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엠립강 오른쪽에 있는 유적 보기

  희진씨가 태국으로 가기로 한 날이어서 서둘러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 갔다. 7시까지 여행버스 예약한 곳에서 데리러 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올 때 와 달리 우리도 오전 투어만 하고 (룰루오스 유적군 보는 것은 포기하고)태국으로 가기로 해서 서둘렀다.  7시 30분에 희진씨 보내고 우리는 서둘러 쁘라삿 끄라반을 갔다.

쁘라샷 끄라반- 왕의 명령으로 지으진 다른 사원들과는 달리 이 곳은 어느 귀족이 개인적으로 지은 사원이란다. 보통의 사원들은 가운데 성소탑이 있고 빙 둘러 4개의 탑이 있는데 이 곳은 특이하게도 가운데 성소탑이 있고 좌우로 2개씩 탑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이것이 이 사원의 전부다. 톰마논을 먼저 가지 않고 맨 마지막 코스를 먼저 가서 그런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공기도 상쾌하고 좋다. 이틀동안 정신없이 다녔던 것과는 달리 오늘은 조용하게 메모도 하면서 유적은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살펴본다. 성소탑 맨 왼쪽 벽돌로 된 방벽 방 3면에는 여러 가지 부조가 새겨져 있다. 여신이 명상중인 신도들 사이에 서 있고 옆에서 도마뱀이 기어오르고 있는 그림도 있다. 둘러보고 나오려고 하니 하나둘 사람들이 나타난다

  반띠아이 끄대이 와 그 앞에 있는 쓰리쓰랑 .  이 곳은 탑문이 앙코르 돔 남문의 탑문과 비슷하다.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는 부처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사원이 너무 많이 허물어져서 그런가 인자하고 넉넉한 부처의 얼굴이 아니라 가만히 고통을 참고 있는 듯한 얼굴이다. 웬지 가슴이 짠하다. 탑문 안으로 들어가 돌아보니 탑문 밖으로 쓰리쓰랭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니 좌우로 수 많은 방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규모가 아주 큰 사원이었던 모양이다. 1960년 이 곳을 복원하려고 했을 때 원주민들이 수 많은 방들마다 염소를 키우고 있었단다.그래서 더 많이 허물어지지 않았나 싶다. 무희홀을 지나 탑문을 들어서서 내부를 둘러 보니 건물잔해에 아름다운 부조들이 많이 남아있다. 성소로 들어가다 말고 다시 뒤를 돌아보며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주황색 사리를 걸친 스님 두 분이 부처님께 올릴 공양을 들고 들어오고 계신다. 합장을 할 생각은 않고 사진부터 찍는다. 부처님을 모셔놓은 곳은 지나 서쪽 탑문으로 나갔다. 그런데 서쪽 탑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사방에 막대기를 바쳐 놓았는데도 위태롭다. 이 곳도 거대한 열대나무와 유적의 싸움에서 유적이 일방적으로 지고 있다. 아열대 나무들의 뿌리는 얼마나 거대한지 유적과의 공존을 꾀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유적을 내리 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서쪽 탑문 있는 곳에서 보니 성소탑 같이 생긴 탑들이 거의 허물어지긴 했지만 탑이 많다. 세어 보니 9개나 된다. 이 곳은 대체 어떤 용도로 쓰였을까. 내부 벽에 새겨진 부조를 보면 정성을 많이 들여 지은 것 같은데.

  스리스랭- 반띠아이 끄데이 앞에 있는 왕실 전용 수영장이었단다. 다른 저수들은 건기에 물이 말라도 이 곳은 건기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단다.  

  따쁘롬-그 유명한 영화 툼 레이더를 이곳에서 쵤영했다고 해서 더 많이 알려진 그 곳.이 곳을 다녀온 여행자가 말하기를 ‘이 곳처럼 아름다운 폐허가 없다’고 했던가. 이 사원은 효성이 지극했던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브라흐마 신에게 헌납한 사당겸 사원이라고 한다. 수많은 건축물을 남긴 그가 가장 먼저 지은 건물이 이 건물이라는데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여 지었을까? 그런데 사원은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 심하게 훼손이 되었다. 그 훼손의 주범이 열대 나무들이고.

   열대 나무의 그 튼실한 뿌리가 여러 개로 갈라져 그 중 한개는 사원의 탑 가운데를 펀치를 날리듯 쫙 뻗어 뿌리를 내린 곳도 있고, 탑을 밀어 내듯 좌우로 꽉 쪼아 숨통을 조이고 있는 곳도 있다. 그래서 건물이 더 이상 견디지를 못하고 대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열대나무의 생명력에 경외감이 일 정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답다.나무들도 밉지 않고 허물어진 유적들도 흉물스럽지 않다. 담 위에 타고 앉은 거대한 뿌리와 그 밑에서 숨쉬기 조차 힘들 것 같은 담을 보고 있으니 내 숨통을 조이는 것 같은 답답함이 있긴 하지만.

  무희들의 홀을 지나 동쪽 탑문 쪽으로 가니 캄보디아 악기를 팔고 있다. 동생 사 줬으면 딱 좋겠다.우리 나라의 해금 비슷한 악기다. 뱀 가죽과 캄보디아에서 나는 무슨 나무로 만든 것이라는데 나무가 고급스러워 보인다. 니스를 칠해 억지로 윤을 내지도 않았고. 흥정을 해 보니 15달러에서 10달러까지 내려간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가지고 갈 일이 걱정이다. 바로 집에 가면 모를까 며칠을 가지고 다녀야 되는데 도저히 자신이 없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안 샀다. 돌아서 나오는데 그 가격이 8달러까지 내려간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따께오-쉬바신에게 바쳐진 사원들이 그렇듯이 주변에 4개의 탑이 둘러 싸 있고 가운데 성소탑이 있는 힌두교 사원이다. 타프롬을 갔다가 승리의 문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따께오가 있다. 길가에 있어 뚝뚝이에서 내리면 몇 미터 거리에 이 사원이 그대로 보인다. 이 사원을 오르면서 보니 난관이 없다. 그래서 2층을 한바퀴 돌아보려면 심장의 벌렁거림을 다스리며 돌아야 한다. 그리고 단순한 디자인이 그다지 정성드려 지은 사원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다가 올라가는 계단은 또 얼마나 가파른지, 다행히 다른 사원들과는 달리 신의 영역에 다가갈 수록 계단의 각도가 완만해 진다.

  참고 올라간 3층 성소, 부처님을 모셔 놓았다. 아니 모셔놓았다기 보다는 그냥 덩그마니 놓아 두었다. 성소탑을 둘러보고 주변 탑들을 돌아보는데 어느 탑 앞에 서니 냉장고에 들어온 것처럼 시원하다. 서늘한 바람이 끈적거리던 물기를 다 데려간다.

  톰마논-성소탑 좌우로 건물이 길쭉하게 늘어져 늘어서 있는 작고 아담한 사원이다. 쁘라삿 끄라반은 붉은 라테라이트로 지어져 단순하게 줄 늘어서 있어도 참 예뻤다. 그런데 이사원은 비슷비슷한 수많은 사원은 보고 난 뒤라 그런지 사암으로 지어진 자그마한 사원이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기억되는 것이 없다.

  유적지 관람을 다 끝내고 돌아올 때 지뢰 박물관을 들렀다. 나비 정원을 가려다가 아똑이 정확하게 위치를 잘 모르는 것 같고 지도상으로 보아 앙코르 유적지와도 꽤 떨어져 있어 글로벌 사장님과 약속한 시간까지 가기가 힘들 것 같아 가까운 앙코르유적지와 가까운 지뢰 박물관으로 갔다. 이 곳은 아똑도 잘 아는 곳이었다

  지뢰박물관-지도상으로 보니 앙코르왓 앞에 있더니만 앙코르왓을 나와 한참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달려가니 지뢰박물관이 있었다. 일반 가정집 만한 규모의 건물 안에 캄보디아 곳곳에서 수거한 지뢰들을 쓰레기처럼 전시해 놓았다. 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둘러보니 지뢰 모습도 가지가지, 크기도 가지가지다. 지뢰의 위험성을 알리는 포스터도 곳곳에 붙여 놓았다. (이곳에는 지뢰로 인해 다친 아이들이 공동 생활을 하는 곳인지 아니면 재활 훈련을 하는 곳인지 밥을 먹고 함께 모여 생활하고 있는 곳도 보인다.). 서양 아이 하나가 일행들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데 뭔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 보이는 것만 둘러보고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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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앙코르 왓 과 프놈바켕을 보러 가다- 



  앙코르왓. 수르야바르만 2세가 비쉬누 신에게 봉헌한 사원이자 자신이 사후에 묻히기 위해 37년간이나 공을 들인 사원.이것이 이 사원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의 전부였지만 참으로 궁금했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라는 앙코르왓이.



  과연 듣던 대로다. 참으로 대단하다. 1층 갤러리 동서남북에 새겨놓은 부조는 수천 수백만권의 동화다. 그런데 문득 그 시대를 살던 하층 민들이 얼마나 삶이 고단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지금 아름다운 건축물을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고 있지만. 놀란 입은 다문다



  해자 테라스에서 저수지 가운데로 난 진입로를 따라 탑문까지 걸어가는 것도 한참이다. 뒤에 보이는 탑문과 성소탑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사람들도 구경하며 가니 재미있다. 단체로 관광 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이 밀려 다니는 것 같다.



  탑문을 들어서니 빙 두른 담이 골목길 같이 길게 이어져 있다. 웬만큼의 거리면은 한 바퀴 돌아볼 엄두를 내 보겠는데 어림을 해 보니 엄두가 안 난다. 탑문 안으로 들어섰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니 입이 쩍 벌어진다. 탑문 안의 규모는 내 상상을 초월했다. 탐문 입구에서부터 명예의 테라스를 지나 1층 갤러리까지 이어진 진입로가 방금 지나온 길 못지 않게 길게 늘어져 있다. 신전까지는 한참을 가야할 것 같다.



  진입로를 걸어 들어가는 길 양쪽에 있는 장서각 중 왼쪽은 수리중이라 바침목을 여기저기 세워 놓고 사람들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 있는 장서각은 앞에 있는 털실공 같이 생긴 나무 한그루와 풀밭과 어우러져 참 예쁘다. 장서각 난간에 기대 서양 아이 하나가 한가롭게 앉아 책을 보고 있다. 부럽다.



  십자형 나가 테라스를 지나니 앙쪽이 연못, 그런데 물이 거의 말라서 없다. 오른쪽 연못 터에는 소가 풀을 뜯고 있고 왼쪽 연못에는 물이 제법 남아 연꽃이 많이 피어있다.



  명예의 테라스를 지나 1층 갤러리 안으로 들어섰다. 자료를 보니 서쪽에서 오른쪽으로 남쪽, 동쭉, 북쪽 순으로 돌며 부조를 보는 것이 순서라고 해서 자료를 보며, 단체 관광객 가이드의 설명도 흘려 들으며 돌았다. 서쪽 갤러리 오른쪽에 있는 1번 부조를 보는 데만도 시간이 엄청나게 걸린다. 시간이 넉넉하면 앙코르왓을 하루나 이틀 정도 잡고 와서 쉬엄쉬엄 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자료집을 보지 않고 나름대로 상상을 하면서도 보고. 자료집을 보며 견주어 봐도 재미있겠는데. 일단 1번,3번,4번,5번,11번 부조를 중심으로 봤다. 쿠륵세드라전투 장면,수르야바르만 2세의 승전도와 백성들이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 염라대왕의 심판 모습과 천국과 지옥의 모습,.....신들과 악마의 전투모습.. 랑카의 전투장면 등 수백권의 그림 동화를 보고 난 느낌이다. 이 갤러리에는 당시 크메르인들이 지키고 배워야할 덕목을 고스란히 새겨 놓은 그 당시 백성들의 사회규범 교과서 였다는데 글을 모르는 일반 백성들에게 사회 규범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이것 보다 더 좋은 교과서는 없었을 것 같다



  한 바퀴를 돌아 다서 서쪽 갤러리로 나와 중간단을 통해 2층 갤러리로 올라갔다. 힘들다. 다녀온 사람들이 왜 캄보디아를 갈려면 한 달 전부터 워밍업을 해야한다고 했는지 조금씩 알 것 갔다. 무너진 돌더미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2층 갤러리를 돌았다. 2층 갤러리 통로에는 좌불을 안치해 놓았는데 목이 붙어 있는 부처님이 거의 없다. 힌두교 관련 유적들도 파괴도 심하지만 불교 관련 유적들도 훼손이 심하게 되었다.



  3층 성소를 쳐다보니 까막득히 높은 곳에 있다. 3층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기 이를 데 없다. 70도라는데 아래에서 쳐다보니 거의 직각에 가깝다. 그런데다가 계단의 폭은  우리 나라 계단의 반 정도 밖에 안된다. 성소는 인간을 위해 지으진 건물이 아니라 신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기 때문이란다. 그런 곳을 겁도 없이 뻣뻣하게 서서 지그재그로 재미있게 올라가다가 반쯤 올라가서야 인간이 신의 영역에 발을 디뎌놓으려면 자신을 낮추고 올라가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어서 허리를 구부리고 올라갔다.그런데 희진시는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 거의 기어서 올라오고 있다.



  3층의 올라서니 참 시원하다. 속세 사람들의 번뇌가 씻게 나갈 것 갔다. 신들이 이 곳에서 인간세상을 굽어보면 사소한 것들에 목숨 걸고 아귀 다툼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것 같다



  창틀에 기대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 창틀 밖으로 나와 난간에서 성소탑을 올려다 보고 있는 사람, 마당을 바라보며 앉아 쉬고 있는 사람, 3층까지 올라온 사람들은 한가롭다. 희진씨와 나도 창문틀에 앉아 바람을 맞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앙코르왓은 힌두교 사원인데 성소엔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그것도 두 분이나.  앞에 계신 부처님은 누워 계시고 뒤에 모셔진 부처님은 서 계신다. 다른 사원과 2층 갤러리에서 뵌 부처님은 재색 사암으로 조각된 부처님이거나 금박이 입혀진 부처님이었는데 이 곳에 계신 부처님은 라테라이트는 아닌데 붉은 색 빛의 돌에 부처님을 새겼다. 돌이 대리석처럼 반질반질하다. 합장을 하고 나오려는데 갑자기 앞에서 절을 하고 계시던 아주머니 두 분이 성소를 들어가 누워 계신 부처님 등을 만지신다. 급한 김에 한국 말이 튕겨나온다.



  “어머, 아줌마, 뭐하세요? 빨리 나오세요?”



  다행이(?) 한국인은 아니다. 그런데 볼 일 다 보고 나온다. 누가 누워 계신 부처님 등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했나 보다



  성소를 내려오는 길, 희진씨는 다리가 ·후들거려 난간을 붙잡지 않으면 못내려 갈 것 같다고 해서 난간이 있는 남쪽 계단으로 가고, 나랑 은희씨는 다른 쪽 계단으로 훌렁훌렁 내려왔다.



  서쪽 문으로 나와 담을 돌아 탑문 쪽을 나가기 위해 돌아오는 길에 탑문 안 왼쪽에 있는 연못을 지나왔다. 연못에 연꽃이 피어 있어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연못에 앙코르왓의 모습이 비친다. 참 아름답다. 파란 하늘과 연못에 핀 연꽃과 앙코르왓이 어우러져 표현할 수 없을 만틈 황홀한 풍경을 연출한다.한참을 보고 있다가 입구로 나오는데 자꾸 뒤를 돌아봐 진다. 소중한 뭔가를 두고 온 것도 아닌데. 





    (해질 무렵의 앙코르 왓 풍경)



프놈바켕-



곳은 사방의 풍경이 어느 사원 보다 좋았던 곳이다.앙코르왓을 보고 프놈바켕에 일몰을 보러 올라갔다..아똑이 예정 시간 보다 늦게 나온 우리 보고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고 시간이 많이걸려서 잘못하면 일출 보기 힘들것같다고 하더니 정말 앙코르왓 성소 올라가는 것 보다 더 힘들고 가파르다. 앙코르왓에서 기운을 다 뺀 다리는 이제 후들거린다. 그런데 가파른 언덕을 올라오니 또 계단이 헉~  가파른 계단을 5층이나 다시 올라가야 한다. 이 사원은 9세기말 야소바르만 1세가 룰루오스를 버리고 수도를 이 곳 앙코르로 옮기면서 쉬바신에게 이 신전을 지어 바쳤단다. 앙코르지역에서 최초로 건설된 사원이라서 그런지 밖에서 보긴엔 단순해 보인다.그냥 크기가 다른 사각형을 몇 개 포개 논 것 같이, 단만 몇 겹 쌓아 올려 놓은 것 같이 보인다.그런데 자세하게 보니까 좀 특이한게 있다. 5단이나 쌓아서 성소탑을 지으놓은 것도 독특하지만 올라가는 코너 뿐만 아니라 가운데 계단과 코너 사이에 한줄로 늘어선 탑들이 더 있다. 그래서 다른 사원보다 탑이 많다.



  5단 가파른 돌계단을 올랐다. 아래에서 보던 모습과는 달리 사방이 툭 트여 볼만하다.저 멀리 앙코르왓도 밀림 속에 미니어춰처럼 보이고, 우리가 캄보디아 온 첫날 보았던 톤레삽 호수도 여기서는 보인다.그런데 저 멀리 산도 보이네.복산과 꿀렌 산이란다. 캄보디아에서 산은 처음 본다.  야트막한 비탈길 계단산을  올라와 5단 계단을 올라왔으니 높게 올라오긴 왔나 보다.



  그런데 다들 톤레삽 호수쪽으로 떨어지는 해를 볼려고 앉아있다. 톤레삽에서 일몰을 제대로 못봤는데 잘됐다. 한참을 자리에 앉아 바람을 쏘이며 앉아 있으니 시원하고 좋다. 쁘레아 룹에서 일몰을 볼려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보다 이곳에 일몰 보러 온 사람들이 더 많다. 뿌레아 룹에서 일몰을 기다릴 때는 호젓한 기분까지 들었는데 여긴 앉을 자리가 없다. 갑자기 서양 남자 한 사람이 가지고 있던 북 같이 생긴 캄보디아 악기를 둥둥친다.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그 남자에게로 쏠린다. 그러자 어깨를 으쓱하더니 놀라 도망을 친다.연주 좀 하지. 음악(?)들으며 노을 보는 것도 괜찮은데.



  그런데 기다리던 일몰은 시시하다. 어두워 지기 전에 서둘러 내려오는데 오던 길은 너무 복잡해 몇 명의 서양인과 인솔자가 내려 가고 있는 길을 따라 내려 갔다.북쪽으로 내려 오는 계단은 그다지 가파르지는 않다. 단이 허물어져 내려 가는 길을 막아 사람들이 별로 이 길을 이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려 오는 계단 옆으로 사자들이 사열하듯 서 있다. 뒤에서 보니 사자들이 먼 산(복산)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프놈바켕의 일몰)



  내일은 희진씨가 태국으로 가는 날이다. 그래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파티를 열기로 하고 앙코르 마트에서 맥주를 한 캔씩 샀다. 저녁을 먹고 5달러 달라는 것을 깎아 4달러에 발 맛사지를 받았다. 하품을 컥컥하며 맛사지를 하는 폼이 영 성의가 없다. 얼마나 피곤했던지 끊임없이 떠들던 은희씨도 코를 골며 자고 나도 비몽사몽간에 맛사지를 받았다. 그런데 돌아오니 희진씨가 잔다. 은희씨는 내가 샤워하고 나오는 사이 씼지도 않고 쓰러져 잔다. 씻고 자라고 은희씨를 깨웠건만 반응이 없다. 그래서 맥주도 한잔 못하고 희진씨를 그대로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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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띠아이 쓰레이와 샴레를 보러 가다 -

   씨엠립 시내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 유적지를 보는 가는 날, 희진씨랑 은희씨를 4시30분에 깨워 앙코르왓으로 일출을 보러 보내고 나는 감기 기운이 있어 1시간 정도를 더 자고 일어났다. 세수를 하고 밑으로 내려가 어제처럼 오믈렛을 시켰는데 세상에! 하루 사이에 2000리엘 하던 오믈렛이 2500리엘로 올랐다. 황당해서 물어보니 너무 싸다고 게스트 하우스들이 다 의논해서 올린거라나 뭐라나.

반띠아이 쓰레이 가는 길-반티아이 쓰레이 가는 길,구름 사이로 햇살이 조각조각 쏟아져 내린다. 아! 좋다. 먼지가 심하게 날려 이 길을 뚝뚝이 타고 달리면 죽음이라더니 아침에 비가 내렸던지 먼지도 그다지 심하게 날리지는 않는다. 나는 마스크를 하고 은희씨는 수건으로 입을 막고 희진이는 바람을 맞으면 간다. 목에 두르고 있던 손수건을 풀어 희진씨 입을 막아 묶어 줬다. 시골길을 한참을 달려 가다 보니 원주민들의 사는 모습이 보인다. 곤궁하게 살지만 삶에 찌든 모습은 아니다. 집집마다 열대 꽃들이 지천에 피워 있고 바나나 나무와 코코넛을 주렁주렁 매단 코코넛 나무도 있고. 아이들은 지나 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든다. 나도 흔든다.

  반띠아이 쓰레이 - ‘앙코르의 세계로’ 운영자가 이 곳을 홍보석 같은 곳이라고 하더니 마치 살아있는 듯한 입체적인 부조들이며 화려한 상인방 장식, 작고 아담한 건물들, 부조들이 참 섬세하고 예쁘다. 사원을 바로 들어가지 않고 연못 주변을 먼저 빙 돌아보는데 분홍색 연꽃들 사이로 반띠아이 쓰레이 모습이 비친다. 참 예쁘다.

                  (트레블게릴라- 앙코르의 세계로 운영자 사이트에서 퍼온 반띠아이 쓰레이)


  서쪽 탑문으로 들어와 사원을 한바퀴 둘러 본다. 사원 안에 있는 장서각 같은 부속 건물들도 자그맣고 야무지게 지어졌다.시바신에게 이 사원을 봉헌했다는데 누가 이 사원의 부조를 새겼을까? 이렇게 단단한 돌에 어떻게 부조를 새겼길래 지금가지도 이렇듯 생생한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이 부조를 새긴 사람은 천부적 재능을 지닌 조각가였나? 캄보디아 아이들이 주변의 나무들을 이용해 손수 전통 악기나 장남감을 만들어 팔려 나오는 것은 보면 예사 솜씨가 아닌데 이들의 손재주를 물러받아서 그런가.

  자료집을 보니 나오는 길에 연꽃 가득 핀 예쁜 화장실이 있다고 해서 들렀다. 태국에서부터 별로 좋지도 않은 화장실도 2밧내지 5밧 정도를 주고 사용하다보니 공짜라는 말에 더 솔깃해서 들렀다. 가서 보니 소문대로 예쁘다. 연못 가운데 지은 현대식 수상사원 같다

   씨엠립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반띠 아이 샴레를 들렀다

  반띠아이 샴레-이 신전은 수리야바르만 2세가 비쉬누 신에게 바친 사원이란다. 반띠아이 쓰레이 갔다 씨엠립으로 돌아오는 길에 있는데도 반띠아이 쓰레이 만큼 사람들로 북적대지는 않는다. 이 사원의 구조가 앙코르왓의 축소판이라는데 앙코르왓을 안 가봐서 그건 모르겠다( 앙코르왓을 가서 보니 3층 성소에 있는 건물들과 성소탑은 많이 닮았다). 앙코르왓이 섬 위의 사원인데 샴레는 연못에 떠 있는 작은 앙코르라나..그런데 연못 물이 말라 잡초들만 자라고 있다. 서쪽 탑문 쪽 안쪽 해자터에는 맨드라미 목을 쭉 빼고 선명한 색깔로 피어있다. 신기하다. 맨드라미는 순 우리 말인데 그럼 이 나라에서는 뭐라고 하나. 이 사원은 다른 사원들 보다 사암의 회색 빛이 더 짙어 보이는데 블록처럼 끼워 맞춤 돌틈 사이로 덩굴식물들도 자라고 고사리나무 같은 초록빛 풀들이 자라나 참 특이한 풍경을 연출한다. 작은 풀들과 어우러진 빛바랜 사원 모습은 정겹다.

  코너 마다 예쁜 나가 난간이 있어 정말 연못에 물이 찬다면, 그 물에 비친 아름다운 성소탑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면 아무리 어려운 국사(國事)도 원만하게 풀어나갈 수 있었겠다.   그런데 사원을 돌아보니 특이한게 눈에 띈다. 건물과 건물 사이가 해자로 분리된 것도 그렇지만 한 건물에서 다른 건물로 건너갈 때 계단을 내려가서 다시 다른 건물을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그러면 연못에 물이 차 있을 때는 어떻게 했지? 사원 맞은 편에는 너른 테라스가 있고 그 밑으로 용도를 알 수 없는 길게 늘어선 반석이 보인다. 

  샴레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반띠아이 끄대이, 쓰리 쓰랭이 보인다. 내일 일정으로 잡혀 있는 곳이라 휑하니 지나쳐와서 점심을 먹었다. 

                                              (반띠아이 샴레의 아름다운 나가 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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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 여행기(4)-앙코르 돔 밖 둘러보기-

  앙코르 돔을 보고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와 돔 밖 유적지 구경을 나섰다

  쁘레아 칸-앙코르왓이 마주 보이는 도로에서 저수지를 끼고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밀림 속을 한참 달리다 보니 쁘레아 칸이 나왔다. 쁘레아 칸은 자야바르만 7세가 아버지를 기리며 지은 사원이란다. 용도는 불교사원이자 승려들의 학교 였는데 전쟁 중에는 왕궁으로도 쓰였단다. 쁘레아 칸 가는 길은 참 이쁘다. 뚝뚝이에서 내려 쁘레아 칸을 들어가는 길,어디선가 캄보디아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소리가 들린다. 숲 한켠에 서너 명의 사람이 앉아 캄보디아 전통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이 사원은 들어 가는 유해교반 다리가 인상적이다. 바수키(뱀)의 허리를 잡고 열심히 우유바다젓기를 하고 있는 신과 악마들의 행렬을 보면서 탑문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일반인들은 보통 서쪽 탑문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서쪽 탑문 앞을 지키고 있는 수문장들은 목이 다 떨어져 나가고 없다. 자료에 소개된 대로 동쪽 문으로 들어오면서 보려고 사원 외곽을 빙 둘러 동쪽 탑문이 있는 곳으로 갔다. 돌아가면서 보니. 담들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허물어져 있고, 허물어지고 있다.   국왕전용 출입구라는 동쪽 문으로 돌아오니 입구에 제법 넓은 테라스가 있다. 그런데 탑문 담을 괴물 같은 거목이 누르고 있다, 그것도 볼만 해서 관광객은 그 앞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그런데 자연과 유물이 공존하려면 저 나무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를 생각해 보니 좀 난감해 진다


  무희들의 홀(왕실 행사를 할 때 무희들이 춤을 추던 곳이라는데 남은 잔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압살라들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을 지나 중앙성소쪽으로 나오면서 보니 중앙 성소가 가까워 질수록 문이 좁아지고 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큰 사원이다. 성소을 지나 서쪽으로 나오려는데 복구 공사 중이라 막혀 있다. 남문으로 나가면서 보니 꼭대기가 참 예쁜 탑이 하나 보인다. 쌓아올린 바위에 크고 작은 두 개의 링고가 새겨져 있고 그 위에 연꽃이 활짝 피어있는 모습이다. 참 독특하고 이쁘다. 몇 개의 문을 통과해서 한-참을 나가 남문 밖으로 갔는데 나가는 길이 헷갈린다. 다시 중앙 성소쪽으로 와서 북쪽 문으로 향하는데 정말 길다.

 

  니악뽀얀- 뚝뚝이에서 뻘건 향톳길을 제법 걸어들어가니 닉뽀얀이 나왔다.가는길에 기념품 파는 가게의 기념품을 구경도 하고 흥정도 하면서 가는데 재미있다.  닉뽀얀은 인공 연못 속에 뜬 수상 신전이란다. 자료를 보니 물 속에 뜬 한 송이 연꽃 같다는데 우기인데도 비가 안와서 그런지 주변에 풀이 돋아있다. 물이 말라서 걸어서 신전 안에 까지 들어갈 수도 있다. 발라하 밑에 물이 차 있다면 발라하가 막 육지에 다다른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는데 발라하가 육지에 덩거마니 얹혀있어 실감이 안난다. 그래서 상상만 하고 끝.


   잠깐 신전을 돌아보고 연못 주위를 돌며 동서남북의 설치된 수도꼭지를 보러 갔다. 이 곳은 순례자들의 세레터 이기도 하다는데 동서남북에 인간의 두상,말,사자, 코끼리가 부조로 새겨져 있다. 경기도에서 왔다는 분들이 코끼리 코를 만지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해서 우리도 코끼리 코를 만지며 사진을 찍었다

따솜-자야바자르만 7세가 참파족을 격퇴한 기념으로 처음으로 이 사원을 지어 아버지께 바쳤다는데 거의 방치된 듯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입구는 막아 놓아 오른쪽으로 돌아들어 가니 어둡고 침침한 내부와 수리중이라 막대기를 받쳐놓은 입구가 보인다. 외벽을 둘러 보며 동쪽 탑문 입구로 나가니 이곳도 예외 없이 탑문 입구에 거목이 탑문을 위협하고 있다. 한 나무가 갈라져 뿌리를 내린 건지 여러 그루의 나무가 칭칭 감고 있는 건지 잘게 갈라진 수많은 뿌리들이 탑문을 에워싸고 있다. 아열대 지방의 나무들이라 그런가 뿌리가 아주 길다. 바로 앞에 있는 그다지 크지도 않은 나무도 뿌리를 사방으로 뻗치고 있는 데 그 길이가 나무 길이만큼 길어보인다. 따솜은 사원 본 건문과 탑문과의 거리가 꽤 떨어져 있다. 사원에서 동쪽 탑문까지 제법 숲길을 걸어 간다. 나오면서 보니 아똑이 기념품을 팔고 있는 어떤 여자 아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자기 동생이란다. 허물어진 사원 벽을 구경하며 나오고 있는데 유독 눈길을 끄는 부조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표정은 심술궂게 생겼지만 오른 손과 왼손의 포즈가 특이하고 몸매도 섹시하다.그리고 가짜문 양쪽에 수문장처럼 서 있는 압살라 옆에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압살라도 눈에 띈다. 사원을 둘러보는데 정신을 팔면 수많은 부조들은 악세사리처럼 느껴지는데 여긴 사원 안을 자세하게 볼 수 없으니 자그맣고 사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따솜을 갔다가 동메본을 가는 길은 길 양쪽이 평야다. 어릴 적 모내기 할 때 모판에서 쪄낸 모를 모낼 논에 툭툭 던져 놓은 것 같이 논둑 혹은 논 가운데 뭉둑뭉뚝하게 생긴 나무들이 뿌리를 허옇게 드러낸채 군데군데 서 있다. 특이한 풍경이다. 농가들도 물 위에 원두막처럼 집을 지어 살고 있다. 길 옆에 돌보는 이 없이 피어있는 들꽃들도 참 예쁘다. 우리 나라 꽃 같은 수수함은 없어도 화려하고 선명한 빛이 눈부시다.

  동메본-한참을 달려 도착한 동메본, 아똑이 일몰 보려면 5시 30분가지 내려 오란다. 6시 30쯤에 일몰이 예상된다고. 

(해질무렵의 동메본 입구 풍경)

  주변이 커다란 저수지였다는 동메본.  라젠바르만 2세가 부모의 영광을 기리면서 동바라이 한 가운데 수상신전 동메본을 지어 쉬바신에게 바쳤단다. 저수지 였다는 사원 앞 탑문 밖에는(이곳이 배 닿는 선착장이었다는데 상상이 안된다) 아이들이 소를 먹이며 놀고 있었다. 동메본을 오르는 길 한 무리의 아이들이 “원 달러”를 외치며 따라 붙는다. 선착장 사방에 새겼다는 코끼리 상을 보고 사자상을 지나 성소로 올라가 사방을 둘러 보니 밀림 속에 이 사원이 서 있다는 것을 실감하겠다. 끝없는 밀림 속으로 드문드문 폐허가 된 유적이 보인다. 붉은 라테라이트로 지으진 이 건물도 석양 빛을 받으면 참으로 볼만하겠다. 잠시 ‘프놈바켕에서 일몰을 볼 게 아니라 여기서 볼까’갈등하다가 서둘러 내려 오는 데, 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원 달러‘를 외치며 달라 붙는다. 서양 관광객들은 아이들이 놀아주기도 하고 동전을 바꿔 와서 나눠 주기도 한다.서둘러 내려와 쁘레룹으로 갔다

(동메본의 서양 여행자들)


                                                       

쁘레 룹-입구에서 보니 지금까지 봤던 사원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출입계단 양 옆으로 탑이 각각 2개, 3개 서 있다. 오른쪽도 세 개였다는데 소실되었단다. 쁘레 룹은 장례 의식을 치루던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시체나 관을 놓았던 건 같던 돌로 만든 직사각형 구조물을 지나가게 된다.  저녁 무렵이라 웬지 오싹하다.

  3층 성소탑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 보니 벌써 한국 사람들은 석양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다는 서쪽 방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대구에서 왔다는 아가씨들은 계속 만나진다. 편안하게 앉아 수다를 떤다. 수다를 떨다 보니 주변이 어둑어둑 해 진다. 라테라이트로 지으진 붉은 탑들 위로 태양빛이 사그러질 때 순간순간 변하는 건축물의 표정이 한 편의 파노라마를 보는 것 같다는데 에고 수다가 웬수지. 그런데 구름에 가려 놀 빛이 보이질 않는다. 후레쉬도 없고 7시 30분까지 ‘바욘 2’식당에 압살라 공연을 보러 가야 돼서 서둘러 일어나 내려온다.


  아똑에게 7시 30분가지 바욘 2 식당에 가야한다고 했더니 복잡한 시내 도로에서도 이리저리 빠져나가 제 시간 안에 데려다 준다. 글로벌에서 예약을 하면 압살라 공연을 잘 볼 수 있는 자리로 안내 해 준다고 했는데 안내인이 한쪽 끝에 자리를 마련해 준다.

  앉자마자 음료수를 뭐 먹을 거냐고 해서 우리는 수박 주스며 자기 먹고 싶은 주스를 부담없이 시켰다.. 은희씨가 투덜거리다가 안내인에게 압살라 공연 잘 볼 수 있는 데로 자리를 옮겨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압살라 공연이 열리고 있는 코 앞에 자리를 만들어 준다. 공연 보기는 아주 좋았는데 공연을 하는 동안 음식을 먹기가 조금 거북했다. 음식은 맛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 오는 관광객들이 워낙 많은 까닭에 입맛을 맞춘 건지 우리 나라 음식은 아닌데도 참 맛있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며 배불리 먹었다. 은희씨는 처음에 양껏 두 접시를 가져오더니 압살라 공연을 빼 놓지 않고 보면서 먹고 앉아있다. 희진씨랑 나는 왔다갔다 하면서 압살라 공연을 보고. 압살라 공연이 끝나고 먹을 수 있는 것은 골고루 맛을 보고 나오려고 하는데 음료수 값 계산서를 내민다. 돈을 따로 내야 한단다. 10불 안에 포함 된 건줄 알았더니 음료수 값은 따로 내야 한단다. 터치 패이를 했는데 희진씨는 잔돈이 없어 큰돈을 줬더니 희진씨 돈에서 팁을 뗐다.   희진씨 왈 “왜 허락도 없이, 내 돈에서 팁을 떼냐고.”

  내일 앙코르왓 볼려면 피로를 풀어야 할 것 같아 저녁을 먹고 감기는 눈을 치켜 뜨며 낮에 봐둔 맛사지 가게에 갔다. 3달러면 3,600원, 태국 보다 싸긴 한데 맹인이 지압을 하는데도 영 시원찮다. 돈이 아깝다..그래도 아쉬운대로 비몽사몽 헤매며 맛사지를 받고 2000리엘을 팁으로 주었다. 웬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맛사지를 받고 자서 그런가 세상 모르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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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 여행기 (3)-앙코르 돔 둘러보기


     6시 30분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우의와 생수, 관광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겨 1층으로 내려 갔다. 2000리엘을 주고 오믈렛을 아침밥으로 먹었다. 7시 쯤에는 출발을 해야하는데 식사가 늦어져 7시 40분에야 앙코르 유적을 보러 갔다. 유적 관광 첫날인데 비가 많이 온다. 오늘은 사진 찍기는 힘들겠다.


  처음 간곳은 박세이 참크롱. 남문 입구 조금 못 미쳐 왼쪽에 있는 사원이다. 비가 와서 희진씨랑 나는 사원만 한 바퀴 빙 돌고 나와 맞은편에서 바라만 보다가 오고 은희씨는 미끄러운 돌계단을 올라 사원 안에까지 구경하고 나왔다. 몇 발자국 더 가니 드디어 앙코르 돔 남문이 나왔다. 사진 한 장을 찍고 남문으로 들어 갔다. 바욘 사원 앞, 뚝뚝이 기사한테 12시 30분에 코끼리 테라스 앞에서 만나자고 하고 바욘사원으로 갔다



  바욘 사원-멀리서 보니 그냥 비를 맞아 짙은 회색을 띤 삐죽삐죽,뭉글뭉글한 돌덩이들이 서 있는 것 같다 군데군데 무너져 형태도 흩트러져 있고. 앙코르왓을 오긴 전 나는 이 사원을 가장 보고 싶었는데.   먼저 바깥을 한 바퀴 휘 둘러보았다 허물어진 담장들, 연못터에 나뒹굴고 있는 부조를 새긴 돌덩이들, 벽면 가득 새겨진 부조들(대부분이 참족과의 전쟁을 묘사하고 있다)을 나름대로 자료집을 보며 돌아보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서 보니 바이욘의 미소가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경주 남산에 가면 수많은 부처님을 새겨논 바위들을 만날 수 있다. 자연 그대로의 바위에 부처의 모습을 새겨 놓았다. 그런데 바이욘 사원의 부처는  수천 수만의 돌들을 하나하나를 블록놀이 하듯 쌓아 올려 부처님의 얼굴을 새겼다. 사면에 새겨진 부처님 얼굴이 더 없이 온화하다.


  자야바자르만 7세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많은 부처의 얼굴을 돌에 새길 생각을 했을까? 후세 사람들이 이 미소를 보고 일렁이던 마음 자락을 잔잔하게 다독이고 가리라는 생각은 했을까? 출렁거리던 마음이 한없이 차분해 진다.










  바푸온 사원-이곳은 수리 중이라 안에는 들어 갈 수가 없다. 그래서 긴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 바깥에서 수리하고 있는 사원만 한바퀴 둘러 봤다. 이 사원 안 서쪽 벽면에는 열반에 드시는 부처님이 무려 40센티에 달하는 길이로 새겨져 있다는데 아쉽게도 못봤다.언제 앙코르왓을 한 번 더 오게 될려나. 


  피미아나까스-피미아나까스도 많이 허물어졌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3층 성소로 올라갔다. 이곳에서 왕이  뱀 여인과 동침했다는데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12세기 중국에서 파견된 세관원 주달관은 3층 꼭대기가 황금으로 뒤덮여 있다고 기록해 놓았다는데 사원 지붕도 파괴되고 성소는 뼈대만 서있다. 무너질 듯 위태로운 출입문 밖으로 얼굴을 내 밀고 아래를 보니 연못 두개가 보인다. 그 중 한군데는 현지인들이 수영을 하며 놀고 있다. 아마도 왕이 침실에 들기 전 목욕을 했거나 왕실 사람들의 목욕터였던 모양이다.


   ( 왕이 뱀 여인과 동침 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피미아나까스)





 




 




 




 




 




  



 내려와 은희씨를 기다리느라고 의자에 앉았는데 아이들이 수시로 와서 기념품을 사란다. 코끼리 문양이 새겨진 치마, 어깨에 매고 다니는 크고 작은 가방, 캄보디아 피리나 장남감 같은 것들이다. 기다리는 동안 한 아이에게 캄보디아 피리 3개를 1달러를 주고 샀다.아이들과 손짓발짓하며 흥정하는 것도 재미있다. (1달러에 2개 준다는 것을 흥정을 해서 3개에 샀는데 나중에 대구에서 온 아가씨들 이야기들어보니 1달러에 4개에 사겠더란다. 가기 전 캄보디아를 여행 하며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돈을 주는 문제에 대해 말이 많아서 나는 적당한 가격에 기념품을 사주기로 하고 갔었다. 그래서 지나치게 깎지 않고  피리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대나무로 만든 아이들 장난감과 따닥따닥 나무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주 맑고 경쾌한 악기 같은 것도 샀다).


   왕궁 동쪽 탑문을 지나니 문둥왕 테라스다. 탑문을 넘어오며 보니 테라스 뒤편도 많이 훼손되었다


  문둥왕 테라스-문둥왕 테라스는 코끼리 왕 테라스와 연결이 되어 있고 앞은 넓은 잔디밭이다. (테라스밑은 연못이라는데 우기인데도 물이 말라서 잔디밭처럼 보였다.). 문둥이와 테라스는 쭉 뻗은 나가 난간이 참 볼만하다, 그 난간에서 보는 코끼리왕 테라스와 쁘라탓 수오르 쁘랏의 모습도 아름답다. 그런데 그 난간 아래 테라스를 7단으로 쌓아 올려 지으면서 힌두 신화에 나온 신이나 나가, 가루다 같은 부조를 새겨 놓았는데 내려가서 벽을 따라가면서 보니 인물들의 표정이 참 재미있다. 오만가지 인상을 다 쓰며 서 있다. 이 아름다운 테라스를 문둥왕 테라스라고 한 까닭은 문둥왕 조각상의 피부가 발진한 것 같아서 그렇단다.



문둥왕 테라스와 쁘라탓 수오르 쁘랏의 모습


  코끼리 테라스-이 테라스에는 실물 크기의 코끼리가 6마리 서있다. 돌을 블록처럼 쌓아올려 코끼리들 몸을 이어 벽으로 만들고 긴코 끝에 연꽃을 집어 올리는 독특한 모습을 부조로 새겨놓았다. 6마리의 코끼라가 집어 올리는 연꽃 모양이 다 다르다.세 마리는 훼손이 심했는지 코끝과 연꽃이 연결된 부분을 수리해서 생동감은 덜 하지만 세 마리의 코끼리는 코 끝을 말아올리며 연못에서 지금 막 연꽃을 건져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테라스 만들기 위해 샇아 올린 단에는 수백마리의 코끼리 행렬을 새겨 놓았는데 내려가 맞은편 잔디밭에서 보니 수백만 마리의 코끼리가 떼를 지어 어딘론가 가고 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코끼리 테라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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