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친구는 얼마전 내가 가끔 알라딘에 글을 남긴다는 것을 알게됐는데,

집에 가서 영화 은교에 대해서 써.

라고 말했고, 나는 "요새는 잘 안써.."라고 말했고,

곧 이어, "은교는 쓸게. 당장" 그렇게 말하곤,

그렇게 말한 것 조차 잊고 하루를 보냈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 순수함을 간직한 친구 녀석이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순수하다는 것이 아니라, 문득문득 그녀에게서 드러나는 순수함, 순진함이라는 것이 나의 마음을 살짝 떨리게 만들고, 나로 하여금 다시 어린시절의 느낌을 갖게 한다.

 

그 친구 녀석이 영화 은교가 개봉하기 전부터,

나 보고싶은 영화가 생겼어. 은교 개봉하면 보러가자.

그리고 개봉하고 나선,

혹시 이번 주 주말에 시간돼? 로 시작해선,

매주 "은교 보러갈래?"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하여, 문득,

내가 보기싫어하는 건가?

나는 정말 바쁜 것인가?

생각을 하다가, 영화도 보고싶은 영화이고, 그 친구녀석과 함께라면 더 좋을 것 같고, 시간이야 항상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인데, 친구는 시간이 되고, 나는 시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핑계일 듯도 하여, 부랴부랴 급한 일을 마치고, 친구에게 카톡을 날렸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미안하다는, 못간다는, 잘 놀으라는, 하여, 다시 일에 빠져있는데, 친구녀석이 전화를 했다.

카톡봤어? 내가 다시 가자고 했는데, 내가 다시 가자고 해도 괜찮아? 마음이 바껴서 좀 그렇지? 내가 낮잠을 자면서 카톡을 보냈었어. 미안해. 지금 씻고 너네 집으로 갈게. 은교보러가자.

웃음이 났다. 못간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일을 하려고 했는데, 이녀석.. 계속 나의 동정을 살핀다. 오후 5시경 친구가 왔다. 그리고 916번을 타고 롯데시네마에 갔다.

 

은교7시 50분 영화 2명이요.

친구가 좌석을 고르고, 롯데시네마 12주년으로 관람료 6천원에 통신사할인 천원을 더 받아 5천원에 영화 은교를 보게 됐다.

 

F열 3, 4번

친구는 가장자리를 자기에게 양보해 달라며, 3번에 앉았고,

나는 4번에 앉았다.

그러면서 친구는

원래 4번이 더 좋은 자리야.

내가 중간에 화장실에 갈 수 도 있어서, 그래. 괜찮지?

 

아무렴요..

 

 

처음, 은교로 나오는 '김고은'이라는 배우를 보면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너무 아름다웠다. 예쁘다는게 아니라 아름다웠다. 싱그러웠다.

노인의 박해일은 너무 젊었다. 너무 건장했다. 박해일이 저렇게 건장했나? 싶게 건장했고,

젊은 시절의 박해일이 더 초라했다. 순간, 나도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영화에서, 이적요 라는 시인이 나올 때 마다, 이적요만 보였다.

은교라는 고등학생 여자아이가 나올 때 마다, 은교만 보였다.

그리고 그 둘이 나올 땐, 이상하게 그 둘이 보이지 않았다.

이적요의 마음만 애잔했다.

 

개인적으로 문학이라는 장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영화의 서정적인 느낌도 좋아한다.

그 둘이 어우러진 이 영화는 내게 적격이었다.

눈물을 훔치고, 마음을 어루만지고, 제일 마지막으로 일어나 극장에서 나왔다.

 

영화를 다 보고, 편의점에 들러, 먹을 것을 사고,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연필 좀 깎아주세요." 라고 했고,

친구는 "잘가라. 은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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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8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 52주>라는 책에 보면, 30주에 '멋지게 나이 들기'가 있다. 멋지게 나이 든다는 것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진짜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이 변화에는 우리가 얻을 기회들을 깨닫고 이에 감사하는 것도 포함된다. 라는 말이 나온다.
이렇게 살다가 그래서 내가 멋지게 나이들었다고 생각될 때쯤, 나에게도 은교와 같은 사랑이 오면, 그 때의 나는 그저 사랑하고, 젋어보이고, 예뻐 보이려는 욕망을 잡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때의 나는 움켜잡지 못하는 젊음이라는 것에 마음저려할까?

폐쇄자 2012-05-19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생각 많이해요.
더 나이가 들었을 때, 나에게 없는 젊음의 아름다움과 싱그러움을
부러워하며, 초라한 기분이 들을까?
물론,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때의 저도 또한 아직도 블링블링,
빛나고 있을 거라고 믿고 싶어요.^^
젊든, 늙었든, 반짝반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