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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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철학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며, 과학은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학은 꼭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조정래 『황홀한 글감옥』中

 

  그렇다. 문학은 반드시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던 고전들의 공통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훌륭한 문학은 꼭 알려야 하는 현실세계를 말해왔고 그로 인해 좋은 미래를 예비해왔다. 문학의 역할이자 의무인 인간의 탐구나 시대의 반영은 결국 말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을 말할 때만이 비로소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소설가 황석영을 좋아한다. 국내 최초 노벨문학상의 영광을 고은 시인보다 그에게 더 기대하고 있을 정도다. 내가 황석영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작가로서의 그의 삶을 그가 쏟아낸 텍스트에서 온전히 받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 바깥은 없다. 본질적으로 문학에서 텍스트 안팍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어쩌면 삶과 문학은 매한가지 일 수 있다. 반추하건대 황석영의 삶은 곧 그의 문학이었다. 그의 문학사는 오욕으로 점철된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압축이었다. 항상 진지하고 묵직하게, 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천착하는 황석영의 모습이 나에겐 한없이 높아만 보인다.

  황석영의 신간소식은 항상 나를 즐겁게 한다. 한 소녀의 기구한 삶을 통해 '생명수'의 본질을 탐구했던 그가, 젊은 독자와 호흡하기 위해 자신의 자전적 텍스트를 쏟아냈던 그가 이번에는 어떤 소설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황석영의 최신작 『강남몽』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온갖 긍정적 코드로 점령당한 내 호기심 안으로 오롯이 안착했다.

  소설 『강남몽』은 소위 '신화話'로 불리는 서울 강남의 형성사를 다루고 있다. 허허벌판이었던 한강 남쪽 일대가 어떻게 대한민국 최고 땅값의 부자동네로 발전해왔는지 여러 등장인물들을 통해 흥미있게 그려냈다. 소설 각 장의 중심인물 다섯 명은 강남 형성 역사와 시간을 공유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작가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인물로 룸싸롱 마담, 대기업 총수, 조직폭력배 보스, 부동산업자, 하위계층 등을 순차적으로 배치함으로써 한국 자본주의 형성사를 사실적이면서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이야기는 룸싸롱 마담 출신이자 대기업 총수의 아내 박선녀의 현재로부터 출발한다. 삼풍백화점 붕괴로 대변되는 속도 자본주의의 참혹한 결과는 소설 전체의 현재적 시점을 지배한다. 박선녀는 백화점이 붕괴되면서 콘크리트 무더기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이어 자연스럽게 그녀의 파란만장한 과거의 삶이 그려진다. 그녀가 어떻게 어둡고 험악한 접대의 세계에서 살아남았는지, 어떤 기회와 방법으로 초기 강남 부동산 세계에 발을 디뎠는지, 남자관계와 사랑은 어떠했는지 등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소설 각 장마다 이야기 흐름방식은 비슷하다. 마치 연작소설과 비슷한 구성으로 소설의 각 장은 한 인물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펼쳐지며 다른 이야기와 연결되고 종속된다. 김진은 거대 재벌 회장으로서 한국 자본주의 역사의 오욕인 정경유착의 표상으로 그려진다. 심남수는 부동산업자로서 박선녀에게 처음으로 부동산 세계가 어떤 곳인지 알려주는 인물이다. 홍양태는 지하암흑세계의 보스이며 박선녀가 운영하는 룸싸롱과 유착관계에 놓여있다. 임정아는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박선녀와 함께 죽음을 대비한 인물이며 그녀 부모의 이야기를 통해 자본주의 하위계층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각 인물들은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양한 위치에서 적절히 표상한다. 접대여성들, 밀정과 군인, 정치와 유착한 기업인, 부동산업자들, 조직폭력배들, 그리고 타락과 부도덕이 관영盈한 가운데서도 꿋꿋이 희망으로 살아가는 하위계층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들은 우리네 현대사 속 각계각층의 단면들을 적확히 담아낸다. 그간 황석영이 그려낸 모든 인물들이 그러했듯이 과히 입체적이며 실로 역동적이다.

  무엇보다 황석영은 역시 이야기꾼답다. 황석영의 필력은 한국 근현대사의 관통이라는 묵직한 무게감을 단 한권의 장편으로 요리한다. 소설 속 다섯개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곳을 비추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개별적 이야기는 소설의 거시성을 오히려 뒷받침한다. 시간적으로 보면 1900년대 초 만주항일운동에서부터 세기말 삼풍백화점 붕괴에 이르기까지 대략 한 세기의 역사를 그려냈다. 요컨대 작가 황석영은 강남 형성사라는 미시적 테마를 통하여 대한민국의 굴곡과 오욕의 근현대사를 속도감 있게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부분적이면서도 소설의 거시성과 완결성을 침해하지 않는 점은 역시 거장다운 황석영의 노련함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각 인물이 그 시대의 특정계층을 잘 표상해주고 있다. 시詩가 소설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받는 것은 짧은 분량으로 깊은 의미를 응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긴 것보다 짧고 굵은 것이 문학을 보다 묵직하게 한다. 압축과 표상은 소설의 힘을 극대화 한다. 강남 형성사를, 아니 한국 현대사의 오욕을 짚어내는데 굳이 몇 권이 아니더라도 가능하다는 점을 노련한 이야기꾼 황석영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작가후기>를 통해 중국 고전 『홍루몽』을 언급하며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사람살이가 어쩌면 꿈과 같이 덧없는 가상의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의 제목을 '강남몽江南夢'이라고 정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의 무게를 굳이 '강남 형성사'라는 지엽적 소재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황석영이 말할 수밖에 없었던 그 '굴곡'과 '오욕'은 아직도 우리사회 곳곳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몽夢' 앞에 놓여질 단어는 '강남' 이상의 카테고리도 가능하다. 보다 크고 넓은 의미의 것도 무리없이 담아낼 수 있는 소설이다. 결국 소설 『강남몽』은 비정의와 부조리가 판치는 한국사회 전반에 걸친 엄중한 지적이자 우리가 경영하고 있는 현실세계가 후세대로부터 어떻게 스케치될 지에 대한 소름끼치는 울림인 것이다. 꿈이 아닌 '현실'의 울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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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Q84,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동네, 2009   
 서평 : http://blog.naver.com/gilsamo/90073289193

  

  2009년 '올해의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로 선정했다. 고심의 고심을 거듭했고 어쩔 수가 없었다. 올해, 하루키의 이 찬란한 두 권짜리 장편소설보다 더 강렬한 각인을 내게 선사한 책은 없었다. 가장 인상적이고, 가장 풍성하며, 가장 입체적인 소설이었다. 하루키는 '이야기'를 뛰어넘어 '소설'을 쓸 줄 아는 작가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시작된 그의 모든 비블리오 그래피는 <1Q84> 안에 역동적으로 춤추며 압축되어 있다.

  모든 것은 텍스트가 말한다. 다양한 소재를 결국 '사랑'이라는 거대한 테마 위에 올려놓는 하루키의 거대서사는 인간의 존재 토양이 결국 실재적이며 구체적인 사랑의 형태로 채워진다는 웅숭깊은 진리를 추출시킨다. 사랑 위에 사랑이 없으며 사랑 아래 사랑이 없는 것이다. 본말이 전도될 수 없는 사랑의 방정식을 천재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방대한 이야기를 통해 전달하고 있다. 

  내년에 3권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2권의 결말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독자들이 적잖은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의 완결은 곧 소설의 죽음이다. 해석의 다의성이 문학에서 절대선은 아니라 하더라도 독자의 진지한 사유를 끄집어내는 하루키의 의도는 충분히 고개를 주억거리게 한다. 3권이 나온다면 그것은 그때 그것 나름대로의 평가와 의미를 부여하면 될 것이다.

  <1Q84>는 2009년 최고의 책이다. 책과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2. 오두막, 윌리엄 폴 영, 세계사, 2009
 서평 : http://blog.naver.com/gilsamo/90064366129


  인간은 항상 신의 존재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신의 실존을 의문하며 탐구한다. 어쩌면 인간의 이러한 결벽증과 같은 신에 대한 호기심은 있는 그대로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반증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윌리엄 폴 영의 <오두막>은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당신은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등등 신에 대한 주인공의 강력한 의문은 결국 '오두막'이라는 공간에서 풀어지며 해소된다. 오두막은 주인공의 아픔이 극대화된 공간인 동시에 신이 그를 치유하고자 직접 나타나신 시공간이기도 하다. 요컨대 오두막은 슬픔과 치유가 동시에 발생되며 공존한 곳이다. 인간 삶의 고통과 영광은 역설적이게도 동일한 곳에서 작동하며 호흡한다. 작가는 그 명징한 진리를 삼위일체의 감탐할 만한 현대적 해석을 통해 그려냈다.

  내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이 소설을 꼽은 것은 아니다. 철저한 문학적 관점에서 선정함을 밝혀둔다. 신을 믿든 믿지 않든 꼭 읽어볼 만한 소설로 지인들에게 많이 선물했다. 자신있게 2009년 '올해의 책' 명단에 올려놓는다.

 

3. 청춘의 독서, 유시민, 웅진지식하우스, 2009
 서평 : http://blog.naver.com/gilsamo/90074529134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다섯 권 중 유일한 비문학도서다. 비문학에서 문학으로 점점 옮겨가는 내 독서패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책이다. 이 책은 노무현의 죽음으로 발생된 유시민의 고독이 현실세계에 대한 허무로 연결된 배경을 내밀하게 밑바탕에 깔고 있다. 책 속에서 물밖으로 팽개쳐진 물고기와 같다고 고백한 유시민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 절대고독의 자장에서 저자는 도스토옙스키를 찾았고 마르크스를 찾았으며 푸시킨을 찾았던 것이리라.

  유시민의 수많은 저작 중 이 책을 최고로 꼽는다. 이 뛰어난 고전 예찬론을 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4. 누란, 현기영, 창비, 2009
 서평 : http://blog.naver.com/gilsamo/90068858251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묵묵하게 사실적으로 써내려갈 때 그 사실은 더욱 사실적이 된다. 아름다운 미사여구나 과도한 형용이 부재하다 하더라도 사실은 사실 그 자체적인 방법으로 사실의 정당성을 더욱 공고히 한다. 현기영의 소설이 그렇다. 그는 아픈 역사를 묵묵히 사실적으로 얘기한다. 꾸미거나 포장하지 않는다. 그저 '서술'할 뿐이다.

  1980년대로 대변되는 한국 민주주의의 상처를 소설가 현기영은 매우 건조하고 직선적인 문체로 담아냈다. 우리 선배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쟁취했으며 그것을 얻기 위한 대가는 어떠했는지 극도의 건조한 문체를 통해 독자의 가슴을 일렁케 한다. 역사는 후세에 기억되어야만이 비로소 진정한 '역사'가 된다. 현기영의 소설이 반드시 읽혀져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5.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위즈덤하우스, 2009
 서평 : http://blog.naver.com/gilsamo/90064129090


  한국문단에 박민규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자 기쁨이다. 박민규의 상상력과 발칙함은 한국문단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김애란과 더불어 한국 문학의 미래에서 가장 조명받는 소설가로서 박민규가 갖는 위치는 과히 대단한 것이었다.

  이 소설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경계를 잘 설정했다. 잘 읽히지만 가볍지 않으며 흥미있지만 대중적이지만은 않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핵심 권력인 '외모'를 소재로 진정한 사랑의 본질을 이끌어냈다. 더욱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서사 구도와 멀티 엔딩을 통한 반전 효과는 수준급이다. 위대하고 거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독특한 소재를 통해 중량감 있게 전달한 박민규식 서사에 박수를 보낸다. 술술 잘 읽히면서도 녹록지 않은 사유를 이끌어내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박민규이기 때문에 가능한 소설이다. 응당 '올해의 책'으로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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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획득된 기술이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됨으로써 이루어지는 진보다."


  오랜 시간 동안 잊혀져 있던 책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 책이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울림을 선사한 책이라는 사실을 또한 깨달았다. 어쩌면 기존의 생각과 가치관을 전회에 가깝도록 바꿔주었던 가장 소중한 책으로 내 무의식 속에서 지금껏 존재해왔을지도 모른다.

  유시민의 신간 <청춘의 독서>를 통해 나는 내 잠재의식 안에 자그만 방을 만들어 숨쉬고 있던 불멸의 고전 한 권을 끄집어냈다. 오래전 처음 그 책을 만났을 때 놀라고 전율했던 기억까지 함께 끌어올렸다. 나는 그 책을 통해 버트런드 러셀과 카를 마르크스가 동일점에서 통합되는 것을 확인했다. '책읽기에 대한 열정'과 '세계를 변혁하는 힘'은 본질적으로 동일선상에 놓여있다는 것을 말이다. 에드워드 헬릿 카(Edward Hallet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는 다시 이렇게 내 손에 안착했다.

  모든 문명과 모든 시대가 동등한 가치를 가진 것이 아니며 정신 문명이 진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카는 이 불멸의 저서를 통해 논증했다. 진보에 대한 믿음은 어떤 자동적인 또는 불가피한 진행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 발전에 대한 믿음이라는 카의 주장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게는 내 인생의 30년에서부터 크게는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는 반드시 진보했다. 이 명징한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소망있게 한다.

  기존의 번역본과는 다른 것을 찾았다. 처음 읽었던 책은 범우사의 것이었고, 수년 전에 읽은 책은 김택현 씨가 번역한 까치출판사의 것이었다. 금번에는 권오석 씨가 번역한 홍신문화사의 것으로 선택했다. 가장 최근에 번역되었기 때문에 현대인이 읽기에 가장 무난하고 평이하다는 평에 따른 것이었다.

  유시민은 인생의 고비마다 이 책을 집어들었다고 고백했다. 그와는 입장과 처지가 다른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내게 '인생의 고비'라는 거대한 수식어구가 이 책을 다시 읽는 명분으로 배치될 필요는 없다. 다만 유시민의 50년 인생에서, 그리고 30년이 조금 넘는 내 인생에서 이 한 권의 책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동일한 기호가 작용되었을 따름이다. 요컨대 그저 다시 읽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오늘, 불후의 저작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읽는다.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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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대 위의 까치 -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읽기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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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에 문외한이다. 일전에 지인을 따라 미술관에 간 적이 몇 번 있다. 당시 작품 한 점마다 10분 이상 서 있는 지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미술관 전체를 둘러보는데 나로서는 30분이면 충분했다. 언젠가 고흐 특별전이 열릴 때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도대체 그림이 무엇이관대.

  주변에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몇 있다. 그들마다 그림을 보는 시각과 취향은 가지각색이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처음 본 그림에 대해 곧바로 쏟아내는 그들의 경이적인 아웃풋이다. 무엇을 의미하고 상징하는지 쉽게 해석하기 어려운 다양한 그림들을 보고 직관적으로 반응하는 그들의 모습은 나로서는 신비함 그 자체였다. 더욱 신기한 것은 동일한 그림을 보면서도 해석의 다의성이 매우 크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림을 보고 직관적으로 반응하고, 천천히 음미하며, 다의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그림 예찬론자들의 행동은 책만 읽는 바보인 내게 불가해한 신비였다.

  진중권의 신간 『교수대 위의 까치』는 그림에 관한 책이다. 미학자로서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열두 점의 그림을 선택했다. 저자는 자신에게 영혼의 울림을 주었던 그림이라고 소개하며 자신만의 해석으로 작품을 감상한다. 원래 한 몸이었으나 세상에 태어나면서 둘로 쪼개져야 했던 자신의 반쪽과 같은 느낌을 준다는 저자의 '오버'가 몹시 진지하게 다가온다. 무엇이 그의 영혼을 울렸고 자신의 반쪽을 찾게 했을까.

  우선 저자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제기한 두 개의 사진의 의미를 전한다. 해석의 일반성을 의미하는 '스투디움(studium)'과 혼자만이 느끼는 개별적인 효과인 '푼크툼(punctum)'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회화에 그대로 적용한다. 사회적으로 일반성을 지닌 보편·객관적인 해석보다는 각 개인이 뿜어내는 주관적 아웃풋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개인의 사밀한 체험과 주관적 감상에 절대적으로 작용받는 '푼크툼'으로서의 작품 감상을 저자는 한 차원 위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 곳곳에서 작품의 일반적 해석과는 별도의 입장에 서 있는 저자만의 해석과 사유가 잘 드러나 있다.

  열두 점의 작품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표제작 <교수대 위의 까치>다. 저자는 이 작품을 책 속에 수록된 열두 점의 그림 중 가장 영적 울림에 가까운 푼크툼의 효과를 준 작품이라고 극찬한다. 사실 <교수대 위의 까치>는 첫 눈에 무엇을 말하려는지 쉽게 와닿는 작품이 아니다. 작품의 배경인 네덜란드의 관습과 당시의 시대상을 알지 않고서는 그림이 말하는 바를 도출하기가 만만치 않다. 가십거리를 몰고 다니는 사람에 대한 경고로 읽어내는 좁은 해석에서부터 정치 혹은 종교적 앙가주망 내지는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묘파로 보는 넓은 해석에 이르기까지 해석의 적극화를 꾀하는 진중권의 진지함이 이 작품에 대한 서술을 통해 잘 드러난다.

  수록된 그림 중에서 그림맹으로서 가장 호감있게 본 작품은 티치아노 베첼리의 <신중함의 알레고리>다. 세 사람과 세 짐승의 삼각구도로 그려진, 어쩌면 매우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 작품을 보고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정지했다. 티치아노는 매우 뛰어난 묘사로 신중함의 삼분법을 그려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의 연결성 위에서 '신중함'이라는 명제를 풀이하고자 했던 작가의 숨결이 진하고 강렬하게 그림 속에서 살아숨쉬는 듯했다. 열두 점 가운데 그림 자체가 진중권의 해설을 압도한다고 느낀 것은 이 작품이 유일했다.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기는 리뷰어로서의 내 기본 자세도 진중권이 제기한 푼크툼의 효과와 상통한다. 비평가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위 '전문적' 평들을 경계하는 편이다. 모든 해석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의 획일화에 반대한다는 수잔 손탁(Susan Sontag)의 "해석에 반대한다"라는 말은 감상자로서는 반드시 음미해야 할 명언이다. 회화와 문학을 위시한 인간의 모든 문화적 창조물들은 '과학'으로서가 아닌 '예술'로서 그 존재성이 더욱 빛나게 된다. 동일한 작품을 보고 읽으면서도 남과는 다른 결론을 이끌어내는 역량이 필요하다. 그것이 복잡다단한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뷰어의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서평을 정리하자. 다양한 그림 작품들을 소개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으로 풀이한 진중권의 신간 『교수대 위의 까치』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그림을 보는 재미도 재미거니와 진중권 특유의 개성있는 필력이 하나의 작품을 감상하는 감상자로서의 태도까지 조언하고 있다. 그림을 보는 관찰적 디테일과 이를 다른 예술 장르에까지 적용할 수 있도록 강의한 진중권의 열정에 깊은 공감을 표한다. 내가 소장하고 싶은 작품들의 가상 컬렉션이자 내가 보여주고 싶은 작품들의 지상 전시회, 라고 멋드러지게 이 책을 수식한 저자의 말은 결코 과장적이지 않다. 매우 흥미있고 매력적인 책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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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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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좋은 책은 항상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변화하게 한다. 책이 세계를 구원하지는 못하더라도 변혁의 동기를 부여하고 고취한다. 인류사에 남겨진 수많은 고전을 보라. 그것들은 인간을 탐구하고 시대를 조명하면서 인간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왔다. 한 시대 공동체 구성원들의 지적 화두를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고전 속에는 오롯이 새겨져 있다. 이것이 없는 책은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않는다. 그러기에 고전은 뜨겁다.

  우리는 고전을 통해 인간의 당위적 가치와 그 시대의 고민에 직면하게 된다. 대작가의 혼과 숨결은 텍스트 곳곳에서 읽는이의 머리와 가슴을 진동시킨다. 고전은 '입증'된 텍스트다. 한 시대의 명품 텍스트가 후손으로부터 계속해서 읽히고 또 읽혀옴으로써 그 입증을 더욱 공고히 한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될 때, 길이 멀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고전을 통해 참된 길이 무엇인지를 교훈받는다.

  '지식소매상'임을 자처하는 우리시대 대표 진보 지식인 유시민은 신간 『청춘의 독서』를 통해 고전에 대해 얘기한다. 저자 자신이 젊은 시절 읽고 느꼈던 고전 중 14편을 선정하여 독자에게 소개한다. 저자가 전하는 14편의 고전들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의 시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찬란한 명저들이다. 저자는 저작마다 담긴 웅숭깊은 가치와 다양한 시대성에 대해 수준높은 식견과 진지한 자세로 풀이한다.

  유시민은 역시 진보 지식인답다. 훌륭한 명저였지만 서슬퍼런 정권의 칼날로 인해 공개적으로 읽기가 어려웠던 시대의 금서들을 리스트 위에 올려놓았다.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은 책 속에 담긴 빛나는 가치와 정신 때문에 오히려 제도권으로부터 핍박을 받은 작품들이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지금이 확실히 좋은 시대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수십 년 전의 '그때'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아진 것만큼은 사실이다. 이제 『전환시대의 논리』를 숨어서 읽고, 『공산당 선언』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남산에 끌려가는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젊은 시절 어렵게 구해 아무도 없는 곳에 숨어서 위대한 금서들을 탐독했다는 저자의 솔직한 고백을 통해 '진실'이 역사를 어떻게 압도해가는지를 새삼 실감한다.

  이 책의 가치는 다양함에 있다. 인간, 역사, 철학, 정치, 사회, 과학에 이르기까지 인류를 다채로운 각도와 방법으로 관류했던 고전들을 선택했다. 도스토옙스키에서 카(E. H. Carr)에 이르기까지 세기의 천재들이 뿜어내는 텍스트는 하나같이 역동적이며 찬란스럽다. 기존의 사상·관습과의 단절을 필두로 고전을 만든 위대한 천재들은 항상 새로운 것으로써 기존의 것들을 들추어봤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무엇'을 생산 또는 재창조했다. 이러한 고전의 혁신성은 항상 시대성의 전복과 맞물려 발생했던 특징이다.

  고전의 태동적 진보성은 유시민의 평소 성향을 고려하면 매우 적확한 조합으로 연결된다. 저자는 한국 정치·지식계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편에 속한다. 그의 정치적 신념과 정책적 행위는 기존의 것을 혁신하는데 많은 부분 닿아 있다. 이러한 저자의 진보성은 시대 안에서 시대를 혁신하려 했던 고전의 성질과도 상통한다. 난 믿는다. 모든 고전은 태생적으로 진보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E. H. 카가 불후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강변했듯이 인간 능력의 계속적인 발전에 대한 믿음이 역사의 진보를 입증하며 추동한다. 그러기에 인류사의 수많은 고전들은 각 시대마다 다르게 읽히며 후손들에게 올바른 길을 찾아줄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각 고전 속에 살아 숨쉬는 다양한 진리와 가르침을 풀어놓는다. 기존의 해설서와는 별도로 저자만의 시각과 사유로 각 고전의 단물을 빨아내는 해석이 인상적이다. 젊은 시절 날카로운 첫키스와 같은 책 《죄와 벌》을 통해 평범한 다수가 갖는 강력한 힘과 선한 수단과 목적 사이의 인과관계를 사유했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통해 지식인으로서의 의무를 배웠고, 《공산당 선언》을 읽으며 혁명의 가치와 매력에 경도되었다. 《맹자》에서 진정한 보수守가 무엇인지를 알았고, 《사기》를 통해 권력의 단면과 정치의 속성을 배웠다. 《진보와 빈곤》을 읽고 문명과 빈곤의 함수관계를 학습했고,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역사와 사회에 대한 개안을 일으켰다.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은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편이다. 이 소설은 개인과 언론 사이의 무서운 구조적 관계성에 대해 묘파한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카타리나와 신문사 '차이퉁'의 대립은 당시 독일에서 작가 자신과 일간지 <빌트>와의 대결구도를 그대로 상징한다. 판매부수 400만 부로 독일 내 단연 1위 신문 <빌트>는 논조가 매우 보수적이며 때로는 극우적이다. 하지만 많이 팔린다고 해서 '일등 신문'으로 불리지는 않는다. 비록 <빌트>보다 판매량이 많진 않지만 품위 있고 사회적 영향력을 갖춘 다른 신문들이 균형감 있고 다양하게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한국의 현실과 대조한다. 1위부터 3위까지 모두 '빌트'로 점령당한, 자타가 모두 '일등 신문'이라고 부르며 읽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에 빠져 있는 한국 언론시장의 세태에 한숨을 짓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공급받는 '정보'와 '진실'은 일차적으로 미디어의 프레임을 통해 가공된 것들이다. 신문의 헤드라인이 갖는 엄청난 '폭력'에 대해 고발하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유시민이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읽었을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총 세 권의 역사 관련 책을 집필한 저자의 입장에서, 동시에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는 지식인으로서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서 있는 고전이다. 저자는 자신의 50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책으로 《역사란 무엇인가》를 꼽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이 전면적인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고백한다. 이는 저자 자신이 카(Carr)가 제기한 역사의 진보적 속성과 역사가(지식인)의 임무에 대해 전회에 가까운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인간 능력의 점진적 발전에 대한 믿음을 전제하는 카의 논증에 깊은 울림을 선사받은 것이다.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관으로 한국 현대사 50년을 담아내기는 역부족이다. 인간은 분명 발전했고 역사 또한 분명 진보했기 때문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이미 역사학의 교과서가 되어 있다. 비단 역사가뿐만 아니라 언론인, 지식인, 정치인, 경제인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읽어야 할 불후의 명저다. 물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또한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이다. 카의 불후의 명저를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책으로 꼽는다는 점에서 유시민과 내 기호가 일치한다. 흐뭇한 일이다.

  나는 지쳤다. 존경했던 이들은 먼 곳으로 떠났고, 사랑하는 동료들은 시대의 삭풍에 떨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겠으나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야 할지 몰라 번민한다. 내가 받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나를 외면하고, 같은 방향을 보고 걷는 사람들과도 손을 잡기가 어렵다. 가끔 나는 내 자신이 물 밖으로 팽개쳐진 물고기 같다고 느낀다.   <p. 312>

  유시민이 고독해 보인다. 책 말미에 고백한 위의 문장은 저자가 현재 얼마나 외로운 심리상태에 빠져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책 곳곳에서 길을 잃은 한 지식인의 고독과 번민을 느낀다. 그는 왜 길을 잃었을까. 무엇이 두려운 걸까. 혹 자신의 길과 지표가 되어 주었던 한 사람의 죽음이 그를 그토록 외롭고 두렵게 만든 것은 아닐까. 자신의 삶과 정치에서 이정표과 같은 역할을 해주었던 멘토의 부재와 같은 뜻과 이상을 지녔던 동지들의 초토화를 지켜보며 그는 얼마나 많은 혼란을 겪었을까. 어쩌면 유시민은 자신이 처한 현실의 외로움을 동일한 현실세계가 아닌 인류의 위대한 고전들 속에서 해결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많이 외롭고 두려웠던 것 이상으로 책은 정말 잘 썼다. 매우 수준있고 진지한 책이다. 유시민의 고독과 번민을 마음 깊이 이해한다. 그리고 그의 모든 저작 중 가장 잘 쓴 『청춘의 독서』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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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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