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욕망공화국 - 어느 청년백수의 날카로운 사회비평서
신승철 지음 / 해피스토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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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단 교훈을 얻는다거나 유희를 즐긴다거나 하는 등의 문학의 기능을 열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독서에는 반드시 목적이 따르게 마련이다. 독자는 시를 통해 아름다운 메타포의 세계 속으로 빠져 들며, 소설 속에서 다양한 인간탐구의 장에 노출되기도 한다. 인문학을 통해 인간 본연의 고전적 통찰을 이끌어내며, 자기계발서로부터 자신에게 결락된 부분을 확인하고 도전을 얻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수많은 독서의 방향은 결국 '나'를 인식하고, '너'를 이해하며, '우리'를 통찰하는 데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최근 사회비평서가 많이 출간되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부터 시작된 실질적 민주주의의 진보는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지나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그 질적 수준을 상향화해왔다. 한국사회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였던 국가보안법은 그 악한 기능과 본성을 잃어버린지 오래 되었고, 이제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대통령과 정부를 마음껏 비판해도 뒤탈을 받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이러한 괄목할 만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통해 신문과 책과 인터넷을 포함한 온갖 미디어는 자유의 만개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사회비평서의 범람 또한 바로 이러한 변화된 사회적 흐름의 연장에 기반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어느 백수청년의 날카로운 사회비평서'라는 재미있는 부제를 달고 있는 『대한민국 욕망공화국』은 부제 만큼이나 흥미있는 소재를 재료로 하여 한국사회의 단면을 말하는 책이다. 더욱 흥미있는 것은 바로 '욕망'이라는 코드로 한국사회를 비평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저자 신승철은 욕망의 코드로 21세기 한국사회를 맛깔나게 얘기한다. 

  저자는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적 담론을 끄집어낸다. 대마초 비범죄화, 폰섹스, 디카와 개인 블로그 문화, 휴대폰 사회, 얼짱 신드롬, 동성애, 그리고 최근 불거진 이명박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에 이르기까지 솔직하면서도 거친 문장으로 독자와 호흡하길 원하고 있다. 총 36가지의 주제로 우리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각종 문화와 습속, 오류와 모순에 대해 저자 자신의 생각을 '욕망'의 코드로 풀어내고 있어 자못 신선하고 흥미롭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매우 날카롭게 소재를 추출해서 매우 솔직한 문장으로 사회를 비평하는 데 있다. 대마초, 섹스, 동성애 등 오픈하기 힘든 내밀한 소재들을 다분히 솔직하고 자신의 고백적 문체로 연결지어 얘기한다. 책장을 넘기면서 공감하고 웃음을 유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저자의 솔직한 접근 방식에 기인한 것이리라. 

  하지만 이런 강점에도 불구하고 중량감은 한없이 가볍기만 하다. 저자가 사회를 비평하는 수준이 고작 '반영'에 머물러 '해석'에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세계의 거울이자 증상인 책으로, 해석을 부인하고 그저 '사실'에 입각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해석을 통해 기존 세계를 비틀고 자기 세계를 만들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맞아. 정말 그래. 근데 어쩌라고?"라며 질문하는 독자의 독백에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날카롭다. 그리고 흥미있다. 그래서 공감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사회를 비평하기 위해 활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해석'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 얇은 사회비평서의 존재감은 바로 <거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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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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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어요? 그건 사실 끔찍하리만치 실망스러운 일이에요. 희미하게 반짝거렸던 것들이 주름과 악취로 번들거리면서 또렷하게 다가온다면 누군들 절망하지 않겠어요. 세상은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보다 멋이 떨어지죠.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지 않으면 사는 것은 상처의 연속일 거예요.   <p. 7>

  제 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달의 바다』의 첫 문단이다. 독자에게 꿈과 현실의 차이를 질문하며 서사를 시작하는 이 얇은 소설은 간결한 구성과 군더더기 없는 문체가 자못 인상적이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소설가 조경란은 "만약 당신이 위로받고 싶고, 생에 아직 희망이란 게 남아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다면 이 소설을 펼쳐 읽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경란의 호평대로 소설 『달의 바다』는 쉬운 문장을 통해 '위로'와 '희망'에 대한 사유를 이끌어내는 매우 잘 다듬어진 소설이다. 

  소설의 구성이 독특하다. 고모가 할머니에게 쓴 일곱 통의 편지와 소설 속 '나'인 은미의 열두 편의 일화가 교차되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고모의 편지는 '이상'을, 은미의 일화는 '현실'을 내포한다. 또한 진실이 아닌 고모의 편지는 현실 속에서 괴로워 하는 조카 은미의 꿈과 미래를 우의하고 있기도 하다. 

  기자 입사시험에서 매번 탈락하는 은미는 꿈과 현실의 불일치에 대한 심각한 번민에 빠진다. 이백 알의 감기약을 먹고 자살하려는 계획까지 세우는 은미에게 삶의 희망이란 없어 보인다. 그러던 어느날 미국에서 우주비행사로 살고 있는 고모를 만나고 오라는 할머니의 부탁을 받는다. 이에 친구 민이와 함께 미국으로 떠나게 되고, 그 곳에서 십육 년만의 고모와의 재회가 이루어진다. 과연 우주비행사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며, 고모는 어떤 우주비행사일까. 오랜 시간 동안 모르고 있던 고모의 삶에 대해 은미는 하나하나씩 알아가게 된다. 

  자신과 가족들이 고모에 대해 알고 있던 사항들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 은미는 잠시 혼란스럽다. 하지만 바로 고모를 이해하게 된다. 고모의 꿈, 결혼, 실패, 열정. 굴곡진 고모의 삶을 반추하며 은미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확립화한다. 삶의 진짜 이야기는 '긍정'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고결한 진리를 상기하면서. 

  이상의 편지와 현실의 일화가 구분되어 교차되는 이 소설은 문학적 느낌과 문체 또한 이분화된다. 고모의 편지에는 정확하고 섬세하게 우주선의 모습과 우주인의 경험들을 묘사해놓는다. 더욱이 수준높은 문학적 서정성으로 풀어내고 있어 활자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반면 은미의 일화는 그저 평범한 일상의 기록으로서만 소설 속에 존재할 뿐이다. 요컨대 『달의 바다』는 일상적 스토리 라인의 평범함과 소설의 메시지를 온전히 내포하고 있는 편지의 아름다운 문장이 적확하게 교차되며 조합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 나는 동일한 행동을 한 가지 했다. 표지에 우주복을 입고 있는 여인의 그로테스크한 눈매를 응시한 것이다. 저 표정은, 아니 저 눈빛은 과연 무엇을 담고 있을까. 어쩌면 표지에 그려진 여인의 묘한 눈빛은 꿈과 현실, 삶과 희망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긍정>의 자아상을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지 않을까. 더 나아가 고모의 꿈과 현실이 은미 자신의 미래와 조합되는 함의를 담아낸 가장 적확한 표정일 수도 있으리라.  

  소설의 막장을 덮은 후 '꿈'에 대해 새삼 사유했다. 꿈이 아름다울 수 있는 전제는 이루지 못하는 현실과 이루고자 하는 과정이 빚어내는 신비한 아이러니에 있다. 꿈은 성취되고 나면 더 이상 꿈이 아니다. 꿈이 현실이 될 때 꿈의 신비성은 사라진다. 꿈이 있다는 것 만으로, 꿈을 향한 일관된 방향성만으로도 서글픈 현실은 희망찬 미래상으로 타임워프되지 않을까.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하늘의 수많은 별들처럼 말이다. 

  어려운 언어를 사용한다고 잘 쓴 글이 아니며, 쉬운 문장이 언제나 가벼운 글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다. 쉽고 편안한 활자로 잔잔하고 아름다운 서사를 만들어낸 작가 정한아의 존재성에 박수를 보낸다. 벌써부터 그녀의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것을 보면 소설 『달의 바다』는 분명 내 가슴에 잘 안착한 듯하다.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달의 바닷가에 제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밤하늘의 저 먼 데를 쳐다보면 아름답고 둥근 행성 한구속에서 엄마의 딸이 반짝, 하고 빛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때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죠. 진짜 이야기는 긍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언제나 엄마가 말씀해주셨잖아요?   <p.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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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프로젝트 - 제1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유광수 지음 / 김영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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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없음.
 

소설과 상상력은 어떤 관계일까. 인터넷을 검색한 결과 '소설'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 산문체의 문학 양식." 소설은 작가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상상력이 배제된 소설은 생각할 수 없다. 소설은 상상력으로 신윤복을 여자로 만들고, 예수의 삶을 전복시키며, 어린아이를 마법사로 만들어낸다. 인간이 창조한 수많은 소설작품들은 작가적 상상력의 집약으로 문학의 역사를 이루어왔다. 

  한국문단의 위기라고 아우성이다.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평단과 대중의 다양한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작품성'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측면으로 원인을 미시화하면 소재의 한계와 작가적 상상력의 협소함에 기인하고 있음이 대부분의 통설로 일치한다. 감성과 문체는 뛰어나지만 상상력의 부재로 신선하고 폭넓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문학적 자존심에 맞닿아 있는 것이 한국문단의 현주소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질주하는 서사', '장쾌한 스케일', '예측불허의 반전과 스릴', '세계문학을 압도할 코리안 팩션의 당찬 등장!' 등 강렬한 문구의 띠지를 두르고 있는 역사추리소설 『진시황 프로젝트』는 이러한 한국문학의 상상력 부재의 현실로부터 스토리텔링의 부흥을 예고하는 거침없는 상상력, 야심만만한 기획이 집약된 작품임을 독자에게 러브콜한다. 사실 이러한 부담스러운 홍보문구를 목도하는 것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제목에서 뿜어내는 포스가 워낙 강렬한지라, 더욱이 평단과 대중의 평이 대부분 호평으로 일관되고 있어 나름의 기대심리가 증폭되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1억원 고료 제 1회 대한민국 뉴웨이브문학상 수상작의 내실은 과연 어떠할까, 하는 가슴두근거림을 절제하며 두꺼운 책의 첫장을 넘기게 된다. 

  광화문 앞에서 어느 중년 남자가 단칼에 목이 잘리는 사건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대낮에 도심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살인을 시작으로 이야기의 흐름은 일파만파 전개된다. 종로경찰서 강력8반의 형사들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야기의 실타래는 엉켰다 풀렸다를 반복한다. 한중일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방대한 이야기는 높은 몰입도로 독자의 가독력을 가속화한다. 

  이 소설은 역사추리소설이다. 현대를 배경으로 과거의 역사를 재탐구한다. 조선이 망국에 길에 접어들 즈음에 발생했던 왕후(명성왕후) 시해사건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중국사 최초의 통일제국을 이루었던 진시황제의 존재감과 정신을 코드화한다. 여기에 2차 세계대전으로 패전국이 된 일본의 제국적 야심을 접목시켜 동아시아 3국의 미묘한 긴장감을 바탕에 깔면서 서사의 흐름을 조절한다.  

  미스테리물답게 강력한 이야기의 전복이 매우 흥미롭다. 두 번의 반전은 타이밍과 전복효과에서 거대한 플롯의 완성도를 잘 뒷받침한다. 첫 번째 반전은 큰 파동은 아니면서도 다음에 이어질 보다 강력한 반전을 위한 안내가 된다. 두 번째 반전은 범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의 고착을 전면으로 뒤엎기에 강렬하다. 적절한 이야기의 전복이 미스테리 서사의 완성도를 보기 좋게 만들어낸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진시황 프로젝트』의 그것은 단연 높은 수준으로 서사 속에 존재하고 있다. 

  소설의 막장을 덮은 후 남는 잔변감이 있다. 소설 속에는 두 가지 사랑의 방향이 존재한다. 하나의 방향성은 명징하게 제시되고, 다른 하나는 아리송하게 제시된다. 자신에 대한 방형사의 오롯한 사랑을 '스승'과 '제자'라는 원죄성 부여로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는 강형사의 고뇌와 번민. 또 다른 사제간이었던 도빈과 소연의 사랑도 자못 인상깊다. 과연 소연은 도빈을 사랑했던 것일까. 아니면 도빈이 죽기 전에 고백했던 것처럼 다른 남자(?)를 사랑했던 것일까. 두 가지 사랑의 방향성을 머리속에서 재정렬해보게 된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 소설은 무거운 역사적 담론을 관통한다. 동아시아 3국의 고·근대사의 아픔과 재현의 꿈을 21C의 시대상에 풀어놓는다. 하지만 각 나라마다 갖고 있는 민족주의의 지나친 절대화에 대한 오류와 모순을 꼬집는다. 세계문학의 흐름이 개인적, 민족적, 역사적, 사회적 '다양성'을 넓혀가고 있다는 점을 직시한다면 소설 『진시황 프로젝트』는 바로 이러한 범세계적 주제관에 맞닿아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탁환, 성서제를 위시한 9명의 심사위원회는 이 소설을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급변하는 시대상황과 혼란스러운 세계정서를 역사의 거울에 비추어보며, 현재의 문제점을 성찰하고 미래의 비전을 예시하는 중량감 있는 역사추리소설이라고 호평했다. 문화예술의 어떤 장르건 평단과 대중의 평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설 뒷편에 수록된 수상작 심사평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 자신을 목도하면서 이 소설을 읽은 내 느낌의 성질이 어떠한 것인지를 명확히 인지하게 된다. 

  그저 그런 진부한 소재와 단선적 상상력으로 배고픔을 겪고 있는 한국문학에 『진시황 프로젝트』는 분명 흥미있는 등장이다. 탄탄한 구성과 거대한 플롯, 소설적 재미와 역사적 무게감까지 아우르고 있는 이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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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1 - 짧은 제국의 황혼, 이문열의 史記 이야기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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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문열의 『초한지』의 첫 편에 손을 댔다. 자신을 비워 세상을 담아낸 큰 그릇 유방과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천하를 뒤덮은 영웅 항우. 두 영웅이 중국 대륙의 패권을 위해 겨룬 난세의 영웅 이야기가 이문열의 손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2002년부터 4년 동안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이문열의 『초한지』는 많은 독자들의 애탄 기다림을 유발시키며 금년 10권으로 완간되었다. 이에 이미 『삼국지』와 『수호지』를 통해 이문열 특유의 이야기 재구성 능력에 적잖이 경도된 나는 금번 초한지의 첫 권을 펼치자마자 한달음의 속도로 막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목의 부제 '짧은 제국의 황혼'은 1편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를 명확하게 함의한다. 혼란했던 중국의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거대 제국을 탄생시킨 진시황제의 치세와 그 이후 전개되는 또 다른 성질의 혼란상을 그리고 있다. 영웅은 난세에 꽃핀다고 했던가. 훗날 천하를 두고 다투는 유방과 항우, 그리고 둘을 도와 영웅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수많은 사나이들의 소개가 흥미있게 펼쳐진다. 

  『초한지』의 본 이야기의 흥미로움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책의 전면 '글머리에'에 남긴 이문열 자신의 소회다. 

언제부터인가 내 문학을 조여 오던 묵살(默殺)의 카르텔은 1990년대 말에 이르러 일방적인 단죄의 선고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어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한국판 홍위병들이 그 선고의 어설픈 집행자로서 내 문학의 장례식을 되풀이 거행하자 나도 격렬하게 응전하였다. 그러나 득세하는 인터넷 대자보의 홍수 속에 허우적거리며 나날이 괴물이 되어 가던 나는 갈수록 더 흉흉해지는 전의(戰意)만큼이나 주체 못할 피로와 무력감에 빠져 들었다.   <p. 21, 글머리에>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의 많은 적들과의 싸움에서 피로와 무력감을 느낀 작가 이문열. 그는 이를 극복키 위해 중국 고전문학으로의 도피를 실행한다. 이미 『삼국지』와 『수호지』의 평역을 통해 문학적 긴장으로부터의 도피를 감행했던 그는 동일한 의미의 연장으로 『초한지』를 손에 잡는다. 요컨대 고단한 한 세월을 넘겨 보려는 자신의 의지를 중국 최고의 고전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작업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그의 작가로서의 기백과 강단은 한 소설가의 지독한 고독과 번민, 문학적 긴장과의 싸움, 이에 대한 회복과 열정에 대한 의지가 충만히 담겨 있어 독자의 가슴을 파고 든다.

  이문열의 내적 고뇌가 철저하게 반영된 야심작 『초한지』. 시리즈의 열 편 중에서 단 한 권의 막장만을 확인했지만 이문열 특유의 문체와 이야기 전개 능력은 단연 압권이다. 2편으로 연이어 계속해서 만나게 될 흥미진진한 중국 고대사를 생각하며 강렬한 기대감을 발산시킨다.

  『초한지』의 핵심 감상 포인트는 응당 유방과 항우의 리더십 차이일 것이다. 두 영웅의 지략과 용인술의 차이를 관조하면서 작금의 시대상에 견주어 보는 것은 매우 큰 흥미거리이다. 개인적인 능력에 있어 항우가 우위에 있었음은 대부분의 해석이 일치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능력이 리더십의 필요충분조건을 완성시킬 수 없음을 초한楚漢의 역사는 명징하게 교훈한다. 어수룩해 보이지만 그로 인해 훌륭한 책사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천하를 얻은 유방과 기세는 대단했지만 오만해서 실패했던 항우라는 두 인물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현실 리더십의 교훈을 되새기는 것은 『초한지』 감상의 백미리라.

  『초한지』가 뿜어내는 매력의 폭은 더욱 넓디 넓다. 두 주인을 도와 난세를 헤쳐 나가는 수많은 영웅 군상들의 활약을 보면서 가슴을 두근거리고 손에 땀을 쥔다. 장량, 한신, 범증, 소하 등 난세의 영웅들이 초한楚漢 쟁패의 주인공이 되어 거대한 서사 속에서 용솟음친다. 과연 2편부터 이어질 본격적인 영웅들의 이야기를 작가 이문열은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까. 1편을 한달음의 속도로 마무리한 이 미천한 독자는 장장 10권에 이르는 장중한 초한楚漢의 역사 속으로 침투한다.

"삼국지와 수호지는 제가 단순히 평역했던 것이에요. 반면 초한지는 제가 중국 역사에 관해서 스스로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했죠. 그래서 매우 애착이 가는 게 사실이에요."   - 작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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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
김현아 지음, 유순미 사진 / 호미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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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회사 업무로 인해 수원 영통 근처에 갔을 때였다. 그리 크지 않은 자그만 도로가 뻗어 있었는데 도로표지판에 '박지성로'로 명명되어 있었다. 2002년 월드컵 전후 비약적인 부흥으로 최고의 축구인생을 살고 있는, 더욱이 국익과 국가 브랜드에 큰 힘을 보태고 있는 축구선수 박지성에 대한 수원시와 시민들의 기념적 배려일 것이다. 사실 '박지성로' 외에도 유명한 도로명들에 과거 위인들의 이름이 사용된 것을 우리 주변에서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퇴계로, 세종로, 을지로, 충무로, 원효로 등등 인물과 관계된 도로와 지역명은 수없이 많다. 국가와 지역을 빛낸 인물을 기념하고, 그 사람의 존재성과 정신과 가치를 곱씹자는 데 아마도 그 의의가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인물과 지역의 관계는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도시들에서 더욱 많이 발견된다. 대부분 정치적 위인들에 한정된 국내와는 달리 외국의 그것은 문화와 예술의 영역에까지 폭넓게 반영되어 있다. 특히 유럽여행에서는 작가나 예술가의 생가를 방문하거나 그들의 이름을 딴 거리와 기념관을 목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프라하가 그렇고, 런던이 그러하며, 빈이 그렇다. 더욱이 잘츠부르크는 도시 전체가 모차르트를 기념하고 추억할 정도다. 한 인간이 태어났고, 어떻게 번영했으며,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산 증거가 보이지 않는 힘으로 그 지역에 존재하면서 수백, 아니 수천 년의 세월을 넘어 후세에까지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호미출판사의 『그 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는 이러한 지역과 사람과의 관계성을 기반으로 엮은 수필집이다. 1993년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김현아는 신라 천 년의 도시 경주에서부터 시인의 마을 해남까지 다섯 도시의 여행을 그 지역과 농밀한 관련성을 갖는 '여인코드'로 풀어낸다. <그 곳>에서 과연 <그 여자>들의 삶이 어떠했고, 어떤 존재성을 지니는지를 저자는 앎과 느낌과 논설로 독자에게 소개한다. 

  경주에서는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의 채취를 느끼고, 해남에서는 고정희 시인의 삶과 시를 사유한다. 강릉에서는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을 비교 천착하며, 수덕사에서는 나쁜 여자 나혜석의 삶에서 드러난 '신여성'의 의미를 해석한다. 부안에선 기생 매창의 삶과 시와 여성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더욱이 유교사회의 미덕화로 오랜 기간 동안 절제된 여성성을 고착해왔던 한국사회의 오류와 모순을 지적하며 과거 여성들의 용기와 기백을 상찬한다. 

  저자는 신라를 구한 애국충정의 대명사 박제상의 부인의 전설이 담긴 치술령곡을 전면에 배치한다. 나라를 위해 일본으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끝내 망부석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숨결과 정신을 치술령에서 읽어내는 저자의 감상은 자못 흥미롭다. 더욱이 박제상과 그 부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상 차이점을 언급하며 12세기와 13세기 후반의 시대적 배경의 해석과 평가절하된 망부석 설화의 재인식은 굉장히 인상깊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강릉을 대표하는 두 여인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에 대한 비교적 고찰이었다. 한 여인은 너무 과한 비판을, 한 여인은 너무 진한 찬사를 받았다는 점. 또한 한 여자는 너무 불행했고, 한 여자는 너무 완벽했다는 점. 그 차이점 속에서 두 여인의 유사한 공통점을 추출하는 저자의 관찰력은 많은 부분에서 공감적이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로서 글과 그림의 뛰어난 작품성을 갖고 있음에도 작품 자체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작금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소외된 평가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한 여자는 너무 음란하고 표절이라는 등의 시비로 비판을 받아왔고, 한 여자는 위대한 어머니로서만 부각될 뿐이었다. 본질이 아닌 비본질로 재단된 두 여인의 웅숭깊은 삶과 예술의 세계를 재천착하는 저자의 문장들은 오롯이 공감되며 흥미를 발산시킨다. 

  고정희 시인에 대한 저자의 강한 사랑도 눈길을 끈다. 기존의 남성적 문체를 거부하고 시적 혁명을 이끈 한 여성 시인에 대한 저자의 상찬은 시인의 마을 해남에서 그 채취와 정신을 음미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저자는 한 시인의 시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그 시인의 고향을 찾아가 봐야 한다고 말한 독일의 낭만주의 시인들의 명문장을 인용한다. 그리고 시인 고정희를 만들고 키운 남도의 땅과 남도의 공기와 남도의 바람을 느끼며 상념에 잠긴다. 이러한 저자의 감상은 한 예술가에 대한, 그리고 동일 여성으로서의 공감과 애정이 내재되어 있어 아름답다. 1980년대 한국시를 대표하는 시인 중 하나인 고정희의 존재감. 그것은 애초부터 해남에 있었고, 아직도 그곳에 존재하며, 저자의 경험과 느낌, 그리고 그녀의 활자 너머로 내게까지 온전히 전달되었다. 

  여행은 좋은 것이다. 더욱이 목적이 있는 여행은 더욱 힘있는 <좋음>을 여행자에게 선사한다. 과거 <그 곳>에 있었던 여자들의 삶과 예술과 사랑을 곱씹으며 여행이 주는 최고 수준의 <얻음>을 추출해내는 저자 김현아의 활자가 참 좋다. 한 지역과 한 여자에 대한 연관성, 그리고 아름다운 시를 통해 잔잔하고 공감가는 문장으로 엮어진 『그 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를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시공간의 간접적 일탈을 소원하는 독자들에게 살포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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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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