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비단보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여류작가들의 글솜씨는 하나같이 찬연하다. 몇몇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페미니즘의 클리셰(Cliche)에 함몰되었다거나 지나친 공주병에 빠져 있다는 조소를 받기도 하지만, 각기 뛰어난 필력으로 한국 문단을 주도하는 그녀들의 활력이 나는 좋다. 공지영의 대중성과 신경숙의 섬세한 문체, 은희경의 냉소주의와 심윤경의 문학적 진화, 정이현의 동시대적 공감성과 전경린의 연애 서사 등은 한국 문단을 빛내는 여류작가들의 대표적 아이콘들이다. 바로 그 연장선상에 권지예가 있다.

  1997년 단편 「꿈꾸는 마리오네트」로 등단한 후 2002년 이상문학상과 2005년 동인문학상을 수상, 한국 문단에서 가장 권위있는 양대산맥을 동시에 석권한 권지예의 외연적 존재성은 그녀의 활자 곳곳에 내면을 증명하듯이 배어 있다. 그녀와는 2002년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뱀장어 스튜」라는 단편으로 처음 만났다. 권지예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뱀장어 스튜」는 일상 속에 존재하는 권태와 애증,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일탈의 욕망과 바깥의 낭만적 로맨스, 환상적 도발이 허무의 확인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정교하게 엮고 있는 작품이다. 뛰어난 포스트 모더니즘 기법이 돋보이는 이 짧은 단편소설은 체질적으로 단편과 거리가 먼 내 자신에게 단편만이 가질 수 있고 단편만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치의 문학적 만족을 내게 안겨주었다. 권지예는, 나에게 그리 기억되는 작가다.

  권지예의 신작 장편소설 『붉은 비단보』는 그녀의 기존 작품들과는 다른 배경에서 펼쳐지는 서사다. 권지예는 시간의 무대를 조선의 어느 한 시대로 되돌려 여성의 삶과 사랑과 예술을 처연하면서도 찬란하게 그려냈다. 종당에는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길 수밖에 없는 우주의 내면적 속성을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48년간의 삶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작중화자 항아恒我의 꿋꿋하면서도 담대한 삶은 거대한 서사의 맥으로서 웅숭깊게 그려진다.

  작가는 세 명의 여인을 배치한다. 1인칭시점의 주인공 화자 항아恒我는 뛰어난 자색과 화려한 춤 솜씨를 갖춘 초롱草籠, 총명하며 지혜로워 문필 신동이라 불리는 가연佳然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다. 각기 독특한 성정과 능력을 갖고 있는 동갑네 세 여인의 우정이 서사의 초반부를 이끌어가는 씨줄이다. 여기에 초롱의 친오라비 준서와 항아의 애틋하면서도 절제된 사랑이 날줄로 엉켜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조합된다.

  서사의 흐름 속에서 항아와 준서의 사랑은 농밀해져만 간다. 하지만 둘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역모 혐의로 초롱과 준서의 집안은 몰락하고, 준서는 항아와 훗날에 다시 만나 평생을 함께 할 것을 약속한 후에 금강산으로 피신한다. 여동생 초롱은 한양으로 팔려가 기생이 된다. 가장 뼈대가 튼튼한 사대부 가문의 자녀였던 가연이 제일 먼저 혼사를 치르기 위해 떠나고, 항아는 준서가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부모의 거짓계략으로 준서가 죽은 줄만 알았던 항아는 사랑하지 않는 남정네와 혼사를 치르면서 일평생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 준서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의 세월로 들어가게 된다.

  기나긴 세월이 흐르면서 항아와 초롱과 가연의 삶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간다. 시댁의 핍박과 계속된 유산으로 삶의 방향성을 잃고 방황하던 가연은 목매달아 자살함으로써 짧은 인생을 마감한다. 한편 항아는 기생이 된 초롱과의 연락이 요원하기만 하다. 그리고 훗날 알게 되는 준서와 관련된 진실들. 하지만 항아의 삶에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을 속인 부모에 대한 한과 준서를 향한 원망만이 존재할 뿐. 훗날 항아는 죽음이 임박했음을 인식하고 일평생 자신의 한과 사랑과 그리움이 내밀하게 깃들어 있는 붉은 비단보를 불에 태우려고 한다. 과거 흔적들을 하나씩 태우면서 항아는 다른 세상으로 떠나간다.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이 소설에는 명징한 두 가지의 본류가 흐르고 있다. 하나는 항아와 준서의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이며, 다른 하나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한 여성의 예술가로서의 번민과 열정이다. 항아에 대한 준서의 끈질긴 사랑과 준서를 향한 항아의 애절한 그리움은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흐름이다. 항아가 준서와의 추억을 기억하며 봉인한 '붉은 비단보'의 존재는 종국까지 멸하지 않았던 두 사람의 고결한 정신적 사랑의 극치를 담아낸 메시지가 되고 있다.

  또한 예술을 향한 항아의 꿈과 긍정의 부여는 이 소설의 존재 가치가 된다. 딸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어느 하나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간 한 여인의 웅숭깊은 삶의 여정 속에는 그녀 자신의 예술적 자아가 발현되면서 더욱 찬란한 빛을 뿜어낸다. '여성의 예술'을 인정치 않았던 시대에 태어나서 자신의 예술이 곧 점잖치 못한 '끼'로 재단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그 시대 모든 여성들의 고뇌와 몸부림이 문장 속에 오롯이 배어 있기에 처연하다.

  예술과 사랑은 어떤 함수 관계일까. 세계의 수많은 고전들은 예술 속에서 사랑을 천착하며, 사랑을 통해 예술을 발현시켜 왔다. 소설의 제목 '붉은 비단보'는 한 여인의 마음속에서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일렁였던 사랑의 그림자와 자신의 전생애를 지탱하며 실존케 했던 예술에 대한 열정이 만나 현존存되어진 메타포다. 요컨대 붉은 비단보 안에 봉인된 글과 옷과 그림들은 이 소설의 본류로 작동했던 사랑과 예술의 혼합이 일구어낸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소설 속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독특한 시각이 있다. 다섯째 아이 빈彬에 대한 항아의 특별한 사랑이다. 소설의 시작과 말미는 항아의 1인칭시점의 이야기를 빈이 중심이 된 전지적시점의 이야기가 감싸서 두르고 있다. 빈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영특했다. 항아는 빈을 통해 마치 자신의 어렸을 적 모습을 보는 듯했고, 무지하고 무능했던 남편과 비견되면서 옛사랑 준서를 떠올리기도 했다. 즉 빈은 항아 자신의 예술적 자아가 투영된 거울이자 꿈이요 희망이었으며, 이루지 못한 사랑이 현현된 준서의 또 다른 부활이었으리라.

  나는 인간의 삶을 잘 그려낸 서사에 최고의 찬탄을 선사한다. 문학은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공복을 느끼며, 인간은 문학을 통해 인간 본연의 내면을 더욱 천착한다. 이러한 인간과 문학의 방정식에 동의한다면, 인간을 얼마나 잘 조명했고 성찰했는지에 따라 문학적 평가가 가름된다는 논리에 동의하게 된다. 작가 권지예가 빚어낸 항아라는 여인의 삶과 사랑, 불타는 예술혼이 선사하는 감동의 빛깔은 지극히 찬란하며 눈부시다. 너무 잘 담아냈고 흠이 없는 완전한 서사로 그려냈다. 이런 소설이 있기에 독자의 머리는 잠시 정지할 수 있고, 가슴은 농밀한 감성으로 차오를 수 있다. 미국에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있다면 한국에는 『붉은 비단보』가 있다. 정말 잘 쓴 '완벽한' 소설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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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8-07-30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윗님 독서의 계절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여름은 더 적절한 계절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도 전 이래저래 책을 오래 손에 잡지 못하고 이러구 있네요.
늘 꾸준히 읽고 쓰는 일을 즐거이 하시는 다윗님^^ 좋은 리뷰 또 보고 갑니다.

다윗 2008-07-31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더운 날씨에 평온하시지요. 피서 계획은 세우셨는지요. 그리고 독서 컨디션은 어떠하신지요. 간만에 혜경님의 덧글을 만나니 시원해집니다. 평온하세요. ^^

뒷북소녀 2008-09-23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에 반한 분이 계셔서 선물하려구요... 땡스 투~ 날립니다. :)

다윗 2008-10-04 0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 뒷북소녀님, 언제나 관심과 격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