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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수은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 역시 기독교적 관점으로 서평을 썼음.
동일하거나 비슷한 것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친근해지기 쉽다는 것은 인간관계의 공식이다. 한 인간이 자신과 동질성을 추구하는 다른 인간에게 호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인간이라는 종족이 <유사성>이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설계되었는지를 정확하게 입증한다.
『연금술사』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들을 최근들어 자주 만나고 있다. 아름답고 정제된 언어들로 구성된 코엘료표 잠언을 만나면서 이에 철저히 구속된 내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자신에게 질문했다. 편독하지 않고 나름대로 다양한 독서를 즐겨하는 내가 전작(全作)을 선언할 만큼 코엘료의 작품에 갈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을 얻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질성의 추구라는 것을. 신이라는, 엄밀히 말하자면 '기독교의 신(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이라는 동질성을 말이다.
코엘료의 작품에는 언제나 신에 대한 목마름과 탐구가 담겨있다. 성경 구절이나 카톨릭 교리가 자주 등장한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그의 활자는 매우 많이 신을 조명하며, 매우 깊이 신을 천착한다. 자아, 삶, 죽음, 사랑, 모성 등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우주의 본질적 요소들을 코엘료 자신이 믿고 탐구하는 신을 통해 관통하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신에 대해 일반적으로 인지하며 신뢰하고 있는 신의 부성(父性)적 통념보다는 신의 여성성, 즉 모성(母性)적 면모를 관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으로서의 신, 어머니로서의 신, 자애롭고 보듬어주며 사랑이 풍성한 신의 성품을 코엘료는 농밀하면서 가볍지 않게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코엘료와의 네 번째 만남인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또한 신의 여성적 면모를 탐구하는 코엘료의 의지를 강렬하게 엿볼 수 있다. 코엘료가 생산하는 여성성으로서의 신은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자아의 최선을 찾고자 하는 갈급함의 주체이자 객체로의 소중한 존재감으로 등장한다. 『연금술사』에서는 '길'에서,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는 '삶'과 '죽음'에서 자아의 성찰을 그렸다면,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는 '사랑'과 '기적'이라는 테마로 자아를 탐구하는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필라와 그녀의 남자친구, 둘의 어렸을 적 추억, 재회, 일주일의 시간 등의 소설 속 장치들을 통해 코엘료 특유의 아포리즘은 기적과 사랑에 대한 본질과 속성을 얘기하고 있다.
코엘료는 작가노트에서 '기적'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고 고백한다. 우리 자신이 진정한 경이에 둘러싸여 산다는 사실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며, 기적은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필라의 남자친구는 신에게 받은 신유의 은사를 통해 병든 자를 고치는 기적을 일으킨다. 또한 방언을 통해 신과 대화하는 신앙인들의 모임, 그리고 그런 기이한 모임에서 자신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천사의 언어로 신에게 기도하는 필라의 경험이 일어난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필라의 신앙이 회복되는 것과 남자친구에 대한 사랑이 확인되는 것이 함께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매우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 아름다운 추억을 공유했던 남과 여가 오랜 기간동안 다른 공간에서 살다가 재회하여 서로간의 방향성을 확인하며 사랑을 완성하는 것, 그것 자체가 기적이다. 사랑, 그것은 기적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기적의 의미를 지나친 신비주의로 고착시켜 생각하려는 경향이 많다. 바다가 갈라지고, 산이 옮겨지며, 외계인을 발견하는 등등, 자연 법칙을 초월하는 현상을 기대하면서 기적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적의 문자적 정의에 국한된 외연적이고 비본질적인 접근이다. 하루하루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는 것, 낮과 밤이 정확한 주기로 교차되며, 사계절의 풍성함으로 다양한 자연을 목도하는 것, 신과 교제할 수 있는 것,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것 등등에 이르기까지 기적은 다양한 현현으로 우리의 삶을 채우고 있다. 기적에 대한 고차원적 사유는 한 생명의 탄생과 홍해가 갈라지는 것,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물 위를 걷는 것, 건강한 삶을 사는 것과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발현되는 것이 동일한 의미로 포용될 수 있게끔 한다. 기적이란 단어를 깊고 넓게 확장하여 보다 유연하고 본질적으로 사유한다면, 신이 선사하고 우주가 제공하는 기적의 바다에 포로가 되어 풍성한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기적 중의 기적인 사랑이라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가장 <많이> 설명하고자 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인간을 향해 질문하는 신의 의지는 당신의 신성과 인성이 합쳐지는 장면에서 그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변을 완성한다. 사랑은 기적을 포함하며, 사랑의 의미는 기적의 정의를 함의한다. 소설 속에서 필라가 기적을 체험하고 신앙을 회복하는 동시에 자신이 부인하며 거부하려 했던 사랑이 발현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음은 사랑과 기적의 함수관계를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더욱이 필라의 사랑의 방향이 확인되면서 자아의 현주소와 가야할 길을 자각하고, 세상이 기존과 다르게 보이게 되는 또다른 기적이 발생된다. 기적은 사랑을 요구하며, 사랑은 기적을 발현시킨다. 이러한 기적과 사랑 사이의 방정식은 기적과 사랑을 연관지어 탐구하는 데 있어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동기가 된다.
소설속에서 필라의 남자친구는 신을 위한 구도자의 길을 걸어야 하는가, 아님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삶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긴장감 있고 외로운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이를 결정하기 위해 신을 향해 기도하며 숙고하는 장면을 읽으면서 과연 진정한 신앙은 무엇인지를 사유하게 된다. 신의 목소리를 증거하고, 진리를 설파하며, 구도의 삶을 살아가는 것만이 신이 요구하는 신앙의 진정성은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 자신의 가정을 책임지는 것, 어려운 사람을 돕고 보듬어주는 것,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의 열매를 거둬들이는 삶 또한 신앙심의 연장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신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구도가 신앙의 중요한 하나의 기류라고 본다면, 정작 신을 닮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보다 고차원적 신앙심의 현현이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열정과 신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 그 어떤 종교라 할지라도 거부할 수 없는 명백한 신앙의 두 가지 기류임을 설파한다.
코엘료 문학의 특징을 한 가지 발견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독자들과 두 가지 형태로 호흡한다. 하나는 작가 자신이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설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메시지에 대한 의미, 상상, 해석을 전적으로 독자의 과제로 맡기는 것이다. 코엘료는 후자의 형태로 독자와 호흡한다. 자아에서부터 신에 이르기까지, 즉 인간과 신을 연결해주는 다양한 우주의 본질적 요소들을 다루면서 절대로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는다. 그것이 더욱 그의 언어를 곱씹게하고, 재차 탐구하게끔 만드는 동기가 되기에 코엘료 우주에 흠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신의 여성성의 토대 위에서 기적과 사랑을 논하는 코엘료의 언어는 역시나 동시다발적 질문을 내 머리와 가슴에 올려 놓았다. 신의 성품, 기적의 가치와 본질, 사랑과 기적의 함수관계, 사랑의 힘과 이에 대한 신의 의지 등의 다양한 사유와 사색을 말이다. 깊은 생각 하나를 끄집어 낸다. 신을 믿고, 신의 사랑을 경험한 내가 과연 아가페를 실현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나를 소멸시키는 동시에, 상대방으로 존재하며, 상대방 속에서 신의 불꽃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과연 내 안에서 가능한지를 말이다. 그것을 깊이 사유하면서, 이미 전작을 선포한 내게 앞으로 코엘료가 선사할 언어 연금술을 기대하며 흐뭇한 미소를 흘긴다.
영적인 삶은 사랑이다. 사람들은 타인을 보호하거나 도와주거나 선행을 베풀기 위해 사랑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그렇게 대한다면, 그건 그를 단순한 대상으로만 여기고 자기 자신을 대단히 현명하고 관대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사랑과는 전혀 무관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타인과 일치하는 것이고, 상대방 속에서 신의 불꽃을 발견하는 일이다. <p. 14>
신은 그의 은총의 손길로 다시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인간이 자신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에서 그 본질을 깨닫게 한다. <p. 74>
어제까지만 해도 세계는 사랑 없이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젠 사물의 다양한 빛을 발견하기 위해 사랑이 필요했다. <p.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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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