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 행운의 절반
스탠 톨러 지음, 한상복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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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면서 확실히 깨닫는 게 한가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십 대 중반 전까지는 돈이나 능력, 리더십, 자신감 등이 좋은 삶을 이루기 위한 일차적 요소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의 연차가 늘어나고, 많은 사람을 만나며, 다양한 난관에 자주 봉착하면서 행복한 삶의 필요충분조건은 바로 <인간>일 수 밖에 없는 삶의 진리를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부(父)와 모(母)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완성된 우리의 형체는 10개월 동안 모성의 몸 속에서 발육기간을 거친 후 때가 되어 자궁문을 박차고 세상에 등장한다. 엄마의 몸 속에서 성장하는 10개월의 작은 우주는 사회적인 동물로의 학습과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어미로부터 공급받는 영양분과 심리적 영향을 수용받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극적인 수동성에 구속된 약한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10개월이 지나 어미의 자궁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는 수많은 인간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사회적인 동물로서의 인간, 그 첫 발을 디디게 되는 것이다. 

  작년 한 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책 중 하나인 『배려』의 저자 한상복 씨는 새로운 자기계발 우화를 들고 나타났다. 스탠 톨러가 집필하고 한상복 씨가 옮긴 『행운의 절반 친구』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을 잔잔한 우화 속에서 그려놓고 있다. 삶에서 쉽게 만나고 끊임없이 교제하는 <친구>라는 존재를 주제 삼아 진정한 친구의 의미와 바람직한 대인관계의 모범이 어떤 것인지를 얘기하고 있다.  

  상당히 『배려』틱하며, 지나치게 『청소부 밥』스럽다. 광고회사의 광고팀 팀장 조 콘래드가 커피숍 주인인 맥 달튼을 만나면서 진정한 친구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며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난다는 내용이다. 삶의 소중한 진리들을 들려주는 멘토를 만나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모한다는 점에서 『청소부 밥』의 구조를, 이기주의를 버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과 정성으로 대해야 한다는 메시지에 있어서는 『배려』의 내용을 답습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전형적인 '위즈덤하우스'식의 인간계발우화는 책의 구조와 내용의 측면에서 적지않은 진부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역시나 <인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하려는 메시지가 내용의 진부함을 압도하기에 식상한 느낌은 금새 소멸된다. 

  책의 막장을 덮은 후 내 주변을 돌아본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친구가 아닌, 심장을 나눌 수 있는 진심어린 친구가 과연 내게 몇이나 있을까를 생각한다. 조건과 효율의 개념이 아니라 진심과 평안의 정의로 소통하는 친구, 전두엽과 이성이 아니라 심장과 감성으로 교제하는 친구, 그런 친구의 숫자를 카운팅한다. 더욱이 과연 나 자신은 내 베스트들에게 어느 정도의 이타성을 갖고 대했는지를 반추한다. 사람이 소중한 것을 알고, 좋은 친구가 좋은 나를 만드는 것을 알며, 성공한 자의 공통분모는 사람이었다는 진리를 이미 <이성적>으로 알고 있는 내가 과연 이를 내 삶 속에서 얼마나 <실천적>으로 누리며 살아가는지를 계속해서 사유한다.  

  최근 직장을 비롯한 수많은 행동반경에서 지나치게 이기적인 사람들을 자주 발견한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지나친 이기심의 극대화를 볼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개인의 이기심이 다른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압박하는 모습을 볼 때에는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혐오스럽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가식과 위선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들로 인해 지구는 병들고 초라해졌다. 자신의 소우주 안에 철저하게 구속되어 비겁하고 비열한 선택과 결정을 하는 이들로 인해 우주의 넓이는 더욱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나 자신도 그런 사람일 지 모를 일이리라. 다시 한번 내 자신을 돌아본다. 

   1980년 대에는 '지능지수(IQ)'가, 1990년 대에는 '감성지수(EQ)'가 부각되는 사회였다면, 21C에 이른 작금의 2000년 대에는 '의사소통지수(CQ: Communication Quotient)'와 '공존지수(NQ: Network Quotient)'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남과 인연을 맺으며 그 관계를 잘 꾸려나가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각광받고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다시말해 작금의 사회는 의사소통이 뛰어나고 공존 능력이 비범한 자에게 사랑과 기회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요즘같은 정보통신이 발달된 복잡다단한 사회에서는 거미줄처럼 얽히는 인간 네트워크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친구를 둘 것인가보다 얼마나 좋은 친구를 둘 것인가를 고민하는 친구철학이 필요하다. 따뜻하게 공감하고, 따뜻하게 소통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런 친구가 되어가는 것, 그것이 돈과 명예보다 훨씬 더 소중한 행복의 원리임을 되새기며, 핸드폰에 저장된 친구 목록을 한 명, 한 명씩 확인하는 여유를 가져본다. 그리고 행운의 절반으로서 명확하게 현현(顯現)하는 <친구들>의 웅숭깊은 존재감을 재확인한다. 
 

외로움은 순수함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따지고 계산하는 데 익숙한 우리들이..   <p. 57>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할수록 우리는 더욱 강해진다네."   <p.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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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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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고르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 것, 첫사랑인 아내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 것, 아내에게 쓴 편지를 책으로 발간한 것, 그리고 둘이 함께 죽은 것에 대해 내가 처음 알게된 것은 불과 일주일 전의 과거로 밖에 돌아가지 않는다. 집에서 구독하는 C신문사의 주말섹션 'Books' 코너를 통하여 신간 리뷰로 만난 것이다. "첫 동침 후 60년... 죽을 때까지 우린 한몸이었소"라는 굵은 명조체의 인상적인 소개 문구는 신문지면의 한 부분에 내 눈이 응시되게끔 만들었다. 더욱이 젊은 연인의 춤추는 사진과 죽음까지 함께 한 실화라는 점이 나를 더욱 자극시켰고, 구독하지 않으면 안될 단계로 이끌었던 것이다. 

  두껍지 않은 책의 첫 장은 앙드레 고르가 아내 도린 케어에게 바치는 헌사로 시작한다. 자신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 오직 『배반자』에서만 아내를 소개했다고 고백하는 앙드레 고르는 그 작품에서 아내에 대한 자신의 뜨거운 사랑을 잘 표현하지 않았다고 후회한다. 당신에게로 온통 빨려드는 내 마음이 나를 다시 살고 싶게 만든 결정적 전환점이었음을 『배반자』는 보여주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자신의 과오를 곱씹는다. 사랑이야기를 재구성해서 그 온전한 의미를 파악해야 하며, 함께 겪은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 는 헌사를 시작으로 아내를 향한 사랑의 고백을 들려준다. 

  84세의 남편이 스무 해 넘게 불치병과 싸운 83세의 아내에게 보낸 연애 편지인 『D에게 보내는 편지』는 한 남자의 한 여자에 대한 뜨겁고 강렬한 사랑의 심장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돈도 없고 국적도 없는 유대인 앙드레 고르의 일상에 영국 여자 도린 케어는 혜성처럼 등장하여 한 남자의 일생을 바꾸어 놓는다. 고르는 도린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부터 마지막 함께 죽는 날까지를 회고하며, 자신이 존재할 수 밖에 없었던 절대적이며 유일한 이유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마치 이 우주에 오직 둘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고르의 관찰자적 카메라는 사랑하는 아내 도린만을 향한 접사모드로 구속되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앙드레 고르는 정말 대단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아내의 다양한 면모를 상찬하는 고르의 편지에는 사랑에 대한 열정과 선망이 오롯이 담겨있다. 동시에 자신의 허물과 부족을 토로하는 고르의 고백은 지나치게 간절하고 지극히 솔직하기에 깊은 감동을 준다. 1974년 아내 도린이 근육 위축병에 걸리자 다니던 신문사를 퇴사하고 아내의 병시중을 들기 시작하는 고르는 스무 해가 넘는 기간동안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한다. 죽음에 임박해서는 아내가 없는 세상은 텅 빈 세상일 수 밖에 없음을 자각하며 자신의 존재이유가 상실되었음을 고백한다. 결국 2007년 9월, 60년 동안 흔들리지 않았던 둘의 사랑은 동반자살함으로써 고르 자신의 고백을 완성시킨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네.   <p. 90>
 

  한결같다는 것, 더군다나 오랜 시간동안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사랑한다는 언어가 소음수준으로 중구난방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는 주변의 상황에 적지않은 부담을 느끼는 내게, 첫사랑으로 시작하여 죽음까지 함께한 고르와 도린의 러브 스토리는 웅숭깊게만 느껴진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내의 옆자리를 지키면서 얼마나 조마조마하고 가슴이 아팠을까? 아마 고르는 자신의 우주를 온전히 차지하고 있는 아내 도린의 존재감을 통해 자기 자신의 모습은 물론이요, 신의 불꽃을 확인한 남자였을 것이다.  

  마치 영화같은 그들의 러브 스토리에 굳이 빈정거릴 필요는 없다. 또한 동반자살로 종결된 그들의 죽음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필요도 없다. 에로스의 농밀함이 점점 밋밋해져만 가는 작금의 시대에 서로를 위해 존재했고, 전적으로 사랑했던 그들의 삶은 아름답고 부럽기만 하다.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덞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p. 6>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인가? 이런 언어를 발산할 수 있는 남자는 물론, 이를 선사받은 여인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과연 나는 앙드레 고르의 고백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감성과 열정을 갖고 있는 남자일까? 그처럼 자신의 우주를 전부 채울 수 있는 동반자를 만날 수 있을까? 나를 불태우고, 소멸시키며, 신의 불꽃을 발현시킬 수 있는 갈비뼈에 대한 목마름, 스물아홉의 나이를 넘어가는 한 젊은 남자의 가슴이 왠지 모르게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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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 2011-09-30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수은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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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기독교적 관점으로 서평을 썼음. 

동일하거나 비슷한 것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친근해지기 쉽다는 것은 인간관계의 공식이다. 한 인간이 자신과 동질성을 추구하는 다른 인간에게 호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인간이라는 종족이 <유사성>이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설계되었는지를 정확하게 입증한다.  

『연금술사』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들을 최근들어 자주 만나고 있다. 아름답고 정제된 언어들로 구성된 코엘료표 잠언을 만나면서 이에 철저히 구속된 내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자신에게 질문했다. 편독하지 않고 나름대로 다양한 독서를 즐겨하는 내가 전작(全作)을 선언할 만큼 코엘료의 작품에 갈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을 얻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질성의 추구라는 것을. 신이라는, 엄밀히 말하자면 '기독교의 신(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이라는 동질성을 말이다. 

  코엘료의 작품에는 언제나 신에 대한 목마름과 탐구가 담겨있다. 성경 구절이나 카톨릭 교리가 자주 등장한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그의 활자는 매우 많이 신을 조명하며, 매우 깊이 신을 천착한다. 자아, 삶, 죽음, 사랑, 모성 등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우주의 본질적 요소들을 코엘료 자신이 믿고 탐구하는 신을 통해 관통하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신에 대해 일반적으로 인지하며 신뢰하고 있는 신의 부성(父性)적 통념보다는 신의 여성성, 즉 모성(母性)적 면모를 관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으로서의 신, 어머니로서의 신, 자애롭고 보듬어주며 사랑이 풍성한 신의 성품을 코엘료는 농밀하면서 가볍지 않게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코엘료와의 네 번째 만남인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또한 신의 여성적 면모를 탐구하는 코엘료의 의지를 강렬하게 엿볼 수 있다. 코엘료가 생산하는 여성성으로서의 신은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자아의 최선을 찾고자 하는 갈급함의 주체이자 객체로의 소중한 존재감으로 등장한다. 『연금술사』에서는 '길'에서,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는 '삶'과 '죽음'에서 자아의 성찰을 그렸다면,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는 '사랑'과 '기적'이라는 테마로 자아를 탐구하는 인간상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필라와 그녀의 남자친구, 둘의 어렸을 적 추억, 재회, 일주일의 시간 등의 소설 속 장치들을 통해 코엘료 특유의 아포리즘은 기적과 사랑에 대한 본질과 속성을 얘기하고 있다. 

  코엘료는 작가노트에서 '기적'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고 고백한다. 우리 자신이 진정한 경이에 둘러싸여 산다는 사실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며, 기적은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필라의 남자친구는 신에게 받은 신유의 은사를 통해 병든 자를 고치는 기적을 일으킨다. 또한 방언을 통해 신과 대화하는 신앙인들의 모임, 그리고 그런 기이한 모임에서 자신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천사의 언어로 신에게 기도하는 필라의 경험이 일어난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필라의 신앙이 회복되는 것과 남자친구에 대한 사랑이 확인되는 것이 함께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매우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 아름다운 추억을 공유했던 남과 여가 오랜 기간동안 다른 공간에서 살다가 재회하여 서로간의 방향성을 확인하며 사랑을 완성하는 것, 그것 자체가 기적이다. 사랑, 그것은 기적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기적의 의미를 지나친 신비주의로 고착시켜 생각하려는 경향이 많다. 바다가 갈라지고, 산이 옮겨지며, 외계인을 발견하는 등등, 자연 법칙을 초월하는 현상을 기대하면서 기적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적의 문자적 정의에 국한된 외연적이고 비본질적인 접근이다. 하루하루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는 것, 낮과 밤이 정확한 주기로 교차되며, 사계절의 풍성함으로 다양한 자연을 목도하는 것, 신과 교제할 수 있는 것,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것 등등에 이르기까지 기적은 다양한 현현으로 우리의 삶을 채우고 있다. 기적에 대한 고차원적 사유는 한 생명의 탄생과 홍해가 갈라지는 것,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물 위를 걷는 것, 건강한 삶을 사는 것과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발현되는 것이 동일한 의미로 포용될 수 있게끔 한다. 기적이란 단어를 깊고 넓게 확장하여 보다 유연하고 본질적으로 사유한다면, 신이 선사하고 우주가 제공하는 기적의 바다에 포로가 되어 풍성한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기적 중의 기적인 사랑이라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가장 <많이> 설명하고자 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인간을 향해 질문하는 신의 의지는 당신의 신성과 인성이 합쳐지는 장면에서 그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변을 완성한다. 사랑은 기적을 포함하며, 사랑의 의미는 기적의 정의를 함의한다. 소설 속에서 필라가 기적을 체험하고 신앙을 회복하는 동시에 자신이 부인하며 거부하려 했던 사랑이 발현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음은 사랑과 기적의 함수관계를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더욱이 필라의 사랑의 방향이 확인되면서 자아의 현주소와 가야할 길을 자각하고, 세상이 기존과 다르게 보이게 되는 또다른 기적이 발생된다. 기적은 사랑을 요구하며, 사랑은 기적을 발현시킨다. 이러한 기적과 사랑 사이의 방정식은 기적과 사랑을 연관지어 탐구하는 데 있어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동기가 된다. 

  소설속에서 필라의 남자친구는 신을 위한 구도자의 길을 걸어야 하는가, 아님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삶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긴장감 있고 외로운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이를 결정하기 위해 신을 향해 기도하며 숙고하는 장면을 읽으면서 과연 진정한 신앙은 무엇인지를 사유하게 된다. 신의 목소리를 증거하고, 진리를 설파하며, 구도의 삶을 살아가는 것만이 신이 요구하는 신앙의 진정성은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 자신의 가정을 책임지는 것, 어려운 사람을 돕고 보듬어주는 것,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의 열매를 거둬들이는 삶 또한 신앙심의 연장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신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구도가 신앙의 중요한 하나의 기류라고 본다면, 정작 신을 닮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보다 고차원적 신앙심의 현현이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열정과 신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 그 어떤 종교라 할지라도 거부할 수 없는 명백한 신앙의 두 가지 기류임을 설파한다.

  코엘료 문학의 특징을 한 가지 발견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독자들과 두 가지 형태로 호흡한다. 하나는 작가 자신이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설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메시지에 대한 의미, 상상, 해석을 전적으로 독자의 과제로 맡기는 것이다. 코엘료는 후자의 형태로 독자와 호흡한다. 자아에서부터 신에 이르기까지, 즉 인간과 신을 연결해주는 다양한 우주의 본질적 요소들을 다루면서 절대로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는다. 그것이 더욱 그의 언어를 곱씹게하고, 재차 탐구하게끔 만드는 동기가 되기에 코엘료 우주에 흠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신의 여성성의 토대 위에서 기적과 사랑을 논하는 코엘료의 언어는 역시나 동시다발적 질문을 내 머리와 가슴에 올려 놓았다. 신의 성품, 기적의 가치와 본질, 사랑과 기적의 함수관계, 사랑의 힘과 이에 대한 신의 의지 등의 다양한 사유와 사색을 말이다. 깊은 생각 하나를 끄집어 낸다. 신을 믿고, 신의 사랑을 경험한 내가 과연 아가페를 실현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나를 소멸시키는 동시에, 상대방으로 존재하며, 상대방 속에서 신의 불꽃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과연 내 안에서 가능한지를 말이다. 그것을 깊이 사유하면서, 이미 전작을 선포한 내게 앞으로 코엘료가 선사할 언어 연금술을 기대하며 흐뭇한 미소를 흘긴다.

 

영적인 삶은 사랑이다. 사람들은 타인을 보호하거나 도와주거나 선행을 베풀기 위해 사랑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그렇게 대한다면, 그건 그를 단순한 대상으로만 여기고 자기 자신을 대단히 현명하고 관대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사랑과는 전혀 무관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타인과 일치하는 것이고, 상대방 속에서 신의 불꽃을 발견하는 일이다.   <p. 14>

신은 그의 은총의 손길로 다시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인간이 자신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에서 그 본질을 깨닫게 한다.   <p. 74>

어제까지만 해도 세계는 사랑 없이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젠 사물의 다양한 빛을 발견하기 위해 사랑이 필요했다.   <p.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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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된 괴짜들
김유미 지음, 비즈니스앤TV 기획 / 21세기북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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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괴짜의 정의를 알아보자. 네이버 사전 검색을 두들겨본 결과, 부자는 재물이 많아 살림이 넉넉한 사람을 의미한다. 괴짜는 괴상한 짓을 잘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책의 제목 『부자가 된 괴짜들』은 괴상한 짓을 통하여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도대체 얼마나 괴짜들일까, 그리고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백배 발동된 나머지 두껍지 않은 자기계발서의 첫 장을 여유있게 넘길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괴짜'라는 사전적 의미가 말해주듯 13명의 특이한 직종의 인물이 소개된다. 그래피티, 설탕공예가, 허브사업가, 김치사업가, 홈웨딩사업가 등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프로들의 성공기라고 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는 다른 생각과 감각을 지닌 이들이 얼마만큼의 열정을 갖고 지금의 성공 자화상을 일궈냈는지에 대해 간결하고 깔끔한 문체로 알려주고 있다. 

  사실 성공한 사람의 성공 실화를 다루거나, 자기 자신의 자전적 성공 에세이를 다룬 책을 접할 때에는 다른 자기계발서에서는 느낄 수 없는 현실적 생동감을 자주 목도하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에는 13명이라는 많은 인물을 다루다보니 개개인에 대한 주마간산(走馬看山)식 관찰로 인해 깊이가 없고, 한없이 가벼운 접근에 불편함이 없지 않았다. 괴짜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여 부자가 될 수 밖에 없는 리드미컬한 인생 스토리를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심히 축약되고 압축된 나머지 마치 힘있는 소설의 밋밋한 독후감 버전을 읽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책을 통해 한 가지 확인한 사실은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블루오션의 시장영역이 많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의 맹렬한 흐름가운데 형성된 지나친 경쟁주의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보다 안정적이고 편한 직장생활에 갈증하는 풍토를 만들었다. 더욱이 평생직장의 개념이 점차 사라지면서 이러한 풍토는 더욱더 탄력을 받고 있는 듯하다. 수많은 대학 졸업생들이 공무원 시험을 위해 밤을 새우며 공부하고 있는 작금의 취업 현실은 모험과 도전보다는 안정을 취하려는 취업자들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자기 자신의 탤런트와 감각을 정확하게 인지하여 남들이 도전하지 않고 있는 시장에 진출하여 성공이란 열매를 얻어낸 책 속의 주인공들의 삶은 분명 귀감이 될 만하다.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마다 매번 확인하는 확실한 진리가 하나 있다. 성공한 이들이 갖는 자질 중 가장 공통되고 명확한 것은 바로 <열정>이라는 것을. 책에서 소개되는 13명 괴짜들의 꿈을 향한 열정을 읽어 내려가면서 능력이 조금 부족하다 할지라도, 경험이 조금 미흡하다 할지라도, 실패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할지라도 자신이 세운 비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성공의 추동이 됨을 인식하게 되었다. 내게 열정이 없었다면 한낱 양치기에 불과했을 것이라 말했다는 징기스칸의 고백은 열정이 성공을 이루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다시 한번 곱씹게한다.  

  괴짜로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선천적인 기질은 물론이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용기와 강건한 자신감이 없이는 괴상한 짓을 하며 살아가기 힘든 것은 인간사 당연한 일일게다. 괴짜라는 의미가 갖고 있는 일반적인 편견에 구속될 필요는 없다. 더욱이 그 괴짜라는 것이 볼품없는 괴짜가 아닌, 어느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역동적인 삶을 지향하며 부와 명성을 일궈낸 성공한 괴짜라면 정말 멋있지 않겠는가? 지금 이 시간에도 보편적 타인의 삶을 거부한 채, 자기 자신의 길을 위해 열정을 갖고 도전하는 이들이 노력한 만큼의 인과성으로 보답받기를 심히 지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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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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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청년 2007-12-03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21세기북스의 책을 사랑(?)해주셔서 무척 감사드립니다.
이번달에 21세기북스에서 신간이 많이 나오는데, 오셔서 관심있게 봐주셨으면 하네요...^^
매일매일 한분께 책을 선물해드리고 있으며, 수시로 서평단을 모집하기도 합니다.
카페로 놀러오셔서, 좋은 책과 사람들을 만나시길 바래요^^
카페 주소 : cafe.naver.com/21cbook
 
순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작가의 처녀작을 만나는 것은 그 작가의 작품 세계와 철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관찰이 된다. 더욱이 그 작가의 현재적 나침반이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감동과 전율을 일으키고 있음을 가리킨다면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작가의 현재적 우주를 과거의 시간대와 함께 음미함으로써 미래의 우주를 기대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전 세계 120개국에서 2,000만 부 이상 판매된 『연금술사』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파울로 코엘료는 그의 첫 작품인 『순례자』를 통해 이미 『연금술사』의 감동을 내용적으로 암시한 바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의 길)’를 코엘료 자신이 직접 걷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집필한 『순례자』는 한 개인의 신비롭고 기적같은 경험을 통해 변화해 가는 과정을 아름답게 들려주고 있다. 

  책 속에서 코엘료는 자신의 삶과 신앙의 고백을 깊은 사색과 깨달음에서 정제된 주옥같은 언어들로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사랑, 열정, 삶, 죽음, 결혼, 광기 등 인간의 가장 중요한 내면적 가치들을 순례의 경험으로 관통하고 있다. 나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오만과 편견으로 호도하고 있는 것에 대해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웅숭깊은 아포리즘의 물결은 책장을 넘기는 내 자신의 전두엽과 심장이 철저하게 그의 활자에 구속되게끔 만들었다. 

  넓디 넓은 우주가 아름다운 이유는 인간이 정복할 수 없는 수없이 많은 별들의 존재로 설명된다. 만약 상상할 수 없는 크기로 존재하는 우주가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이 대부분이라면 설계한 자의 공간 낭비요, 오만으로 비춰질 수 있으리라. 하지만 수없이 많은 항성과 행성과 운석과 성운 등의 다양한 물질로 구성된 <우주>라는 거대 공간의 존재감은 인간의 불가해함을 넘어선 신비함의 극치라 할 만 하다. 더욱이 작은 소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의 존재감 또한 수없이 다양한 인간과 피조물로 채워져 있다는 점에서 그 신비함과 역동성을 인정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은하수는 콤포스텔라까지 이르는 길을 안내해주죠. 어떤 종교도 모든 별을 한데 모을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우주는 거대한 빈 공간으로 변해버려 그 존재 이유를 잃고 말 겁니다. 각각의 별, 그리고 각각의 인간은 자신만의 공간과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지요. 초록색, 노란색, 파란색, 하얀색, 혜성, 유성, 운석, 성운, 고리 모양의 각기 다른 별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똑같이 작은 점처럼 보이는 것들도 실상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공간에 흩어져 있는 수없이 많은 각기 다른 존재들이죠.   <p. 137> 

  역시나 코엘료는 <사랑>의 가치를 지나치지 않는다. 에로스니 필로스니 하는 사랑의 다양한 기류는 종국에는 아가페라는 으뜸 사랑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속성을 갖고 있다. 전적인 사랑 아가페는 그 사랑을 경험하는 이를 소멸시킨다. 신이 당신의 아들을 통해 인류의 구속사를 진행할 수 밖에 없었던 위대한 사랑은 신이 인간을 바라보는 사랑의 차원과 수준을 농밀하게 보여준다. 수많은 인간들이 아가페의 포로가 되어 있지만, 정작 아가페를 발산할 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모든 것을 태워서 소멸시키는 전적인 사랑 아가페는 인간으로 사는 최고 수준에 대한 신의 질문과 답변을 동시에 자각하게 한다. 

당신은 다시 태어나는 법과, 자신에게 잔인해지지 않는 법과, 자신의 사자와 대화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모든 것, 당신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취할 수 있는 모든 유익한 것은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사랑을 체험했을 때만 그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습니다.   <p. 156> 

  코엘료는 자신의 멘토 페트루스로부터 아가페의 두 가지 형태를 듣게 된다. 앞서 언급한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아가페는 신이 아닌 인간에게는 쉽게 행사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비록 적용 대상은 다르지만 인간이 행사할 수 있는 또 다른 하나의 아가페는 바로 <열정>이라는 것이다. 열정은 하나의 생각이나 대상을 향한 아가페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무언가를 사랑하고 믿게 되면, 자신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더 강하다고 느끼게 되며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신념을 깨뜨리지 못할 거라는 확신에 차 평온함을 맛보게 된다. 더욱이 이런 특별한 힘은 적절한 순간에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준다. 아름답고 정제된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찬란한 빛이 발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열정은 대개 우리 삶의 초반부에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 시기에 인간은 아직 신적인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요. 자신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커다란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 인형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고 작은 장난감 병정들이 움직이기도 하죠. 천국이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한 예수의 말씀은, 열정의 형태로 나타나는 아가페를 두고 한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예수께서 행하는 기적이나 지혜로움, 바리새인, 사도들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에게 곧장 왔죠. 오직 열정에 이끌려, 행복한 모습으로 온 것입니다.   <p. 158> 

  인간은 죽음이라는 두려움에 지나치게 압박되어 있다. 사실 어느 누구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죽음에 대한 보다 깊은 사유는 두려움으로 점철된 죽음에 대한 일반적 통념을 전복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어찌 보면 죽음은 우리의 가장 큰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자각은 더욱 우리를 치열하게 살도록 만든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죽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느끼게 되는 모든 욕망과 공포의 실체를 알 때, 진정한 죽음의 모습을 응시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에 관해서는, 우리 모두가 편견을 가지고 있다. 죽음이 아가페의 또다른 현현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나는 페트루스에게 말했다. 성전에서의 수년 동안의 수련 끝에 사실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되었다고. 사실 내가 더 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죽음 자체보다는 어떻게 죽느냐라고.   <p. 180> 

  파울로 코엘료는 자신의 검(劍)을 찾기 위한 순례의 길을 통하여 매우 소중한 진리를 하나 인식하게 된다. 사실 순례의 초반부터 종반까지 그의 관심은 오직 검을 찾는 것에 있었다. 검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는 페트루스의 행동은 검을 찾고자 하는 코엘료의 갈증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코엘료가 그토록 알고자 했던 검의 비밀은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것이지만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검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가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때 깨달은 코엘료의 삶의 목적 의식이 추동되어 작가로서의 삶과 『연금술사』의 창조가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순례의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내가 알고 싶어했던 것은 오직 검이 숨겨져 있는 장소였다. 왜 그것을 찾고 싶어하는지, 그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자문하지 않았다. 나의 모든 에너지는 보상만을 생각하는 데 소진되었다. 무언가를 원할 때는 그 욕망의 대상에 아주 확실한 목정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보상에 대한 유일한 동기였다. 그것이 내 검의 비밀이었다.   <p. 311> 

  코엘료가 선사하는 삶과 우주와 사랑과 열정과 죽음에 대한 아름답고 신비로운 영혼의 언어들은 내 자신의 현재적 영혼에 빙의(憑依)되게 만들었다. 그가 고민하고 사색하고 갈증했던 삶의 본질적인 요소들이 내 삶과 사랑과 열정과 신앙의 메모장에 오롯이 입력된 것이다. 코엘료의 우주를 목도할 때마다 새삼 느끼는 것은 주옥같이 아름다운 고결한 가치들을 동시적이고 다발적으로 사유하게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의 활자를 좋아하며, 그에 대한 전작(全作)을 선포한 이유가 거기에 있기도 하다. 

  비범한 삶은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의 길 위에 있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명문장인가? 코엘료는 이 문장을 반복적으로 들려주며 자신이 걸었던 산티아고의 험난한 순례의 길은 평범한 사람들의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 마치 작가로서의 자신의 비범이 평범의 길 위에서 탄생된 것이라는 정제된 겸손을 부연하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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