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기술
레일 라운즈 지음, 임정재 옮김 / 토네이도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장기라는 흥미있는 게임이 있다. 2,200년 전 한나라와 초나라의 전쟁을 자그만 나무판 위에 고스란히 올려놓은 게임으로서, 오랜 기간동안 많은 동양인들에게 흥미와 즐거움을 주고 있다. 장기판의 배경이 되는 초한전쟁은 결국에는 한나라의 승리로 종결된다. 사실 초나라의 수장인 항우와 한나라의 수장인 유방의 개인적 배경을 비교하면 전자의 압도적인 우위로 정리된다. 대대로 장군직을 지낸 명문 귀족 출신인 항우와, 이름없는 백정출신인 유방은 시작시점부터 비교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숙부 항량과 함께 강동(양자강 하류)에서 거병, 양치기를 하던 초의 왕족 심을 회왕으로 추대하면서 반군의 중심세력으로 떠오른 항우와 일개의 녹록한 유격대장으로 반군에 가담한 유방과의 시작점은 천양지차라 할 만큼 확연히 구별된다. 하지만 종국의 승자는 유방이었다. 이에 대한 여러가지 이유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넓은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관찰하면, 유방과 항우의 <사람>을 얻는 기술에서의 현격한 수준차이의 인과관계였음이 확인된다. 

  유방은 거의 모든 면에서 항우에게 뒤졌지만, 사람을 얻고 다루는 기술, 단 하나의 장점만을 갖고 항우를 이길 수 있었다. 유방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유방의 친화력은 주변에 훌륭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동기가 되었고, 능력과 직분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고 신뢰함에 따라 힘있는 조직을 만들 수 있었다. 천하의 대세에 대한 일은 장량의 말을 전적으로 신임하였고, 군사는 모두 한신에게 위임하였으며, 내정은 모조리 소하에게 맡겨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정하여 그 힘을 다하게 하였다. 인사에 있어서 형편없던 항우와의 상이한 유방의 용인술은 그의 많은 단점을 커버하면서 최후의 승자가 되어 종국에 한제국을 건국하는 동기가 되었다. 사람을 얻고 다루는 기술. 그 차이 하나만으로 천하의 승패가 갈라졌던 것이다. 

  레일 라운즈의 『사람을 얻는 기술』은 바로 이러한 사람을 얻는 기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책이다. 총 82가지의 기술을 강렬한 목소리로 피력한다. 언어, 배려, 경청, 칭찬, 미소, 진심 등의 수많은 대인관계의 기술적 요소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저자 자신이 겪은 경험담과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관찰된 도전담들을 정갈하고 자신감 있는 문체로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이 다른 자기계발서와는 다소 다른 느낌을 주는 것는 보다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데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의 기술을 설명하면서 무려 9가지의 소제목으로 다양하게 얘기하고 있다. 칭찬의 다양성과 타이밍, 분위기와 미소, 받는 기술에 이르기까지 저자 자신이 겪은 경험과 관찰을 자원으로 한 도전적 글귀들을 들려준다. 
☞ 그가 자신을 칭찬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그를 칭찬한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에 그 어떤 칭찬보다도 조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다.   (p. 193) 

  언어의 사용 또한 매우 중요한 인간관계의 기술 중 하나다. 저자가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어서인지 상대를 배려하는 것, 특히 상대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언어생활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신중치 못한 말의 사용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적으로 돌아서는가. 사람을 소재로 한 농담이 순간적인 싸구려 웃음을 가져다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한 사람을 영원한 적으로 만드는 길이며, 인간관계에 성공한 이들의 공통점은 절대로 상대방을 폄하하지 않는다는 인과성을 생각할 때 언어사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닌 너를 세워주고, 배려하며, 감싸주는 언어야말로 너를 얻는 기술의 절대적 전제조건임을 다시한번 되새긴다.
☞ 어떤 경우에도 다른 사람의 실수를 빗대어 농담하지 마라. 그리고 상대의 약점을 빗대어 장난하듯 말하지 마라. 당신은 전혀 악의가 없었다고 강변할지 몰라도, 악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오직 당신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p. 126) 

  언제나 자기계발서를 읽은 후에 동일하게 남는 부담스런 생각의 찌꺼기가 있다. 과연 내가 이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책에서 얻은 지혜와 교훈에 동의하는 것과 정작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의 불일치가 불편하기만 하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독서가들의 비행동화를 감안했는지, 에필로그에 매우 중요한 메세지를 던져주고 있다. 사람을 얻는다는 건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이다. 반복해서 행동하면 습관이 되고, 습관에 힘입어 성격이 만들어지며, 성격이 바로 운명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운명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깔끔한 메세지로 책의 막장을 마무리하고 있다.   

  가정이나 회사나 국가, 그 어떤 공동체라 할지라도 세상 모든 가치는 결국 사람이 창출한다. 사람이 시작이며, 사람이 끝이고, 사람이 전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그리고 얼마나 좋은 사람들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결과가 바로 성공의 길이자, 세상을 얻을 수 있는 힘이다. 대인관계에 두려움이 많은 이들이나 인간관계의 개혁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레일 라운즈의 『사람을 얻는 기술』을 살포시 추천하는 바이다. 
 

☞ 무릇 상대를 사로잡는 첫인상은, 상대에게 나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데 있지 않다. 상대에게 내가 얼마나 편안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p. 37) 

☞ 당신이 구사하는 화려한 수사에 현혹되어 당신에게 열광하는 사람은 결코 진정한 당신의 사람이 될 수 없다. 당신의 보이지 않는 배려, 그것을 당신의 매력이라고 여기는 사람만이 당신의 사람이 된다.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는 것, 나아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끔 만드는 것. 그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장 큰 애정과 신뢰를 만든다.   (p. 52) 

☞ 모임에서 특별한 만남을 원한다면, 당신을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당신이 선택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라.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거나 좋은 지식을 내보이지 못해 안달할 필요 없다. 중요한 건 당신이 선택한 사람이 아름답다는 확신, 그리고 그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자신감이다.   (p.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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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가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 전, 네이버 독서카페 '책좋사'의 정기모임이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라는 카페이름을 대변하듯 정말 책을 좋아하는 이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모임에 참석한 회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회원들 모두 가지각색의 취향과 기준으로 책과 작가를 관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토록 다양한 독서철학을 가진 이들의 모임인 '책좋사'에 침투한지 어느덧 몇 개월이 지났고, 내 독서의 성격도 상당히 달라졌음을 느낀다. 본래 인문학도서나 경제&경영서, 자기계발서 등의 비문학도서에 집중되어 있던 독서경향이 문학이라는 깊이있는 우주의 세계를 만나 예전과는 다른 여행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목도한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홀리 가든』을 읽은 것은 이러한 내 자신의 독서의 현재위치를 명확하게 입증한다. 마지막장을 덮은 후 생각했다. 내가 이런 소설까지 읽을 줄이야, 라고.. 

  굉장히 일상적이다. 두 여인의 연애담을 특별한 에피소드 없이 소소한 일상 안에서 뛰어나게 섬세한 감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여분의 것, 하찮은 것,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그런 것들로만 구성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하는 에쿠니 가오리의 고백은 13년 전에 출간된 『홀리 가든』의 존재감을 정갈하게 정의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여분의 것, 하찮은 것,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을 함께 나누며 성장한 가호와 시즈에는 절친한 친구 사이다. 두 여인의 한 남자에 대한 각각의 사랑은 과거와 현재라는 각기 다른 시간대에 구속되어 있다는 상이함이 있으나, 현재적 시간대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박수받을 수 없는 어두운 사랑이라는 점에서 동질성을 갖는다. 가호의 사랑은 5년 전 헤어진 스쿠이라는 존재에 철저히 구속되어 있을 만큼 과거적이다. 이에 비해 시즈에의 사랑은 비록 멀리 떨어져있지만 매일같이 보고 싶을 정도로 강렬하게 현재적인 사랑에 묶여있다. 하지만 가호의 사랑이 이미 종결된 5년 전의 실연의 그리움이라는 면에서, 그리고 시즈에의 사랑이 아내와 아이가 있는 유부남과의 불륜이라는 면에서 위험한 사랑이라는 동질성을 갖는다. 

  이러한 두 친구의 사랑의 동질성은 둘 사이의 미묘한 관계의 끈을 형성한다. 아주 작은 것을 서로 공유할 만큼 친한 사이지만, 어떨 때는 부러움을 느끼고, 질투심을 갖기도 하며, 미묘한 긴장과 견제의 심리가 은근하게 발동된다. 하지만 이러한 미묘한 긴장감은 두 여인의 웅숭깊은 우정의 특질을 역설적으로 수식하는 장치에 불과할 뿐, 종국에는 서로의 믿음의 승리로 귀결된다. 

   사랑은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한방향을 보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라는 멋진 말이 있다. 사랑을 그저 마주보는 차원에 국한시키는 연인들이 많다. 사랑이 한 인간에 구속된 개념이 아니라 우주를 폭넓게 아우를 수 있는 절대적 선한 가치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둘만 마주보는 것은 둘 이외의 다른 객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이는 수많은 환경의 어려움 가운데 사랑을 포기하게 되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함께 같은 방향을 보며 나아가는 사랑은 사랑의 주체인 둘 이외에도 다른 우주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들 자신이 그 우주 안에 오롯이 속해있음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충분히 안정적이고, 크고, 깊이 있는 사랑이 가능하며, 많은 사랑의 주체들이 후자의 사랑의 정의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가호의 사랑은 지극히 과거에 얽매여있어 자신의 현재를 훼손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며, 시즈에의 사랑은 서로 마주보기만 하는 불륜이라는 점에서 씁쓸하다. 오히려 묵묵히 바라보며 인내하는 가호에 대한 나카노의 사랑의 방향이 인상적이다. 가호의 과거를 알면서도, 더욱이 이뤄지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한방향을 추구하는 나카노의 친절하고 소박한 사랑이 왠지 굵고 깊게 느껴진다. 

  소외된 사랑의 예를 두 친구의 과거와 현재의 삶에 섬세한 필치로 그려넣은 에쿠니 가오리의 『홀리 가든』은 분명 내게 익숙하지 않은 소설이다. 새로운 것을 만나는 것은 충분히 흥분되는 법. 보다 다양한 독서의 세계를 위한 내 자신의 넓이를 넓힐 것인가, 아님 내 머리와 가슴이 원하는 독서만을 찾을 것인가, 에 대한 외로운 토론의 물결은 당분간 내 머리속에서 일렁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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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된 CEO - 알고 있는 모든 상식과 편견을 뒤집어라
조한필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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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 범람하고 있는 자기계발서의 내용은 대부분 비슷한 내용으로 정리된다. 많고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옳고 바람직한 삶을 제시해주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거기서 거기인 비슷한 내용의 반복과 충분히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외침으로 인해 신선함과 도전을 얻지 못하며 실망하는 독서가들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인양 보인다.  

  알고 있는 모든 상식과 편견을 뒤집어라, 는 강렬한 표지문구가 돋보이는 『개가 된 CEO』도 바로 이러한 일반적인 자기계발소설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편견>이 갖는 오류를 주제로 한 처세소설이다. 제목부터 흥미롭다. 책을 읽기 전, 설마 CEO가 개가 된다는 내용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갸우뚱했다. 하지만 정말 CEO가 개가 되는 내용이다. 잘 나가는 중견기업의 전도유망한 젊은 CEO가 갑자기 개로 변해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게 되고, 과거 자신의 나쁜 행태를 반성하여 다시 사람이 된다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다. 허무맹랑한 상황설정과 매끄럽지 못한 이야기 전개,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오탈자 등이 적지않이 눈쌀을 찌푸리게하지만 이 책이 전하는 메세지는 단순명료하다. 편견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편견은 무서운 것이다. 마치 마법과 같아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굴절되고 오도되어 비춰지게 한다. 관찰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떤 것이든 편견은 진실을 왜곡하며 사실을 호도한다. 자기 스스로 이미 단정지은 프레임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각기 고유의 색상을 갖고 있는 피관찰자의 진정성을 왜곡하기 마련이다. 수많은 편견과 선입견이 잘못됨을 극대화하고, 꼭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깊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편견공화국이라 할 만큼 편견이 만연해 있는 사회다. 단일민족의 유구한 역사는 새로운 것과 다른 것에 대해 거리감을 갖는 민족성의 동기가 되었다. 변하기 싫어하는 보수주의적 사고방식과 '우리'보다는 '나'에 익숙한 우리네들의 습속은 우리 사회에 다양성의 부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더욱이 학연과 지연과 혈연이라는 한국인의 대인관계의 표상은 편견과 선입견으로 개인과 사회를 바라보는 프레임 문화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는 우리사회가 보다 높은 차원의 진보된 사회로 나아가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게 내 소견이다.  

  사실 비슷하고 동일한 것에 대한 공감대를 추구하는 것이 비단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동질성의 추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범위가 축소될 때, 위험한 흉기가 될 소지가 있다. '인류'에서 '한국인'으로, '한국인'에서 '우리 정당', '우리 지역', '우리 학교'로 범위가 축소될수록 우리의 눈엔 여러겹의 색안경들이 씌워진다. 그 색안경들은 진실을 왜곡하고 우리가 아닌 것엔 흉기를 휘두르게 하기 때문이다.
☞ 여러분은 미술 시간을 기억하실 겁니다. 팔레트에 여러 색을 섞으면 마지막엔 블랙이 되죠, 마찬가지로 여러 겹의 색안경들은 암흑이 되어 결국 우리의 눈을, 우리의 미래를 가리게 됩니다. 여러분은 색안경, 즉 편견의 피해자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가해자입니다. 우리는 편견의 악순환을 끊어야 합니다. 개인의 성공을 위해! 사회의 발전을 위해!   (p. 159) 

  대한민국의 GDP가 2만불을 넘어섰다. 이제 본격적으로 선진국 대열인 3~4만불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서구 선진국들의 3만불 역사가 말해주듯 그 과정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회적 충돌과 대립이 발생하는지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사실 GDP 2만불까지는 경쟁과 효율의 논리만으로도 가능했다. 하지만 3만불의 벽을 넘어 4만불의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차원의 자원이 필요하다. 바로 협력과 공생이라는 비편견적, 비선입견적 공동체 문화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을 위시한 부자나라들의 현대사는 그것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음이다. 

  무엇이든 내포적 힘이 외연적 겉치레를 압도하는 법이다. 만약 우리가 오만한 편견으로 피관찰자의 내포적 힘을 보지 못하고 외연적 겉치레만을 포착하여 그것이 전부인양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그러한 편견의 오류에 빠진 사람이 많은 사회가 되면 될수록 우리사회는 진보가 더디고 행복이 미지근한 사회가 될 것은 자명하다.  

  식상한 이야기의 흐름과 수준 낮은 완성도의 실망스런 책이지만, 우리사회에 만연한 편견의 오류를 꼬집은 것에 그나마 도전을 얻고 위안을 삼는다. 수박을 수박으로 보고, 고양이를 고양이로 보며, A를 A로 볼 수 있는 개인, 그런 개인이 많은 사회, 그런 사회를 지향하는 문화, 그런 문화가 팽배한 세상. 그런 세상을 열망하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니리라.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을까요?"
  "좋아요. 그 질문 자체가 벌써 시작했다는 뜻이에요. 고흐는 서른 살이 되어서야 그림을 그렸고, KFC 창업자 샌더스는 65살때 받은 105달러의 사회보장 지급금으로 사업을 시작했어요. 만델라가 감옥에서 나왔을 때는 72세였고요, 드골은 75세에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되었죠."   (p. 1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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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큼의 애정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노재명 옮김 / 다산책방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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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개인적으로 연애와 관련된 책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눈물을 쥐어짜는 신파극 특유의 기름기가 느끼하고, 톡톡 튀는 상쾌발랄한 로맨틱 코미디의 가벼움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흔히 접하는 대부분의 러브 스토리가 느끼하고, 가볍고, 그저 그런 비슷한 스토리로 귀결되는 것에 지쳐있기에, 더욱이 남자라는 생체학적 감성밀도의 부족함을 극복하지 못한 채, 연애장르는 어느새 내가 피하고픈 부분이 되어있다.  

  시라이시 가즈후미의 『얼마만큼의 애정』은 철저한 연애소설이다. 일본소설의 붐이 한국문단에서 하나의 큰 주류로 존재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시라이시 가즈후미의 존재는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더욱이 무슨 무슨 상을 받았고, 저명한 문학가들로부터 추천사로 도배가 되어 있는 일본소설 특유의 과장된 홍보문구를 감안한다면, 『얼마만큼의 애정』의 표지 비쥬얼은 담백하고 간결하기만 하다. 출간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주변의 평이 상당히 좋았던 터라 평소 갖고 있던 연애소설에 대한 얼마만큼의 편견을 묵과한 채 양장본의 첫 하드커버를 넘길 수 있었다. 

  소설의 도입부는 큰 인상을 심어주지 않는다. 여느 연애소설과 마찬가지로 그저 그런 이야기의 흐름이 이어질 뿐이다. 전복적이지도, 가슴이 두근거리지도 않는 서사의 흐름은 소설의 절반의 분량을 넘어가면서 급반전된다. 물론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야기의 반전(?)이 발생하면서 여느 연애소설과는 다른 깊이와 무게감을 건드리고 있다. 

  인간과 동물이 확연하게 구별되는 것 중에 하나가 실존하는 것과 실존하지 않는 것을 대하는 차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구속력과 그에 따른 상상력의 존재 유무로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동물은 눈에 보이고, 냄새를 맡고, 귀에 들리는 것 이상의 상상추론이 불가하다. 하지만 인간은 특유의 고도로 발달된 두뇌와 이성과 상상력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감지하는 위대한 존재다.  

  신체적 감각을 초월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의 능력도 <사랑>이라는 절대적인 가치 앞에서는 감각 안에 종속되는 경우가 많다. 눈에 보여야 하고, 귀에 들려야 하고, 냄새를 맡아야 하며, 만져져야만 사랑을 확인하며 증명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욱이 이성간의 사랑은 그 경향이 다분하여 수많은 에로스의 사랑의 분쟁 속에서 이를 목도하기도 한다. 영원히 사랑하고 평생 헤어지지 말자며 약속하는 수많은 무리들의 외침이 어쩌면 신께서 보시기에는 소음수준의 가벼움으로 비춰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동일한 기준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사랑을 이루는 가장 큰 자원으로 <믿음>이 존재한다. 가장 큰 믿음이 가장 큰 사랑을 추동한다. 소설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사랑한 마사히라에 대한 아키라의 마음, 그리고 뜨겁게 사랑했지만 믿음이 결락되어 5년의 시간을 원망과 그리움으로 보낸 마사히라의 모습은 사랑에 있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 그리고 믿음이라는 절대적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하겠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소설에서 중요한 주제적 소재로 사용되는 <실명>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시력을 잃어 앞을 못 보게 된다는 의미이다. 우주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존하는 것이 많이 있다. 그런 차원에서 실명의 의미를 보다 넓고, 고차원적으로 받아들이면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지만, 반드시 실존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할 수도 있을게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3차원의 세상. X축과 Y축과 Z축만이 존재하는 3차원의 우주가 인간의 오감으로 감지할 수 있는 한계다. 하지만 보다 높은 차원의 것을 보고자 하며, 볼 수 있을 때에 인간을 창조하신 신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유가 밀려온다. 

   제목 『얼마만큼의 애정』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사랑에 있어서 얼마만큼 보이는 것과 얼마만큼 사랑한다는 것이 절대 동의어로 성립될 수 없다는 깊은 인식을 확인한 채, 그로테스크한 표정을 짓고 있는 책의 앞표지의 여자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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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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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세상에서 가장 복잡다단한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여자의 마음,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 인간의 두뇌구조, 반도체의 뇌부회로 등등 다양한 답변이 나올 수 있는 데, 그 중 하나가 <경제>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주가, 환율, 유가, 금리 등 경제를 수치적으로 나타내는 이러한 지표들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하게 움직인다. 실례로 유가는 현재 배럴당 90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이는 정부에서 몇 년 전 50달러 이상은 절대로 넘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던 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면서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마치 허리케인이나 태풍의 활동기작을 슈퍼컴퓨터로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듯이, 경제 또한 그 복잡다단함과 변화무쌍함의 속성으로 인해 예측하기 힘든 성질의 것만큼은 분명 사실이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면서 세계경제의 주류적 흐름은 신자유주의로 확인된다. 마치 경제의 교과서적 진리로 여겨질 만큼 세계화로 대변되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바람은 전 세계를 뒤덮고 있다. 소련 붕괴와 더불어 서구 공산권 국가들이 무너진 이후 미국의 독주체제로의 재편이 이뤄지면서 세계화의 바람은 더욱 매섭기만 하다. 작은 정부, 민영화, 자유무역, 외국인 투자 등의 정책을 내세우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이미 오래 전에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주장한 '보이지 않는 손'에 철저히 충실하자는 경제론이다. 다시 말해서 상당수 많은 부분, 아니 거의 대부분을 시장의 자유로운 원리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물결에 도전장을 내고 반대하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세계적인 저명한 경제학자 장하준 교수다. 그는 최근 출간작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통해 소위 부자나라로 대변되는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을 '나쁜 사마리아인들'로 규정하며 그들이 내세우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허와 실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로 양분되는 정치적 이념에 기반한 비판이 아닌, 철저하게 경제논리와 역사적 사실을 논거로 한 생동감있는 경제학 파노라마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각각 모잠비크의 2061년도와 쌍파울루의 2037년도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저자의 경제적 지식과 식견을 바탕으로 한 상상의 이야기이고 과장된 측면이 적잖지만,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경제적 미래상을 매우 정갈하고 그럴듯하게 예를 들어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솔깃하다. 모잠비크의 성공과 쌍파울루의 실패라는 미래 경제상에 대한 흥미로운 설정은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론에 대한 비판을 수식하는 장치로 책의 처음과 끝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사실 대학 재학시절 때부터 경제에 관심이 많았던 내게 경제적 세계화의 물결은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내수시장이 작고 부존자원이 없는 대한민국의 태생적 한계를 감안했을 때 자유무역을 통하여 무역의 양과 질을 높이고, 외국 자본을 적극 유치하며, 민영화를 통한 경쟁력있는 기업으로의 체질개선을 이뤄야하고, 재정의 건정성을 꾀하여 물가의 안정을 비롯한 경제적 전 부분에 걸친 흑자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신자유주의 경제론의 흐름이 경제 발전의 절대적인 동기가 될 수 없으며, 역사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부자나라의 경제성장의 내면에는 반시장주의적인 요소가 많았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하여 알 수 있었다. 

  저자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인 부자나라들의 과거적 사실과 현재적 주장의 불일치를 지적하면서 개발도상국이 장기적으로 경제적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흐름과는 배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치산업에 대한 보호적인 무역정책, 장기적인 발전 전략의 일환으로 도입되는 한에서만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점, 공기업 민영화의 허와 실, 지적소유권 제도에 대한 보다 완화된 정책, 부정부패의 효율적이고 합리적 접근, 문화와 경제의 상관관계에 이르기까지 경제에 대한 다양하면서도 강력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사실 세계화라는 명제 하에 얼마나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아픔과 상처가 있었는가? 한국의 경우도 계획 없는 무리한 자본시장의 개방과 시의적절하지 않은 OECD 가입을 비롯한 주제와 분수를 모르는 경제정책으로 인하여 1997년 외환위기를 불러 일으켜 국가부도사태에 직면하지 않았던가? 10년 전의 IMF 사태를 통해 얻은 국민들의 고통과 수치를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세계화라는 명목 하에 진행되는 신자유주의 노선의 거센 바람의 내면에는 부자나라들의 이권과 속셈이 녹아 있다. WTO, IMF, 세계은행은 경제적 세계화를 주도하는 범세계적인 관리시스템의 핵심 3총사다. 본래 IMF는 국제수지가 위기 상황에 처한 나라들이 디플레이션 정책을 사용하지 않고도 국제수지 적자를 줄일 수 있도록 차관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고, 세계은행은 기반 시설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 제공을 통해 해당 국가의 재건과 발전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하지만 1980년 이후 두 기관의 역할과 기능은 상당히 달라졌는데 부자나라들의 강력한 의사결정 독점구조를 유지한 채 개발도상국들의 경제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다. 또한 GATT(관세와 무역에 대한 일반협정)는 WTO(세계무역기구)로 바뀐 이후 부자나라들의 의견과 정책을 대변하는 세계화의 기구로 변모되기도 했다. 

  철저한 시장주의와 자유무역, 공기업 민영화 등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핵심요소들의 대부분은 강건한 경제력을 갖고 있는 부자나라들에게 이로운 정책들이다. 후진국은 물론, 중진국인 개발도상국에는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적지 않다. 개발도상국들이 장기적인 차원에서 경제 발전을 이뤄 크고 안정된 시장력을 갖추게 되면 선진국으로서도 시장진출을 통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바 무조건적인 자유시장주의 노선보다는 적절한 보호와 통제를 이뤄야 한다는 저자의 일관된 주장은 심히 공감할 만하다.  

  이 책에서 얻은 정보 중에 매우 흥미로운 것이 있는데 바로 문화와 경제와의 상관관계다. 경제에 있어 문화는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어느 국가의 민족성이 '근면하고', '규율이 잘 선'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발전해 가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특성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해석이라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세계 제 2의 경제대국이자 '일개미'의 표상인 일본의 민족성은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독립심이 지나쳤고, 미래보다는 현재적인 삶을 살았으며, 감정적이며 실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전쟁에서 폐허가 된 이후 모든 국민적 에너지가 국가 재건 및 경제적 부흥으로 모아지면서 세계에서 가장 근면하고, 이성적이며, 진지하고, 미래적인 사람들이 되었다. 수출대국 독일의 경우도 그렇다. 나태하고, 개인적이며, 감정적이고, 어리석고, 부정적하고, 태평했던 독일인들은 경제 발전을 이뤄가는 동시에 능률적이고, 협조적이며, 이성적이고, 똑똑하며, 준법정신이 투철하고, 자제심이 강한 민족이 되기도 했다. 경제 발전이 문화나 민족성의 특질에 따라 종속된다는 통념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서로 상호보완적이며 가변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경제 발전에서 문화가 담당하는 복잡하고도 중요한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 문화는 복잡하고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다. 문화는 경제 발전에 영향을 미치지만, 경제 발전은 문화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문화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문화는 변화될 수 있다. 경제 발전과의 상호 작용과 이데올로기적 설득, 그리고 특정한 행동 양식을 장려하고 장기적으로는 그것을 문화적 특성으로 바뀌게 하는 보완적인 정책과 제도들을 통해서 말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문화가 숙명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근거 없는 비관주의로부터, 그리고 사람들에게 사고방식을 바꾸라고 설득함으로써 경제 발전을 유도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순진한 낙관주의에서 벗어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 것이다.   <p308> 

  한미FTA 체결로 현직 대통령의 지지도가 두 배로 뛴 최근의 대한민국 민심의 흐름은 신자유주의 경제론의 절대적 믿음이 어떠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무엇이든 대세에 대항한 소신있는 도전은 지향되어야 한다. 더욱이 그 도전이 진리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옳고 좋은 가치로 귀결된다면 더욱 그러하다.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신자유주의 노선의 허와 실을 현실적이고 다양한 관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어렵지 않게 기술한 경제학자 장하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경제전문서적이지만 지루하지 않고, 현실감있고 생동감있으며, 정갈한 문체로 대중들도 쉽고 흥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모호하며 맹목적으로 신자유주의 시장노선을 받아들이고 있는 자들, 경제적 세계화의 내포적 특질과 부자나라들의 경제발전 속성을 알고자 희망하는 자들에게 한 번 쯤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나쁜 사마리아인인 부자 나라들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권장하면서, 자신들이 모두 완전한 자유 무역은 아니더라도 그에 가까운 무역을 하고 있다는 걸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여섯 살 먹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보고, 성공한 어른들은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또한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는 논리를 들이대면서 여섯 살 먹은 그 아이를 일터로 보내라고 충고하는 것과 같다. 성공한 어른들은 성공을 했기 때문에 자립을 한 것이지,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을 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경제적, 정서적으로 든든한 지원을 받아온 사람들이다. 2장에서 논의한 바처럼 부자 나라들은 자국의 생산자들이 준비를 갖추었을 때에만, 그것도 대개는 점진적으로 무역을 자유화했다. 요컨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무역 자유화는 경제 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결과이다.   <P110> 

노키아는 벌목, 고무장화, 그리고 전선 사업에서 번 돈으로 17년에 걸쳐 전자 사업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삼성은 직물과 제당 사업에서 번 돈으로 10년이 넘도록 전자 사업에 투자했다. 이들이 만일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개발도상국에게 권하는 것처럼 시장의 신호에 충실했더라면, 노키아는 아직도 나무나 베고 있고, 삼성은 여전히 수입된 사탕수수나 정제하고 있을 것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나라들도 마찬가지로 시장에 대항하여 보다 어렵고 좀 더 고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부문에 진입해야 한다.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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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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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0-21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윗님, 잘 읽고 담아갑니다.
행복한 일요일 보내세요^^

다윗 2007-10-26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해요. 혜경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