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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어요? 그건 사실 끔찍하리만치 실망스러운 일이에요. 희미하게 반짝거렸던 것들이 주름과 악취로 번들거리면서 또렷하게 다가온다면 누군들 절망하지 않겠어요. 세상은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보다 멋이 떨어지죠.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지 않으면 사는 것은 상처의 연속일 거예요. <p. 7>
제 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달의 바다』의 첫 문단이다. 독자에게 꿈과 현실의 차이를 질문하며 서사를 시작하는 이 얇은 소설은 간결한 구성과 군더더기 없는 문체가 자못 인상적이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소설가 조경란은 "만약 당신이 위로받고 싶고, 생에 아직 희망이란 게 남아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다면 이 소설을 펼쳐 읽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경란의 호평대로 소설 『달의 바다』는 쉬운 문장을 통해 '위로'와 '희망'에 대한 사유를 이끌어내는 매우 잘 다듬어진 소설이다.
소설의 구성이 독특하다. 고모가 할머니에게 쓴 일곱 통의 편지와 소설 속 '나'인 은미의 열두 편의 일화가 교차되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고모의 편지는 '이상'을, 은미의 일화는 '현실'을 내포한다. 또한 진실이 아닌 고모의 편지는 현실 속에서 괴로워 하는 조카 은미의 꿈과 미래를 우의하고 있기도 하다.
기자 입사시험에서 매번 탈락하는 은미는 꿈과 현실의 불일치에 대한 심각한 번민에 빠진다. 이백 알의 감기약을 먹고 자살하려는 계획까지 세우는 은미에게 삶의 희망이란 없어 보인다. 그러던 어느날 미국에서 우주비행사로 살고 있는 고모를 만나고 오라는 할머니의 부탁을 받는다. 이에 친구 민이와 함께 미국으로 떠나게 되고, 그 곳에서 십육 년만의 고모와의 재회가 이루어진다. 과연 우주비행사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며, 고모는 어떤 우주비행사일까. 오랜 시간 동안 모르고 있던 고모의 삶에 대해 은미는 하나하나씩 알아가게 된다.
자신과 가족들이 고모에 대해 알고 있던 사항들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 은미는 잠시 혼란스럽다. 하지만 바로 고모를 이해하게 된다. 고모의 꿈, 결혼, 실패, 열정. 굴곡진 고모의 삶을 반추하며 은미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확립화한다. 삶의 진짜 이야기는 '긍정'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고결한 진리를 상기하면서.
이상의 편지와 현실의 일화가 구분되어 교차되는 이 소설은 문학적 느낌과 문체 또한 이분화된다. 고모의 편지에는 정확하고 섬세하게 우주선의 모습과 우주인의 경험들을 묘사해놓는다. 더욱이 수준높은 문학적 서정성으로 풀어내고 있어 활자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반면 은미의 일화는 그저 평범한 일상의 기록으로서만 소설 속에 존재할 뿐이다. 요컨대 『달의 바다』는 일상적 스토리 라인의 평범함과 소설의 메시지를 온전히 내포하고 있는 편지의 아름다운 문장이 적확하게 교차되며 조합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 나는 동일한 행동을 한 가지 했다. 표지에 우주복을 입고 있는 여인의 그로테스크한 눈매를 응시한 것이다. 저 표정은, 아니 저 눈빛은 과연 무엇을 담고 있을까. 어쩌면 표지에 그려진 여인의 묘한 눈빛은 꿈과 현실, 삶과 희망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긍정>의 자아상을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지 않을까. 더 나아가 고모의 꿈과 현실이 은미 자신의 미래와 조합되는 함의를 담아낸 가장 적확한 표정일 수도 있으리라.
소설의 막장을 덮은 후 '꿈'에 대해 새삼 사유했다. 꿈이 아름다울 수 있는 전제는 이루지 못하는 현실과 이루고자 하는 과정이 빚어내는 신비한 아이러니에 있다. 꿈은 성취되고 나면 더 이상 꿈이 아니다. 꿈이 현실이 될 때 꿈의 신비성은 사라진다. 꿈이 있다는 것 만으로, 꿈을 향한 일관된 방향성만으로도 서글픈 현실은 희망찬 미래상으로 타임워프되지 않을까.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하늘의 수많은 별들처럼 말이다.
어려운 언어를 사용한다고 잘 쓴 글이 아니며, 쉬운 문장이 언제나 가벼운 글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다. 쉽고 편안한 활자로 잔잔하고 아름다운 서사를 만들어낸 작가 정한아의 존재성에 박수를 보낸다. 벌써부터 그녀의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것을 보면 소설 『달의 바다』는 분명 내 가슴에 잘 안착한 듯하다.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달의 바닷가에 제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밤하늘의 저 먼 데를 쳐다보면 아름답고 둥근 행성 한구속에서 엄마의 딸이 반짝, 하고 빛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때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죠. 진짜 이야기는 긍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언제나 엄마가 말씀해주셨잖아요? <p. 161>
Thanks to 빈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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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