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책의 숲에서 길을 찾다 - 중고생이 꼭 읽어야 할 추천도서 56 청소년 자기계발 시리즈 1
류대성 지음 / 인더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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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느 누구에게나 롤모델(role model)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분야와 위치에서 전범이 될만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스승이든 선배든 부모든 그 외 어떤 인물이든지 자신이 살아가는 카테고리에서 모범과 귀감이 될만한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세 사람 이상이 모이면 한 명 이상의 스승은 반드시 있다고 하지 않던가.

  책을 읽고 블로그에 서평을 남긴지 어느덧 3년이 넘었다. 책읽기의 완전함은 결국 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쓰는 것은 읽는 것의 되새김이자 완결이다. 읽는 것만으로 얻을 수 없는 공백을 쓰는 것은 채워준다. 인류의 수많은 책읽기 선배들이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想量을 완전한 독서의 삼위일체 조건으로 고백해온 이유가 분명히 있다.

  서평은 결국 읽히기 위해 존재하는 텍스트다. 타자의 읽힘을 전제하지 않는 서평은 없다. 객관과 주관이 호흡하되 종내 주관으로 마무리되는 게 서평의 특징이다. 온라인상에 범람하는 수많은 서평들을 읽으며 공감을 표하기도 하고 때로는 반대편에 서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종국 다양성이라는 보편적 가치 안에서 서로 소통되고 통합된다. 

  책을 읽고 블로그에 후기를 남기는 아마추어 리뷰어인 내게도 롤모델은 존재한다. 다수의 책을 읽고 깊이 사유하며 타자와 건전한 토론을 하는 리뷰어들은 모두 초라한 내 자신의 롤모델이 된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세계는 넓고 '뛰어남'은 많다. 많이 읽고 많이 쓰며 많이 생각하는 훌륭한 리뷰어들이 참으로 많다. 그들을 통해 내 책읽기와 글쓰기를 되돌아보고 점검하게 된다.

  2007년 네이버후드 어워드 책리뷰 부문 우승자 류대성 씨(네이버ID '인식의힘')도 그중 한 명이다. 오랫동안 그의 서평을 읽으며 책을 소개받고 글쓰기를 도전해왔다. 발군의 다독, 깊고 넓은 지성, 명쾌한 논리, 적절한 감성, 깔끔한 필력 등은 그가 국내 온라인상에서 가장 서평을 잘 쓰는 리뷰어라는 점을 입증한다. 그런 그가 책과 관련된 자신의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에 반가움이 앞섰다. 많이 반가웠고 적잖이 놀랐으며 실로 부러웠다.

  인터넷이 아닌 종이활자에 처음으로 인쇄하여 출간한 그의 첫 책 『청소년, 책의 숲에서 길을 찾다』는 역시나 '책'에 관한 책이다. 평소 책에 신세를 지고 고마움을 표해왔던 저자의 독서관대로 이 책은 책과 독서 전반에 걸친 다양한 안내와 진중한 사고를 담고 있다. 책의 구성은 간명하다. 1부는 저자가 선정한 56권의 서평이 분야별로 실려있고, 2부는 풍성한 독서를 위한 저자의 조언을 담고 있다. 

  저자는 총 여덟 개 분야에서 56권의 책을 소개한다. 문학과 인문, 역사와 인물, 경제와 예술, 철학과 종교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별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을 엄선하여 안내하고 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책들이 많이 눈에 띄지만 낯선 책들의 목록도 보인다. 책에 수록된 56권의 책 리스트를 보고 있노라면 저자가 책 선정에 얼마나 큰 고심을 했는지 가늠하게 된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분야별로 균형성 있게 선정한 점과 깊이와 시대성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을 선정한 점이 저자의 노고를 증명한다. 문학과 고전에서부터 철학과 글쓰기 관련 책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입맛과 개성이 살아있는 서평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적절한 분량 안에서 책읽기에 대한 직접적 조언을 담고 있는 점이다. 저자는 2부에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 선택 방법, 책읽는 노하우와 글쓰기의 필요성 등을 매우 깊이있고 실례적으로 조언한다. 더욱이 56권의 도서 外 책읽기에 도움을 주는 양서들을 선별 추천함으로써 풍성한 참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 책의 표지 전면에는 "중고생이 꼭 읽어야 할 추천도서 56"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문구처럼 청소년들에게 좋은 양서를 추천하고 건강한 독서를 위한 안내를 잘 담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을 읽어야 할 대상이 청소년으로 한정되지만은 않는다. 중고생은 물론 대학생과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과 계층이 읽어도 무리없이 폭넓고 수준있다. 가볍지 않고 적절한 깊이와 무게로 풍성하고 건강한 책읽기를 견인하는 힘있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블로그 제목을 책 말미에 거론하며 끝맺음을 한다. 그는 강조한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라는 것을. 블로거들 사이에서 그를 수식하는 유명한 문구가 된 이 말은 사실 매우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역설했듯이 세계를 '해석'하는 일은 1차원적이며 한물간 과거형이다. 이제 요구되는 것은 '변혁'이다. 우리의 앎과 열정이 고작 머릿속에 함몰된 것이라면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 가슴으로 알고 느끼며 다스리는 지성과 열정이야말로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의 진본이다. 책은 바로 그것을 위해 존재한다.

  서평을 정리하자. 참으로 건강한 책이다. 독서 방법론은 이권우의 책처럼 실재적이고 서평의 질은 유시민의 책 못지 않다. 우리 시대 최고의 리뷰어 류대성의 『청소년, 책의 숲에서 깊을 찾다』를 자신있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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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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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철학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과학은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학은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조정래 『황홀한 글감옥』中

 

  그렇다. 문학은 반드시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던 고전들의 공통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훌륭한 문학은 꼭 알려야 하는 현실세계를 말해왔고 그로 인해 좋은 미래를 예비해왔다. 문학의 역할이자 의무인 인간의 탐구나 시대의 반영은 결국 말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을 말할 때만이 비로소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소설가 황석영을 좋아한다. 국내 최초 노벨문학상의 영광을 고은 시인보다 그에게 더 기대하고 있을 정도다. 내가 황석영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작가로서의 그의 삶을 그가 쏟아낸 텍스트에서 온전히 받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 바깥은 없다. 본질적으로 문학에서 텍스트 안팍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어쩌면 삶과 문학은 매한가지 일 수 있다. 반추하건대 황석영의 삶은 곧 그의 문학이었다. 그의 문학사는 오욕으로 점철된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압축이었다. 항상 진지하고 묵직하게, 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천착하는 황석영의 모습이 나에겐 한없이 높아만 보인다.

  황석영의 신간소식은 항상 나를 즐겁게 한다. 한 소녀의 기구한 삶을 통해 '생명수'의 본질을 탐구했던 그가, 젊은 독자와 호흡하기 위해 자신의 자전적 텍스트를 쏟아냈던 그가 이번에는 어떤 소설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황석영의 최신작 『강남몽』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온갖 긍정적 코드로 점령당한 내 호기심 안으로 오롯이 안착했다.

  소설 『강남몽』은 소위 '신화話'로 불리는 서울 강남의 형성사를 다루고 있다. 허허벌판이었던 한강 남쪽 일대가 어떻게 대한민국 최고 땅값의 부자동네로 발전해왔는지 여러 등장인물들을 통해 흥미있게 그려냈다. 소설 각 장의 중심인물 다섯 명은 강남 형성 역사와 시간을 공유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작가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인물로 룸싸롱 마담, 대기업 총수, 조직폭력배 보스, 부동산업자, 하위계층 등을 순차적으로 배치함으로써 한국 자본주의 형성사를 사실적이면서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이야기는 룸싸롱 마담 출신이자 대기업 총수의 아내 박선녀의 현재로부터 출발한다. 삼풍백화점 붕괴로 대변되는 속도 자본주의의 참혹한 결과는 소설 전체의 현재적 시점을 지배한다. 박선녀는 백화점이 붕괴되면서 콘크리트 무더기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이어 자연스럽게 그녀의 파란만장한 과거의 삶이 그려진다. 그녀가 어떻게 어둡고 험악한 접대의 세계에서 살아남았는지, 어떤 기회와 방법으로 초기 강남 부동산 세계에 발을 디뎠는지, 남자관계와 사랑은 어떠했는지 등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소설 각 장마다 이야기 흐름방식은 비슷하다. 마치 연작소설과 비슷한 구성으로 소설의 각 장은 한 인물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펼쳐지며 다른 이야기와 연결되고 종속된다. 김진은 거대 재벌 회장으로서 한국 자본주의 역사의 오욕인 정경유착의 표상으로 그려진다. 심남수는 부동산업자로서 박선녀에게 처음으로 부동산 세계가 어떤 곳인지 알려주는 인물이다. 홍양태는 지하암흑세계의 보스이며 박선녀가 운영하는 룸싸롱과 유착관계에 놓여있다. 임정아는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박선녀와 함께 죽음을 대비한 인물이며 그녀 부모의 이야기를 통해 자본주의 하위계층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각 인물들은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양한 위치에서 적절히 표상한다. 접대여성들, 밀정과 군인, 정치와 유착한 기업인, 부동산업자들, 조직폭력배들, 그리고 타락과 부도덕이 관영盈한 가운데서도 꿋꿋이 희망으로 살아가는 하위계층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들은 우리네 현대사 속 각계각층의 단면들을 적확히 담아낸다. 그간 황석영이 그려낸 모든 인물들이 그러했듯이 과히 입체적이며 실로 역동적이다.

  무엇보다 황석영은 역시 이야기꾼답다. 황석영의 필력은 한국 근현대사의 관통이라는 묵직한 무게감을 단 한권의 장편으로 요리한다. 소설 속 다섯개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곳을 비추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개별적 이야기는 소설의 거시성을 오히려 뒷받침한다. 시간적으로 보면 1900년대 초 만주항일운동에서부터 세기말 삼풍백화점 붕괴에 이르기까지 대략 한 세기의 역사를 그려냈다. 요컨대 작가 황석영은 강남 형성사라는 미시적 테마를 통하여 대한민국의 굴곡과 오욕의 근현대사를 속도감 있게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부분적이면서도 소설의 거시성과 완결성을 침해하지 않는 점은 역시 거장다운 황석영의 노련함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각 인물이 그 시대의 특정계층을 잘 표상해주고 있다. 시詩가 소설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받는 것은 짧은 분량으로 깊은 의미를 응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긴 것보다 짧고 굵은 것이 문학을 보다 묵직하게 한다. 압축과 표상은 소설의 힘을 극대화 한다. 강남 형성사를, 아니 한국 현대사의 오욕을 짚어내는데 굳이 몇 권이 아니더라도 가능하다는 점을 노련한 이야기꾼 황석영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작가후기>를 통해 중국 고전 『홍루몽』을 언급하며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사람살이가 어쩌면 꿈과 같이 덧없는 가상의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의 제목을 '강남몽江南夢'이라고 정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의 무게를 굳이 '강남 형성사'라는 지엽적 소재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황석영이 말할 수밖에 없었던 그 '굴곡'과 '오욕'은 아직도 우리사회 곳곳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몽夢' 앞에 놓여질 단어는 '강남' 이상의 카테고리도 가능하다. 보다 크고 넓은 의미의 것도 무리없이 담아낼 수 있는 소설이다. 결국 소설 『강남몽』은 비정의와 부조리가 판치는 한국사회 전반에 걸친 엄중한 지적이자 우리가 경영하고 있는 현실세계가 후세대로부터 어떻게 스케치될 지에 대한 소름끼치는 울림인 것이다. 꿈이 아닌 '현실'의 울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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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Q84,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동네, 2009   
 서평 : http://blog.naver.com/gilsamo/90073289193

  

  2009년 '올해의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로 선정했다. 고심의 고심을 거듭했고 어쩔 수가 없었다. 올해, 하루키의 이 찬란한 두 권짜리 장편소설보다 더 강렬한 각인을 내게 선사한 책은 없었다. 가장 인상적이고, 가장 풍성하며, 가장 입체적인 소설이었다. 하루키는 '이야기'를 뛰어넘어 '소설'을 쓸 줄 아는 작가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시작된 그의 모든 비블리오 그래피는 <1Q84> 안에 역동적으로 춤추며 압축되어 있다.

  모든 것은 텍스트가 말한다. 다양한 소재를 결국 '사랑'이라는 거대한 테마 위에 올려놓는 하루키의 거대서사는 인간의 존재 토양이 결국 실재적이며 구체적인 사랑의 형태로 채워진다는 웅숭깊은 진리를 추출시킨다. 사랑 위에 사랑이 없으며 사랑 아래 사랑이 없는 것이다. 본말이 전도될 수 없는 사랑의 방정식을 천재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방대한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내년에 3권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2권의 결말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독자들이 적잖은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의 완결은 곧 소설의 죽음이다. 해석의 다의성이 문학에서 절대선은 아니라 하더라도 독자의 진지한 사유를 끄집어내는 하루키의 의도는 충분히 고개를 주억거리게 한다. 3권이 나온다면 그것은 그때 그것 나름대로의 평가와 의미를 부여하면 될 것이다.

  <1Q84>는 2009년 최고의 책이다. 책과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2. 오두막, 윌리엄 폴 영, 세계사, 2009
 서평 : http://blog.naver.com/gilsamo/90064366129


  인간은 항상 신의 존재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신의 실존을 의문하며 탐구한다. 어쩌면 인간의 이러한 결벽증과 같은 신에 대한 호기심은 있는 그대로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반증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윌리엄 폴 영의 <오두막>은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당신은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등등 신에 대한 주인공의 강력한 의문은 결국 '오두막'이라는 공간에서 풀어지며 해소된다. 오두막은 주인공의 아픔이 극대화된 공간인 동시에 신이 그를 치유하고자 직접 나타나신 시공간이기도 하다. 요컨대 오두막은 슬픔과 치유가 동시에 발생되며 공존한 곳이다. 인간 삶의 고통과 영광은 역설적이게도 동일한 곳에서 작동하며 호흡한다. 작가는 그 명징한 진리를 삼위일체의 감탐할 만한 현대적 해석을 통해 그려냈다.

  내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이 소설을 꼽은 것은 아니다. 철저한 문학적 관점에서 선정함을 밝혀둔다. 신을 믿든 믿지 않든 꼭 읽어볼 만한 소설로 지인들에게 많이 선물했다. 자신있게 2009년 '올해의 책' 명단에 올려놓는다.

 

3. 청춘의 독서, 유시민, 웅진지식하우스, 2009
 서평 : http://blog.naver.com/gilsamo/90074529134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다섯 권 중 유일한 비문학도서다. 비문학에서 문학으로 점점 옮겨가는 내 독서패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책이다. 이 책은 노무현의 죽음으로 발생된 유시민의 고독이 현실세계에 대한 허무로 연결된 배경을 내밀하게 밑바탕에 깔고 있다. 책 속에서 물밖으로 팽개쳐진 물고기와 같다고 고백한 유시민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 절대고독의 자장에서 저자는 도스토옙스키를 찾았고 마르크스를 찾았으며 푸시킨을 찾았던 것이리라.

  유시민의 수많은 저작 중 이 책을 최고로 꼽는다. 이 뛰어난 고전 예찬론을 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4. 누란, 현기영, 창비, 2009
 서평 : http://blog.naver.com/gilsamo/90068858251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묵묵하게 사실적으로 써내려갈 때 그 사실은 더욱 사실적이 된다. 아름다운 미사여구나 과도한 형용이 부재하다 하더라도 사실은 사실 그 자체적인 방법으로 사실의 정당성을 더욱 공고히 한다. 현기영의 소설이 그렇다. 그는 아픈 역사를 묵묵히 사실적으로 얘기한다. 꾸미거나 포장하지 않는다. 그저 '서술'할 뿐이다.

  1980년대로 대변되는 한국 민주주의의 상처를 소설가 현기영은 매우 건조하고 직선적인 문체로 담아냈다. 우리 선배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쟁취했으며 그것을 얻기 위한 대가는 어떠했는지 극도의 건조한 문체를 통해 독자의 가슴을 일렁케 한다. 역사는 후세에 기억되어야만이 비로소 진정한 '역사'가 된다. 현기영의 소설이 반드시 읽혀져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5.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위즈덤하우스, 2009
 서평 : http://blog.naver.com/gilsamo/90064129090


  한국문단에 박민규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자 기쁨이다. 박민규의 상상력과 발칙함은 한국문단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김애란과 더불어 한국 문학의 미래에서 가장 조명받는 소설가로서 박민규가 갖는 위치는 과히 대단한 것이었다.

  이 소설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를 잘 설정했다. 잘 읽히지만 가볍지 않으며 흥미있지만 대중적이지만은 않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핵심 권력인 '외모'를 소재로 진정한 사랑의 본질을 이끌어냈다. 더욱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서사 구도와 멀티 엔딩을 통한 반전 효과는 수준급이다. 위대하고 거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독특한 소재를 통해 중량감 있게 전달한 박민규식 서사에 박수를 보낸다. 술술 잘 읽히면서도 녹록지 않은 사유를 이끌어내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박민규이기 때문에 가능한 소설이다. 응당 '올해의 책'으로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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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획득된 기술이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됨으로써 이루어지는 진보다."


  오랜 시간 동안 잊혀져 있던 책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 책이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울림을 선사한 책이라는 사실을 또한 깨달았다. 어쩌면 기존의 생각과 가치관을 전회에 가깝도록 바꿔주었던 가장 소중한 책으로 내 무의식 속에서 지금껏 존재해왔을지도 모른다.

  유시민의 신간 <청춘의 독서>를 통해 나는 내 잠재의식 안에 자그만 방을 만들어 숨쉬고 있던 불멸의 고전 한 권을 끄집어냈다. 오래전 처음 그 책을 만났을 때 놀라고 전율했던 기억까지 함께 끌어올렸다. 나는 그 책을 통해 버트런드 러셀과 카를 마르크스가 동일점에서 통합되는 것을 확인했다. '책읽기에 대한 열정'과 '세계를 변혁하는 힘'은 본질적으로 동일선상에 놓여있다는 것을 말이다. 에드워드 헬릿 카(Edward Hallet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는 다시 이렇게 내 손에 안착했다.

  모든 문명과 모든 시대가 동등한 가치를 가진 것이 아니며 정신 문명이 진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카는 이 불멸의 저서를 통해 논증했다. 진보에 대한 믿음은 어떤 자동적인 또는 불가피한 진행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 발전에 대한 믿음이라는 카의 주장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게는 내 인생의 30년에서부터 크게는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는 반드시 진보했다. 이 명징한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소망있게 한다.

  기존의 번역본과는 다른 것을 찾았다. 처음 읽었던 책은 범우사의 것이었고, 수년 전에 읽은 책은 김택현 씨가 번역한 까치출판사의 것이었다. 금번에는 권오석 씨가 번역한 홍신문화사의 것으로 선택했다. 가장 최근에 번역되었기 때문에 현대인이 읽기에 가장 무난하고 평이하다는 평에 따른 것이었다.

  유시민은 인생의 고비마다 이 책을 집어들었다고 고백했다. 그와는 입장과 처지가 다른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내게 '인생의 고비'라는 거대한 수식어구가 이 책을 다시 읽는 명분으로 배치될 필요는 없다. 다만 유시민의 50년 인생에서, 그리고 30년이 조금 넘는 내 인생에서 이 한 권의 책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동일한 기호가 작용되었을 따름이다. 요컨대 그저 다시 읽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오늘, 불후의 저작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읽는다.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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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대 위의 까치 -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읽기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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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에 문외한이다. 일전에 지인을 따라 미술관에 간 적이 몇 번 있다. 당시 작품 한 점마다 10분 이상 서 있는 지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미술관 전체를 둘러보는데 나로서는 30분이면 충분했다. 언젠가 고흐 특별전이 열릴 때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도대체 그림이 무엇이관대.

  주변에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몇 있다. 그들마다 그림을 보는 시각과 취향은 가지각색이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처음 본 그림에 대해 곧바로 쏟아내는 그들의 경이적인 아웃풋이다. 무엇을 의미하고 상징하는지 쉽게 해석하기 어려운 다양한 그림들을 보고 직관적으로 반응하는 그들의 모습은 나로서는 신비함 그 자체였다. 더욱 신기한 것은 동일한 그림을 보면서도 해석의 다의성이 매우 크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림을 보고 직관적으로 반응하고, 천천히 음미하며, 다의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그림 예찬론자들의 행동은 책만 읽는 바보인 내게 불가해한 신비였다.

  진중권의 신간 『교수대 위의 까치』는 그림에 관한 책이다. 미학자로서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열두 점의 그림을 선택했다. 저자는 자신에게 영혼의 울림을 주었던 그림이라고 소개하며 자신만의 해석으로 작품을 감상한다. 원래 한 몸이었으나 세상에 태어나면서 둘로 쪼개져야 했던 자신의 반쪽과 같은 느낌을 준다는 저자의 '오버'가 몹시 진지하게 다가온다. 무엇이 그의 영혼을 울렸고 자신의 반쪽을 찾게 했을까.

  우선 저자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제기한 두 개의 사진의 의미를 전한다. 해석의 일반성을 의미하는 '스투디움(studium)'과 혼자만이 느끼는 개별적인 효과인 '푼크툼(punctum)'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회화에 그대로 적용한다. 사회적으로 일반성을 지닌 보편·객관적인 해석보다는 각 개인이 뿜어내는 주관적 아웃풋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개인의 사밀한 체험과 주관적 감상에 절대적으로 작용받는 '푼크툼'으로서의 작품 감상을 저자는 한 차원 위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 곳곳에서 작품의 일반적 해석과는 별도의 입장에 서 있는 저자만의 해석과 사유가 잘 드러나 있다.

  열두 점의 작품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표제작 <교수대 위의 까치>다. 저자는 이 작품을 책 속에 수록된 열두 점의 그림 중 가장 영적 울림에 가까운 푼크툼의 효과를 준 작품이라고 극찬한다. 사실 <교수대 위의 까치>는 첫 눈에 무엇을 말하려는지 쉽게 와닿는 작품이 아니다. 작품의 배경인 네덜란드의 관습과 당시의 시대상을 알지 않고서는 그림이 말하는 바를 도출하기가 만만치 않다. 가십거리를 몰고 다니는 사람에 대한 경고로 읽어내는 좁은 해석에서부터 정치 혹은 종교적 앙가주망 내지는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묘파로 보는 넓은 해석에 이르기까지 해석의 적극화를 꾀하는 진중권의 진지함이 이 작품에 대한 서술을 통해 잘 드러난다.

  수록된 그림 중에서 그림맹으로서 가장 호감있게 본 작품은 티치아노 베첼리의 <신중함의 알레고리>다. 세 사람과 세 짐승의 삼각구도로 그려진, 어쩌면 매우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 작품을 보고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정지했다. 티치아노는 매우 뛰어난 묘사로 신중함의 삼분법을 그려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의 연결성 위에서 '신중함'이라는 명제를 풀이하고자 했던 작가의 숨결이 진하고 강렬하게 그림 속에서 살아숨쉬는 듯했다. 열두 점 가운데 그림 자체가 진중권의 해설을 압도한다고 느낀 것은 이 작품이 유일했다.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기는 리뷰어로서의 내 기본 자세도 진중권이 제기한 푼크툼의 효과와 상통한다. 비평가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위 '전문적' 평들을 경계하는 편이다. 모든 해석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의 획일화에 반대한다는 수잔 손탁(Susan Sontag)의 "해석에 반대한다"라는 말은 감상자로서는 반드시 음미해야 할 명언이다. 회화와 문학을 위시한 인간의 모든 문화적 창조물들은 '과학'으로서가 아닌 '예술'로서 그 존재성이 더욱 빛나게 된다. 동일한 작품을 보고 읽으면서도 남과는 다른 결론을 이끌어내는 역량이 필요하다. 그것이 복잡다단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뷰어의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서평을 정리하자. 다양한 그림 작품들을 소개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으로 풀이한 진중권의 신간 『교수대 위의 까치』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그림을 보는 재미도 재미거니와 진중권 특유의 개성있는 필력이 하나의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로서의 태도까지 조언하고 있다. 그림을 보는 관찰적 디테일과 이를 다른 예술 장르에까지 적용할 수 있도록 강의한 진중권의 열정에 깊은 공감을 표한다. 내가 소장하고 싶은 작품들의 가상 컬렉션이자 내가 보여주고 싶은 작품들의 지상 전시회, 라고 멋드러지게 이 책을 수식한 저자의 말은 결코 과장적이지 않다. 매우 흥미있고 매력적인 책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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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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