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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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pril bookclub 5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명작이라는 소리에 질겁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심오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서 몇 장 못 넘기고 덮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실상 읽어보니, 이게 웬걸.

 

이게 뭐야? 정말 이렇다고? 설마? 아닐거야.를 반복하며 읽어내려갔다. 내가 생각하는 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군대에 가면 대학을 다니는 이가 별로 없다는 식의 현타가 오게 만드는 책이었달까?

 

속물 그런데 그게 현실이란다 얘야. 이 애송이야. 네가 생각하는 이상향? 내가 무참히 깨줄까? 아니 그럴 필요도 없어. 이 인생 덜 산 애송이야. 이 말이 반복되는 느낌적인 느낌.

 

이상이 현실에게 묻고, 현실은 지금에서 너울거리고, 이상은 현실에게 배운다고 하지만, 그게 사실은 이상을 더 공고히 하는 그리스인 조르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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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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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피아노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죽음에 관한 글을 일부러 피한다. 피하다가 사노 요코의 사는게 뭐라고를 통하고, 존 디디온의 푸른밤을 통하면서 나의 빗장도 무뎌지지는 않았지만, 무너졌다.

 

[TV를 본다. 모두들 모든 것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간다. 한 철을 살면서도 풀들은 이토록 성실하고 완벽하게 삶을 산다.

 

나의 기쁨들은 모두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나. 불안이 심해진다. 자꾸 놀라고 쓸데없는 일들에 생각을 빼앗긴다. 스스로의 어리석음이 낙담스럽다. 그래도 결국 지나갈 거라는 걸 안다. 조용한 날들이 돌아올 거라는 걸 안다. 우리가 모든 것들을 잃어버렸다고 여기는 그때 우리를 구출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우리가 그토록 찾았던 그 문을 우리는 우연히 두드리게 되고 그러면 마침내 문이 열리는 것이다.

 

바르트의 애도일기를 뒤적인다. 부끄럽고 괴롭다. 그의 고통들은 모두가 마망 때문이다. 마망의 상실 때문이다. 그의 고통들은 타자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그러면 나의 고통은 무엇 때문인가. 그건 오로지 나 때문이다. 나는 나만을 근심하고 걱정한다. 그 어리석은 이기성이 나를 둘러싼 사랑들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사실 나는 바르트보다 지극히 행복한 처지다. 그는 사랑의 대상을 이미 상실했다. 그러나 내게 사랑의 대상들은 생생하게 현존한다. 나는 그들을 그것들을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기만 하면 된다.

 

며칠째 계속되는 하강. 그러나 생은 쌍곡선 운동이다. 어딘가에서 하강할 때 또 어딘가에서는 상승한다. 변곡점이 곧 다가오리라. 거기서 나는 새의 날개가 되어 기쁨의 바람을 타고 떠오를 것이다.

 

차 안에 문득 음악이 흐른다. 부드럽고 친절한 선율. 부드러운 건 힘이 세고 힘이 센 것은 부드럽다. 그 부드러움을 잃으면 안된다. 귀한 손님답게 우아하게 살아가라. 나는 나를 꼭 안아준다. 괜찮아. 괜찮아. 미워하면서도 사실은 깊이 사랑했던 세상에 대해서 나만이 쓸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타자를 위한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병중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이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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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3
존 보인 지음,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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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20227Bookclub

 

북클럽을 하면서 고르고 읽은 책들을 쭉 본다. 철학, 종교, 인종차별, 과학, 소설, 크게는 이렇게 나뉜다. 이번엔 폼젤이야기가 생각나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아홉 살 브루노와 쉬미엘의 우정. 그런데 그게 과연 우정이었을까?

 

이미 이야기의 내용은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유명하기에, 읽어내려가면서 뭐 별다른 것도 없었다. 그렇게 뻔하고 다 아는건데 역사의 잔혹함은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쓴다고 해서 덜 잔인해지지도, 더 잔인해지지도 않는. 잔혹함일 뿐이다.

 

유태인 학살의 큰 임무를 맡고 있는 브루노의 아버지로 인해, 가족이 유태인 수용소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되고, 거기에서 보이는 유태인들을 브루노의 시각으로 써내려 간 소설이다. 브루노의 시각으로는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많은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즐거워 보이기까지 하다. 그리하여 친구도 없고, 학교도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브루노는 점점 그들 가까이 가게 되고, 거기서 철조망을 두고 자신과 생년월일이 같은 폴란드 아이 쉬미엘과 친구가 된다.

 

그리고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가기 전 쉬미엘의 아빠를 찾아준다는 명목하에 철조망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줄을 맞춰 또 어느 곳으로 들어간다. 영화 각본같은 흐름이다.

 

이것이 실제였다고 해도 브루노의 죽음으로 뭐하나 달라지는 건 없다. 유태인 학살은 계속 되었고, 폭력으로 맞서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당했다. 가해자는 자신이 가해자인 줄 모른다. 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지만. 마치 피해자를 가해자인냥 마땅히 죽어야 할 개돼지로 본다.

 

지금 누군가 미워하고 있다면 생각해보자.

그가 나를 박해하는가/그로 인해 내 삶이 피폐해 졌는가/그는 나를 밟고 올라가 승승장구하는가.

이 물음에 어느 한 가지라도 no라는 대답을 했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그리고 만약 yes라면, 내 그대를 위해 함께 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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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170만부 기념 에디션)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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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이기주 지음

 

여전히 많은 것이 가능합니다.

 

 

 

[그런 날이 있다. 입을 닫을 수 없고 혀를 감추지 못하는 날, 입술 근육 좀 풀어줘야 직성이 풀리는 날. 그런 날이면 마음 한구석에서 교만이 독사처럼 꿈틀거린다. 내가 내뱉은 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보태게 되고, 상대의 말보다 내 말이 중요하므로 남의 말꼬리를 잡거나 말허리를 자르는 빈도도 높아진다. 종종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물어본다. 말 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묻으며 사는 건 아닌지....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그 상처의 깊이와 넒이와 끔찍함을.] 말대신 글로 쓴다. 당신으로 인해 아픈 마음을 거르지 않은 글들로 내뱉는다. 걸어온 삶이 너무도 참담한 다시 7월이다. 작년 7월은 나를 어여삐 보아줄 마음이 없나보다.

 

[종종 공백이란 게 필요하다. 정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무언가 소중한 걸 잊고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 우린 마침표 대신 쉼표를 찍어야 한다. 공백을 갖는다는 건 스스로 멈출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제 힘으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홀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하리라. 그러니 가끔은 멈춰야 한다. 억지로 끌려가는 삶이 힘겨울수록, 누군가에게 얹혀가는 삶이 버거울수록 우린 더욱 그래야 하는지 모른다. 목적지에 닿을 때보다 지나치는 길목에서 더 소중한 것을 얻곤 한다.

 

내려앉은 꽃잎 따라, 하나의 계절이 가고 있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 우린 행복하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중

네가 오리고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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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가격표 -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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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가격표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

연아람 옮김

 

이런 식의 글에 범접할 수 없는 정보량을 가지고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단하고 여길 때가 있었다. 그런데 범접할 수 없는 정보량보다 글 자체의 아름다움에 반하기를 여러 차례 하다보니,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일종의 사회흐름서? 에 이전의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

 

생명 가격표라는 제목이 무섭고도 처연해서 집어 들었다.

 

돈이냐 생명이냐, 아이를 낳아도 될까와 같은 생명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는 것에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런데 정작 내용은 똑같은 재난 속에서도 누군가는 생명의 가격표가 높아 구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모른 채 죽어가고 있는 불균형을 이야기하고 있어, 이론이 아닌 현실의 무참함이 나를 깨웠다. 생명의 소중함, 존귀함을 믿고 있는 내게, 현실은 성비 불균형, 장애아 가 생명에 가격을 붙여서 상대적으로 쓸모가 없다고 여기기에 낙태된다고 보여주니, 나는 이 세상에 사는 생명이 아닌 것 같은 이질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에 대한 고귀함은 정말 말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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