그런데 기분은 좋다. 그다지 걷기 어려운 길은 아니다. 우리가 헉헉 대며 걷는 것을 본 안내를 자청했던 분이 어림잡아 10분이 아닌 구체적인 느낌을 주는 8분만 가면 된단다. 그 말을 믿고 올라가니 20분을 걸어도 마애불이 안보인다.그래서 장난치기 좋아하는 일행 한 분이 웃으면서 이런다." 이젠 3분만 가면 마애불 볼 수 있지요?" 그러자 허허 웃으면서 "3분은 심하고 8분만 가모 됩니다." 그러자  "3분은 무신? 30분이겠지?" 이러면서 올라가다 장군봉 표지판 있는 곳에서 아래로 내려가니 낙동강 줄기도 보이고 물금이 보인다. 신기하다. 난 금정산 산자락이 오롯이 부산 시내만 걸쳐져 있는 줄 알았다. 내려가는 길이 가파르다. 왼쪽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금정산이 결코 만만은 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듯 하다.



커다란 바위가 우뚝서 있는 곳을 돌아올라가니 아! 사람으로서는 유일하게 부처가 되었다는 '여래'입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네. 금정산 속에 이런 문화재가 있을 줄을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이건 금정산 속에 숨어있는 보물찾기의 시작이었다.



맞은편 비탈길에 서서 "와아! 세상에 금정산 속에 이런 보물이 있는 줄 몰랐네!!"를 연발하며 서 있는데 여래입상의 하바신에 드리워져 있던 그늘이 걷히면서 마애여래입상의 모습이 환하게 드러났다. ‘입상’이라고는 하지만 왼손 모양으로 보야 의자에 앉아 계신것 같 것 같다.그리고 서 계신다고 하기엔 키가 좀 작아보이고, 의자에 앉아 계신다고 하기엔 키가 커 보이고, 볼수록 애매하다. 조각하실 때 잡념이 많았던가 보다. 맞은 편에 서서 보니 마애여래입상 뒤로 낙동강이 보인다. 풍경이 그만이다. 오랜세월 간간이 찾아오는 중생들을 묵묵이 바라보고 계셨을 부처님께 경배를 드리고 금샘으로 향했다

  금샘으로 가는 길에 너무 험하다. 바위를 몇번이나 오르내려야 하는 수준이다. 킹킹대며 겨우겨우 바위를 올라가니 금샘이 보인다. 내가 금샘이라고 알고 있던 북문에서 고담봉으로 오르는 곳에 있는 샘은 무늬만 금샘이었던 모양이다.     ‘오호!  하늘에서 오색 구름을 타고 내려온 물고기 한 마리가 저곳에서 놀다 갔단 말이지.’



 일행이 준비해 온 자료를 보니  ‘범어사’라는 절 이름 유래와 관련해서 동국여지승람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고 한다.

 ‘정산은 동래현의 북쪽 20리에 있다. 금정산 산마루에 세 길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그 둘레는 10여 척이며 깊이는 7촌쯤 된다. 물이 항상 가득 차 있어서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그 빛은 황금색이다.’

  기록을 풀이해 보면 범어사는 '금샘(金井)'에  '하늘 나라에서 내려와 노는 고기(梵魚)'라는 뜻이 된다.계명암에서 본 금정산 자락에 안긴 범어사 모습이 환치되기 시작한다. 재미있다. 그러고 보면 옛날 우리 선조들은 참 상상이 엉뚱하고도 기발했던 것 같다. 그 기발한 상상력을 좀 닮고 싶은데.

 

 북문에서 내려오는 길에 원효암에 들렀다. 세상에! 금정산에 이런 곳이 또 있었네. 숨어있는 보물 2호라고 이름 붙였다. 원효암 암자는 수더분한데도 볼거리가 많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며, 축담 댓돌이며 빛바랜 단청과 나무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세월이 느껴지는 마루하며.



... )


원효암도 아름답지만 그 옆에 고려초 것으로 짐작된다는 3층석탑이랑 부도도참하다.





 부도 옆 가을에 떨어진 졸참나무잎이 수북이 쌓여있는 곳을 방석 삼아 몇몇은 부도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고,나는 팔짱을 끼고  서서 내 방식대로 옛님을 이리저리 살피며 대화를 했다. 어느 스님의 사리탑인지 알려진 바 없어 표지판 조차 서 있지 않지만 받침돌에 활짝 핀 연꽃을 새겨 그 위에 원종형 몸돌을 얹은 멋없는 조선시대 부도보다 낫다. 아랫받침돌에 새겨진 연꽃은 지금 막 벙글고 있는 수줍은 모습이라 균형미는 떨어지지만 볼수록 정이간다.. 
 

원효암에서 범어사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3기의 조선시대 부도가 있고 그 앞에는 주인을 잃은 탑부재들과 10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이 한 기 서 있다. 함께 같던 이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탑을 기준으로 봤을 때 지금 부도가 서 있는 이 자리가 금당자리 였던 것 같다고 했다.부도 주변에 일제시대에 심었다는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있어 얼핏 보기엔 금당자리를 상상하기 쉽지 않지만 그 말을 듣고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니 맞는 말 같다. 부도는 조선조 말에 세운 것이라고 하니 부도를 빼고 나무를 빼고 금당을 그려넣으니 아담한 사찰 하나가 그 자리에 들어선다. 마침 해가 넘어가기 전 마지막 빛을 탑을 향해 비추기 시작한다





  ‘들어찬 나무들로 음산한 부도 주위도 옛날에는 저렇게 햇살을 받으며 부처님이 앉아 계셨을 것이다. 금당 안에 계시던 부처님은 어디 가셨을까?’

   탑의 규모는 작고 아담하다. 서라벌의 석탑들은 규모가 커지만 지방으로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탑의 규모가 작고 섬약해 지기 시작했다는데 그 때 건립된 탑으로 추정된단다.   그리고 부도의 주인이라는 혜월당,혜강당,혜담당은 원효암에 계셨던 스님들인가... 

 

.석탑 앞에서 함께 간 일생들은 한참 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한 의견을 고집하지 않고 자신이 아는 범위내에서 이런저런 의견들이 나오고 그러한 의견을 제시하는 근거가 되는 자료가 나오고 하니 초보자인 내 귀가 즐겁다. 함께 간 이들이 하나 둘 산길을 돌아간다. 마지막으로 석탑 주변을 서성이며 주변을  둘러보니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이런 곳을 명당이라고 하나!

 

범어사로 내려와 전에 보지 못한 3층석탑을 봤다. 훼손이 아주 심하다. 2층 기단은 훼손이 덜 되어 온전하진 않지만 그런대로 형태는 남아 있는데 그 위의 탑신과 옥개석은 아예 없거나 훼손이 심해 탑의 온전한 모습을 그려보기 조차 힘들다.


 


 그동안 금정산 자락에는 범어사 외엔 볼게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금정산 속에 보물이 있었다. 앞으로 금정산 산행, 특히 원효암엔 발길이 잦아질 것 같다.

이 석탑은 원래 지금은 주차장이 된 곳에 있던 연못 가운데 있던 탑이란다. 이 탑이 있는 곳은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지역이라 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휴휴정사 수리를 한다고 담을 허물어놓아 내려오는 길에 눈이 띄였다. 문이 열려있어 들어가 보니 밖에서 보이지 않던 일본식 석물을 탑 앞에 떡 하니 세워놓았다.  범어사는 일주문,대웅전, 3층석탑 등 8개의 국가지정 보물뿐만 아니라 지방문화재를 비롯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사찰의 규모를 늘리는 데 힘을 쏟기 보다 가지고 있는 문화재 관리라도 제대로 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동안 금정산 자락에는 범어사 외엔 볼게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금정산 속에 보물이 있었다. 앞으로 금정산  특히 원효암엔 발길이 잦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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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뜨 비아프의 생애를 다룬 영화를 봤다. 집 가까운 인디 영화 상영관에 상영 시간을 알아보니 예술 영화 쪽에 가까워서 그런지 평일엔 오전에 한번 아주 늦은 저녁에 한번, 하루에 두 번 밖에 상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주 오전은 내내 일이 있어 볼 수가 없었다. 이번주 중에 상영이 끝나면 어쩌나 조바심을 냈는데 마침 토요일 수업할 아이들이 기말고사에, 한자 시험에... 그래서 휴강을 하고  오전에 하는 이 영화를 보러 갔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한참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영화를 볼 때는 모르겠더니 영화가 끝났을 때 굴곡많은 에디뜨 삐아프의 삶이 애잔해서 눈물이 질끔질끔 나오는 바람에.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어머니와 서커스단 곡예사였던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에띠뜨 삐아프. 그녀 또한 어머니처럼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하루하루 되는 대로 살아가던 어느 날, 루이스 레플리의 클럽 무대에 설 기회가 찾아온다. 그로 인해 가수로서 빛을 발하기 시작할 무렵 행운의 여신이 등을 돌린다. 에디뜨를 클럽 무대에 서게 해 준 레플리가 살해된 것이다. 레플리를 살해한 범인과  에디뜨 삐아프가 연루되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더 이상 클럽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된다. 살인자라는 비난을 수없이 받으며 다시 거리에서 되는 대로 살아가고 있을 때 에띠뜨 삐아프의 재능을 눈여겨 본 시인 레이몽 아쏘가 그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부르게 해 준다.

  레이몽 아쏘로 인해 명성도 얻고 돈도 벌지만 그녀는 철들면서 끼고 살았던 술병을 끝내 내려놓지 못했다. 슬픔이 그녀의 가슴 속에 자리 잡고 늘 따라다녔다. 거리를 떠돌며 살 때 동거했던 남자와의 사이에 난 아이의 갑작스런 죽음,진정으로 사랑했던 권투챔피언 막셀의 돌연사, 고난을 함께 했던 친구의 의절. 수많은 사람 속에 휩싸여 살았지만 그녀는 늘 혼자였다. 그녀의 생을 알지 못했을 때도 진정이 느껴지는  그녀의 노래는 마음을 파고드는 뭔가가 있었지만 영화를 보며 들었던 귀에 익은 샹송들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장미빛 인생’ 같은- 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는 그녀의 노래 속에는 외롭고 쓸쓸했던 그녀의 삶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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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였지 아마? 어머니와 통도사 뒷산에 있는 암자들을 보러 갔을 때 극락암을 갔었다. 암자 지붕 뒤로 보이던 영취산과 파란 하늘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고 한참 동안 눈길을 뗄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올 가을 문득 영취산의 가을이 보고 싶었다. 아니 영취산과 신불산 등선에 펼쳐진 억새밭을 보고 싶었다. 아주 오래전 가을 그 곳을 다녀온 이후 가을만 되면 그리운 풍경이므로.그래서 무작정 차를 몰고 통도사로 향했다. 통도사 입구를 지나 서운암을 오르는 길은 단풍이 절정이었다. 가까운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니!





그런데 서운암의 가을을 별로다. 볼게 없다.



 서운암을 반쯤 내려오면 왼쪽으로 사명암과 옥련암, 백련암을 올라가는 표지판이 있다. 표지판을 보고 왼쪽길을 올라 가니 오른쪽으로 사명암 오르는 길이 보인다. 숲이 우거져 대낮인데도 어둡다. 암자 앞에 차를 대고 둘러보니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제법 아름다운 색깔로 물든 단풍 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끌어 들어가보니 바깥에서 느꼈던 것과는 달리 그런대로 볼만하다. 특히 단풍 나무 옆에 있는 월명정 주변이 참 예쁘다.



 


월명정에는 오육십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께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  


 " 젊을 때는 연세드신 어른들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안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이 들어 보니 이제사 그 때 내가 답답해 했던 것들이 왜 그러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되네요."

"나도 그래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 앞에 있으면 말이나 행동을 하기가 참조심스러워요. 그 사람들도 옛날의 나처럼 내 모습을 보면 답답할까봐서."

 나도 나이들어간다는 것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구나 싶은 때가 많은데 그래도 아직 멀었다. 가끔 어머니께서 하시는 행동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으니. 나도 어머니 나이가 되었을 때서야 ‘그때 어머니가 이래서 그런 행동을 했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을려나.’

사명암을 나와 옥련암과 백운암도 들렀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많은 백운암의 가을은 정말 아름답다. 그런데 아쉽게도 카메라 밧데리가 다 돼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가을마다 그리울 것 같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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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암곡동에 있는 무장사지는『삼국유사』기록에 의하면 태종무열왕이 병기(兵器)와 투구(鬪具)를 감춘 곳이라고 한다. 보문 단지 물레방앗길 왼쪽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20분정도 올라가니 울퉁불퉁한 산길이 나온다.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만큼 좁은 길이어서 길 옆 빈밭에 차를 세우고 걸어올라갔다. 가을 답사지로 이만한 곳이 없다고 10월 첫주부터 이곳에 가자고 예약했던 지인이 징검다리 놓인 냇가를 13개 건너야 무장사지 삼층석탑을 볼 수 있는 곳에 다다른다고 했다.



  산길을 가면서 보니 붉은 계열의 단풍은 띄엄띄엄 보이고 주로 갈색이나 노란색 단풍이 든 나무들이 많다.올해 일교차가 심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맑은 날이 많지 않아 그랬는지 단풍이 야단스럽지 않고 수수하게 들었다.



 걷다보니 조정권 시인의 시 ‘같이 살고 싶은 길’이 떠오르는 아름다운 길이다 ‘예쁜 길 눈에 넣고 싶은 길...’. 

 

                             같이 살고 싶은 길 
                                                                       조정권 

 

일년 중 한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혼자 단풍 들다가 지워버린 길. 
  더디 더디 물감 들지만 찬비 떨어져

  때 놓치면 조금 서운한

  예쁜 길  눈에 넣고 싶은 길. 
  그런 길 하나 저녁나절 데리고 살고 싶다.

  가령 늦가을 淸平쯤에서 加平으로 차 몰고 가다

  풀들 스치며 가까스로 들어갈 수 있는

  오른편으로 굽어 숨는 길.

  목적지 없는 마음만이 궁금해서 한번 들어가 보는 
  그냥 무작정길. 
  한 오리쯤 가다보면

  바람만 혼자

  쓸고 있는 길. 
  저녁고요 속으로

  내려와 흘러다니는 낙엽들.

  일년 내내 숨어 있다가 
  일주일에서 한 열흘쯤만

  단풍 들키는 길.

  그런 길들과 이제는 같이 놀아주고 싶다 살아 주고 싶다 
  연애걸고 싶다 킬킬거리고 싶다

  마누라 몰래 데려다가 새살림 채리고 싶다  

 

무장사지 귀부와 이수.
무장사지에는 조각이 아름다운 귀부가 있다. 비신은 없고(비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현재 국립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단다. 소성왕의 부인인 계화부인이 소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미타불을 조성해서 무상자지에 모신 내력이 적혀있다고 한다) 비석의 받치고 있던 두 마리의 거북 머리도 사라지고 없다. 용을 새긴 귀부의 머릿돌도 모습이 온전하게 남아 있지 않다. 그래도 꼼꼼하게 살펴보면 볼거리가 많다. 거북 등 위 비신을 세우는 둘레에 십이지상을 조각한 것도 독특하고 남아 있는 이수의 측면 무늬도(귀면 같기도 하고 용 얼굴 같기도 하다) 이채롭다. 그리고 두 마리의 거북이 엎드린 폼도 다르다. 왼쪽 거북 왼쪽 앞다리를 보니 힘들어서 주저앉은 모습이다. 이 거북 머리가 남아있다면 어떤 표정일까?



  무장사지 삼층석탑. 
  일요일이라 탑 주변이 소란스럽다.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가기를 기다렸다가 탑 주변을 둘러봤다. 기단에 창모양의 안상(眼象)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9세기 이후에 새겨진 것으로 짐작된다는데. 옥개석 양 끝에 구멍이 두 개씩 뚫려 있다. 겨울에 오면 인적도 드물고 나뭇잎을 떨군 주변 나무들 조차 추위에 떨고 있어 안스럽다는데 가을에는 파란 하늘과 단풍 든 주변 나무들과 어우러져 탑이 빛난다. 



 오리온 목장.
 무장사지 삼층석탑을 보고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목장이 나온다. 이 곳은 억새밭이 참 예쁘다. 같이 간 일행이 여기가 OK 목장이라고 해서 ‘주인이 서부극에 나오는 목장이름을 따왔나 보군.’ 했는데 지나가시던 분이 그 말을 듣고 오리온 목장이란다.

경주는 참 매력적인 곳이다. 올 때마다 색다른 얼굴을 보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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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3학년 학생 한명이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 . 이 아이는 얼마전까지 엄마가 직장생활을 하고 계셔서 자기 집과 가까운 학교에 다니질 않고 할머니댁과 가까운 곳에 있는 학교에 다닌다. 그래서 학교와 가까운 곳에 있는 아이들보다 일찍 집을 나서야 한다.

 아빠가 출근하는 길에 아이를 태워다 주려고 아이도 부모도 서두르고 있는데 아이 비명 소리가 들리더란다.부엌에 있던 엄마가 뛰어나가 보니 아니가 오른손을 흔들면서 울고있더란다. 카세트 코드를 빼고 다른 코드를 꽂으려다가 그 코드와 연결된 전선줄 낡은 곳을 잘못 만져 감전된 것이다. 다행히 아이가 전선줄에서 얼른 손을 떼는 바람에 오른손 엄지 손가락 만 화상을 입었다. 그런데 피부가 심하게 손상돼서 결국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단다.한달 넘게 학교도 못가고 .

 

 나는 전선에 감전되었다는 전화만 받고도 가슴이 쿵쾅거려 일이 손에 안잡혔는데 아이 부모는 얼마나 놀랐을까! 전선이 낡기 전에 새 것으로 교체하고 아이들에게도 전기 코드를 뽑고 끼울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소상하게 일러주어야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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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7-11-03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신경에는 문제가 없나 보죠?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