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의 쾌변독설
신해철.지승호 지음 / 부엔리브로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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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은 독특한 캐릭터다. '독특하다'라는 형용사엔 많은 함의가 담겨 있다. 88년 대학가요제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한 신해철은 음악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많은 이슈를 던지는 인물이다. 가수로서의 음악적 완성도와 수준 못지않게 외모와 발언, 행동에 이르기까지 언론과 대중은 밀도있게 그를 조명하고 관찰해왔다. 신해철. 과연 그는 한국 가요계에, 아니 한국 사회에 어떤 아이콘으로 해석될 수 있을까.

  『신해철의 쾌변독설』은 지난 이십여 년간 끊임없이 진화해온 신해철이라는 인물의 현재형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는 책이다. 국내 첫 인터뷰 전문 저널리스트라 불리는 지승호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쓰여진 이 책은 인간 신해철의 음악과 가족, 철학과 이념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들려준다. 제목의 문구대로 신해철은 'ㅈ'과 'ㅆ' 등 한국인 특유의 욕지거리를 이용하며 독설의 독설을 늘어놓는다.

  지승호와 신해철은 칠일 동안 함께 마주 앉아 깊고 다양한 얘기를 주고 받는다. 리더십, 정치, 대중음악, 종교(기독교), 평론, 가족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에서 술안주가 되는 다양한 담론을 관통한다. 신해철 개인의 가치관과 우주를 아는 일도 흥미롭지만, 한국 사회에 만연한 오류와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흥미는 배가된다. 

  신해철이 피력한 음악의 정의가 디테일하면서도 이채롭다. 그는 음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음악은 인생 전체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그 한 개인을 포함하고 있는 사회 전체 혹은 세계 전체의 반영이자, 거꾸로 그걸 반사시켜서 세상을 향한 외침이기도 하다'라고. 그의 음악에 유독 사회참여적이며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가사가 많은 이유에 대해 깔끔하게 답변해주는 정의가 아닐까 한다. 사랑타령에만 함몰되어 있는 한국 대중가요의 현실을 목도한다면,  외국 청년들이나 뮤지션들에게 '스탠다드'로 통하고 있는 그의 음악적 정의는 글로벌 한국 대중문화의 현주소를 그대로 방증한다.

  신해철이 주장한 아마추어와 프로에 대한 인식도 자못 솔깃했는데, 평단을 예로 들어 아마추어와 프로의 위치와 역할을 구분화한다. 신해철의 언급대로 아마추어는 아마추어 안에 머물러 있을 때의 미덕이 있다. 또한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눈여겨볼 만한 점도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아마추어가 프로인 척하고, 그 능력과 자질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활개를 허용한다. 비단 평단뿐만 아니라 정계, 재계, 문화계, 스포츠계, 연예계 등 폭넓게 뻗어 있는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의 애매한 구분선과 이에 대한 심각한 '아마추어리즘'은 엄연한 팩트이기에 신해철의 지적을 깊이 공감하게 된다.

  신해철의 이념적 성향 또한 확실한 진보임을 알 수 있다. 이미 그는 지난 2007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오픈한 바 있다. 책에서는 체게바라, 러셀, 레닌, 호치민, 마오쩌둥 등의 인물을 트루 리더의 전형으로 소개하며 존경한다고 고백한다. 비서민적 기성에 대한 혁명, 사회 주류적 시각에 대한 비판성 견지를 지지하는 신해철이 보수와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인물임을 책을 통해 명확하게 재인지한다. 

  사실 이러한 인터뷰식의 담론집이 가지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이에 대한 역설적인 단점도 있다. 저자 자신이 직접 쓴 글은 일방적인 전달이기에 '객관화'를 비보증한다. 하지만 질문자와 답변자가 분리되어 생각과 논지를 끌어내다 보면, 요컨대 질문자(인터뷰어)의 역할과 자질에 따라서 훨씬 더 풍성하고 균형있는 담론화의 구현이 가능하다. 인터뷰어 지승호에게 아쉬웠던 것은 신해철에 대해 지나치게 칭찬코드, 공감코드로만 일관했다는 점이다. 포지티브는 자신이 직접 논지를 펴고, 네거티브는 각종 미디어의 편린을 발췌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어 우리시대 전문 인터뷰어라는 지승호의 존재감에 적잖이 실망을 했다. 신해철이라는 아이콘이 갖는 양면성을 인식했다면, 보다 객관적으로 호오의 관점을 분리하여 인터뷰하는 게 더욱 용기있고 균형있는 책의 완성을 이끌지 않았을까 한다.

  사실 신해철 만큼 극렬 팬과 강성 안티로 대극적인 관심을 받는 연예인도 드물다. 어떨 때는 감동적인 음악과 소름 돋는 가사로 팬들의 마음을 빼앗아가고, 어떨 때는 지나친 독설과 괴이한 행동으로 불편함을 전달한다. 아름다운 음악 <날아라 병아리>를 만들고 부른 사람과 대마초, 간통죄의 합법화를 설파하는 사람이 동일인이라면, 그 양면성의 본질을 탐구하는 일은 응당 흥미있는 일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신해철의 쾌변독설』은 한국사회의 모순과 오류에 대한 담론화를 통해 인간 신해철이라는 독특한 아이콘의 스펙트럼을 살펴볼 수 있는 흥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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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 루케이도의 희망 메시지
맥스 루케이도 지음, 정성묵 옮김 / 가치창조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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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의 정체성에 대해 뚜렷한 확립을 이루지 못했었다. 한 분이시면서 삼위로 존재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창세 전에 미리 예정을 하셨다면 인간은 신의 꼭두각시란 말인가, 왜 세상에서 주를 믿지 않고 악한 사람들이 번영을 누리도록 내버려 두신단 말인가, 등의 의아한 질문들 속에서 나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몰이해를 분출하곤 했다. 하지만 이후 하나님의 성령이 감동해서인지, 하나님과 인간은 다른 <차원>의 존재임을 인지하게 되었고 우주는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고 움직이는 피조의 세계임을 인정하면서 그 모든 해답이 명징하게 풀리게 되었다. 하나님, 그 분은 우리와 다른 존재인 것이다. 

  복음주의 계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의 기독교 작가 맥스 루케이도는 그의 신간 『희망 메시지』를 통해 완전히 다른 차원에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과 계획, 희망과 치유의 메세지를 전달한다. 무지와 불신으로 하나님의 투명하고 완벽한 사역을 목도치 못하는 인간들에게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웅숭깊고 고차원적인지를 얘기한다. 총 여덟 가지 파트로 정리하여 전하는 루케이도의 희망과 치유의 이야기는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근본 성품을 다시 한 번 곱씹게 한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 비단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품었을 의문이다. 성경은 이에 대해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라는 단호한 답변을 제시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분이시다. 인간의 오감으로 탐색할 수 있는 분이 아니며,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이라는 창조주를 인간의 과학과 잣대로 형상화하려는 의도는 결코 온당치 않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의 신성을 묵상하며 섬기는 것, 그것이 바른 신앙인의 자세임을 루케이도는 일깨우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과연 얼마나 농밀할까. 흔히 사람들은 신적인 사랑을 '아가페(agapē)'라 부르며 상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는 당신께서 본래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셨던 점에서부터 완성된다. 인간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하늘 보좌에서 이 낮은 땅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사랑. 갖은 고초를 겪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당신의 사랑은 인간이 만든 그 어떠한 형용사로도 형언할 수 없는 찬란함의 극치리라.  

  사탄은 왜 존재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그들의 활개를 인내하시는가. 이에 대한 답변 또한 적확하다. 하나님께서는 사탄까지도 그리스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악의 번영과 악인의 활개, 선의 핍박과 의인의 고통은 잠시뿐이다. 적어도 하나님의 시간에서는 그렇다. 지구에서의 삶이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면, 다른 차원에서 선과 악,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복수심은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마음이다. 본래 인간은 창조적 관점에서 '신뢰'할 존재가 아니다. 그저 사랑하고 보듬어주면 된다. 우리가 신뢰할 존재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다. 신뢰가 아닌 사랑의 대상으로 인간을 바라보면 '원수'나 '복수' 등의 단어는 사전에서 지워지게 될 것이다. 비판과 복수와 정죄는 오직 하나님의 권한이다. 하나님에게 이것들을 맡기고 사랑의 마음으로 남을 대할 때에 우리의 삶을 더욱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나님의 뜻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창세 전에 미리 계획하신 수많은 디테일은 한 점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진다. 이는 불변의 진리이다. 하지만 이와 다른 차원에서 하나님의 뜻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기도>라는 것을 통해 말이다. 기도는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중 가장 고차원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신다. 모든 일은 누군가 기도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길, 그것은 기도뿐이다.

  한 시간도 안 되어 완독할 수 있는 이 짧은 메시지는 다양한 주제와 각도에서 하나님의 희망을 증거한다. 맥스 루케이도는 간결하지만 힘있는 문장으로 힘들고 지쳐있는 이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위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힘겨운 순간을 위한 우리의 기도'로 책을 끝맺음한다. 기도의 힘은 기도하는 자가 아닌 기도를 들으시는 분께 있다, 는 명문장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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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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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최고의 여류작가 공지영의 존재성은 어떤 것일까. 공지영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독자들은 그녀의 문장에 열광하고 환호하며 가슴을 두근거린다. 그녀는 분명 신경숙과 다르고, 은희경과 차별되며, 정이현과 구분된다. 출간되는 책마다 히트, 라는 공지영신드롬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작년 여덟 번째 장편소설인 『즐거운 나의 집』을 통해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개했던 소설가 공지영이 이번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솔직하고 담백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고 왔다. 그녀의 신간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는 공지영이 자신의 친딸 위녕에게 전하는 편지를 담은 산문집이다. 책 속에는 유명한 작가로 살아가는 엄마의 딸을 향한 사랑과 관심이 충만하게 넘쳐흐르고 있다.

  세 번의 이혼과 아버지가 각기 다른 세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여자 공지영.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비전형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그녀의 가족은 보다 다양하고 특별한 소통의 전제에서 존재할지 모른다. 고통과 슬픔, 다양성과 결핍의 빈도가 다른 가정에 비해 비교우위로 점철되는 두 모녀 사이의 소통은 지독한 미안함과 이해심, 그리고 여느 모녀와는 다른 차원의 사랑을 함의하고 있어 특별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낸다.

  공지영의 편지 구성이 자못 특이하다. 그녀는 아프면서 성숙한 자신의 과거를 곱씹으며 삶과 우주의 통찰을 늘어놓는다. 더욱이 각 편지마다 공지영 자신이 읽은 책들의 명문구를 인용하면서 딸을 향한 사랑의 아포리즘을 완성시킨다. 그리고 각 편지의 맺음마다 수영을 하려고 하지만 계속 미루는 형편없는 자신의 <현재>적 삶을 토로한다. 하지만 이 토로는 딸에게 전하는 자신의 거시적인 메시지와 통합되는 특별한 의미를 상징한다.

  공지영은 있는 그대로의 '자아'로 살 것을 딸에게 주문한다. 닐 기유메트 신부의 단편집 《내 발의 등불》에 있는 짧은 천사 이야기를 소개하며 인간의 다양성 안에 내재된 신의 확고한 의지를 들려준다. 어떤 눈송이도 똑같이 생긴 것이 없고 나뭇잎이나 모래알도 두 개가 결코 똑같지 않은 이유, 그리고 그것을 통해 명징하게 빛나는 '나'라는 존재의 신비함과 숭고함에 대해서 말이다. 창조된 모든 것은 하나의 '원본'으로 실존하게 한 신의 창조성에 대해 다음의 멋난 명문장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나는 너 없이도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지만 만일 그랬다면 세계는 내 눈에 영원히 불완전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p. 42>

  또한 무엇이 되느냐의 삶 보다는 어떻게 사느냐의 삶을 살 것을 주문한다. 산도르 마라이의 《어느 시인의 고백》으로부터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하는' 원리를 발췌하여 딸에게 전달한다. 인생을 잠시 스치는 수많은 대극적 순간들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닌,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하는 삶을 강조하는 것이다. 일생을 한 순간으로 압축하여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의 초월적 인식, 그것이야말로 천 년을 하루처럼 여기는 신의 절대성에 호흡하는 삶이자, '행복'이라는 산물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거시적 인생관의 원동임을 공지영은 딸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리라.

  너는 누구냐? 너는 진정 무엇을 원했느냐? 너는 어디에서 신의를 지켰고, 어디에서 신의를 지키지 않았느냐? 너는 어디에서 용감했고, 어디에서 비겁했느냐? 세상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지.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누구나 대답을 한다네. 솔직하고 안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결국 전 생애로 대답한다는 것일세.   <p. 165>

  또한 공지영은 작가로 살아가는 자신의 고뇌와 아픔을 털어놓기도 한다. 본래 시인 지망생이었지만 시는 천재들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고 시를 포기했다는 소설가 공지영. 모든 예술에는 천재가 있지만, 유독 천재가 없는 장르가 있는데 그게 바로 '소설'이라고 말하는 소설가 공지영. 두꺼운 종이들을 다 글자로 채워 넣어야 하는 손가락의 끈질김과 엉덩이의 힘, 요컨대 '소설'의 완성은 시간과 체력과 고통과 인내로 채워질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소설가 공지영에게서 겸손한 작가의 고뇌와 번민을 읽을 수 있다. 

  작가는 신을, 신의 창조를 닮으려고 한 불경의 죄 때문에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p. 153>

  에필로그는 딸 위녕의 답장을 배치했다. 엄마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가혹할 정도로 요구한 것이 딱 하나 있음을 위녕은 밝히고 있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라, 언제나 깨어있어라.'라는 시간의 숭고한 정신과 책임이 담겨있는 말 한마디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라고 말하는 대신, 하루하루를 죽을 힘을 다해 살아가라고 하는 엄마의 유일한 조언. 그 말은 위녕의 가슴속에 강렬히 각인된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야 할 남은 생애의 두려움의 농도를 희석시키는 근원적 힘이 될 것임을 위녕은 고백하고 있다.
  당신이 수없이 상처입고 방황하고 실패한 저를 언제나 응원할 것을 알고 있어서 저는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p. 250>

  딸을 향한 공지영의 편지는 앞으로 살았던 날보다 살아야 할 날이 많은 딸에게 결국 <현재>적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전하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매 편지가 끝날 때마다 자신의 '수영' 얘기를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이유도 결국 딸에게 시간의 숭고함에 대해 전하려는 내밀함의 목소리리라. 이미 지나가 버린 정지된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아직 손에 잡을 수 없는 상상의 미래에 경도되지 말며, 내 힘과 의지가 유일하게 발현될 수 있는 현재적 시간에 대한 최선과 숭고의 삶. 그것이 이 한 권의 산문집을 통해 공지영이 딸에게 전하려는 응원 메시지의 본질이다.

  좋은 시는, 좋은 문학작품은, 아니 좋은 예술은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한다. 잠시 멍청하게 만들고 잠시 망연하게 만들고, 마치 큰 징이 울리는 것처럼 우리 존재를 존재로서 온전히 느끼는 순간의 시간을 허용한다. 

  공지영의 말이다. 실로 전율이 느껴지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 힘 있는 활자는 독자에게 잠시 정지할 것을 요구한다. 사유와 곱씹음, 앎과 도전, 공감과 희열을 허용하는 그 짧은 순간을 통해 독자는 '책 읽기'라는 위대한 작업에 대한 보람과 희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공지영의 이 멋진 문장은 공지영 자신의 작품을 수식하는 적확한 '형용사'가 된다. 

  읽으면서 수없이 <정지>할 수밖에 없었던 공지영의 산문을 살포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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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 2010-05-1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세요..전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책이던데요...
그저 그냥 딸에게 쓴 편지나 또는 글을 춮판했어야 했는지..
저도 공지영씨 좋아하고 책도 많이 봤지만..
이 책은 영~~ 가슴에 와닿지 않았어요.. 진짜 그냥 잘 만들어서 딸에게나 주시지..
 
헨리 나우웬 : 그의 삶, 그의 꿈 - 세계영성의 거장 시리즈 01
마이클 오로린 지음, 마영례 옮김 / 가치창조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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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년으로 기억된다. 교회 담임목사님께서 우리집에 심방으로 오셨을 때다. 어머니와 나는 목사님께서 과연 어떤 말씀을 우리가정에 선포하실까, 하는 기대와 소망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고 있었다. 당시 목사님께서 주신 메세지는 아직도 내 기억속에 강렬히 각인되어 있을 정도로 은혜롭다. 신앙에는 두 가지 기류가 있는데, 하나는 주님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나아감이며 다른 하나는 바로 그 주님의 모습을 닮아감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기류 모두 신앙의 소중한 줄기지만 결국 최고의 신앙의 수준은 후자의 형태로 귀결된다는 것이 당시 목사님께서 전하신 메세지의 핵심이었다. 신의 형상의 삶을 회복하며 이 땅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 그것은 기독교인이 추구해야 할 가장 종결적인 도전이자, 소망이요, 꿈이리라.

  바로 이러한 신적 성품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며 작은 예수의 삶을 가르치고 전파함은 물론, 정작 자기 자신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우리는 도처에서 적잖이 볼 수 있다. 20세기 뛰어난 영성작가로 유명한 헨리 나우웬의 삶도 그러했다. 카톨릭사제이자, 대학교수이며, 영성작가로서의 그의 삶은 사변적이지 않았고 교조적이지 않았다. 자기가 가르치며 전파하는 내용을 자신이 먼저 실천하며 행동한 인물이다. 

  《가치창조》출판사에서 출간된 『그의 삶, 그의 꿈 - 헨리 나우웬』은 헨리가 하버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를 보조하는 조교로 처음 인연을 맺게 된 마이클 오로린이 쓴 책이다. 가장 좋은 교사는 삶의 본보기를 통해 말없이 가르칠 수 있다는 확신 아래, 저자는 헨리의 태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들려주고 있다. 최고의 영성 거장 헨리 나우렌. 과연 그는 어떤 생각을 가졌고, 어떤 책들을 썼으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자서전의 형식으로 쓴 이 책은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한 한 기독교도의 웅숭깊은 삶을 가감없이 소개한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책 속에서 풍성하게 자리잡고 있는 크고 시원한 사진들은 활자와 좋은 조화를 이룬다. 한 사람의 일생을 소개하는 작업에 있어 사진은 분명 적절한 조미료의 역할을 한다. 어릴 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헨리의 다양한 사진들을 첨부시켜 독자의 안내를 돕고 있다. 더욱이 책의 양 사이드에는 헨리의 영성 깊은 명문장들을 배치했다. 저자가 전하는 헨리 나우웬의 삶, 그리고 그것을 부언하는 주인공 자신의 문장들과의 호흡을 통해 한 권의 자서전의 완성도를 깔끔하게 올려놓고 있다.

  책에서 소개된 헨리의 대부분의 삶이 아름답고 은혜로웠지만, 두 가지 부분에서 큰 흥미와 도전이 발산된다. 우선 그가 빈센트 반 고흐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 고흐에 대한 헨리의 관심은 화가로서의 재능이 아닌, 영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빈센트의 그림 속에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의 고뇌와 환희를 보여주는 독특하고 소중한 증거들이 가득하다고 믿는 헨리에게, 빈센트는 다른 화가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아직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진지하게 단 한 번도 묵상하지 못한 나이기에, 이러한 헨리의 고흐 탐구는 내게 반드시 거쳐가야 할 숙제를 안겨주기도 한다.

"빈센트의 고뇌를 내 경험에 비추어 살펴보면서 그가 내게 상처 입은 치료자가 되어 주고 있음을 점점 더 깨닫게 되었다. 그는 내가 전에는 볼 용기조차 내지 못했던 것들을 그림으로 그려냈고 내가 전에는 말할 용기조차 내지 못했던 것들을 질문했다. 그리고 내가 감히 가까이 다가갈 용기조차 낼 수 없었던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 클리프 에드워즈가 쓴 책 반 『고흐와 하나님』 Van Gogh and God의 추천서문중에서   <p. 109>

  또 하나는 그가 주야장천 원칙으로 삼았던 삶의 철학에 있다. 그것은 바로 <낮아져야>만 하는 겸손의 삶이다. 대학 강의에서 신약의 복음서를 중심으로 예수님의 삶을 설파한 헨리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면서 겸손의 원리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자아상을 확립한다. 이러한 헨리의 겸손관은 캐나다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 합류한 이후, <기본>을 잊고 살았던 자신에 대한 반성을 통해 더욱 공고히 다져진다. 헨리의 삶을 곱씹으며 '낮아지는 것'이 복음과 그리스도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동인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연합을 추구하고 기쁨을 찾게 된다는 저자의 명문장에 나는 한아름의 은혜와 도전을 얻는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낮아지는 길을 택하신 것이 매우 분명하다. 예수님은 한번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거듭거듭 그렇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쳤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낮아지셔야 했는지를 알 수 있다." - Letters to Marc about Jesus중에서   <p. 150>

  신앙의 끝은 결국 <겸손>이다. 주님이 그랬던 것처럼, 수많은 신앙인의 선진들이 그랬던 것처럼 겸손함으로 무장되는 길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서 있게 되는 방정식의 신비리라. 이를 명징히 보여준 헨리 나우웬의 삶을 다시 한 번 곱씹으며, 수십여 권에 달하는 그의 영성 있는 작품들을 두루 읽어볼 도전의식을 발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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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가 행복을 줄게 - 엄마와 아이가 서로 마주하며 나눈 가장 아름다운 대화의 기록
오소희 지음 / 큰솔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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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가와 독자는 어떤 함수관계로 표현될 수 있을까. 나는 작가와 독자와의 관계를 공급자와 수요자라는 기계적인 관계로 설정하는 것에 대해 거부한다. 활자를 수단으로 <소통>하며 <교감>하는 관계, 가 가장 본질적이며 내포적인 작가와 독자 사이의 방정식이 아닐까 한다. 책 속에는 글쓴이의 지식과 지혜, 경험과 고백, 철학과 우주가 충만히 담겨 있다. 작가의 문자화 된 우주를 만나고 소통하며 교감하는 것, 작가의 머리로 잠시 생각해보는 것, 내가 아닌 너가 되어 보다 넓고 깊게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작가와의 호흡, 곧 독서의 본질적 의미이다. 

  세 살배기 아들과 함께 터키를 여행했던 이야기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로 처음 만난 여행작가 오소희는 내게 특별한 작가다. 세계적인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와 더불어 나에게 전작의 필수불가피함을 안겨준 작가이기 때문이다. 두 권의 여행기를 통해 그녀와 교감하면서 이미 열렬한 팬이 되어 있다. 등단한 지 일 년도 되지 않은 한 여성 여행작가의 존재감이 어떤 것이기에 어찌 이토록 젊은 리뷰어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걸까. 답을 얻는 데에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의 삶의 철학과 내 독서관이 완전히 부합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를 통해 여행작가로서의 위치를 확실하게 굳힌 오소희는 세 번째 작품으로 여행수기가 아닌 '아들 이야기'를 선택한다. 엄마와 아이가 서로 마주하며 나눈 가장 아름다운 대화의 기록, 이라는 부제를 전면에 배치한 『엄마, 내가 행복을 줄게』는 아들 중빈과의 훈훈하면서도 감동적인 소통의 세계를 담고 있다. 엄마와 아이가 서로 주고 받는 질문과 답변들 속에는 사랑과 진심, 웃음과 감동, 엉뚱함과 여유가 오롯이 내재되어 있다.  

  책은 크게 두 가지 파트로 구분된다. '아이가 자란다'와 '엄마가 자란다'의 두 파트로 구분한 의도를 쉽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아이를 기르는 것은 곧바로 부모 자신이 <길러지는> 것과의 동의어로 대체될 수 있으리라.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렌즈는 어떨 때는 현미경으로, 또 어떨 때는 망원렌즈로 초점을 수시로 바꿔가며 아이를 관찰하고 조망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기존에 알지 못했고, 인식하지 못했던 우주 원리의 사각지대를 포착한다. 그렇기에 아이를 기르는 것이 곧 우주를 배우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통합될 수밖에 없음을 작가 오소희는 말하고 싶었으리라. 

  책 속에서 그녀가 정의한 가족의 의미가 십분 공감된다. 세상 다른 사람과는 기분 좋게 나눌 수 없는 것을 부끄러움 없이 나눌 수 있고 망설임 없이 함께 할 수 있는 우리. 은밀한 것이 오픈되고 부끄러운 것이 유머가 되는 우리. 무의미함을 견디고, 서로 함부로 할퀸 상처를 견디고, 익숙한 권태를 견디고, 반복이라는 이름의 노동을 견뎌내며 완성되는 우리. 마음껏 발가벗고 춤을 추고, 동시에 코를 파고, 같은 음식을 먹고 비슷한 방귀 냄새를 퍼뜨리는 우리. 바로 그 <우리>는 <가족>이라는 위대한 이름으로 명명된다. 그녀에게는 말이다. 아니 이 세상의 수많은 행복한 <우리>들에게까지도. 

  책의 마지막은 작가의 동네 어귀 자장면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겨울이의 이야기로 끝맺음을 한다. 천지분간을 못 하는 아기강아지로 겨울에 처음 동네에 나타나서 이름이 겨울이로 불리우는 강아지다. 어미가 되리라고 아무도 생각지 못한 때에 새끼를 여덟 마리나 출산한다. 새끼를 낳기 전과 낳은 후의 겨울이는 외연과 내면 모두에서 정확히 구분된다. 야윈 얼굴, 하지만 성숙하고 의연한 모습, 그리고 강한 책임감. 그 숭고함을 목도하며 암컷(여성)의 위대함에 대해 새삼 곱씹는 작가의 고백에 나도 모르게 겸허한 생각과 마음이 머리와 가슴속에서 일렁인다. 새끼를 잉태하고 보호하며, 사랑이라는 지독한 책임감으로 무장한 위대한 여성성은 비단 인간들뿐만 아니라 지구상 모든 암컷들에게 내재된 찬란한 태양이리라. 

  여성은 참으로 위대한 종족임을 근자에 많이 깨닫고 있다. 여성성의 위대함의 극치는 '모성'이라는 신적인 사랑, 즉 아가페의 현현을 통해 더욱 찬란하게 완성된다. 오소희의 활자가 아름답고 가슴뭉클한 이유는 바로 '모성애'라는 심원한 아가페적 사랑을 보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그녀의 책은 여행수기나 자녀육아집이라기보다 고결한 <러브 스토리>에 가깝다.  

  부모는 자식에게 반드시 유산을 물려준다고 한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또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어떤 형태로든지 말이다. 지식보단 지혜를, 외면보단 중심을, 사변보단 경험을, 물질보단 인간을, 비본질보단 본질을, 경쟁보단 관용을, 나보단 우리를 사유하고 성찰하며 자라나는 중빈이의 앞날을 축복한다. 그리고 나는 예견한다. 이 사회를 짊어질 훌륭한 동량으로 서있을 중빈이의 미래를. 어쩌면 그 미래는 엄마의 위대한 유산을 담보로 하기에 더욱 명징하게 성취될 것이다. 난 그리 믿는다. 

  이 한 권의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를, 사랑의 이름으로 또 다른 우주를 만나길 갈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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