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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왕을 주소서 -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읽는 사무엘서
김진수 지음 / 합신대학원출판부 / 2011년 9월
평점 :
교회 후임목사 청빙위원으로 임명된 후 리더십과 관련한 독서가 갈급했다. 여러 책들을 두루 훑었다.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는 이 여정의 끝자락에 읽은 책이다. 세상의 리더십과는 다른 성경적 리더십의 본질을 찾는 과정에서 '다윗'이라는 인물이 호출됐다. 이 위대한 인물의 행적을 복기하면서 교회 젊은 교육목사님의 책 추천이 있었다. 추천과 함께 선물로 받았다. 이 책은 이스라엘 왕조사의 시작을 다룬 성경 <사무엘서>를 강해한다. 김진수 합동신학대학원 교수(목사)가 썼다.
주지하다시피 <사무엘서>는 이스라엘 왕직의 의미를 밝히는 성경이다. 선지자 사무엘은 영적으로 암울하고 정치적으로 불안했던 사사 시대를 마무리하고 왕이 통치하는 왕조시대를 연 인물이다. 한 여인(한나)의 뜨거운 기도를 통해 얻은 아들 사무엘 이야기는 교회를 다니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회자될 만큼 유명하다. 과거 이스라엘 역사에 없던 왕이란 직분에 관해 사무엘은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일깨운다. 그 첫 번째 사례 사울 왕의 실패와 두 번째 사례 다윗 왕의 성공을 <사무엘서>는 진지하게 탐색한다.
다윗 왕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세종대왕 정도로 비교하면 되겠다. 이스라엘의 왕직이 세상ㅡ혹은 다른 민족(국가)ㅡ의 왕권과 다른 점은 선지자에 의해 세워지고 선지자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는 데 있다. 왕이라고 해서 자기 뜻대로 왕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스라엘의 왕권은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하는 은혜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런 왕직의 본분을 잊지 않고 잘 행사한 왕이 이스라엘 왕조사에 다윗을 포함하여 불과 서너 명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비극이다.
본래 이스라엘에는 왕의 제도가 없었다. 죄악의 관영함과 혼란의 퍼포먼스였던 사사 시대를 겪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에게도 다른 민족(국가)처럼 왕을 주소서"라고 외친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 한 분뿐인데 얼토당토않게 인간 왕을 달라는 그들의 목소리에 하나님은 몹시 섭섭해하셨다. 하지만 용인하셨다. 즉 이스라엘에서의 왕의 제도는 비록 백성들의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출발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것이기도 하다. 그 출발이 이스라엘 마지막 사사 사무엘이며 초대 왕은 사울이었다. 하지만 사울은 앞서 언급한 이스라엘 왕직의 본분을 제대로 행하지 못했다. 결국 그와 그의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한다.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이 다음 왕에 오른다. 그러나 다윗이야말로 진정한 초대 왕이다. 다윗의 왕권이야말로 하나님의 통치를 대행한 가장 탁월하고 모범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항상 하나님에게 물어봤다. 독자적으로 하지 않았다. 좋은 일이나 슬픈 일이나 하나님에게 고백했다. 선지자의 감독을 충실하게 받았다. 큰 죄를 지었을 때에도 곧바로 무릎 꿇고 회개했다. 비록 죄를 졌으나 회개했기에 하나님은 용서하셨고 그의 왕권을 지켜주셨다. 다윗 시대 40년이야말로 이스라엘의 국력과 평화가 가장 클라이맥스에 이른 시점이다. 이런 다윗 왕의 모범은 훗날 왕이 바뀔 때마다 하나님이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이 책의 강점은 <사무엘서>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의 의미를 탁월한 신앙적·신학적·성경적 해설로 기술한 데 있다. 저자 김진수 교수는 자신의 박사학위 주제가 '사무엘서'라는 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단단하고 은혜롭게 논지한다. 해외 여러 신학자들의 입장을 비교·대조하며 성경의 원문적 해석을 소개한다. 신학적으로 여러 논의가 있었다는 점을 소개하되 종국 정경적 입장으로 돌아가 <사무엘서>를 강해한다. 어렵지 않되 깊이가 있고 신학적이며 은혜롭다. 책의 구성과 글의 문체는 신학자가 쓴 글답게 논문적·분석적이지만 일반 평신도가 읽어내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평이하다.
성경의 부분과 전체라는 큰 틀에서 균형을 갖추고 있는 점은 이 책이 가진 가장 탁월한 부분이다. <사무엘서>의 각 장면들을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분석하는가 하면 성경 전체 맥락에서 <사무엘서>가 위치한 의미, 그리고 각 세부 사건이 가진 의미를 합주한다. 이런 균형감은 저자의 탁월한 신학적 지성을 대변하는 것이다. 환언하자면 <사무엘서>가 가진 고유의 내러티브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라는 통사에서 고대 이스라엘 왕조가 차지하는 맥락을 동시적이고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특히 책의 마지막 8장에서는 '사무엘서와 구속사'라는 테마를 따로 꺼내어 정리한다. 사무엘서에 제시된 제왕 신학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서 그 정점에 도달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를 살핀다. 성경 전 역사를 포괄적으로 살피며 연결시킨다. 에덴동산에서의 범죄, 아브라함 언약, 가나안 정복 시기, 사사 시대, 다윗 이후 열왕 시대와 포로기, 예수님이 오신 신약시대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총체적 관점에서 살핀다. 즉 <사무엘서>에 나타난 왕의 제도와 관련된 하나님의 계시가 창조, 타락, 구속, 완성으로 이어지는 구원 역사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는 살피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정리는 <사무엘서>를 그저 다윗의 이야기만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책의 막장을 덮은 뒤 내 '높은' 위치를 실감했다. 왕이요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새삼 인식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의 지위를 부여받은 건 모든 신약 성도들이 가진 특권이다. <사무엘서>에 나타난 왕들의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는 오늘도 왕의 신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왕이 되어야 하는지를 질문하게 한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위대한 왕이 될 것인가, 아니면 내 행복과 영광을 추구하는 세상의 왕이 될 것인가. 이 책은 이 질문에 관한 가장 성실한 신앙적·신학적 참고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을 끝으로 지난 2개월간 계속된 '리더십 관련 책 탐독하기'는 일단락되었다. 총 6권의 책을 통해 권위와 리더십을 깊이 탐구했고 성찰했다. 앞서 언급한 리더십 교체기에 직면한 내 현존을 응시하며 어떤 지혜와 명철이 필요한지를 폭넓게 사유할 수 있었음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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