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세트 - 전10권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초한지』 - 이문열의 史記이야기 / 이문열 / 민음사


[ 프롤로그 ]

전 10권인 이문열의 『초한지』를 완독했다. 1권부터 8권까지는 한달음에 달렸지만 9권·10권의 출간이 예상보다 늦어져 8권과 9권 사이의 연결 공백이 다소 벌어진 점을 제외하고는 읽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삼국지』와 함께 중국사에서 가장 많이 천착한 역사일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다양한 번역본으로 출간되었기에 신간이 주는 신선함의 흥분은 녹록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문열'이라는 희대의 이야기꾼의 존재감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전권을 깔끔하게 완독하게 되었다.

  이문열의 『초한지』는 2002년부터 4년 동안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것을 전 10권으로 완간한 것이다. 10권에 이르는 장중한 초한楚漢의 역사 속에는 중국 대륙의 패권을 겨루는 두 영웅호걸의 이야기가 이문열 특유의 발군의 스토리텔링으로 새롭게 부활했다. 작가 이문열은 《사기》를 원전으로 하고 《자치통감》과 《한서》를 보조자료로 삼아 한고조 유방의 책사인 장량이 시황제 암살을 기도하는 기원전 218년부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후 한나라 효문제가 나라의 기틀을 세울 때까지 약 30년간의 이야기를 담담히 담아냈다.


[ 유방과 항우 ]

『초한지』를 읽는 핵심 포인트는 응당 한왕 유방과 패왕 항우의 리더십 차이일 것이다. 두 영웅의 지략과 용인술의 차이를 관조하면서 작금의 시대상에 견주어 보는 것은 매우 큰 흥미거리이다. 흔히 역사를 승자의 것이라고들 하기 때문에 유방은 많이 미화됐고 항우는 폄하됐을 것이라 추정하는 안목이 지배적이다. 사실 개인적인 능력에 있어서는 항우가 우위에 있었음은 대부분의 평가가 일치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능력이 리더십의 필요충분조건을 완성시킬 수 없음을 초한의 역사는 엄중하게 교훈한다. 

  크게 세 가지 범주에서 유방의 리더십은 항우보다 빛났는데, '용인술'이 그 첫 번째며, '포용력'이 두 번째요, '넓은 시야'가 세 번째다. 정치는 장량에게, 내정은 소하에게, 군사의 일은 한신에게 전권을 위임한 유방의 용인술은 적확한 인사의 배치와 신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잘 보여준다. 반면 신하에게 항상 의심의 날을 세운 항우는 자신의 유일한 책사 범증마저도 이간계에 속아 내쫓는 우를 범하고 만다. 번쾌를 위시하여 수없이 많은 맹장과 용장을 거느렸던 유방과는 달리 이름에 꼽힐 장수로 고작 용저와 종리매뿐이었던 항우의 초라한 인재풀은 사람을 다루는 기술에서의 두 영웅의 대극적 차이를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포용력에서도 항우는 유방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항우는 절대로 항복한 군사들을 살려주지 않았다. 또한 정복한 땅의 백성들을 도륙하고 탄압하는 병사들의 잔악함을 애써 외면하곤 했다. 실례로 항복한 진군秦軍 20만을 신안에서 생매장한 사건은 항우의 비포용성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승리 후 정복한 땅의 군사와 백성들을 여차없이 생매장시키는 항우의 잔인함은 훗날 중국대륙의 모든 제후국과 백성들이 자신을 외면해버리는 업보가 되기도 한다. 반면 항복한 장졸은 흔쾌히 받아 주고, 타지 백성들에 대한 약탈과 강도를 엄히 다스렸던, 그리하여 민심을 얻을 수 있었던 유방의 덕은 천자가 되어 제국을 건설하는 토대가 된다.

  전쟁을 보는 시야에 있어서도 유방과 항우는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기실 전투력에 있어서 유방은 항우를 당해내지 못했다. 굳센 강동병 8,000명을 주축으로 한 항우의 초군은 초한전쟁의 최후인 '해하垓下전투'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무적불패의 군사들이었다. 거록에서 유민군軍 5만으로 왕리가 이끄는 진나라 대군 20만을 오래된 기왓장 부수듯 쳐부수었고, 수수가에서는 정병 3만으로 유방이 이끄는 다섯 제후의 56만 대군을 깨뜨려 그 시체로 강물을 막은 게 항우였다. '집중'과 '속도'로 갈음되는 항우의 고도의 전투력은 오강烏江에서 자신의 목이 떨어지기 전까지 매번 유방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지적 의미의 '전투'에 한했을 뿐이다. '전쟁'이라는 의미에서 보다 길고 넓게 시야를 고도화하는 안목에는 유방이 한 수 위였다. 중원의 지도를 넓게 훑으면서 도읍지 역양轢陽을 소하에게 맡긴 것은 물론 제왕 한신과 양왕 팽월을 넓게 분포시켜 항우의 근거지를 조이며 뒷날의 싹을 자른 것은 넓은 시야로 초한전쟁을 바라보고 있는 유방의 높은 안목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전투에서는 이기고 전쟁에서는 진 패왕 항우.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리라.

  물론 유방의 단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방 또한 적잖은 실수와 소인배와 같은 행동으로 어려움에 빠질 때가 많았다. 오강에서 항우를 죽이고 초나라를 평정, 중국대륙을 통일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의 유방에 대한 아쉬움은 차치하자. 승리한 자의 승리하기까지의 역사적 기록은 이미 승리 그 자체로 용서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제위에 오른 뒤 유방이 보인 신하에 대한 지나친 의심과 핍박, 소위 '공신억멸책功臣抑滅策'으로 불리는 무자비한 그의 뒷모습이다. 더욱이 황후 여태후의 조작에 의해 자행된 한신의 죽임과 유방 사후 전개되는 피비린내 나는 외척의 살육전은 유방이 외척관리에 얼마나 미천했는지를 그대로 입증하는 사건들이다. 3대 황제 효문제孝文帝의 제위를 전후 외척인 여씨 일족이 모두 멸문지화를 당하기까지 제국의 아침은 너무 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 


[ 다른 사람들 ]

나는 『초한지』 전권을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한신韓信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엄밀히 따지면 초한전쟁은 유방과 항우의 대결 이전에 한신과 항우의 전투였다. 한왕 유방을 도와 수많은 전쟁을 치른 한신은 팽성에서의 어의없는 패전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 진적이 없는 최고의 장군이었다. 사실 한신이 없었더라면 유방은 결코 항우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한나라가 전국을 통일하고 유방이 천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최고의 일등공신은 단연 한신이다. 하지만 그러한 한신의 존재감을 유방은 위험하게 생각했고, 소소한 역모의 혐의로 그를 탄핵한다. 끝내 여태후의 계획된 음모에 의해 살해당한 한신의 종국은 그의 공과 능력과 충심을 감안하면 매우 서글프다. 큰 위인을 담을 수 있는 자라면 더 큰 위인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한신이라는 불세출의 영웅을 담아내지 못한 채 토사구팽兎死狗烹한 유방의 그릇이 작게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의 애수일까. 만약 유방이 한신을 내치지 않고 끝까지 믿고 자신의 사후를 맡겼더라면 여태후를 위시한 외척세력에 의해 자행된 피비린내 나는 제국 초기의 혼란상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한신 외에도 유방 주변에는 불세출의 영웅들이 많았다. 내정과 보급을 담당하며 한군의 든든한 뒷심이 되어준 소하蕭何, 유방의 꾀주머니로 매 위기마다 좋은 계책으로 한군을 도운 장량張良과 진평陳平, 패현시절 때부터 따랐던 번쾌樊快와 노관盧튷, 한군 최초의 기마대장 관영灌嬰, 그 외 조참曹參, 주발周勃, 왕릉王陵 등 많은 영웅들이 유방을 도와 한제국을 건설했다. 유방은 소하를 매우 신임했다. 비록 전쟁터에서의 눈에 보이는 활약은 없었지만 소하가 뒤에서 도읍지 역양을 잘 관리하고 양식과 군병의 보급을 제때에 받쳐 주었기 때문에 유방은 마음 편히 항우와의 혈전에 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유방은 제국을 세우자마자 공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하를 상국으로 삼는다. 장량 또한 유방의 총애를 많이 받았는데 유방은 매사에 장량에게 물어보지 않는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을 물었고, 모든 것을 따랐다. 장량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장량에 대한 유방의 신임은 절대적이었다.

  이에 비해 항우의 사람으로 거론할 만한 이는 딱히 범증范增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마저도 마지막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항우의 지나친 의심병으로 인해 내쫓겨 죽게 된 비운의 인물이다. 항우의 삼촌인 무신군 항량을 주군으로 섬길 때부터 범증은 초한지 내 최고의 책략가라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다. '장계취계將計就計(적의 계책을 미리 알아채고 그 계책을 역이용하는 전술)'의 전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범증은 초나라의 초중반 역사에서 찬란한 활약을 보여준다. 항량은 범증의 말을 잘 따라서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는 무패를 이어간다. 항우도 처음에는 범증을 '아부'라 부르며 그의 계책과 조언을 잘 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군왕으로서의 자신감과 교만이 뒤섞여 점차 범증의 책략을 귀기울이지 않는다. 한신을 아끼라는 범증의 말을 무시해서 유방에게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홍문의 잔치에서도 범증의 조언을 듣지 않고 유방을 살려보내 훗날 천추의 한이 되기도 한다. 결국 진평의 이간계에 속아 범증을 내치고 죽게끔 만드는 항우. 만약 범증이 끝까지 살아서 항우를 보필했더라면 초한의 주인을 결정지었던 해하전투의 향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
이문열 ]

언제부터인가 내 문학을 조여 오던 묵살(默殺)의 카르텔은 1990년대 말에 이르러 일방적인 단죄의 선고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어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한국판 홍위병들이 그 선고의 어설픈 집행자로서 내 문학의 장례식을 되풀이 거행하자 나도 격렬하게 응전하였다. 그러나 득세하는 인터넷 대자보의 홍수 속에 허우적거리며 나날이 괴물이 되어 가던 나는 갈수록 더 흉흉해지는 전의(戰意)만큼이나 주체 못할 피로와 무력감에 빠져 들었다.   <p. 21, 글머리에> 

  1권 '글머리에'에 소개된 이문열 자신의 고백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적들과의 싸움에서 피로와 무력감을 느낀 작가 이문열. 그는 이를 극복키 위해 중국 고전문학으로의 도피를 실행했다. 이미 『삼국지』와 『수호지』의 평역을 통해 문학적 긴장으로부터의 도피를 감행했던 그는 동일한 의미의 연장으로 『초한지』를 손에 잡았다. 요컨대 고단한 한 세월을 넘겨 보려는 자신의 의지를 중국 최고의 고전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작업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그의 작가로서의 기백과 강단은 한 소설가의 지독한 고독과 번민, 문학적 긴장과의 싸움, 이에 대한 회복과 열정에 대한 의지가 충만히 담겨 있다.

  현재 이문열은 다음 작품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초한지』 이후 한국의 역사물을 쓰고 싶다는 작가 이문열. 
  "1980년대 이야기는 예전부터 구상했었지만 아직 쓰지 못했는데 이 이야기가 지금도 유효할지 의문이 드네요. 그 밖에 새롭게 생긴 쓰고 싶은 이야기도 있구요. 어떤 것을 우선순위로 할 지 아직도 고민 중입니다." 
  그의 고민이 빨리 끝나 좋은 작품으로 독자를 찾아가길 바란다. 더욱이 문학 외적의 공간에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설가로서의 문학적 존재감으로 승부하여 자신의 피로와 무력감을 회복하기를 진심으로 갈구한다.


[ 에필로그 ]

나라가 시끄럽다. 오랜 기간 동안 대한민국은 리더십의 부재에 시달려 오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와 국회는 국민의 신임을 얻는 데 실패하고 있다. '믿을 수 없는 대통령', '일 못하는 정부', '싸움쟁이 국회'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위정자들의 현주소는 많은 국민들을 힘들고 답답하게 한다. 어떤 나라는 대통령을 화폐에 인쇄하여 기념하고, 또 어떤 나라는 국회를 가장 신뢰하는 집단으로 국민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외계에서 일어난 꿈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때에 위기에 봉착한 국가적 리더십을 점검하고, 민심에 경청하며, 국민을 통합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리라.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했던가. 새것과 함께 옛것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과거의 실패와 성공을 반추하며 현재를 냉철히 분석하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며, 꿈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하는 힘이 필요하다.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했던 시기에 등장하여 서로 상반된 리더십으로 역사의 인과성을 결정지은 두 영웅의 이야기는 2000여 년이 지난 작금의 시대에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결국 무엇이 승리하고, 무엇이 강국을 건설하며, 무엇이 백성들을 행복하게 하는지를.

  장엄하고도 장중한 초한의 역사를 담은 중국 불멸의 고전 『초한지』의 존재성을 곱씹으며 리더십과 소통의 부재에 시달리며 번민하는 21세기 대한민국 현주소의 희망을 읽는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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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1 - 짧은 제국의 황혼, 이문열의 史記 이야기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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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초한지』 - 이문열의 史記이야기 / 이문열 / 민음사


[ 프롤로그 ]

전 10권인 이문열의 『초한지』를 완독했다. 1권부터 8권까지는 한달음에 달렸지만 9권·10권의 출간이 예상보다 늦어져 8권과 9권 사이의 연결 공백이 다소 벌어진 점을 제외하고는 읽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삼국지』와 함께 중국사에서 가장 많이 천착한 역사일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다양한 번역본으로 출간되었기에 신간이 주는 신선함의 흥분은 녹록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문열'이라는 희대의 이야기꾼의 존재감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전권을 깔끔하게 완독하게 되었다.

  이문열의 『초한지』는 2002년부터 4년 동안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것을 전 10권으로 완간한 것이다. 10권에 이르는 장중한 초한楚漢의 역사 속에는 중국 대륙의 패권을 겨루는 두 영웅호걸의 이야기가 이문열 특유의 발군의 스토리텔링으로 새롭게 부활했다. 작가 이문열은 《사기》를 원전으로 하고 《자치통감》과 《한서》를 보조자료로 삼아 한고조 유방의 책사인 장량이 시황제 암살을 기도하는 기원전 218년부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후 한나라 효문제가 나라의 기틀을 세울 때까지 약 30년간의 이야기를 담담히 담아냈다.


[ 유방과 항우 ]

『초한지』를 읽는 핵심 포인트는 응당 한왕 유방과 패왕 항우의 리더십 차이일 것이다. 두 영웅의 지략과 용인술의 차이를 관조하면서 작금의 시대상에 견주어 보는 것은 매우 큰 흥미거리이다. 흔히 역사를 승자의 것이라고들 하기 때문에 유방은 많이 미화됐고 항우는 폄하됐을 것이라 추정하는 안목이 지배적이다. 사실 개인적인 능력에 있어서는 항우가 우위에 있었음은 대부분의 평가가 일치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능력이 리더십의 필요충분조건을 완성시킬 수 없음을 초한의 역사는 엄중하게 교훈한다. 

  크게 세 가지 범주에서 유방의 리더십은 항우보다 빛났는데, '용인술'이 그 첫 번째며, '포용력'이 두 번째요, '넓은 시야'가 세 번째다. 정치는 장량에게, 내정은 소하에게, 군사의 일은 한신에게 전권을 위임한 유방의 용인술은 적확한 인사의 배치와 신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잘 보여준다. 반면 신하에게 항상 의심의 날을 세운 항우는 자신의 유일한 책사 범증마저도 이간계에 속아 내쫓는 우를 범하고 만다. 번쾌를 위시하여 수없이 많은 맹장과 용장을 거느렸던 유방과는 달리 이름에 꼽힐 장수로 고작 용저와 종리매뿐이었던 항우의 초라한 인재풀은 사람을 다루는 기술에서의 두 영웅의 대극적 차이를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포용력에서도 항우는 유방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항우는 절대로 항복한 군사들을 살려주지 않았다. 또한 정복한 땅의 백성들을 도륙하고 탄압하는 병사들의 잔악함을 애써 외면하곤 했다. 실례로 항복한 진군秦軍 20만을 신안에서 생매장한 사건은 항우의 비포용성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승리 후 정복한 땅의 군사와 백성들을 여차없이 생매장시키는 항우의 잔인함은 훗날 중국대륙의 모든 제후국과 백성들이 자신을 외면해버리는 업보가 되기도 한다. 반면 항복한 장졸은 흔쾌히 받아 주고, 타지 백성들에 대한 약탈과 강도를 엄히 다스렸던, 그리하여 민심을 얻을 수 있었던 유방의 덕은 천자가 되어 제국을 건설하는 토대가 된다.

  전쟁을 보는 시야에 있어서도 유방과 항우는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기실 전투력에 있어서 유방은 항우를 당해내지 못했다. 굳센 강동병 8,000명을 주축으로 한 항우의 초군은 초한전쟁의 최후인 '해하垓下전투'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무적불패의 군사들이었다. 거록에서 유민군軍 5만으로 왕리가 이끄는 진나라 대군 20만을 오래된 기왓장 부수듯 쳐부수었고, 수수가에서는 정병 3만으로 유방이 이끄는 다섯 제후의 56만 대군을 깨뜨려 그 시체로 강물을 막은 게 항우였다. '집중'과 '속도'로 갈음되는 항우의 고도의 전투력은 오강烏江에서 자신의 목이 떨어지기 전까지 매번 유방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지적 의미의 '전투'에 한했을 뿐이다. '전쟁'이라는 의미에서 보다 길고 넓게 시야를 고도화하는 안목에는 유방이 한 수 위였다. 중원의 지도를 넓게 훑으면서 도읍지 역양轢陽을 소하에게 맡긴 것은 물론 제왕 한신과 양왕 팽월을 넓게 분포시켜 항우의 근거지를 조이며 뒷날의 싹을 자른 것은 넓은 시야로 초한전쟁을 바라보고 있는 유방의 높은 안목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전투에서는 이기고 전쟁에서는 진 패왕 항우.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리라.

  물론 유방의 단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방 또한 적잖은 실수와 소인배와 같은 행동으로 어려움에 빠질 때가 많았다. 오강에서 항우를 죽이고 초나라를 평정, 중국대륙을 통일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의 유방에 대한 아쉬움은 차치하자. 승리한 자의 승리하기까지의 역사적 기록은 이미 승리 그 자체로 용서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제위에 오른 뒤 유방이 보인 신하에 대한 지나친 의심과 핍박, 소위 '공신억멸책功臣抑滅策'으로 불리는 무자비한 그의 뒷모습이다. 더욱이 황후 여태후의 조작에 의해 자행된 한신의 죽임과 유방 사후 전개되는 피비린내 나는 외척의 살육전은 유방이 외척관리에 얼마나 미천했는지를 그대로 입증하는 사건들이다. 3대 황제 효문제孝文帝의 제위를 전후 외척인 여씨 일족이 모두 멸문지화를 당하기까지 제국의 아침은 너무 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 


[ 다른 사람들 ]

나는 『초한지』 전권을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인물로 한신韓信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엄밀히 따지면 초한전쟁은 유방과 항우의 대결 이전에 한신과 항우의 전투였다. 한왕 유방을 도와 수많은 전쟁을 치른 한신은 팽성에서의 어의없는 패전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 진적이 없는 최고의 장군이었다. 사실 한신이 없었더라면 유방은 결코 항우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한나라가 전국을 통일하고 유방이 천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최고의 일등공신은 단연 한신이다. 하지만 그러한 한신의 존재감을 유방은 위험하게 생각했고, 소소한 역모의 혐의로 그를 탄핵한다. 끝내 여태후의 계획된 음모에 의해 살해당한 한신의 종국은 그의 공과 능력과 충심을 감안하면 매우 서글프다. 큰 위인을 담을 수 있는 자라면 더 큰 위인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한신이라는 불세출의 영웅을 담아내지 못한 채 토사구팽兎死狗烹한 유방의 그릇이 작게만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의 애수일까. 만약 유방이 한신을 내치지 않고 끝까지 믿고 자신의 사후를 맡겼더라면 여태후를 위시한 외척세력에 의해 자행된 피비린내 나는 제국 초기의 혼란상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한신 외에도 유방 주변에는 불세출의 영웅들이 많았다. 내정과 보급을 담당하며 한군의 든든한 뒷심이 되어준 소하蕭何, 유방의 꾀주머니로 매 위기마다 좋은 계책으로 한군을 도운 장량張良과 진평陳平, 패현시절 때부터 따랐던 번쾌樊快와 노관盧튷, 한군 최초의 기마대장 관영灌嬰, 그 외 조참曹參, 주발周勃, 왕릉王陵 등 많은 영웅들이 유방을 도와 한제국을 건설했다. 유방은 소하를 매우 신임했다. 비록 전쟁터에서의 눈에 보이는 활약은 없었지만 소하가 뒤에서 도읍지 역양을 잘 관리하고 양식과 군병의 보급을 제때에 받쳐 주었기 때문에 유방은 마음 편히 항우와의 혈전에 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유방은 제국을 세우자마자 공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하를 상국으로 삼는다. 장량 또한 유방의 총애를 많이 받았는데 유방은 매사에 장량에게 물어보지 않는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을 물었고, 모든 것을 따랐다. 장량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장량에 대한 유방의 신임은 절대적이었다.

  이에 비해 항우의 사람으로 거론할 만한 이는 딱히 범증范增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마저도 마지막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항우의 지나친 의심병으로 인해 내쫓겨 죽게 된 비운의 인물이다. 항우의 삼촌인 무신군 항량을 주군으로 섬길 때부터 범증은 초한지 내 최고의 책략가라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다. '장계취계將計就計(적의 계책을 미리 알아채고 그 계책을 역이용하는 전술)'의 전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범증은 초나라의 초중반 역사에서 찬란한 활약을 보여준다. 항량은 범증의 말을 잘 따라서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는 무패를 이어간다. 항우도 처음에는 범증을 '아부'라 부르며 그의 계책과 조언을 잘 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군왕으로서의 자신감과 교만이 뒤섞여 점차 범증의 책략을 귀기울이지 않는다. 한신을 아끼라는 범증의 말을 무시해서 유방에게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홍문의 잔치에서도 범증의 조언을 듣지 않고 유방을 살려보내 훗날 천추의 한이 되기도 한다. 결국 진평의 이간계에 속아 범증을 내치고 죽게끔 만드는 항우. 만약 범증이 끝까지 살아서 항우를 보필했더라면 초한의 주인을 결정지었던 해하전투의 향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
이문열 ]

언제부터인가 내 문학을 조여 오던 묵살(默殺)의 카르텔은 1990년대 말에 이르러 일방적인 단죄의 선고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어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한국판 홍위병들이 그 선고의 어설픈 집행자로서 내 문학의 장례식을 되풀이 거행하자 나도 격렬하게 응전하였다. 그러나 득세하는 인터넷 대자보의 홍수 속에 허우적거리며 나날이 괴물이 되어 가던 나는 갈수록 더 흉흉해지는 전의(戰意)만큼이나 주체 못할 피로와 무력감에 빠져 들었다.   <p. 21, 글머리에> 

  1권 '글머리에'에 소개된 이문열 자신의 고백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적들과의 싸움에서 피로와 무력감을 느낀 작가 이문열. 그는 이를 극복키 위해 중국 고전문학으로의 도피를 실행했다. 이미 『삼국지』와 『수호지』의 평역을 통해 문학적 긴장으로부터의 도피를 감행했던 그는 동일한 의미의 연장으로 『초한지』를 손에 잡았다. 요컨대 고단한 한 세월을 넘겨 보려는 자신의 의지를 중국 최고의 고전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작업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그의 작가로서의 기백과 강단은 한 소설가의 지독한 고독과 번민, 문학적 긴장과의 싸움, 이에 대한 회복과 열정에 대한 의지가 충만히 담겨 있다.

  현재 이문열은 다음 작품을 고민 중이라고 한다. 『초한지』 이후 한국의 역사물을 쓰고 싶다는 작가 이문열. 
  "1980년대 이야기는 예전부터 구상했었지만 아직 쓰지 못했는데 이 이야기가 지금도 유효할지 의문이 드네요. 그 밖에 새롭게 생긴 쓰고 싶은 이야기도 있구요. 어떤 것을 우선순위로 할 지 아직도 고민 중입니다." 
  그의 고민이 빨리 끝나 좋은 작품으로 독자를 찾아가길 바란다. 더욱이 문학 외적의 공간에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설가로서의 문학적 존재감으로 승부하여 자신의 피로와 무력감을 회복하기를 진심으로 갈구한다.


[ 에필로그 ]

나라가 시끄럽다. 오랜 기간 동안 대한민국은 리더십의 부재에 시달려 오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와 국회는 국민의 신임을 얻는 데 실패하고 있다. '믿을 수 없는 대통령', '일 못하는 정부', '싸움쟁이 국회'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위정자들의 현주소는 많은 국민들을 힘들고 답답하게 한다. 어떤 나라는 대통령을 화폐에 인쇄하여 기념하고, 또 어떤 나라는 국회를 가장 신뢰하는 집단으로 국민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외계에서 일어난 꿈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때에 위기에 봉착한 국가적 리더십을 점검하고, 민심에 경청하며, 국민을 통합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리라.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했던가. 새것과 함께 옛것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과거의 실패와 성공을 반추하며 현재를 냉철히 분석하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며, 꿈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하는 힘이 필요하다.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했던 시기에 등장하여 서로 상반된 리더십으로 역사의 인과성을 결정지은 두 영웅의 이야기는 2000여 년이 지난 작금의 시대에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결국 무엇이 승리하고, 무엇이 강국을 건설하며, 무엇이 백성들을 행복하게 하는지를.

  장엄하고도 장중한 초한의 역사를 담은 중국 불멸의 고전 『초한지』의 존재성을 곱씹으며 리더십과 소통의 부재에 시달리며 번민하는 21세기 대한민국 현주소의 희망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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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최근 서평의 평점에 일관성을 잃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비록 프로는 아니지만 아마추어 독자로서 읽은 책에 대한 호오를 기준화시켜 별점을 매기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리라. 보통 범작은 세 개, 수작은 네 개, 걸작은 다섯 개를 부여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주관화다. 나름대로 짜다고 생각하는 내 별점지수는 최근 그 공정성과 균형성을 잃어 일관되지 못한 그래프를 그리곤 했다. 그러던 터에 앤드루 숀 그리어의 『막스 티볼리의 고백』을 만났다. 이 한 권의 감동적인 소설은 최근 일관성을 잃어가던 내 별점지수를 다시 한 번 신중하게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여태까지 읽었던 수많은 책들의 별점을 하향평준화시키며 내 가슴의 설계도를 바꿔버렸다.  

  표지에 그려진 어린아이의 비쥬얼이 예사롭지 않다. 눈빛이 자못 강렬하다. 어린아이지만 결코 어린아이가 아닌 사람의 눈빛. 과연 저 눈빛은 무엇을 담고 있을까. 전면을 응시하고 있는 표지 속 아이의 눈빛은 장장 400페이지가 넘는 장대한 서사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내고 있다. 모든 외면적 뒤바뀜 속에서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한 남자의 지독한 사랑의 내면적 고독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 아이의 눈빛은 이 한 권의 소설이 어떤 감동을 선사할 지 암시하는 이미지 메타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한 남자의 고백의 이야기다. 평생을 사랑했던 한 여인에 대한 강렬한 사랑의 고백이자, 그 여인이 몰랐던 자신의 비밀에 대한 고백의 메시지이다. 소설 속 화자인 막스 티볼리는 일흔 살의 외모로 태어나 나이를 먹을수록 어려지는 운명을 타고난 비운의 인물이다. 그는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만나 죽을 때까지 사랑했던 여인 앨리스와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새미에게 편지의 형식으로 자신의 고백을 남긴다. 이야기의 뒷부분, 막스가 자신의 연인이었는지 모르는 앨리스와 아버지인지 모르는 새미의 모습을 목도하면서 그 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 담담히 고백하는 모습은 비극이면서도 행복이 존재하는 처절한 비극이다.  

  이야기는 총 4부로 가름된다. 각 부가 끝날 때마다 막스는 앨리스와의 이별을 겪는다. 만났다 헤어지고, 또 만났다 헤어지는 반복되는 막스와 앨리스의 굴곡진 사랑은 막스의 외모와 정신 수준이 일치하는 30대 중반에 이르러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죽도록 사랑한 여인과의 결혼에 성공하여 매일 함께 지낼 수 있었던 막스는 얼마나 기적같은 행복을 누렸을까. 하지만 그 행복도 몇 년을 유지하지 못한 채 앨리스가 다른 남자에게 떠나면서 또다시 비극의 곡선으로 바뀌게 된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어린아이의 몸으로 평생지기 친구 휴이와 함께 앨리스와 새미 앞에 나타나는 막스. 그리고 이어지는 뒷부분의 가슴 아픈 비극적 이야기는 지독하기 그지없는 한 남자의 사랑의 테마이기에 가슴이 메어진다. 

  소설 속에는 앨리스에 대한 막스의 굵직한 사랑의 방향성 외에도 두 가지 사랑의 방향이 함께 존재한다. 평생지기 친구로서 막스에 대한 우정과 의리를 끝내 완성했던 휴이의 막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앨리스의 첫사랑으로 매우 희미하게 서사 속에서 꿈틀거리는 휴이에 대한 앨리스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친구 막스를 향한 휴이의 사랑은 일생토록 흔들림 없이 이어지다가 마지막 자신의 죽음으로써 집대성시킨다. 마지막 휴이의 자살은 친구 막스가 앨리스와 새미 곁에서 일생의 말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희생의 통로가 되었다는 점에서 웅숭깊은 사랑의 진수를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육체적 외모가 거꾸로 흘러가는 어리둥절한 소재를 갖고 이토록 가슴 저린 서사를 완성시킨 작가의 연금술이 인상깊다. 작가는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랑의 본질은 시간의 구속성 위에 있는 상위 가치라는 것을. 세세하게 짜여진 시간의 체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구속됨은 인간 스스로 그렇게 되어진 것이다. 인간을 제외한 그 어떤 존재도 시간의 흐름을 구분짓는 경계를 허락하지 않았다. 영원하면서도 도도하게 흐르는 시간의 움직임 속에서 과연 우리네 인간들의 인생은 어떻게 변하고 요동치고 있는 것일까. 이 소설의 웅숭깊은 사랑의 테마는 이와 같은 소중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져주고 있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이 있다. 흔히 범상치 않은 로맨스를 이뤄가는 연인들에게 사용되는 문장이지만 이토록 사랑의 본질을 잘 드러낸 표현도 드물다. 진정한 사랑에는 국경은 물론 시간도 없고, 과학도 없으며, 논리와 이성도 없다. 사랑은 사랑 그 자체다. 사랑의 내면성은 그 어떤 외연적 요소들의 침입을 거부한다. 만약 사랑이라는 우주의 위대한 본질적 가치가 다른 비본질적 분자들에 의해 흐려졌다면 신은 결코 인간이 되지 않았을 것이며,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은 '모성애'라는 아가페적 현현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 그것은 사랑 그 자체로서 완전하다. 

  시간과 외모를 위시한 수많은 외연적 상황의 변화 속에서도 끝까지 한 여인을 바라보고 기다리며 갈증한 막스의 사랑이 심히 지독하다. 아주 색다른 이야기로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테마를 들려준 앤드루 숀 그리어의 작업에 내 머리는 잠시 정지했고, 내 가슴은 다른 설계도로 수정되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존 업다이크는 이 소설의 홍보문구에 매우 적확한 용어를 사용했다. 그것은 바로 <매혹>. 유려한 말솜씨와 화려한 문체로 전개되는 한 남자의 뒤틀린 인생 이야기 『막스 티볼리의 고백』. 이 소설은 심히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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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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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없음. 읽지 않은 분이 읽어도 무방한 서평임. 

M. 나이트 샤말란이라는 인도 출신의 헐리웃 영화감독이 있다. 1999년 《식스 센스》라는 영화로 전세계 수많은 영화팬들의 뒤통수를 때렸던 바로 그 감독이다. 그가 만든 영화는 관객과 두뇌게임을 벌이며 의문의 인물과 사건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생각지 않은 마지막 반전을 한 방으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식스 센스》 이후의 작품에서는 흥행과 평단에서 모두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나름의 브랜드를 갖고 영화를 만드는 그를 나는 좋아한다.  

  《식스 센스》의 성공 이후 세계 영화계에서 반전 열풍은 결코 녹록지 않아 왔다. 같은 해에 제작된 《유주얼 서스펙트》를 비롯하여 이후 만들어진 수많은 반전(轉)영화들은 세계 영화팬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더욱이 이러한 '반전 신드롬'은 한국 영화계에도 영향을 미쳐 《올드보이》라는 불세출의 명작을 탄생시키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호기심'과 '놀라움', 그리고 '신선함'을 갈망하는 인간 본성의 연장선상에서 반전의 카타르시스는 존재한다. 

  비단 영화계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반전은 흥미를 유발시키는 좋은 장치가 된다. 최근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인 『용의자 X의 헌신』을 좋은 느낌으로 읽었다. 공포와 미스터리는 여름에 만나야 제맛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던가. 이에 독자를 우롱(?)하는 미스터리 소설을 몇 권 읽어보길 소원했고, 절대 다수의 추천에 의해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내 손에 들어왔다. 이 한 권의 미스터리 소설은 미드계의 '24시'와 같은 대표성으로 내게 다가왔던 것이다. 

  미스터리물을 만날 때의 공식이란 게 있다. 절대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기대가 크면 클수록 마지막은 허망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거의 대부분의 반전물이 갖는 속성이다. 하지만 몇몇 범상치 않은 작품은 기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의 결과를 선사하는 경우가 있다. 범인은 누구일까, 어떤 반전일까, 하며 고도의 집중력으로 읽어 내려가지만 생각지 않은 곳에서 터지는 이야기의 전복은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잔잔한 멜로풍이 물씬 풍기는 제목과 표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내게 기대했던 것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컴퓨터를 가르치고, 경비일을 하며, 헬스클럽에서 몸 만드는 것이 취미인 나루세 마사토라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느날 그는 지하철역에서 한 여인이 철도로 뛰어드는 것을 목격한다. 그 여인의 이름은 아사미야 사쿠라. 나루세는 사쿠라의 자살을 저지하며 그녀의 생명을 건져올린다. 우연으로 만난 두 남녀는 서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한편 나루세의 후배 기요시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아이코가 자못 걱정된다. 며칠동안 헬스클럽에서 얼굴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코가 걱정된 기요시는 선배 나루세를 데리고 그녀의 집에 찾아간다. 그곳에서 아이코의 할아버지가 사망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고자 나루세가 나선다. 과거 젊은 시절 탐정의 삶을 꿈궜던 자신의 모습을 재발현시키면서.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실타래와 같은 인물과 사건의 엮어짐. 도대체 사건의 본질은 무엇일까.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기본적으로 매우 흥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범인의 존재, 기억의 불확실성 등의 소재로 일관하는 1차원 수준의 평범한 추리소설을 거부한다. 작가 우타노 쇼고는 발군의 '서술 트릭'으로 독자를 놀려준다. 사건의 결과를 알기 전에는 절대로 인지할 수 없는 반전의 복선들을 이야기 곳곳에 배치한다. 소설의 마지막, 주인공 나루세와 사쿠라의 내밀하게 가려진 현재성이 밝혀지면서 여태껏 흘러왔던 모든 이야기의 흐름과 사건의 연결고리는 정리되기에 이른다.  

  제목이 독특하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라는 제목은 소설의 서사를 생각할 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표지에 그려진 한 여인의 그로테스크한 모습 또한 내용과의 특별한 상관성과 우의성을 연결짓지 못한다. 제목은 무얼 말하고 있는 것이며, 표지그림은 무엇을 이미지화한 것일까. 어쩌면 작가 우타노 쇼고는 소설의 첫장을 열기 전부터 독자에게 트릭을 암시한 것은 아닐까. 하여간 참 재미있는 작가다. 

  우타노 쇼고는 이 소설을 통해 처음 만났다. 꽤 수준높은 트릭을 선보인 그의 실력을 감안하자면, 국내에 그리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닌 듯싶다. 일본 내 '신본격 미스터리'의 1세대 작가라는 그의 외연적 존재성은 차치하더라도 확실히 뛰어난 이야기꾼임은 틀림없다. 무더워지는 여름날, 잘 다듬어진 추리소설에 갈증을 느끼며 만난 우타노 쇼고. 그의 다른 작품을 만나볼 기회를 기대하며 그에게 속았던 '쾌감'을 마음속에 잘 안착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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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미국의 역사
아루카 나츠키.유이 다이자부로 지음, 양영철 옮김 / 삼양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나라가 시끄럽다. 매일 아침마다 뉴스와 신문은 전날 밤 광화문 앞에 몇 만명이 모였고,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일면 탑으로 보도한다. 정부는 무능했고, 국민들은 화가 났다. 출범한 지 불과 100일밖에 되지 않은 정부가 십만이 넘는 군중을 도시의 중심으로 나오게 한 근본적인 이유는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의 협상에 있어 민심을 외면하고, 더욱이 극도의 아마추어리즘으로 일관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정부는 미국을 너무 얕잡아 봤다. 어쩌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취임 극초반기의 민심 이반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특질과 속성에 많은 부분 맞닿아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미국과 관련된 민심의 혼란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국내에서만 발생하는 일은 더욱 아니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미군에 의해 발생한 효순이·미선이 장갑차 사건은 수많은 군중을 시청 앞으로 모이게 했고, 아직도 상반된 평가가 잇따르는 한미FTA 협상 타결 후에도 적잖은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유럽을 위시한 서구 선진국에서도 반미시위의 규모는 결코 녹록지 않다. 특히 아랍권에서의 그것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이며 강렬하기도 하다. 20세기 후반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세계 도처에서의 안티 물결은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된 세계 초강대국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쉬운 질문이면서도 두세번 곱씹으면 결코 만만치 않은 질문이다. 밝음과 어두움이 대극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의 나라, 인권의 유토피아, 장애인들의 천국, 민주주의의 전도사 등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로 불리는 미국의 헤게모니는 어느덧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는 해석이 학자들 사이에서 다수설로 일치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급부상하며 세계 제일의 패권국가가 된 미국은 자국 내외의 많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 모습을 바꿔가고 있다. 꿈과 기회의 국가라는 이면에는 세계 제일의 양극화 사회가 존재하고, 자유와 인권의 이면에는 총기사고를 위시한 각종 범죄가 도사리는 불안정한 사회가 존재하며, 평화와 사랑을 지향하는 정신적 가치의 이면에는 석유의 이권을 챙기기 위한 전쟁제국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제대로 알고 연구해야만 흔들리고 있는 미국의 헤게모니에서 자유로울 수 있음은 자명하다. 미국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며, 연구할 때만이 불완전한 미국 주도의 글로벌리제이션에서 살아남는 자생적 길임을 단언한다. 

  현재 미국 관련 도서는 수많이 출간되었고 또 출간되고 있다. 주류역사를 초점으로 그저 사실에만 입각한 책이 있는가 하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각 영역에서 미시적인 관찰을 보여준 책도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혼란한 미국의 현재성을 분석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책도 쉽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두 명의 일본 지식인이 집필한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미국의 역사』는 230년의 미국사를 주류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시간의 흐름이 아닌 몇가지 주제로 카테고리화해 미국사를 서술하고 있어 흥미롭다. 

  사실 미국역사에 대한 상식적 수준의 개괄을 정리한 도서는 서점에 수없이 많다. 이 책의 경우도 미국역사의 객관적 서술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저자의 주관성은 철저히 배제된 채 미국의 주류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해석'과 '변혁'이 아닌 그저 '반영'의 잣대로 미국사를 풀이하고 있다. 이 책의 강점이라면 바로 목적에 충분히 충실했다는 점이다.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부분을 알맞게 주제화하여 무난하게 책 속에 담아내고 있다. 마치 교과서를 읽는 것처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부분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강점은 일방적인 시간의 흐름이 아닌 21세기에 이슈가 되는 열다섯 개의 아이콘으로 카테고리화하여 미국사를 가름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시대에 가장 문제가 되는 '환경'을 위시하여 경제, 국민통합, 젠더(gender), 문화, 민주주의 등의 코드로 미국사를 서술한다. 각 페이지마다 등장하는 도판과 표, 그래프와 주석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저자의 세심한 배려이다. 게다가 각 파트가 끝날 때마다 '칼럼'과 '미국 역사 깊이 읽기'라는 코너로 내용을 부언하며 마무리한 점은 단연 깔끔하다. 

  하지만 저자의 주관적 '논설'이 결락된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이미 객관적으로 정리된 주류의 미국역사는 출판계뿐만 아니라 각종 미디어에서 많이 노출된 바 있다. 저자 나름의 미국사에 대한 견해와 비주류적 관점, 합리적인 비판의식 등이 언급되었다면 더욱 힘있는 인문서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이제 더이상 '미국'이라는 아이콘은 통일된 시각의 객관화로 공유하기에는 수없이 많은 스펙트럼으로 분화되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일본사람이었기에 일본 학계와 출판계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미국사를 기대했던 것은 애당초 무리였던 것이다.  

  지식인의 미국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건전한 비판은 대중의 안목을 넓혀줄 뿐만 아니라 균형있게 미국을 탐구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학문은 객관적 '사실'만을 지향하는 작업이 아니다. 학문의 종국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하고, 가장 좋은 최선의 세계로 <변혁>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닿아 있다. 230년의 미국사를 마치 잘 다듬어진 교과서를 보는 것인양 체계적으로 다룬 점은 돋보이나 조금 더 멀리 나가지 못한 아쉬움은 끝내 잔존한다. 하지만 괜찮다. 건전한 주관화와 진실된 용기는 제대로 된 <앎>을 전제하기 마련이며, 거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존재가치는 딱 그 즈음에 있다. 

  헤게모니가 흔들리고 있다 할지라도 아직까지는 미국은 세계 제일의 초강대국이다. 어마한 시장규모를 기반으로 한 경제력과 강력한 군사력, 그리고 타국이 쫓아갈 수 없는 문화의 힘은 아직 건재한 미국의 현재성을 드러내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시대는 급변하며, 영원한 제국은 일찍이 인류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미국의 과거를 학습하고, 현재를 분석하며, 미래를 전망하는 안목은 응당 필요한 작업이다. 비단 쇠고기나 FTA를 거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21세기 미국을 <정확히> 알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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