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에게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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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에게

김금희

 

읽으면서 겸손해지는 책이 있다. 더 이상 잘 쓸 수 없게 깔끔했다. 취재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는 저자의 말과는 무색하게, 영초롱이 판사가 살아 움직이는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그 필력에 놀랐다.

 

이런 책을 사고 한자리에 일년 이상을 묵혀두다니. 다시 생각해도 너무 미안한 일이다.

[복자에게]옆에 나란히 있는 [밝은밤], [여름의 빌라], [바깥은 여름]도 그러할까. 책을 고르는 안목만큼 읽는 시간도 기꺼이 내어주는 나란 녀석이라면 좋으련만, 나는 아직 거기까지는 아닌 듯 하다.

 

이 글은 제주도에 잠깐 살았던 영초롱이 판사가 되어 다시 제주도에 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 찰나의 시간을 함께 보냈던 복자에게 일어난 일, 작가는 복자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노동자의 아픔? 권력 속에서도 짓밟히지 않는 소수의 힘?

 

휴직을 하고 1년이 흘렀다. 나름 건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여전히 나를 따시키고 있었다. 너의 횡포에도 나는 나로 살아가겠다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하는데, 하루 종일 숨이 막힌다. 그림자 취급하기 놀이는 그들에게는 재미있겠지만, 당하는 나는 처참하다. 힘들 때 똥이라도 묻은 듯이 모두는 나를 버렸다. 권력 앞에서 나를 스치기만 해도 오물이라도 묻은 냥 눈빛을 거뒀다. 알아서 나가라는 무언의 압박. 그렇다고 다른 과에 가도록 놓아주지도 않는. 퇴사만이 살길이라는 저주. 얼마 후면 나는 제발로 다시 그곳에 걸어들어가야 한다.

 

[그 비린 것에 달라붙는 파리떼처럼 칼과 도마와 고무장갑에 내려앉았다가도 공기 중으로 와락 떠오르며 우리도 산다고, 우리가 이렇게 구차하고 끈질기게 기꺼이 산다고.]

 

나도 그냥 내 이야기를 아무데서나 하기 아까워 할 그런 사람 한명을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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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5-04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란히 있는 넷 먼저 본 독자인데요 다들 잔잔하니 무리없이 다 좋았습니다. 김애란 것만 좀 안쪽은 겨울 마냥 서늘했습니다.

2023-05-16 17:49   좋아요 1 | URL
댓글 소중히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